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음에게 말걸기》
이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이 또 있을까
요. 어릴 적 이야기부터 한번 해보지요.
그는 심각한 학습장애 때문에 전혀 주목
받지 못한 아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
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지요. 그런데
그의 누나는 유난히 명석하고 매력적이
었습니다. 언제나 주위의 인기를 독차지
했지요. 끊임없이 비교당할 수밖에요. 그
는 또래에 비해 키도 작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열등감만
켜켜이 쌓여갔지요. 학습장애는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낙제를 거듭했지요.
대학도 두 군데나 옮겨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 졸업장
을 거머쥘 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그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혀 온 학습장애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했지요.
공부하면서 그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연년생인 딸도 둘 뒀지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스물
네 살, 꽃다운 나이인 아내 샌디가 악성 흑색종이란 암 판정을 받은 거지요.
그때 두 딸은 나이가 한살과 두 살일 정도로 어렸습니다. 그는 아직 박사과
정도 다 끝내지 못한 상태였지요.
공부하랴, 아내 병수발 들랴, 어린 두 딸 챙기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
도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지요. 하지만 열심히 간호한 덕분에 아내는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그도 무사히 박사과정을 마치고 심리학자로 이름
을 알려 나가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거대한
트럭이 순식간에 그의 차를 덮친 것이지요.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손
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습니다. 목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전신이 마비된 것
이지요. 일 년이 넘도록 병원신세를 졌습니다.
퇴원 후의 삶도 엉망이었습니다. 뭔가 해보려 하면 몸 상태가 나빠져 계획
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지요. 한번은 지인의 집에서 열리는 수영장 파티에 초
대를 받았습니다. 두 딸은 며칠 전부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요. 약속
시간 전에 가족 모두는 차에 올라타고 파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얼
마 달리기도전에 그의 몸 상태가 나빠졌고 결국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
다. 실망한 딸은 차 안에서 울며 이렇게 소리쳤지요.
“아빠 미워. 목 부러진 것도 싫고 내 인생 망치는 것도 싫어!”
그날 그는 참 많이 울었답니다. 정말로 자신이 아이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
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런 아픔과 슬픔을 딛고 전신마비란 운명에 적응해갈 즈음 이번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합니다. 결국 헤어지고 말지요. 부자연스런 몸으로 그는 아이 뒷
바라지를 하며 살아갑니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지요. 사랑스런 가족들
이 하나 둘 세상을 뜹니다. 어머니, 아버지, 누나, 그리고 헤어진 아내까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런 손자 샘은 자폐증 진단을 받습니다.
수시로 땅에 머리를 찧어대지요.
바로 대니얼 고틀립(Daniel Gottlieb)이란 사
람의 삶입니다. 불운하다고밖에 할 수 없지요.
그는 지금도 혼자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두 딸
은 장성해 결혼하고 독립했지요. 그래도 그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심리상담을 통해 환자를
위로하고, 라디오에 출연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릴 때도 있답니
다.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지인들이 섭섭해 화
도 난답니다. 게다가 건강은 점점 나빠져만 가
고 있지요. 이젠 웬만한 항생제로는 끄떡도 하
지 않는 병균 때문에 요도염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간병인이 올 때까지 뒤
처리를 하지 못하고, 소변 주머니가 넘쳐 바닥으로 오줌이 흘러내릴 때도 있
지요. 시리얼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사람이 바로 대니얼
고틀립입니다.
그렇게 그는 30여년을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
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옵니다. 《마음에게 말걸기》를 통해서지요. 책 제목
처럼 그는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에게 말을 한번 걸어보라고 속삭
입니다. 그가 살아온 불운한 인생 때문에 그의 말이 가슴 깊숙이 와 닿습니
다.
희망을 버려라
그는 희망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봅니
다. 왜, 많은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희
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말하잖아요. 하
지만 고틀립은 희망을 과감하게 버리라
고 충고합니다. 이루어지지 못할 희망
때문에 현실을,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시간만 낭비하기 때문이라는 거지
요.
심리상담사로 활동하는 그는 몸과 마
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한번은 헤럴드란 남자가 그를 찾
아오지요. 헤럴드는 아주 활동적이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
지만 그 때문에 수년간 요통으로 고생을 했지요. 의사들은 수술을 권했습니
다. 수술을 받자마자 요통은 사라졌지요. 하지만 다리 한쪽을 움직일 수 없
었습니다. 집도한 의사는 척추 근처가 부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
이니 붇기만 가라앉으면 회복될 거라고 안심시켰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헤럴
드는 희망을 가졌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마비가 풀리지 않더랍니다.
마침내 담당의사도 포기하고 말지요.
“지금 기능이 회복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영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희망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겁니다. 그동안 해럴드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던 절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지요. 고틀립은 이런 때를 ‘이런 젠장, 이
제 어떻게 살지?’의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헤럴드는 의사가 희망을 모조리 거두어갔을 때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더랍니다. 희망이 눈곱만큼도 없으니 목놓아 울 수 있
고, 또 현실을 냉정하게 대면할 수 있었던 거지요. 더 이상 운명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하고 난 후에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구에도 의
지할 수 있었답니다.
고틀립도 전신마비 사고를 당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희망은 언제나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희망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
다. 희망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 내 인생을 바꾸어 주리라는 기대 속에
나를 가두어버리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희망 없음이 꼭 절망을 의미하는 것
은 아니다. 희망 없음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
며 다음과 같은 삶의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원래 그곳이었어
사고 덕분에 고틀립은 자신이
나 주위 사람들의 실제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이죠.
