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람이 세상을 살아오며 참으로 많은 호칭으로 불려진다
직장 다닐때는 직급으로 퇴직후에는 전직으로, 사업할 땐 사장 회장 대표로
나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 35년을 사장, 회장으로 불리웠고 교수 교장 이사장 청춘합창단장 명예단장 등으로 불리고 있다
오늘 월간 좋은 수필지 6월호에 나의 글이 실리고 공인받는 작가로 등단하는 기쁜 일이 있었다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지향하고 실천해온지 오래되었으나 작가라는 명칭은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었으니 비록 생소하긴 해도 죽는 날까지 쓸수 있는 직함이라 공생하기 그지 없다
아울러 평생의 꿈인 방송인의 길을 가고 있으니 그 직에 방송인을 하나 추가 해도 좋을듯 싶다
이름하여 권대욱은 작가요 방송인이요 자연인인 셈이니 이만하면 어디다 내 놓아도 뿌듯할만한 직함 아닌가 싶다
금오공대 특강을 위해 구미에 와 박정희 생가를 향한다
이번주는 곡우랑 함께하고 다음주는 또 따로이니 이 또한 함ㆍ또 따 아니겠나
말하는 직업이 하나 추가될 듯 하다
■게제 글
시와 비평 수필 부문 신인상 응모 원고 제출(권대욱)-
성명: 본명 권대욱
응모분야: 수필
응모 원고 제목 : 가슴 뛰는 삶
프로필
중앙고 서울대 농대
하바드 비지니스 스쿨 최고 경영자과정,
연세대 MBA,
동국대 경영학 박사
(주) 한보,유원건설,극동건설 사장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메니지먼트 사장,(주)휴넷 회장
현 (주)미디어 솔트 회장
산막스쿨 교장 터득골 이사장
청춘합창단 명예단장/이사장
제목: 가슴 뛰는 삶
우리는 짧은 인생의 대부분을 걱정(염려, 고민, 근심)하면서 살다가 죽는다. 한가지 걱정이 사라지면 기다렸다는 듯, 다른 걱정이 찾아와 그 자리를 메꾼다.
저 사람은 무슨 걱정 이 있을까, 늘 부러워했던 사람도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모두 마음 걱정 한 가지씩을 그림자처럼 가까이 끼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인생이다.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아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삶은 매우 공평하다.
그러나 이런 걱정스러운 삶임에도, 순간이나마 신나는 일이 더러 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무얼 할 때 가장 내 가슴이 뛰고 나를 신명 나게 하는가를 살펴보았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개발을 위해 행동할 때가 바로 그 때다.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사유나 명상, 이런 것들에선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기분 좋은 몰입감을 느끼며 행복해진다. 돈이란 것도 내가 사용했을 때 내 돈이고, 가만히 담아 둔 것은 종이에 불과하듯, 행동으로 무엇을 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전율과도 같은 짜릿함이고, 필요 없는 걱정을 망각하게 하는 행복의 본질이기도 하다.
산막에서 잔디를 깎을 때, 내 손으로 뚝딱거리고 무얼 만들거나 고칠 때, 그 행위의 결과는 즉각적이며, 명백하게 드러나 현실감이 든다. 내가 꼭 직접 하지 않더라도, 내가 기획하여, 사람 들을 불러 함께 성사시키는 일 역시 같은 느낌이다. 올해 105세가 되신 한국의 대표 철학자 김형석 박사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생각이 난다.
“ 행복과 보람이란 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의 결과입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사랑이 바탕이 된 힘든 것, 고생은 고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고,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강조하셨다. 아마도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하신 우리들의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고생만이 아니라 자식을 키우면서 행복을 느끼고 살아내셨다고 여겨진다.
시인들은 시를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더 감동적인 시어를 찾아 책상에 붙어 앉아 잠을 줄이고 고심하는 그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지금 나는 산막 창고로 쓰던 건물 하나를 세미나실로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허름한 창고 하나, 허름한 강의실로 바꾸는 일이라서 별일도 아니게 보이겠지만, 적어도 내게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 만큼이나 숭고하고 위대한 기쁨이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이 파도처럼 내 가슴에 넘실거린다. 작업하는 그 순간은 내 마음이 거기에 가 있고, 그 가치 또한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좋아져, 무엇이든 디지털과 모바일의 힘을 빌려 보내고, 또한 받아서 볼 수 있는 세월이라서, 작업지시를 내리는 일, 자재를 선택하는 일, 결과를 검수하는 일, 이 모두가 remote(현장 중개, 생방송)가 가능하기에, 나는 서울에서 나의 다른 업무를 보면서 세미나실 짓는 일탈을 즐길 수 있었다.
