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아트 김용기 대표 "코로나19 피해 입은 공연예술가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

김경일 / 기사승인 : 2020-06-24 11: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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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하는 대형공연 제작의 꿈은 “현재 진행형”
문화클러스터를 꿈꿨던 광진문화재단 사장 좌절 경험도
“문화재단은 정치적 성향 배제한 독립성 확보돼야”
“공연예술인 대변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 절실”
“예술인 대변할 수 있는 길이라면 정계진출도 고려중”

[메가경제= 김경일 기자]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대공연장은 클래식, 대중음악, 연극, 무용, 뮤지컬, 방송촬영, 각종 세미나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 공연장으로 805석 규모의 계단형 단층구조를 가지고 있는 공연장이다. 하지만 활기가 넘쳐야 할 이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요즘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오페라단을 30년째 운영하는 단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코로나19로 피해 본 단체를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는 말을 듣고 여러 은행을 찾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금지원을 못해준다는 말을 듣고 상심이 크다며 하소연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예술공간전문운영회사 위니아트을 운영하는 김용기 대표는 지난 20여년 간 공연제작은 물론 공연저작권과 공연문화와 관련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공유해온 문화예술공연 분야 전문가이다.


현재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 대학원 초빙교수이기도 한 김 대표는 광진문화재단 초대사장을 지냈고, 문화소외계층과 어린이단체, 장애인협회에도 꾸준히 봉사하고 후원금을 지원하는 등 진정한 나눔을 실천해왔다.



[사진= 김경일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예술공간전문운영회사 위니아트을 운영하는 김용기 대표. [사진= 김경일 기자]


코로나19의 피해는 예술 공연을 하는 관련 업계와 종사자들에게는 말그대로 재앙으로 다가왔다. 나날이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정부대책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수많은 지자체에서 문화예술 명목으로 공연장을 군단위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연간 공연 가동률은 저조하다. 예술 관련 전공자들이 그곳에서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다는 것은 예술관련 정부 정책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같이 문제를 지적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의 전당은 대관사업이 목적이 아니라 공연을 생산하는 곳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직원 중 예술관련 전공자가 정식 직원으로 근무하는지를 조사해 보면 문제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고 답답한 현실을 전했다.


이어 “대학로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책은 정부에서 공연장을 사서 하루 2만원씩 대여비를 받는 것이 실질적 대책”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예술가들의 지원책은 현실적인 곳에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음악에 빠진 '돈텔파파'의 젊은 시절


김 대표에게 음악과 예술은 삶이자 숙명이었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했고 좋아했던 아이는 고교 신입생 환영회 때 중창단 선배들의 노래를 듣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곧장 오디션을 보고 중창단원이 되어 꿈을 키워갔다.


학창시절 성악의 기본기를 닦으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지만 아버지의 반대는 거셌고 결국 법대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글학회 회장까지 지낸 국문학자 김승곤 교수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대표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돈텔파파(Don‘t tell papa, 제발 아버지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자체였다”고 말한다.


하라는 법학공부 대신 낭만과 음악에 빠져 가수가 되기 위해 법전 대신 ‘오선지’에 골몰했으며 MBC강변가요제에 출전해 입선까지 해 집안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문학박사이자 대학총장을 지낸 부친은 자녀교육에 엄격했다.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했던 김 대표지만 가풍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김 대표는 질풍노도의 대학시절을 마감하며 부친의 뜻에 따라 조흥은행에 입사했다고 한다.



[사진= 김경일 기자]
김용기 대표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문화예술공연을 대변하는 관료의 부재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사진= 김경일 기자]


돈을 세는 일 대신에 문화행사를 추진했던 은행원


“당시 조흥은행에 입사 후 연수를 받으며 동기생 125명 중 연수성적 1등으로 본점으로 발령받게 됐다. 의외로 은행일이 재미있고 실적도 좋아 승진도 빨랐다.”


매사에 자신감 넘치고 사람관계 좋아하는 성격은 은행원 시절에도 빛을 발했다. 돈을 세는 일보다 공연기획을 하면서 의외로 승진도 동기들보다 빠른 성과를 내던 시절이라 회상한다.


