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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 얽히고설킨 ‘최순실 사태’를 해결할 주역으로 ‘김종인 총리’론이 부상하고 있다. 어제 남경필 경기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야를 아우르는 협치(協治)로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는 데 적임자’라며 공개적으로 추천했다. 김 전 대표에게 반응을 물으니 “내가 거기 가서 뭐 하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 상황은 사람 좀 바꿔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옛날에는 대통령이 측근 비리로 곤경을 겪었다면 이번은 대통령 본인과 관련된 문제로 사달이 빚어진 거다. 본인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거국내각이나 책임총리도 쓸데없는 일이다.”
정치권이 위기 상황마다 김 전 대표를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 4·13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영입돼 승리를 견인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해 박근혜 정부 출범에 기여했다. 이런 전력을 가진 정치인은 드물다. 여야 모두에 말이 통하고 전두환 정권 때부터 정치에 간여해 권력의 생리도 잘 아는 편이다. 김 전 대표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묻자 대뜸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동안의 수수께끼가 다 풀렸다”고 말문을 열었다. 》
대통령제로 나라가 이 꼴이 됐다
―무슨 뜻인가. 최순실을 본 적은 있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와 둘이 만나 뭔가를 합의하고 나면 오후 11시쯤 전화를 걸어와 ‘좀 생각해 보겠다’며 원점으로 돌리곤 했다.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한동안 의아했다. ‘저 사람이 자기 스스로 판단을 못 하는 거 아닌가’ ‘밖에서 누가 조종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안종범이니 강석훈 같은 사람들을 의심하기도 했는데 그들도 하수인 역할만 한 것 같다. 이번에 보니 이 사람들이 그랬구나 싶었다. 내가 갖고 있던 수수께끼가 풀렸다.”
―‘조종’받는다는 건 꼭두각시라는 말인데….
“그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다. 자기 스스로 판단을 못하고 다른 사람 판단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다음도 비슷할 거다. 지금 후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생각이 없다. 그저 주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도 그런가?
“대동소이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문 전 대표를 지원했나.
“문 전 대표를 도와준 게 아니다. 민주당이 근거를 잃어버리고 엉망이 돼버릴 것 같아서 야당을 살려주려고 간 것이지. 나는 1당 체제로 가는 게 두려웠고 건전한 야당이 필요하다고 봤다.”
―최순실 사태가 왜 일어났다고 보나.
“대통령제의 맹점 중 하나다. 1988년부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6번째 나왔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면 국민을 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거 권위주의적 통치자에게 연결됐던 경제세력들은 과거의 향수에서 못 벗어난다. 그저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비선 실세를 찾는 거다. 국가경영이 공유되지 않고 어느 한 사람에 의해 판단되니까 그런 걸 피해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공식 라인을 두고 왜 비선 라인을 찾는가.
“대통령들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대통령제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헌이 필요한 이유다. 개헌을 통해 이제는 혼자가 나라를 농단하는 정치체제에서 벗어나 여러 명이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대통령제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됐다고 한다.
“초기에 약속을 잘 지키던 노태우 대통령도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나에게) 경제를 책임져 달라고 했는데 당선되더니 외면하더라. 당선과 동시에 비선이 작동하면 초기의 대통령 구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적이라는 이미지로 당선돼 서민 위주로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당선 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만들어 준 걸로 정책을 했다. 한심한 게 뭐냐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가서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 하더라. 우리 대통령이 다 그런 식이다.”
구정물이 흘러가야 새것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개헌 추진을 선언한 직후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개헌이 물 건너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천만에. 나는 달리 본다. 이럴 때일수록 개헌해야 한다. 더 이상 대통령제가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국민이 터득할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이 그 문제를 바로 보지 않으면 국민에게 비판받을 것이다. 1948년 이후 70년 동안 이어온 대통령중심제의 폐단이 드러난 것인데 똑같은 상황을 반복할 수는 없지 않나.”
―1987년 개헌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지금도 그런 비상시국인가.
