김영철(60회) 교우_ <가요사회사10>_<가요 정화운동과 가요규제> > 교우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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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099회 작성일 2021-08-09 10:26
김영철(60회) 교우_ <가요사회사10>_<가요 정화운동과 가요규제>

본문

<가요 정화운동과 가요규제>


1) 가요규제의 배경


정부에 의한 가요규제는 이미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 대중가요가 대중들에게 끼치는 정치사회적 효과와 파급력이 지대함으로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통치이념과 정책에 어긋나는 노래를 통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온갖 검열 및 통제수단을 동원하여 식민통치의 방향에서 벗어난 노래들을 규제했다. 항일투쟁의 노래와 민족주의 성향, 외국풍의 노래는 물론 풍기문란, 퇴폐적인 곡까지 금지시켰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물론이고, 이애리수의 <고요한 장안>(1926년 발표, 1932년 리메이크)은 순종 타계를 애도한 이유로, 채규엽의 <봄노래 부르자>(1930)는 민족정서 환기와 선동, 이애리수의 <황성옛터>(1932)는 역사의식의 고취,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은 임진왜란을 상기시킨다는 죄목으로 금지시켰다.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판매고는 급증했다.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은 5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일제시대의 베스트 셀러가 됐다.  규제와 인기는 반비례한다는 역설적 진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판매량이 많으면 그 만큼 대중의 영향력도 커지니까 그에 대한 규제가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해방 후에 정부의 통제 하에 가요규제가 실시된 것은 1960년대 왜색가요 금지가 대표적이다. 이미자의 출세곡 <동백 아가씨>(1965)를 비롯하여 많은 인기곡들이 왜색가요 판정을 받고 사장되었다. 

이어서 1975년 6월 ‘가요 대학살’로 통칭되는 대규모 가요금지령이 실시되었다. 1960년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역사적 사건은 한일협정이다. 

60년대 들어 36년간 일제 강점의 역사를 청산하는 문제가 급격히 대두되었다.  물론 식민지 청산을 위한 한일협정 회담은 1951년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잠시 묻혀 있다가 5.16과 함께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경제개발 5주년 계획에 맞추어 급물살을 타게 된다. 3공화국은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거머쥐었으나 아직 미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조달이 절실했음으로 한일협정과 수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 일본 등 우방의 안정을 위해서 한일수교가 절실했다. 


이러한 국제간 상호 요구에 의해 1965년 6월에 7차례의 회담 끝에 마침내 협정조인이 이루어졌고 한일정상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10년간 10억 달라 무상지불과 3억 달라 이상의 상업차관이 들어와 5개년 경제 발전에 자금줄이 확보되었다. 하지만 학생들과 야당 쪽의 극심한 반대운동이 벌어져 1964년 6월 이른바 ‘6.3사태’라 불리는 소요가 발생하였다.

 학생들의 연이은 동맹휴학과 투쟁, 장준하의 <사상계>를 중심으로 한 언론투쟁, 윤보선, 장택상 등의 야당 정치인들의 반대투쟁이 전개됐던 것이다.

 이른바 ‘대일굴욕외교’ 반대 운동이 사회적 이슈로 떠 올랐다.


2) 왜색가요 청산운동


이러한 정치 사회적 조류를 타고 가요계에서도 일본가요 잔재를 청산하자는 이른바 ‘왜색가요 청산운동’이 일어났다. 1965년 9월 <주간한국>에서 불 붙은 왜색가요 척결운동은 이를 반대하는 한국연예협회와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사회적 이슈로 떠 올랐다. 그것도 정치가 아니라 대중들이 즐겨 부른 가요에서 제기된 문제라 더욱 국민들의 관심거리로 부각됐다. 찬반 논란이 극심해지자 정부가 나서 ‘한국방송가요심의회’를 구성하고 조정에 나서 결국 왜색가요 정리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이미자의 대표곡 <동백 아가씨>, 오기택의 <영등포의 밤> 같은 명곡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이미자의 히트곡 <동백 아가씨>의 금지곡 선언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미자를 명가수 반열에 올려 놓은 곡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가 왜색풍이라는 판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동백 아가씨>는 이미자를 ‘엘레지의 여왕’으로 등극시킨 곡인 동시에 국민가요로 사랑받던 노래였다. 그리하여 <동백 아가씨>는 금지곡 해제가 풀리는 1987년까지 20년간 사장되고 말았다.

