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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06. 01 |
기호(畿湖) 흥학회에 의하여 창립된다. 교명은 기호학교로 초대교장으로 윤효정(尹孝定) 님이 취임하고, 교사(校舍)는 소격동에 있던 육군위생원 건물을 빌다. 수업연한은 3개년으로 하고 그외 1개 년반의 교원양성소를 두다. |
1910. 09. 11 |
유길준(兪吉濬)님이 조직한 흥사단(興士團)에서 경영하던 사립 융희(隆熙)학교와 합치다. |
1915. 04. 27 |
중앙학회 부진(不振)으로 유지가 어렵게 되자 김성수(金性洙)님이 중앙학회로부터 본교를 인수경영하는 동시에 아버님 김기중(金祺中), 김경중(金暻中)「생부」두 분이 본교의 설립자가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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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연혁에서
김기중(金祺中), 김경중(金暻中)「생부」두 분이 본교의 설립자가 되었다고 했지만
김성수(金性洙)님이 중앙학회로부터 본교를 인수경영하신 것이고
중앙을 창립한 것은
기호(畿湖) 흥학회입니다.
인촌 선생께서 친일을 했든 안 했든
중앙은 민족학교입니다.
인촌 선생께서 친일이라는 흠집이 있다면 티끌만한 흠집일지라도
"그때 그것은 내가 잘못했다."
이렇게 한 마디만 했어도 우리나라의 격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반성할 것을 제대로 반성한다면
그분이 이루었던 공은 더 크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오늘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한 가지 사실은,
중앙은 인촌 선생께서 설립한 학교가 아니라
민족 선각자들께서 설립한 학교이므로
그 누구 때문에
뭐 어떤 학교가 되는 것은 아니고
민족학교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긍지를 지킬 수 있도록
동문들이 먼저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스러운 내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일제시대 때 일본인 학교였던
경기고와 경성제국대(지금의 서울대)
이런 학교들이 대한민국의 최고 명문이 된 것은
친일이라는 문제를 정리하지 못했던 역사적 결과가 아닌가요?
진정한 보수주의자, 양심 있는 보수주의자, 격조 높은 보수주의자
이런 보수주의자들이 많아야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중앙의 선배님들께 그런 가능성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