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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56회 정원기교우가 56사이트에 올린글을 본인의 양해를 얻어 전재한 글입니다.
친일파 두목이 세운 항일민족학교가 중앙(中央)인가?
여기에서 그가 "친일파 두목"이 맞다면,그는 항일을 위한 민족학교를 세울리가 없다.
따라서 중앙은 "항일민족학교"가 아니다.
그가 친일파 두목이 아니어야,중앙은 "항일민족학교"일수가 있다.
그래서 중앙이 "항일민족학교"라는 말이 참이 아니거나
인촌 선생이 "친일파 두목"이라는 말이 참이 아니다.
둘중에 하나는 거짓말이되고 만다.
만약 인촌선생이 친일파 두목이라면 중앙은 더이상 "항일민족학교"라는 말을 사용할수가
없다.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중앙 100년사"라는 책은 휴지통에 빨리 던져야만 한다.
남이 볼까봐 무섭다.
친일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을 버리고 얻은 권력으로 자신의 영달과 부를 축적한 행위를
말한다.인촌에게는 그런 흔적을 눈을 닦고 봐도 찾을수가 없다.
그당시에 만석꾼의 후예들은 조상이 탁하게 벌어들인 돈을 기생들의 치맛폭에 한없이
갖다 받칠 때 이었다.
문학가 김동인은 평양부호의 아들이었는데 그 유명한 평양기생들과 주지육림에 빠지는것도
지겨워서,부관페리를 타고 동격에가서 게이샤들과 쾌락을 즐겼고,자기가 좋아하는 담배를
사기 위하여 인력거를 전세내어 천리길을 가서 사오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이런 시절에 인촌은 기방은 커녕 십만석꾼의 아들로서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재산을 털어 교육사업등 민족의 장래를 위한 사업에 매진했다.
조선땅에 십만석꾼은 다섯 손꾸락도 않될때 이다.
보성고등학교를 세운 "간송 전형필"선생과 인촌선생 두분 뿐인 걸로 알고 있다.
간송선생도 종로 1가부터 5가까지에 높은 빌딩은 전부 그의 것일 정도의 부호였다.
그는 그돈을 일제가 훔쳐가는 민족의 혼인 고미술품을 사들였고,보성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그가 사들인 고미술품은 국립박물관 소장의 고미술품과 대등한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된다.
이런 간송선생도 혹시 친일파가 되어 있지 않나 걱정된다.
꺼정한 좌파 떨거지들이 어용학자들을 동원해서 만든 "친일인명사전"을 사볼 돈이 없기
때문에 확인하지 못했다.
이렇게 훌륭한 그들의 행적을 후세의 귀감이 되도록 하지는 못할망정 파당의 조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이 훌륭한 역사에 먹칠하는 자들은 언젠가는 역사의 죄인이 될것임을 확신한다.
이런 저간의 엄청난 음모에 대한 인촌 후손들의 반응은 너무도 한심하다.
인촌선생이 남겨놓은 유산으로 지금까지 호의호식 하는자들이다.
그들이 보탠것은 한푼도 없다고 본다.
인촌이 친일파라고 해도 한번도 항변의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다.
공연히 중뿔나게 나섰다가 행복한 나의 삶에 돌이라도 맞으면 어쩌나 생각하는것 같다.
무슨 이유가 있는지 알수가 없다.답답하다.너무도.........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교육기관,의료기관,종교시설은 상속재산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페스탈로치의 정신으로 만든 교육기관 설립자의 못난 자식이 총장이 되고
히포크라테스 정신으로 만든 의료기관 설립자의 못난 자식들이
환자를 상품으로 본다.
신도들의 성금으로 만든 하느님 소유의 예배당을 자식에게 상속한 성직자도 있다.
이게 뭡니까?
그래서 우매한 머리와 무딘손으로라도 몇자를 쓰고 싶었고
아직도 뜨거운 피를 감당하지 못하여 창피를 무릅쓰고 끄적꺼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