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60회) 교우가 밴드에 올린 글을 공유합니다.
본문
<중앙 출신 문인 탐방>
<한국 연극영화의 대부ㅡ서항석>
서항석(1900-1985)은 명실공히 한국 연극,영화계의 선구자요 대부다.
다양한 활동으로 한국 연극의 토대를 쌓아 올린 개척자였다.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 함남 홍원에서 태어난 서항석은 1918년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1926년 동경제대 독문과에 입학하여 1929년에 졸업한 수재였다.
조선인이 동경제대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1931년 유치진과 함께 한국 연극 발전의 모태인 <극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배우, 연출, 극작, 번역, 비평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세계문학 수용과 이입을 통해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한 <해외문학연구회> 결성에 앞장 서
전공인 독문학의 소개와 이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38년 삼영영화사를 설립하여
<애련송>을 제작해서 한국 초기
영화 발전에 기여했다.
해방후에는 <에밀레종> 외 많은 가극을 무대에 올려
한국 오페라 발전에 초석을 놓았다
1945년 국립극장을 설립하고 2대 극장장에 취입했다.
1953년 중앙국립극장장을 맡아
1961년까지 8년간 연극 발전에 기여했다
1957년 한국예술원 회원, 부회장,종신회원이 되었다
그밖에 동아일보 학예부장(1933), 민주일보 편집국장(1948) 등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동아일보 기자였을 때 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손기정, 3등 남승룡의
쾌거에 대한 '승전사'는 일장기 말소에
버금가는 애국헌사였다.
"아으 이천만 다 나와서
승전고 치고 어깨춤 추자
삼천리 강산도 깨어 울린다
동해물 백두산이 길러준 이 피, 이 뼈
빛나는 조선 우리 아니 자손인가
세계무대를 활개치며 가리라"
이렇게 손기정 우승을 민족의 영광으로 노래하여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했던 것이다.
1963년에 서라벌예대 교수로
취임하여 극문학 연구와 강의에
심혈을 쏟았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파우스트>를
무대에 올리는 등 독문학 소개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아 최초로 독일 정부로부터 '괴테훈장'을 수여받았다.
한국 연극 영화에 기여한 공적으로
1962년 건국문화훈장, 197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 받았다.
서항석은 실로 한국 연극, 영화, 문학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선구적인 활동을 한 개척자요, 선구자다.
연극에서 극작, 연출, 번역, 배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듯이
문학에서도 시, 희곡, 평론, 번역 , 해외문학 이입 등 다면적 마스크를
보여 주었다.
서항석의 이러한 다면적 마스크와 다양한 활동으로 한국 근대예술이 활짝 꽃 필수 있었던 것이다.
서항석의 선구적인 예술활동은 중앙동산에서 싹튼 예술혼이 빚어낸 결과였다.
실로 중앙 계산(桂山)은 한국 예술가들을
키워낸 요람이요,성지(聖地)다.
ㅡ김영철 씀
*중앙이 배출한 예술가
문인을 살펴 봅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재미 작가 김용익
러시아 한인문학의 선구자
조명희
한국 농민문학의 개척자
정호승
위 3인은 이미 60 동기
신희순 사장께서 소개한 바 있어 생략합니다
중앙 동문 제위의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