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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목)남쪽 '빨갱이'들이 신주처럼 떠받드는 소위 '조선노동당'의 유래는 1945년 10월 10일 레닌의 국제공산주의 1국 1당 원칙을 스탈린이 깨 버리고 소련군 점령지인 평양에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설치한 후, 1946년 7월 27일 최용건의 '민주당'을 흡수하고 김두봉의 신민당과 합당을 하여 1946년 8월 29일 '북조선노동당'을 창당한 데서 비롯된다.
한편 남한에서는 1946년 5월 조선정판사사건으로 공산당이 불법화 되면서 평양으로 도주한 박헌영이 1946년 11월 백남운의 남조선신민당, 여운형의 남조선인민당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을 합쳐서 '남조선노동당'을 만들어 남한에서 '제2전선 빨치산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6.25남침 직전인 1950년 4월에서야 남북조선노동당이 흡수합당 형식으로 '조선노동당'이 된 것으로서 엄밀하게 따진다면 노동당의 나이는 65세가 아니라 60세라야 맞는 것이며,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일이 아니라 '조선공산당 제삿날'이라야 맞는 것이다.
이는 위수김동 친지김동도 모자라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김정은에게까지 3대를 이어서 절대충성, 무조건 복종을 맹세해야 할 남쪽 빨갱이뿐만 아니라 북쪽 빨갱이들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술책에 불과 한 것이다.
예컨대, 매년 2.8절이라 기념해 오던 1948년 2월 8일'조선인민군 창설일'까지도 어느 날 갑자기 김일성이 스무 살 애송이 때인 1932년 4월 25일 만주벌판에서 '조선인민군'을 창설했다며, 2010년 4월 25일을 인민군창설 78주년이라고 우겨대는 놈들에게 진실을 묻고 사실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 9월 28일 개최 된 노동당대표자회의에서 만 30년 만에 개정된 당규약이란 것은 김일성 주체사상과 나란히 김정일의 '선군사상'이 자리를 잡으면서 김정일 곁에 28세 '애송이 장군'을 앉힘으로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사당(私黨)으로서 김가 일족의 세습통치도구에 불과함을 명문화 한데 불과한 것이다.
소위'조선인민공화국'보다 3년 앞선 1945년 10월 10일에'조선노동당'이 창당 됐고, 노동당이 창당되기 16여 년 전인 1932년 4월 25일 당의 무장력이라는'조선인민군'이 창건 됐다고 하는 북의 주장은 유치원 아이들 수준의 더하기 빼기만 제대로 해도 허구적 기만임을 모를 까닭이 없는 것이다.
북의 주장대로라면, 어머니인'조선노동당'보다, 혁명의 무장력으로서 아들인 인민군대가 먼저 태어났다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코미디이다.
소위 주체혁명의 참모부라는 노동당은 소련군대가'조선공산당'을 토막살해한 후 북에 있는 어중이떠중이 공산주의자들과 남에서 도망쳐 간 박헌영의 남노당을 뭉뚱그려 만들어 낸 마적단이나 마피아보다 더 포악한'범죄 집단'에 불과 한 것이다.
이런 사정은 허구한 날'김일성 유일체제'를 교양을 받고 주체사상세뇌를 당한 北 주민들도 알고 있는데 하물며 노무현 버전으로 '좋은 학교 나오고 (민변소속)변호사까지 된'민노당 대표 이정희(41)가 모른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기에 앞서서 불가사의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민노당(대표 이정희)의 이런 작태가 북의 실상을 몰라서라기보다는 조총련 등 해외 및 남한 내 지하당 등을 지도하기 위해 노동당산하에 설치한 전위정당'조선사회민주당'과 불륜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민노당은 北에 철저하게 종속 된 전위조직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해석 외에는 답이 없다고 본다.
2010년 10월 10일은 김일성의 사당(私黨)으로 전락하여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체제 강화와 김정은의 3대 세습의 도구가 돼 버린'조선노동당창건기념일'이 아니라 소련점령군에 의해 토막살해 당한'조선공산당의 제삿날'이다.