김 대표의 마음 속에는 늘 음악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성이 통했는지 기회가 찾아왔다. 본사 종합기획부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 은행에서는 예금이 100만원이든 100억원이든 고객서비스 일환으로 비누세트를 선물로 주었다.


이를 보며 좀 더 효과적인 서비스 방법은 없을지 아이디어를 냈다. 다른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도 유치하고 은행 이미지도 쇄신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VIP 고객 초청 클래식 음악회를 개최하고자 6개월간 은행장을 설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에 1870석 규모의 KBS홀에서 음악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결재를 해준 은행장도 행사 전날까지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 고객 사은 음악회와 관련해 고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신문과 방송 뉴스까지 타게 되면서 요즘 말로 대박을 터트리게 됐다. 4000만원으로 400억원의 효과를 보았다고 할 정도였다. 덕분에 비서실에 발탁될 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 대표는 이 일을 계기로 기업 문화실 창단맴버가 되었고, VIP 고객 초청 클래식 음악회는 매년 고정 행사로 자리잡았다. 은행원의 일반적인 업무와는 달리, 고객 다양화를 위해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을 주로 했다.


서울에서 시작한 문화공연과 행사는 5대 도시로 확장했고, 어린이날에는 일산 호수공원 야외에서 야외스크린을 통해 수만명이 영화를 관람하도록 했다. 한 가족 음악회, 안동의 가보 전시회 등을 진행하며 행사하러 전국을 다녔다.


김 대표에게 은행에서 일한 10년은, 좋아했던 문화예술 분야 중 공연기획의 실무경험을 쌓고 경영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문화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연장은 부족했다. 이에 김 대표는 새로 오픈한 공연장이 있으면 어디든지 부지런히 찾아가 레이아웃과 공간구성, 무대 배치 등을 인터뷰하며 채곡채곡 체계화했다.


“매년 공연기획과 행사진행을 위해 좋은 공연장을 찾는 것도 업무 중 하나인 시절이었다. 마땅한 공연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무렵,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공연장에 대해 알게 되면서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을 맡게 됐다.”


당시 예술의전당은 몇 년 전에 이미 대관이 다 끝난 상태였고, 세종문화회관 공연장은 객석이 너무 커서 활용하기 힘들었으며, KBS홀은 프로그램이 많아서 스케줄에 맞추기 어려웠다.


생각의 전환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대학교에서 운영하던 공연장은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회사가 없어 공연장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 틈새시장을 활용하게 됐다.


은행 비서는 빠른 승진이 보장되어 임원이 되기 쉬웠고 은행장이 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당시는 문화예술회관 건립 붐이 지자체에서 대학으로 이어지던 변화의 계절이었다. 모교인 건국대학교에서 새천년 대공연장, 국제회의장, 야외극장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건국대 총장을 찾아가 설득에 성공했다. 이어 은행을 퇴사한 뒤 마침내 공연장을 운영하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사진= 김경일 기자]
김용기 대표는 회사 설립 당시부터 직원들에게 고객 중심의 4가지 업무 원칙을 주문했다. [사진= 김경일 기자]


우리나 최초의 문화예술공간전문운영회사 설립


김 대표는 1996년 퇴사 후 이듬해 위니아트를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예술공간전문운영회사였다.


5명으로 시작한 위니아트는 그후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 카톨릭대학교 콘서트홀,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 호원대학교 호원아트홀까지 운영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회사 설립 당시부터 직원들에게 4가지 원칙을 교육했다.


“첫 번째 돈 받지 말아라, 두 번째 전화 잘 받아라, 세 번째 인사 잘해라, 네 번째 고객이 오면 무엇을 도와줄지 고민해라.”


이러한 원칙은 은행 다닐 때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갑자기 공연장 빌리려면 뒷돈이 오고 가야 했고 돈을 주고 빌리더라도 불친절하게 대하는 공연장 관계자가 많았다.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들만 내뱉는 관계자가 적지 않았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회사설립 때부터 네 가지 원칙을 세워 교육에 적용한 것이다.


