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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출신 문인탐방>
<흑인문학 및 인권운동의 개척자, 배인철>
배인철(1920-1947)은 한국 문단에서 찾아 보기 힘든 ‘흑인문학’의 길을 연 선도자였다.
흑인들을 통하여 핍박받는 하층민들의 고난과 인권문제를 인도주의 정신으로 고양한 것이다.
문학을 통한 인권옹호, 차별없는 사회평등을 주창한 선구자였다.
인천에서 태어 난 그는 중앙고보를 졸업한 (31회, 1940년) 후 일본대 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유학중 권투를 하면서 당시 헤비급 챔피언이던 조루이스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권투를 한 건 누이동생 증언에 의하면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주먹이라도 커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고 한다.
조루이스는 12년간(1937-1949)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던 전설적 인물이었다.
단지 챔피언으로서뿐 아니라 흑인의 인종차별에 맞서는 상징적 인물이었다.
침착하고 단호한 펀치, 두 주먹의 조화로운 콤비로 69승 52 KO승이라는 복싱계의 신화를 만들었다.
배인철은 처음에 자신이 권투를 해서 관심을 갖게 됐지만 점차 흑인의 인권문제로 인식이 깊어졌다.
귀국 후 상해에서 무역업을 하는 형을 도우며 상해 세인트존스 대학에 적을 두기도 하였다.
해방 후 인천으로 돌아 와 인천중, 해양대 영어교수로 있으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개시하였다.
1945년 10월 ‘신예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인천 중구청 뒤 일본요정을 접수하여 ‘예술가의 집’을 마련하여 문인 및 에술가들의 교류를 도모하였다.
회원으로 서정주, 오장환, 함세덕 등 쟁쟁한 문인 및 화가들이 포진해 있어 신예술가협회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해방후 예술인들의 명동시대를 연
시인 박인환과 교류가 깊었다 한다.
배인철 역시 명동시대의 주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미군 흑인 병사 푸렌, 브라운을 포함시켜 이채를 띠었다.
그것은 흑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소산이었다.
월미도에 있던 미군부대에 가서 자기가 쓴 흑인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흑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흑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5편의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노예 무역선을 소재로 한 <노예해안>, 백인의 흑인여성 성착취를 다룬 <흑인녀>, 흑인 챔피언 조루이스를 소재로 한 <조루이스에게>, 군에서 차별 받는 흑인을 그린 <흑인부대>, 그밖에 <인종선 흑인 존슨에게>가 그것이다.
시의 주인공들은 거의 존슨, 브라운, 테일러, 모리스 같은 흑인들인데 시인이 실제로 교류했던 인물들이다.
상상의 인물이 아니라 그들과 직접교류하면서 들은 이야기들을 묶어서 시로 쓴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흑인시는 일종의 체험시라 부를 수 있다.
아무튼 배인철은 흑인들을 통하여 사회적 인권문제, 인종차별의 부당성을 고발한 인권운동가요, 인권시의 선구자였다.
1947년 장충단 공원에서 이대생과 데이트를 하다가 괴한에게 총살 당해 27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당시 치정살인으로 알려졌지만 우익에 의한 테러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가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차후 인권운동가, 인권시의 대부로서 큰 역할을 했을 것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인천에 있는 묘지에 ‘인민의 시인, 배인철’이라는 묘비석이 세워졌다.
문학을 통한 인권 운동의 선각자 한 명을 계산 동산이 키워 낸 것이다.
오른쪽 사진
오른 쪽이 배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