이제 국제정세에 밝은 北 군부 소장엘리트나 실용적인 테크노크라트, 분노한 민중이 나서서 세계적 조소거리가 된 3대 세습체제를 박살내야 할 때이다. 맞아죽고 굶어죽어 가면서 더 이상 잃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는 북의 군부나 민중이 무엇을 주저하고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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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을 국제사법재판소에 반드시 죽기전에 회부하여야 합니다.(인권관련 폭정외에도...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로 구성된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가(반인도위)는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샌터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3월 26일 북한의 불법적 군사공격에 의해 침몰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김 위원장을 ‘전쟁범죄’로 ICC에 고발하기 위한 것으로 반인도위는 지난해 김 위원장에 대해 ‘인도에 반한 범죄’ 혐의로 ICC에 고발장을 접수한 상태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정치범수용소, 북창 18호 관리소의 대형 그림과 함께 인권유린 참상도 공개될 예정이다.
반인도위는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천안함 침몰은 로마규정을 어긴 ‘불법적이고 무분별하게 수행된 파괴행위’인 만큼 중대한 범죄행위로 치부될 수 밖에 없다”며 “국제사회가 유엔헌장에 적시된 조치들을 취하기 전에 ICC를 통해 불법적 군사 공격에 대한 책임자를 찾아내 재판으로 심판함으로써 재발 방지를 하기 위해 이번 고발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제분쟁이라고 하는 것은 국제법상의 법률관계 또는 국제정치상의 이해관계에 관한 국가간의 의견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법상의 분쟁은 현행의 법률관계, 권리의무관계에 입각한 분쟁인데 대하여 국제정치상의 분쟁은 그것을 떠나서 그것의 변경을 요구하거나 또는 그것을 부인하는 분쟁이다.
세계는 국제 연합을 중심으로 하여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나아가 국제 협력을 통하여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UN의 사법기구로서 분쟁에 대한 평화적 처리의 최종 수단인 재판의 담당기구이다.
이에 국제사법재판소(ICJ)는 UN의 위상 확립과 더불어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지만 가장 문제되는 것은 국제사법재판소가 기준할 재판의 준칙이다.
특히 국제법은 국내법과 달라서 법이 체계적으로 - 중략 -
동 재판소는 부속 정관(定款)에 따라 기능을 수행하며, 동 정관은 상설국제사법재판소 정관을 기초로 하며 본 헌장과 불가분의 일체가 된다."
제93조는 국제연합 가맹국은 동 정관의 자동 당사국이 되며, 비가맹국은 국제연합총회가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사안별로 결정하는 조건으로 당사국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소는 15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전원 국적이 달라야 하며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선출한다.
재판관들은 종신제는 아니지만, 9년 임기를 마치고 연임할 수 있다.
재판소는 헤이그에 있지만 필요한 경우 다른 곳에서도 개정(開廷)할 수 있다.
최초의 개정은 1946년 4월과 5월 헤이그에서 있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계속성을 가지는 조직체이다. 정관은 재판관들의 휴가 기간을 제외하고서는 상시 개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또한 자치조직체로서 소장 및 차장을 선출하고 서기를 임명하며, 필요한 직원과 사무요원들의 임명에 대해 규정한다. 재판소장과 재판소 서기는 헤이그에 거주해야 한다. 국가간의 분쟁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재판소의 기능이므로, 오직 국가만이 법원에 제소(提訴)되는 사안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 재판소는 정관의 모든 당사국과 안전보장이사회가 정한 조건(이 조건은 어떤 경우에도 당사국들을 법원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놓아서는 안됨)에 따르는 다른 국가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정관의 초안이 작성되고 있을 때 약소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국가들에서 강한 반발이 나왔다. 그들은 정관 초안이 재판소에 의무적 관할(권)을 부여하여 어느 나라든 다른 나라의 동의 없이 그 나라에 대해 제소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견해의 반대자들은 일부 국가는 아직 의무 재판을 수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그들에게 이를 강제하고자 할 경우 그들이 정관을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상설재판소 정관 제36조에 있는 선택조항을 받아들이는 안을 지지했다. 이 안이 합의되어 동 제36조가 대부분 그대로 새 정관의 제36조가 되었다. 동 제36조의 규정에 따라 정관 당사자들은 언제든지 국제연합의 사무총장에게 의무적 관할을 수락한다는 선언서를 제출할 수 있으며, 40여 개국이 그렇게 하였다. 선언은 무조건적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도 같은 선언을 해야 한다는 조부일 수도 있으며, 시한부일 수도 있다. 동 제36조의 다른 조항에서는 현행 상설재판에 구정관(舊定款)에 따라 재판권을 부여하기로 한 선언은 신정관(新定款)의 당사자들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설재판소의 의무 재판권에 대한 수락 선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재판소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와 영어이다.