당시 내 돈 주고 공연장을 빌려도 고객이 항상 극장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기에 직원들에게 무조건 안된다고 하지 말고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초기 건국대학교 새천년 대공연장은 친절하고 상냥하기로 소문났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MBC 수요예술무대를 방송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건국대학교 새천년 대공연장은 담당PD가 원했던 객석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MBC 수요예술무대 출연하는 예술가들이 원하는 것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피아노계의 명기인 당시 1억 5천만원하는 그랜드 피아노 스타인웨이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촬영 준비가 편리하였고, 출연진과 촬영진이 모두가 만족하며 방송에 나갈 수 있었다." 첫 한달은 무료공연장 렌탈 조건으로 1회 촬영시 2회분 녹화를 했으며, 방송 나갈 때 자막에 ‘건대 새천년 공연장’이라는 문구와 MC’멘트’를 방송 중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유명 MC는 “건국대학교 교내 공원에서 공연하는 줄 알았더니, 공연장이 시원하고 음악감상하기 좋은 곳에서 공연하게 되어 좋다”라는 멘트를 넣어 홍보를 한 것이 적중하게 되었고, 그후 MBC수요예술무대 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유료 공연장 예약을 원하며 10대 1 경쟁을 해야 공연할 수 있는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민간인이 최초로 대형 공연장을 운영하게 된 것이 소문이 나며, 카톨릭대학에서 1600석 규모의 대공연장을 수리 후 콘서트홀로 명칭을 바꿔 운영하게 되었고, 당시 운영이 미진했던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도 활성화시켜 지하철역장이 무슨 날인데 젊은 학생들이 찾아오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또 호원대학교의 호원아트홀은 개관 공연으로 ‘어린이뮤지컬 신데렐’라는 유료관객 만명이 넘게 돌파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하며, 김대표는 별명이 당시 ‘만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 김경일 기자]
김용기 대표의 삶은 곧 문화예술공연이라고 할 만큼 평생 한결같은 길을 걸어왔다. [사진= 김경일 기자]


마음 같지 않았던 38개월의 광진문화재단 사장


은행 퇴직 후 공연문화에 적극 뛰어들었지만 고난도 없지 않았다.


2015년 광진문화재단 초대 사장이 되면서 2018년까지 3년간 개인회사 위니아트는 잠시 가족에게 대표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 보니 그동안 운영했던 대공연장들도 운영을 서서히 중단해야 했고 사업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됐다.


김 대표는 광진문화재단 사장으로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순수한 마음으로 문화사업을 하려고 갔으나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협조와 예산을 얻는데 고초를 겪었다”고 말한다.


당시 재단 사장으로서 나루아트센터를 중심으로 건국대 새천년 대공연장, 세종대 대양홀, 맛의 거리 내에 있는 야외공연장, 능동로 분수광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활용해 문화벨트를 조성하고자 했다.


문화재단의 첫 동력사업으로 ‘팝아트 팩토리’를 출범해 건국대를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핫플레이스 거리로 조성했으나 현재 그 모습은 사라졌다.


