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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10월 2일 박태준 당시 포철 회장은 광양제철소에서 1만2000명의 손님을 모시고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 준공식’을 치렀다. 68년 시작된 포항제철 건설은 연간 2100만t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 광양4기 설비 준공식으로 마무리됐다. 25년 만의 대역사였다. 그러나 그에겐 더 중요한 행사가 남아 있었다. 이튿날 그는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 검은 양복 차림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박정희 대통령 묘 앞에 섰다.
[박태준 보고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박정희 대통령 묘소 참배문)
각하! 포항제철은 '빈곤타파(貧困打破)와 경제부흥(經濟復興)'을 위해서는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 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 광양의 양대 제철소에 조강생산 2,100만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몸 희생활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맡아!' 1967년 9월 어느 날, 영국출장 도중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제게 특명(特命)을 내리 시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 25년이란 긴 세월 을 철(鐵)에 미쳐, 참으로 용케도 견뎌왔구나 생각하니 솟구치는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 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형극과도 같은 길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일이 없는 39명의 창업요원 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선진철강국의 냉대 속에서 국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숨짓기도 했습 니다. 터무니없는 모략과 질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 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각하의 불같은 집념, 그리고 열세 차 례에 걸쳐 건설현장을 찾아주신 지극한 관심과 격려였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포항제철소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졸지에 유명(幽明)을 달리하셨을 때는 '2,000만톤 철강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鐵鋼立國)'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없이 오늘까지 일해 왔습니다. 그 결과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거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우리 나라는 6대 철강대 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첫삽을 뜬 이래 지난 4반세기 동안 연 인원 4천만명이 땀흘려 이룩한 포항 제철은 이제 세계의 철강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으로 평가받 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제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새로울 뿐입니 다. "임자 뒤에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 붙여봐"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 다만 머리숙여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각하! 염원하시던 '철강 2,000만톤 생산국'의 완수를 보고드리는 이 자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던 근영·지만군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녀분들도 이 자리를 통해 오직 조국근대화만을 생각하시던 각하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 기며, 각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더욱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라 맏습니다. 저 또한 옆에서 보살핌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전의 그 마음으 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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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