일이 삶이요, 삶이 곧 일인 무경계의 경지를 경험하는 것이니, 그 순간만큼은 복잡한 회사의 일도, 오랫동안 나와 주변을 괴롭혀온 개인적 고민도 다 잊고, 그저 몰입하고, 또 몰입하면서, 무아의 경지에서 한껏 신명 나 하는 것이다. 이런 몰입의 즐거움을 놓치고 살고, 모르고 자라나는 세대들이 알콜 중독과 더 나아가서는 한창 공부 해야 하고, 자기 발전을 위하여 신체와 시간을 사용해야 할 청춘의 나이에, 벌써 마약 중독에까지 노출되는 유럽의 나라들을 보면서 혀를 차고, 걱정했는데, 이제는 청정해서 자랑스럽던 대한민국 청소년과 청년층까지 마약이 파고 들어오고 있다는 뉴스와 방송들을 접하면서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새벽에도, 나는 이 메일을 읽고, 주주총회 이사회 시나리오를 머리에 그려보고, 중요한 미팅의 과제를 챙기면서도, 한 편으로는 화장실 벽은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싱크대 위치는 어디가 좋을지? 출입문의 높이는 어느 정도로 할지? 천장과 바닥 마감은 무엇으로 할지를 생각하며, 또 신바람이 나고 있다.
"진정한 삶의 고수는 일과 놀이, 노동과 여가, 몸과 머리, 공부와 휴식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두 가지 중 뭐가 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무엇을 하든, 그저 탁월함을 추구하고, 그에 걸맞게 완성할 뿐, 그것이 일인지 놀이인지는 타인의 판단에 맡긴다. 그렇다. 삶과 일은 두부모 자르듯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일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일이 있는, 무경계 적인 것이 일과 삶이다.
한 발은 땅 위에 굳건하되, 또 한발은 구름 위에 살짝 걸칠 줄도 아는, 세상을 떠난 마음으로 세상의 일을 하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떠한가?
나의 젊은 날은, 남부럽지 않은 멋진 반 촌의 고향을 가졌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건설회사 사장 자리에 올랐으니, 승승장구한 것은 사실이다. 그대로 쭉 계속 갔다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오만이 층층이 올라붙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진아(眞我)를 찾고, 우주의 참 이치를 깨치기 위해, 참선, 정진하던 선지식(善知識)과 수행자들은 고행과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교만과 자만심이 수행의 가장 큰 적임을 알고, 틈을 내주지 않도록 경계(警戒)한 것이다.
1997년 금융위기 직전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나는 회사 문을 나섰다. 당혹스럽긴 했지만, 내가 누군데, 어떻게든 내가 또 잘 풀리겠지? 그러한 자신감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자신감으로 삼촌이 경영하던 회사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나의 퇴직금에 지인들의 투자금을 보태 건설의 네이버, 건설의 포탈을 지향하는 온라인회사를 창립했다. 깨끗한 건설이 이상이었다. 벤처 붐과 인터넷 바람을 타고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고, 내 이름 석 자 앞에는 항상 잘 나가는 타이틀이 붙어있어야 한다는 초조함이 나를 서두르게 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퇴직금과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날렸고, 드디어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냥 서울을 떠서 어딘가로 가서 숨고만 싶었다.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다보니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다.
그렇게 풀이 죽어 서럽게 울며 들어갔던 강원도 산골에서, 처절한 고독과 함께 3년여의 세월을 홀로 보냈다.
포장도 안 된 흙길을 한참 들어가야 하는 그 곳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밤이 되면 내 거처의 불빛만이 외롭게 주변을 밝혔고, 빽빽한 숲은 마음의 병풍이 되고, 울타리를 치듯, 외부로부터 나를 가려, 내 상처를 홀로 끌어안고, 숨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세상 앞에 무릎을 꿇은 패배자의 심정으로 쫓겨간 산속에는, 예상치 못했던 생활의 기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산막 자생(自生)이 지난날을 반성하고, 참 나를 찾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스스로 밥 짓고 설거지를 하며, 나를 죽이고, 또 죽였다. 옛 생활의 화려함과 허황(虛荒)함과 미련이 살며시 고개를 들면 지그시 눌러 놓으려 청소하고 김을 맸다. 잔디를 깎았다.
가끔 멀리서 벗들이 찾아오면 나의 몸을 움직여 마련한 음식을 대접했다. 그동안 진 마음의 빚, 세상의 빚을 갚고 싶었다. 화톳불에 쓰레기를 태우면서 허식을 벗었고, 산새들의 지저귐에 진정한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자연이 품어 주는 시간은 내게 더 없는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화려한 시절이 끝났다고 좌절했던 나였지만, 돌이켜보니, 소중했던 순간보다는 후회스러운 일들이 더 많았다. 남들이 나의 성공을 부러워하던 그 시절 과연 나는 행복했었는가? 보람을 느꼈는가? 정말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소신껏 할 수 있었는가? 나도 모르게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원한을 산 일은 없었는가?