김 대표는 일곱 살 때 광진구로 이사와 건대를 나온 토박이다. 그래서 이 일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그는 “이곳은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 세종대 대양홀, 건대 새천년 대공연장과 광진문화재단 나루아트센터로 이어져, 서울 시내에서 대형 공연장이 운집한 거리로는 유일하다”며 “한강시민공원까지 확장성이 좋기 때문에 한국을 알리는 문화클러스터로 만들면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외 64개국을 다녀 보고 느낀 경험을 통해, 거리와 예술공연을 접목하면 “많은 발전이 있으리라 믿었기에 문화재단 사장직을 맡으며 실현시키고자 애를 많이 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재단 사장으로 재직하며 평생 잊지 못할 마음고생도 겪었다. “무대 공사업체가 그동안 관례라고 1000만원을 들고 와서 거절을 했는데, 마음이 불편했는지 몇 번씩 찾아와 공사를 편하게 해달라고 해, 광진구민의 날 행사에 광고 협찬금 형식으로 기부 받았다. 그러나 이미 예산이 집행되어 구청에 보고 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일은 그에게 큰 자존심의 상처를 남겼다. “당시 광진문화재단은 기부금 지정단체가 아닌 재단으로 기부금을 받으면 안된다는 것을 모른 채 받은 게 문제가 됐다. 이를 이유로 구의원들이 감사원에 신고해 감사까지 받게 되어 가장 낮은 단계인 주의·촉구를 받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기억된다”며 “수많은 재단에서 사장 추대 요청이 오지만 거부해온 이유다”라고 전해 당시 심적 충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행정절차와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구의회의 직·간접적인 영향은 재단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했고, 사비까지 털며 문화클러스터를 성공시키고자 했던 의욕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구청과 재단 간 원활한 행정업무를 위해 다른 지자체는 구청에서 행정담당자 1명과 의회담당자 1명을 파견해 해결했다는 얘기를 듣고 요청했으나 당시 구청은 거듭해서 거절했다. 행정업무 절차에 밝지 못해서 생긴 미흡한 점은 이후 지적사항이 됐다. 이런 문제로 문화재단 운영에 차질을 빚었다”며 당시 상황을 아쉬워했다.


김 대표는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독립성이 결여된다면 문화재단은 예산삭감과 협조 문제로 위축된 운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화재단이 구의회 눈치를 보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문화재단은 정치권력이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다. 시나 문체부가 운영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문화가 강한 나라가 선진국이다. 문화예술을 정치와 멀리 떨어트리면 문화선진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임기 말에 구로부터 여러 차례 연임 요청을 받았지만 고사했다고 한다. 독립성이 부여되지 않은 문화재단은 맡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사진= 김경일 기자]
김용기 대표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을 만들고 예술인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사진= 김경일 기자]


공연예술인을 대변할 수 있다면..."정계 진출도 고려중"


김용기 대표에게 공연예술전문가의 꿈을 꾸게 만든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중국 서안의 ‘장안가’는 장예모(張藝謀) 감독이 연출한 중국을 대표하는 공연이다. 총 10막 으로 구성된 이 공연은 현종과 양귀비의 일화를 백거이가 쓴 시를 바탕으로 만든 무대극으로, 1000명이 넘는 배우가 출연해 꾸미는 야외 무대의 웅장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관광객들이 이 지역에 가면 꼭 보고 오는 무대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공연이 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만들어 준 공연이다.”


그의 꿈은 아직 다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원인으로는 현실적인 걸림돌이 크게 작용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공연예술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전문가들의 활동영역이 보장돼야 하지만 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제도적 보완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김 대표는 “다른 산업에 비해 예술인들을 위한 정부 정책은 초보 단계로 여전히 미흡하고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누군가는 정책을 고도화하고 제도화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가 여러 채널에서 요청받고 있는 정계 진출에 대해 “예술인들을 대신해 봉사할 수 있다면 고려 중”이라고 밝히는 배경이다.


지난 4월에는 사단법인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신임 사외이사직도 맡았다. 저작권으로 인한 후배 예술인들의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공연제작에 필요한 저작권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아이들을 데리고 클래식 음악을 보러 다니게 되면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란다는 연구결과가 말해주듯 놀이공원과 여행도 좋지만 클래식 음악을 어릴 적부터 접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공연계


2020년 공연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직격탄을 맞아 연기·취소로 인한 매출감소로 이어져 관련 업계 및 종사자의 피해가 극심한 상태다.


공연 산업의 참담한 현실을 반영한 객관적인 수치는 2020년 공연계 월간 매출 수치에 그대로 나타났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공연계 전체 매출액은 1월(398억 5166만원)과 2월(216억 1963만원)은 호조를 보였으나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된 3월(91억 2321만원)과 4월(47억 1468만원)은 급전직하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두 달 연속 100억원대를 밑돌던 공연계 전체 매출액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한 5월(112억 7321만원)에 뮤지컬의 선전으로 100억원대를 기록하며 희망을 키웠다.


하지만 5월말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6월(18일까지 49억 3474만원)에는 다시 저조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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