이 뿐만 아니라 <동백 아가씨>와 함께 이미자 3대 명곡으로 평가받는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가 판금되어 충격은 더욱 컸다.  <섬마을 선생님>은 1987년 6.29 선언 이후에도 표절가요로 묶이는 수난을 겪었다.


 은방울 자매의 입신곡 <삼천포 아가씨>(1965), 남진의 대표곡 <울려고 내가 왔나>(1966)도 왜색가요 판정을 받아 사장됐다. 1967년 남진이 왜색 창법을 구사한다는 이유로 ‘방송가요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1970년대로 이어져 <소양강 처녀>를 불러 주목받은 김태희의 <사랑하다 싫다면>(1971)도 왜색가요로 낙인이 찍혔다. 왜색가요 척결운동은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가요 정화(淨化) 운동의 연장이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가요는 일본의 엔카(演歌)의 영향 하에 전개되었다.  소위 트롯이라 부르는 대중가요, 유행가는 그 기본틀이 일본 엔카에서 기원한 것이다. 초창기의 대중가요는 대부분 일본가요의 번안곡이었고, 창작가요라 해도 엔카풍의 리듬에 맞춘 곡이 대부분이었다.

 음반회사도 대부분 일본계였고, 일본에서 취입해야 하는 실정이었음으로 그 영향은 절대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해방 후에도 엔카의 잔재는 여전했고, 가수나 작곡가, 연주가들도 큰 변화가 없었음으로 한번쯤 청산운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1956년 들어 신문지상을 통하여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송영호는 <국민오락과 가요>(<동아일보>, 1956.1.14)에서 ‘과거의 유행가는 일본조의 가요곡, 혹은 식민지의 압정과 혹사에서 밀려 비애와 감상을 담뿍 실은 세기말적인 노래다’라고 비판하고, ‘신흥국가의 늠름한 기상을 상징하고, 민족정서가 풍기며, 생산의욕을 앙양하는 건설적인 씩씩한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말하자면 애상적이고 퇴폐적인 <홍도야 울지마라> 식의 왜색풍 노래를 척결하고 희망적이고 건설적인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왜색가요에 대한 반성적 강연회들이 줄을 이었고, 마침내 이러한 운동을 실천하는 음악방송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공보처 중심으로 ‘새노래’ 보급운동이 전개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곡들이 <꽃 중의 꽃>(송민도), <금수강산에 백화가 만발하구나>(김부자), <소녀의 꿈>(박신자), <청춘목장>(송민도, 김시스터즈) 등이었다.


 이런 건전가요들은 매일 아침 ‘오늘도 명랑하게’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하여 널리 불려졌다. 이런 점에서 1960년대 왜색가요 척결운동은 1950년대 연장선상에 있었던 제2의 가요정화 운동이었다. 1960년대 일었던 왜색가요 논쟁은 1984년에 <주간중앙>, <한국일보>, <MBC> 등 언론기관을 통하여 재현되었다. 김대현, 황병기, 박용구 등의 찬성파와 김지평, 박춘석 등의 반대파의 논쟁이 불붙었다.


 해방된지 40년이 지난 1980년대 와서도 왜색가요 논쟁이 재현됐다는 사실은 그 만큼 일제 강점기의 엔카의 영향과 그에 대한 청산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나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왜색가요라는 죄목으로 금지된 곡들은 올림픽을 앞 둔 1987년에 해빙무드를 타고 대부분 해제되었다. 

20여 년의 긴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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