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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30 03:00
人格이 어디 저절로 생깁디까, 커보이는 偉人은 없는 법이죠… 우리 되도록이면 작아집시다
- 김창완 가수
'오랫만일세'가 맞나? '오랜만일세'가 맞나? 요즘엔 뭐 모르는 거 있으면 휴대폰으로 뒤져보면 다 가르쳐주지만 무슨 오기인지 이건 찾아보기가 싫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떨까? 친구 안부 묻는 것도 격식을 차리고 맞춤법 맞춰야 한다면 세상 팍팍해서 어떻게 사나 싶기도 하네. 얼마 전 술상머리에서 반(半)농담이겠지만 역사 시간에 선생님들이 입 떼기가 겁난다고 합디다. 뭐 조금만 빗나가면 아이들이 죄다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서 사건이 난 해가 그해가 맞느니 틀리느니 보통 시끄러워지는 게 아니라고….
그나저나 잘들 지내시나? 예전 같으면 어르신들께 드리는 문안이라는 게 아침 저녁으로, 또 집을 들고 날 때 늘상 하는 것이었는데 세상이 좁아졌다는 요즘에 와선 아주 특별한 일이 됐네. 꽃소식은 그렇게들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서도 가까운 친척, 정다운 친구, 고마운 은사님 소식은 그저 휴대폰 문자 들여다보는 게 다니 원….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건지….
얼마 전에 내가 일하는 방송국으로 이런 사연이 왔었네. 중년의 여자분이신데 지하철을 타고 병원과 병원을 오가며 택배 일을 하신답디다. 처음에는 멀미가 심해서 고생을 하셨는데 요즘에는 이력이 나서 일도 재밌게 잘하시고 덕분에 월급도 꼬박꼬박 챙기시는데… 아, 글쎄 며칠 전에는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배송할 물건을 안고 있다가 손잡이를 놓쳤다지 뭔가. 그래 이리저리 비틀대다가 그만 앞에 앉아계시던 노(老)신사분의 백구두를 밟고 말았다네. 순간 너무 놀라고 죄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더니 그 어르신께서 껄껄껄 웃으시며 "신발을 밟아 줬으니 오늘 운수 대통하겠는걸요" 하시더라는 거라. 어르신의 호탕한 말씀에 옆에 있던 승객들도 모두 기분 좋게 웃었다고 하는데….
참 푸근한 사연입디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재칠보시(無財七布施)'가 생각나더군. 좋은 말 하고, 인자한 표정 짓고, 사람 들어오면 자리 내어주고 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일까 싶고, 나이 들어 가면서 그 정도 인격을 갖추는 건 저절로 되는 거 아닐까 했지만 돈 안 들이고 하는 그런 보시도 거저 되는 일이 아닙디다. 나이 헛들었다는 소리 안 들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언사시(言辭施·말을 공손하고 곱게 하다),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부드럽고 기쁜 얼굴로 대하다), 상좌시(床座施·자리를 양보하다)'…. 줄줄이 암기하면 뭐 합니까, 행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습니다. 욕심 내려놔야 된다고 SNS들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렇게 해서 욕심 내려놓아지면 세상에 학교 다 필요 없습니다.
얼마 전에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씨를 만났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얼마나 기타를 잘 퉁기는지 모릅니다. 정말 장인(匠人)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타 한 수만 가르쳐 달랬더니 '힘 빼고 치세요' 그러는 거예요. 많이 듣던 소리지요.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몸을 경직되게 하지 말라는 얘기지만 어쩌면 굳어 있는 마음이나 고정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인지도 모릅니다. 새들만 봐도 힘주고 날아가는 새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하여간 그런 말을 하는 기타리스트를 보는데 한없이 작아 보여요. 한없이 겸손해 보이는 거예요. 힘을 빼면 사람이 저렇게 작아 보이는구나 싶더군요. 근데 신기한 게 그 사람이 점점 작아지는 듯싶더니 그분 뒤로 음악의 세계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겁니다. 화가가 작아질수록 그 뒤에 피어나는 그림이 아름답고, 시인이 작아질수록 그 시인 뒤에 수놓아지는 시의 세계가 황홀한 거지요.
지난해 교황님이 오셨을 때 한 사람의 작은 인간으로 보입디다. 내게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작은 화단으로 남아 계시고, 족적이 큰 사람들이야말로 삶의 흔적이 작습니다. 바늘구멍 사진기의 구멍이 작을수록 더욱 또렷한 상(像)이 맺힙니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인간이야말로 작아지며 그 작은 인간을 통해 보이는 세계가 한없이 넓게 펼쳐집니다. 그런 위인들을 통해 우리는 진정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거지요.
우리 되도록이면 작아집시다. 작은 인간이 되어 우리의 후대에게 더욱 아름다운 인간과 세계를 보여줍시다. 눈앞에서 커 보이는 사람은 절대 위인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큰 모습은 세상을 가리는 검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작아집시다. 그리고 더 작아집시다. 써놓고 보니 부끄럽습니다. 내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면 용서하시고 일간 한번 봅시다. 친구들 건강을 빌며….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