당사국은 2개 중 어느 것이나 사용할 수 있다. 한 언어로 제출된 서면답변(書面答辯)과 구두변론(口頭辯論)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거나 통역된다. 판결과 의견은 프랑스어와 영어 2가지로 한다. 제소는 당사자 쌍방이 맺은 특별합의를 재판소에 통지하거나 당사자 일방이 단독으로 서기에게 서면신청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절차는 서면과 구두로 구성된다.
재판소는 필요한 경우 증언을 청취하고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보고하도록 위촉할 수 있다. 이 두 절차가 코르푸 해협 사건(1949, 영국 대 알바니아)에서 행해졌다. 재판소는 프리비히어 사원 사건(1962, 캄보디아 대 타이)에서도 전문가들과 당사국들이 출정시킨 증인들의 말을 청취했다. 남서아프리카 사건(1966, 에티오피아·라이베리아 대 남아프리카)에서 재판소는 재판소가 직접 현지시찰을 해야 한다는 남아프리카의 주장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재판소의 심의는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판결은 다수결로 하며 공개법정에서 낭독한다. 가부동수(可否同數)의 경우 재판소장이 결정투표권을 가지며, 남서아프리카 사건에서 가부가 7 대 7로 나뉘었을 때 이를 적용하여 판결했다. 판결에 대해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재판관은 개별의견을 제출할 수 있으며 만장일치가 되는 판결은 거의 없다.
판결은 최종적이며 상소할 수 없다.
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자주 제기된다.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연합 국제기구회의에서 이 정관이 검토될 때 일부 대표가 골치를 앓은 것도 이 문제 때문이었다. 그들의 소망에 따라 헌장 제94조에 국제연합의 각 가맹국은 "자국(自國)이 당사자인 어떠한 사건에 있어서도……재판소의…… 판결에 따르기로" 하는 약속이 삽입되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조항도 포함되었다. "만약 사건의 일방 당사국이 재판소가 내린 판결에 따라 자국이 부담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타방의 당사국은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소할 수 있다. 이사회는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권고를 하거나 판결의 집행에 필요한 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 또는 그 전신인 상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된 사건의 당사자가 재판소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사례는 한 번뿐이다. 코르푸 해협 사건에서 알바니아는 재판소가 손해배상액으로 영국에 지급하라고 한 84만 3,947파운드를 지불하지 않았다.
정관 제65조에 따라 재판소는 국제연합헌장에 의해 또는 동 헌장에 따라 그러한 요청을 할 자격이 부여되는 모든 단체의 요청에 기하여 여하한 법률문제에 관하여도 권고적 의견을 말할 권한이 있다. 헌장 제96조는 총회나 안전보장이사회가 그러한 권고적 의견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한 국제연합의 기타 기관이나 전문기관도 총회의 승인을 받아 이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한 요청은 문제의 정확한 진술을 포함하는 서면요청을 통해 이를 조명할 모든 문서들을 첨부하여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국제사법재판 소송절차는 계쟁사건(係爭事件)에서의 절차와 다소 유사한 면이 있다. 서면 또는 구두의 진술을 제출하는 국가나 기관은 지정된 시간 안에 타방이 제출한 진술에 대해 논평하는 것이 허용된다. 권고적 의견은 판결처럼 공개법정에서 발표된다.
한국도 1991년 9월 17일 국제연합에 가입함에 따라 국제연합헌장 제93조 1항의 규정에 의해 국제사법재판소 당사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