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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몽준 당신의 브랜드는 무엇인가
이명박=성공, 정동영=용기, 박근혜=원칙
정몽준은 5선 의원입니다. 현 국회의원들 가운데 정치를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의 정치 동기생은 이상득(73·포항남-울릉) 국회부의장과 강재섭(60·대구서)한나라당 대표밖에 없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모두 그의 정치 후배 격입니다. 재선 경력에다 현대가의 샐러리맨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스토리가 정몽준에게 자극을 줬을 겁니다. 장충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박근혜는 정몽준보다 늦게 정치를 시작했지만 ‘선거의 여인’ ‘미다스 손’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컸습니다.
정몽준의 모험은 멀고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나라당 총선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는 “주변에선 내가 함정에 빠졌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더 열심히 해서 극복하려 한다”고 답합니다. 7월 전당대회에선 강재섭-이재오의 거친 당권 다툼에 참가하겠다고 합니다. 자기 계파가 없기 때문에 자칫 우스꽝스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정몽준의 시선은 더 멀리 2012년에 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쪽 사람들은 정몽준의 차기 대선 출마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2011년에 있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불출마할 것이란 얘기는 그래서 나옵니다. 가장 큰 경쟁자는 박근혜로 보고 있죠. 박근혜 쪽 역시 정몽준의 파괴력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몽준의 브랜드입니다. 정몽준이 대선 시장에 내보일 상표가 뭐냐는 겁니다. 상표가 불분명한 정치인은 국가 지도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브랜드란 김영삼의 민주화, 김대중의 남북 화해, 노무현의 정치개혁, 이명박의 성장과 실적 같은 거죠. 브랜드는 정치인이 자기 인생을 통해 구현한 공익적 가치입니다. 거기엔 내적 체험과 비전, 프로그램이 응축돼 있습니다. 광고 카피 생산하듯 금세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죠. 이명박의 청계천과 성공 신화, 박근혜의 원칙과 정체성, 정동영의 용기와 소통은 그들의 인생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정치인은 브랜드로 유권자의 판단을 받습니다.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하지요. 그런 가운데 위대한 지도자가 키워지는 거죠.
정몽준은 월드컵으로 국민 에너지를 결집한 체험을 갖고 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공익적 가치도 구현했어요. 하지만 그 브랜드는 축구에서 정치로 경계선을 넘는 순간 약해졌습니다. 정체성은 모호했고 선택은 우유부단했지요. 노무현 지지 철회는 ‘우왕좌왕 정치인’의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정몽준이 정치에서 입은 상처는 현대중공업의 왕국에서 무소속 생활 20년을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곳에선 야성과 치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그가 이제 한나라당을 선택하고 사당동에 뛰어든 건 정치에서 입은 상처를 정면으로 치유해 보겠다는 결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자기 브랜드를 개발해야 합니다. 서양 속담에 “자기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비관론자가 되고 남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낙관론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몽준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정몽준이 개발할 브랜드엔 3조원 재산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들어가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가 벌었는데도 300억원 재산이 문제가 됐었죠. 자기 일보다 남의 일을 생각하는 이타주의적인 삶, 여기서 정몽준 정치 브랜드의 실마리가 풀릴지 모릅니다./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울=뉴시스】
21일 오후 서울 동작을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서 정몽준 후보가 손을들어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joo2821@newsis.com
이-정, ‘형님 불출마론’ 주장에 이상득 ‘불쾌감’ 표출
이상득 업은 이방오에 ‘힘’…치열한 당권경쟁 예고
■ ‘형님 불출마론’이 갈등의 도화선=공천을 이명박계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폭발시킨 뇌관은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정두언 의원 쪽이 꺼내든 ‘이상득 불출마론’이었다. 이 전 최고위원과, 정 의원을 주축으로 한 이명박계 소장파들은 ‘개혁 공천’을 명분으로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은 터였다. 이들은 대선 직후부터 “이상득 부의장이 용퇴하면, 다른 다선·고령 의원이나 박근혜 계파 의원들을 ‘물갈이’ 할 명분이 생긴다”는 이른바 ‘논개론’을 피워올렸다. 2월28일이 ‘거사’일이었다. 이날 공천심사위에서 ‘이재오계’ 심사위원들은 일제히 이 부의장을 공천에서 탈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이상득 부의장은 극도의 불쾌감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의장은 평소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과격하고 급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후 공천심사위원회의 판도가 바뀌었다. 공천심사 초반 측근들의 공천을 무리 없이 따낸 이 전 최고위원의 영향력에 제동이 걸리는 대신, 이방호 사무총장 쪽으로 급속도로 힘의 균형추가 기울었다.
반면, 부산·경남 지역에선 이방호 사무총장이 ‘위세’를 떨쳤다. 경북 일부 지역에선 이상득 부의장이 직접 ‘낙점’한 후보들이 공천을 받았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박근혜 계파 쪽에서도 “이 전 최고위원이 이 부의장과 이방호 사무총장의 견제를 당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 부의장 쪽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사람이고, 이 부의장은 뒤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서로의 이해가 상충하는 부분이 없다. 서로가 견제할 이유가 없다”며 이런 분석을 부인했다.
■ 이방호 뒤엔 이상득?=당 안에선 이방호 사무총장이 공천에서 ‘전권’에 가까운 힘을 휘두를 수 있었던 배경에 이상득 부의장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경남지역의 한 의원은 “특별한 세력이 없는 이방호 총장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부의장을 업고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당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상득 부의장은 이방호 사무총장이 잇단 돌출행동으로 무리수를 두자 “경솔하다. 통제가 안된다”고 싸늘한 평가를 내렸지만, 지난 1월 강재섭 대표와 이 사무총장의 갈등을 계기로 신뢰를 쌓았다고 한다. 이 사무총장은 당시 강 대표가 ‘간신’이라는 극언을 써서 비난했는데도, 이 부의장이 “분란을 더 키워선 안된다”며 중재하자 두말없이 이를 수용했고, 이를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의장과 이 총장의 ‘밀월’이 오래 갈 것이라는 관측은 많지 않다. 7월 전당대회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소장파의 기세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도 배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부의장이 ‘체급’이 한참 낮은 이 사무총장을 밀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천과정에서 많은 적을 만든 이방호 사무총장에 대한 당내 견제기류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이 부의장도 이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당내에선 이상득 부의장과 정몽준 최고위원의 연대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지역구를 서울 동작을로 옮긴 과정에서도 이상득 부의장이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이 부의장이 전당대회에서 손잡을 1순위는 당내 기반이 미약한 정 최고위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겨레 조혜정기자
손창수(066)님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