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호 / 아주대 경영대학장겸 대학원원장 |
일행 중에 딸을 일본에 유학을 보내려고 준비하는 사람이 있었다. 공식 일정을 피해 개인적으로 오사카 대학 방문에 나섰다. 교통편을 생각하다가 일단 택시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택시요금이 무진 비싸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 먼저 기사에게 오사카 대학까지 얼마쯤 나오겠느냐고 물었다. 기사는 한 15분쯤 갈 테니 2천500엔쯤 나올 것이라 이야기했다. 그 정도 요금이라면 세 사람이라 다른 교통수단을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다 싶어 택시를 탔다.
그런데 목적지를 3, 4㎞ 남겨두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택시 기사가 그냥 미터기를 꺾어버리는 것이었다. 미터기에 요금이 2천500엔으로 찍혔던 그 시점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아까 호텔에서 제가 2천500엔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제가 그 요금만 받겠습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일행은 모두 깜짝 놀랐다. 아니 2천500엔 받겠다고 약정을 한 것도 아니고, 그쯤 나올 것이라 이야기한 것뿐인데… 그 기사는 손님에게 기대를 심어 주었기 때문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필자도 일본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택시를 타고 공항을 가는데 시간에 쫓기어 빨리 좀 가자고 했다. 기사는 친절하게 "하이!"해 놓고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보행자도 없는데 빨간불도 좀 통과하고, 제한속도도 좀 어겼으면 했지만 고지식하게 룰을 다 지키고 가는 것이었다. 답답해서 넌지시 한번더 운을 떼 보았다. 반응은 여전히 똑 같았다. "우리는 프로라서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면 아슬아슬한 경우가 많다. 속도위반은 다반사고, 신호위반, 유턴위반도 마다않는다. "아저씨 좀 심하지 않습니까?"하고 한마디 하면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우리는 프로 아닌가, 당신네들과 같은 아마추어 하고는 달라." 일본의 프로는 규칙을 지키는 걸로 자부심을 갖는데 우리네 프로는 규칙을 어기는 걸로 '보람'을 느끼는 걸까?
처칠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번은 처칠이 급해서 기사에게 좀 속도를 내라고 했다. 그랬더니 런던 경찰이 잡지를 않는가. 기사는 조용히 경찰에게 "뒤에 앉은 분이 누군지 모르는가? 처칠 수상님이시다." 그런데 경찰은 "우리 수상님 차가 속도위반을 할 리가 없다"면서 '딱지'를 떼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보던 처칠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경찰의 행동이 가상해 보였다. 나중에 런던 경찰청장을 불러 사연을 이야기하고 성실하게 근무를 하고 있는 그 경찰을 찾아서 표창을 해주라 하였다. 경찰청장은 "수상님, 런던 경찰은 모두 그렇게 근무하는데, 그럼 모두를 표창하라는 말씀입니까?"고 되묻는 것이었다.
영어로 직업을 나타내는 단어가 여럿 있다. job, occupation, vocation, calling, career, business 등 말이다. Profession도 직업을 나타내는 단어의 하나다. 그런데 프로페션은 다른 단어와는 달리 고급기능이나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을 말한다.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 말이다. 사회가 발달하다 보니 이제는 프로페션도 숫자가 무척 많아졌다. 그 종사자인 프로(professional)도 흔해졌다. 또 프로는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와 구별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프로에게는 프로정신(professionalism)이 있다는 것이다. 직업인으로서의 소양이나 방법론, 나아가서는 철학을 뜻한다. 프로정신이 제대로 섰을 때 사회적인 신뢰가 형성되고 사회적 시스템이 고도화된다.
프로는 일단 기량이 높다. 그러나 기량이 높다고 프로는 아니다. 프로로서의 윤리의식 즉 프로페셔널리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프로선수들이 승부를 조작하고, 변호사가 고객을 속이고, 판사가 막말을 하고, 공직자가 업무상 얻은 정보로 투자를 하고… 택시기사나 버스기사들이 '당연히' 교통규칙을 위반하는 사회는 그만큼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사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