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립’을 ‘정부 수립’으로…교과서 무단수정 교육부직원 징역형

2019년 신학기에 연구·집필 책임자 모르게 213곳이나 고쳐져 교육 현장에 배포된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왼쪽). 당시 연구·집필 책임자인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는 교과서 수정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는데도 출판사가 교육부에 제출한 ‘수정·보완 협의록’(오른쪽)에는 박 교수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교육부

전 정부에서 집필된 국정(國定) 사회 교과서를 현 정부 들어 불법으로 수정하는데 관여한 교육부 직원에게 법원이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전지법 형사5단독 박준범 판사는 2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사문서위조 교사·위조사문서행사 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교육부 전 과장급 직원 A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6년 집필돼 2018년도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에 사용된 사회 교과서에서 1948년 8월15일에 대한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는 등 213곳을 수정하면서 집필자의 동의 없이 교과서를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하급직원에게 편찬위원회 협의록에 편찬위원장의 도장을 임의로 찍게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집필 책임자였던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가 교과서 수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A씨는 박 교수를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배제시킨 후 다른 교수와 교사를 수정작업에 참여시켰다.

해당 교과서에서는 ‘북한은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문장이 지워졌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서술도 기존 ‘유신 체제’ ‘유신 헌법에 따른 통치’에서 ‘유신 독재’로 바뀌었다.

박 판사는 “대한민국 수립을 정부 수립으로 바꿔 달라는 전화 요청을 한 차례 거절했다는 이유만으로 편찬위원장을 완전히 의사결정에서 배제했다”고 말했다.

A씨는 앞서 사회 교과서 내용 수정을 위해 관련 민원을 허위로 제기하도록 동료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A씨의 요구대로 국민신문고에는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꿔달라는 민원이 접수됐다.

박 판사는 “A씨는 다른 직원에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문구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허위 민원을 제기하도록 시켰다”면서 “피고인은 미래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에서 중요한 사무를 담당하던 중 이런 범행을 했다”고 말했다.

법원은 교육부에 파견돼 A씨와 함께 교과서 수정에 가담한 지방교육청 소속 교육연구사 B씨에게도 징역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