초등학교 3학년 때 고틀립의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의 시험
점수와 학습 태도를 종합적으
로 평가해 자리를 배치했답니
다. 숙제를 잘해오거나 성적이
좋으면 자리를 교탁 쪽으로 한 칸씩 당겨 앉도록 했지요. 맨 앞줄까지 오면
창가 분단으로 옮겨 가도록 했습니다. 대신 잘 못하면 교실 뒤쪽으로 물러나
야 했지요. 고틀립은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년이 끝나갈 무렵에
는 2분단 마지막 줄에 앉았답니다. 반에서 60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정도였지
요. 그해 말 고틀립은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딱 한 주만 더 있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1분단에 갈 수 있을지 모르는데.
맨 앞줄까지는 아니더라도 잘하면 그 근처까지는 갈 수 있을 텐데.’
그 기억은 이후 20년 동안 그의 머릿속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다그치도록
했다고 합니다. 더 위로, 더 위로…. 그러다 사고를 당한 거지요. 사고 후 초
등학교 시절 그가 앉았던 2분단 마지막 줄이 떠오르더랍니다. 그 줄에 그가
제일 좋아하던 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러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
랍니다.
‘혹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원래 2분단 마지막 줄이 아니었을까?’
사실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들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나도 거기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가 대체 뭐가 부끄럽단 말인가? 앞으로도 절대 그 순간의 기
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때 한참 동안이나 편안한 기분에 빠져 있었
다. 큰 위안이 되었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와서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내가 그때 반에서 60퍼센트 안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안
에서 충분히 행복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람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에 끼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그냥 내가 속한 곳에 머물 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배웠다.
자신과 상담한 존이라는 중년 남성에게는 가족들을 버리라(?)고 과감하게
충고하지요. 인생을 똑바로 들여다볼 수 있는 눈 덕분입니다.
존은 폭력적인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와 대가족 속에서 자랐답니다. 그 때문
에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가족들을 어떻게든 책임져야 한다고 믿게 되었지
요. 그는 가족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면 가족들
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생활도 흐트러질 것이라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형
제자매를 돌보고 조카들을 챙기고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셨지요. 그럴수록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추론은 점점 확고한 명제로 굳어져만 갔답니
다.
‘이것도 챙겨야 하고 저것도 준비해야 한다. 또 거기에 가봐야 하고 저쪽
일도 도와드려야 한다.’
존은 점점 우울해져 갔지요. 결혼생활과 건강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한
것이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그는 고틀립을 찾아왔던 거지요. 고통받는 존에
게 고틀립은 어떻게 이야기했을까요.
나는 그에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 없는 가족들
의 생활이 불행해진다면? 그는 그 결과를 눈앞에 그려보았다. 형제가 죽었다
는 상상도 했고 한 형제는 병원에 입원하고 다른 형제는 국외로 추방되어
절대 연락할 수 없게 되는 상황까지 떠올려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동안
앉아서 이것이 현실이라면 그의 인생이 어떻게 변할지, 하루하루 어떤 일들
이 일어날지 상상했다.
악몽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견딜 수 있는 악몽이었다. 물론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추론을 다시 점검
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면 속
는 셈치고 그들이 흩어지지 않을 것이란 가능성을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
고틀립은 “우리는 계속 나만의 추론을 꼭 쥐고 있으려고 한다”고 진단합니
다. 그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항상 믿어왔던 추론을 손에서 놓으려 할 때는 기존의 신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희망을 찾아야 한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
은 오직 하나, 내 안의 탄성을 믿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수많
은 가능성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
“천국? 그거, 네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이 책을 읽다보면 고틀립
은 참 마음이 여리다는 느낌
을 자주 받습니다. 많이 울
거든요. 가족들을 생각하며,
환자를 생각하며 흐느낍니
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눈물을 떨구지요. 하지만 그
의 생각은 누구보다 밝습니
다. 온몸이 마비돼서 좋은
점을 이렇게 읊조릴 정도지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부터 짚고 넘어가볼까? 바로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최상의 주차 공간이다. 그 다음은 물론 신발. 나는 걷기 편한 기능성 신발을
사는 일 따위에 돈을 쓸 필요가 없다. 신발을 한번 사면 질릴 때까지 계속
신을 수 있다. 하지만 전신마비로 산다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뭐니 뭐니 해
도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한밤중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오늘밤 여
러분이 졸린 눈을 비비며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 나는 침대
에서 세상모르게 푹 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나는 내 장애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늙었을 때 맞닥뜨릴 일들을 미리
경험하고 있다. 중년이 된 나의 친구들이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 걱정
하는 걸 보면 나는 내가 참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금 호들
갑을 떨며 겁내는 그 모든 것을 나는 이미 다 겪었고 더 이상 걱정할 필요
가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그 모든 걱정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책에서 고틀립은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합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을 흔들지요. 움직이지 못하는 육신에 갇혀 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자유로
운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이 돼서 너라는 생명이 태어날 확률이 얼마나 된
다고 생각해? 그리고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평생 살게 될 확률은 얼마일까?
게다가 너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확률은? 또 창밖을
내다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천국? 그거, 네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대니얼 고틀립, 《마음에게 말걸기》, 문학동네, 2009, 이경수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