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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교 배정을 받았습니다.
06번.
중앙이라고 했습니다.
전라도 군산 촌놈은 그 때까지 '중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이 좋은 학교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1979년 2월 어느날....
입학금 내러 엄마와 함께 운동장을 건넜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참 건너기 힘들다는 것과 야구부 운동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정열 선배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렇게 6년근이 되었습니다.
매년 개교기념일에 一石 이희승 선배님의 만세 삼창을 보면서
6.10만세 운동의 주역이었던 이동환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아한 한복으로 모교를 오르내리던 박용주 老 선배님을 뵈면서
한가한 시간. 모교에서 휴지를 주우시던 선배 교장 선생님을 뵈면서
남북한 총리급 회담은 중앙고 동문회라는 신문 기사를 접하면서
十竹郞 1期의 전설 김강희 선배님을 뵈면서
대학교 다닐 때 十竹郞 글씨 써진 옷을 보고는
‘야. 그 써클 아직도 있냐!’하셨던 신기창 선배님을 뵙고,
일본에 가서도 열심히 中央을 사랑하시는 김영열 선배님을 뵙고,
항상 야구장에 가면 만나던 동대문 선배님들을 보면서
‘야. 성기야. 응원해!’
‘형, 나도 이제 40인데 그만 빼주면 안될까. 내일 수업도 있는데....’
‘야 임마...니가 환갑이 되어도. 내 후배야....’
하던 70회 준기 형 말을 들으면서.
대학로 중앙 분리대에서 맥주캔을 까던 규철이 형과의 추억을 가지면서.
이제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OB의 명맥을 잇고 있는
70회 김용기 선배님을 비롯한, 항상 끈끈한 十竹郞 선후배들과의 만남 속에서.....
언급하지 못하는 수많은 선후배님들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6년근으로 더욱 자리매김들을 합니다.
재성대 중앙고 후배들을 보면
항상 웃으며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야....’라고 하는 우리 집 사모님을 보면서.....
그리고, 이제는
계산의 그 돌집을 보면
‘아. 아빠 학교다!’라고 말하는 두 딸과 함께....
中央은 전설이었고, 신앙이었고, 자랑이었습니다.
가을입니다.
문득, 그 가슴 저린 한페이지들을 생각합니다.....
소식도 못 전하는 분들....
건강들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