매일 숨이 막히게 바쁘면서도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그리 바쁜지 알지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산다기보다는 살아지는 나날들을 살았었다. 내가 나를 잊고, 내가 누구이며, 얼마나 행복한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성찰(省察)은 해 보지도, 할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3년여의 산중 생활을 마치고, 나는 또다시 소위 잘 나가는 자리(호텔 사장)에 불려 나가 앉게 되었다.
그러나 강원도 산골에서 키웠던 화두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늘 가슴 한가운데 멍울처럼 남아 있었다. 잘 나가는 자리에서도 나를 낮추려 애를 썼다. 비로소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지만, 그 속에서 참 나를 찾은 기쁨을 체험했다.
산막의 창고를 새롭게 하면서 들숨과 날숨 같은 기쁨에 충만하여, 이곳을 찾아올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끝.
■심사소감
심사 소감 / 수필 권대욱
수필은 시, 소설과 달리 사실을 풀어내어 쓰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써도 된다. 소설은 허구를 쓰는 것이니 창작이 포인트이다. 시는 수필처럼 있는 그대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독창적이고 적절한 비유를 가지고 와 예술적 가미를 한 번 더 해야 비로소 작품이 된다.
그렇다고 수필이 쉬운 것은 아니다. 수필은 마음껏 자유롭게 사실을 쓰면서도, 읽는 독자가 생각할 무엇을 남겨야 하니 결코, 가볍고, 쉬운 장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들이 이미 다 써먹은 흔한 이야기가 아닌, 신선한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써야 하고, 예리한 감각으로 감동을 주는 단어의 선택을 요 하고, 적절한 비유가 뒤따라 주면, 더욱 진주처럼 살아나니 만만찮은 장르이다.
7권의 책을 묵묵히 저술하며, 평생 글을 쓰는 행복에 취하여 살아온 삶이 그대로 노출되는 달필이었기에, 응모한 권대욱 선생의 수필 3편 중 ‘가슴 뛰는 삶’을 망설임 없이 당선작으로 선에 넣었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라는 김형석 박사님의 말씀처럼, 권대욱 선생 역시 성급히 그저 공으로 얻어지는 것, 편히 얻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자신이 몸소 땀 흘리고, 힘들게 움직이는 과정이 가슴 뛰는 일이며, 그 끝에 얻는 만족감과 행복을 소개했다.
누구나 그렇지만, 권대욱 선생 역시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자리를 누리다가 한 번 꺾어지는 시간을 가지고 난 후 보다 더 가슴 뛰는 삶을 만났다고 한다. 깊은 어둠의 밤하늘에서 별로 떠오른 본인의 삶을 수채화처럼 잘 그려내어, 철학도 남겨주고,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 수필을 읽으면서 임보 시인의 ‘별’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어둠을 탓하지 말라/모든 빛나는 것들은/어둠의 어깨를 짚고/비로소 일어선다/어둠이 깊을수록/별들이 더 반짝이듯/그렇게/한 시대의 별들도/어둠의 수렁에서 솟아오른다.’
현대인들은 너무 쉽고, 편하게 살고자 한다. 힘든 것을 밀어내고, 편한 것만 찾으면, 스스로 가슴 뛰는 기회도 밀어내는 것이 되고, 가슴 뛰는 과정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살이에 손도 안 대고, 코를 풀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와서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웠다.
이번 당선작은 훌륭한 수필은 필수적으로 진솔함이 감동을 일으켜 세우는데, 진솔하고, 오래 글을 써 온 경험으로, 걸림 없이 매끄러운 문장력을 보여 주었다.
긴 세월 훌륭한 작가를 엄선하여 배출하는 ‘수필과 비평’에 훌륭한 작가 탄생을 축하한다.
끝.( 심사위원 이윤정 시인 )
■당선소감
권대욱(수필) 신인상 당선 소감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은 제 삶의 이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쓰기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글 쓰는 즐거움이야말로, 내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며, 천운(天運)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선(新鮮)한 새벽에 홀로 앉아 푸른 산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 깊은 몰입감은 나의 큰 행복이었기에, 일하면서도 긴 세월 꾸준하고, 부지런히 글을 썼습니다.
나의 글쓰기는 저 심연(深淵)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보물의 창고에, 또 하나의 보석이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 명징(明澄)한 그 소리를 듣는 느낌이랄까요?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가슴이 꽉 채워지는 포만감이라고 할까요?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겠다는 말이 허언(虛言)이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배우고 또 익히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즐거움을 후배들에게 많이 권고하고 살아왔지만, 이제 전통과 명망 있는 문예지 ‘수필과 비평’에 수필가로의 등단의 문이 열리니, 이 기쁨과 함께 다가오는 것은 ‘ 문학적, 예술적 가치를 추가한 맵시가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라는 책임감이 엄습하였습니다.
심사하여 선에 넣어 주신 이윤정 시인님께 감사드리고, 수필과 비평의 끝없는 발전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