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사이드] 비전문가 목소리가 큰 사회 - 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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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사이드] 비전문가 목소리가 큰 사회 | |||||||||
그분의 말은 둘 다 우리 국민이면, 특히 남성이라면 누구나 몇 마디 할 수 있는 주제라는 것이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지식 축적이 급속히 진행되어 전문가들도 전문성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같은 전공 안에서도 분야가 세분되어 동료 전문가들의 연구 내용을 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전문가가 되는 길은 적어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진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연구 업적을 통해 학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길이다. 둘째는 언론 매체를 통해 정책 현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해당 분야에서 추가적인 활동 기회를 갖는 경우이다. 셋째는 시민단체 대표자로서 관련 분야 정책 토론이나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는 길이다. 물론 이 세 가지 경로는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특정 주제에 대한 충분한 전문지식이나 준비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섭외해야 하는 언론매체들로서는 진정한 전문가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또 방송 토론은 정책 현안에 대한 심도 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쟁점을 정리하고 해소하는 유익한 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토론에는 주제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는 전문가와 관련 인사들이 패널로 출연한다. 출연자들은 여러가지 이론과 통계수치,사례 등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 정확성을 일일이 검증하기 어렵고 방송 특성상 지나가면 그만이다. 그래서 누가 순발력 있게 이해하기 쉬운 주장을 펴느냐가 관건이 된다. 토론을 통해서 시청자들은 그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는 결론이 분명한 주제인데도 출연자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 한쪽의 입장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민주사회에서 공공정책은 전지전능하고 순수한 의도를 지닌 천사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제약 아래에서 불완전한 정치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과 정책의 예상 효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여부가 정책의 성공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의 역할은 자신들의 지식과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 대안들의 장ㆍ단점을 국민과 정책 결정자들에게 전달하여 가능한 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데 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특정 분야 전문가는 점점 수적 열세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 구별 없이 많은 사람이 의견을 쏟아낸다. 이러한 주장들은 객관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전파되어 특별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정책 결정이 전문가의 견해보다 정치적 고려와 국민정서에 의해 좌우되기 쉽다.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다수의 수혜자보다는 눈에 띄는 소수의 피해자들이 부각되고 단기적인 효과가 주목을 받는다. 다른 대안들과 비교해서 최선의 대안을 찾기보다 특정 대안의 당위성에 집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복잡한 설명보다는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대중을 사로잡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비전문적인 의사결정과 그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객관적인 정보를 토대로 전문가다운 입장을 피력하는 것은 물론 보다 많은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법을 찾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정부나 언론은 세부 주제별 전문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업데이트하여 필요한 전문가를 식별하고 복수의 전문가들을 통해 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일반 국민과 네티즌은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주장하듯이 전문가들의 의견이 가감없이 표출되고 차분하게 검증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협조하면 좋겠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좋은 정책도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