“지금은 정부가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니 어떻게 보면 비상시국 맞다. 그러나 1986년엔 1인당 소득이 2500달러, 지금은 2만8000달러로 국민의식이 다르다. 국민이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숨길 수 없다. 이번 사태로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지금은 ‘토털 불신’의 시대다. 제대로 끌고 가는 세력이 나와야 한다. 최순실 사건에만 몰입해선 안 된다.”
―최순실 문건에 ‘2013년 다보스포럼에 김종인을 특사로 보내 예우하라’는 내용이 있다.
“웃기는 소리다. 가라고 해도 안 갔을 거다. 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입장에서 심정이 편치 않다. 솔직히 대선을 7개월 남겨두고 후보가 된 문재인이 한심했다. 그래서 서울의 첫 유세에서 ‘경제민주화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박근혜’라고 얘기했는데, 국민에게 미안하다. 당선 후 인수위 구성 멤버를 보니까 싹수가 노랗더라. 이 정권은 3년만 가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노무현도 3년 만에 망가지지 않았나. 박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게 대면(對面)하는 거다. 서류만 놓고 가라고 한다. 그걸 혼자 판독하는 건 불가능하니 어디서 검토해야 하는데,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 드러난 것을 보면 장관이 최순실에게 간접적으로 보고한 셈이다. 대통령제의 맹점이 바로 이런 거다. 내가 체험했다.”
―내각제가 될 경우 국회의원 수준을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내각제를 하면 의원이 정권을 잡는 게 아니다. 국회는 더 힘이 없어진다. 내각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지. 그 당에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내각을 형성한다.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함부로 의사결정 못한다. 내각에서 조정을 하니까 국회의원 300명 중 60명만 똑똑하면 된다. 독일은 1949년부터 한 번도 단독 정부를 구성한 적 없다. 모두 연정이다. 딱 한 번 독자 정권을 세울 기회가 1957년에 있었는데 그때도 연정을 선택했다. 당시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정부에 일방적으로 몰고 나가는 세력만 있으면 나라가 안정적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이제 연정은 시대적 흐름이다.”
―직선제 선호의 국민 정서 넘어설 수 있을까.
“자기 손으로 대통령 뽑아서 나라가 이 꼴이 됐는데, 국민도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 내각제 하자고 하면 정치의 불안정성을 우려하는데 이를 해결한 것이 독일의 내각제다. 2년 동안 불신임을 못하게 했다. 그 기간이면 하고 싶은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다. 2년에 못하는 사람은 5년이 걸려도 못한다.”
―‘애국심밖에 없다’는 박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혼자 산 사람이라서 물질적 탐욕이 없고, 주변이 단출하다고 봤다. 그동안 기업으로부터 혜택도 보지 않은 사람 아닌가. 선거 때는 후보였을 뿐 권력이 없으니까 (진면목을) 알 수가 없었다. 알았다면 내가 제일 먼저 도망 왔을 거다.”
그는 대통령이 진짜 애국심을 발휘하려면 자신이 뭘 해야 할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확고하게 준비해야 한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자서전에 보면 집권하면 24시간 내에 조각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이때 지역 안배가 중요한 잣대다. 이런 걸 하려면 평소 할 수 있는 능력이 돼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2012년이 되면 선거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니 2011년 말까지 조각할 수 있는 사람을 50명 정도 준비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얘기했다. 과거 대통령 중 이런 걸 지킨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아무도 직언을 안 했을까.
“자리 보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거역 못한다. 대통령 말에 대해 ‘노’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안 되는 일도 대통령이 말하면 슬그머니 된다고 한다. 사실 ‘노’라고 말하는 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덕목인데 그게 안 된다. 특히 관료나 교수를 하다 와서 보좌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치는 후회하는 날이 끝나는 날이다
―지금 야당의 역할은….
“최순실 문제는 검찰 등이 처리하도록 놔두고 자신들의 역할을 신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야당은 수권을 하려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국회에서 200명 서명한 개헌을 태클 걸지 않고 가야 한다. 적당히 개헌을 비켜가면서 대통령제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야당도 성공하지 못한다. 여기서 개인적인 욕심을 생각해서 상황 판단을 하면 또 다른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사나.
“나라를 위해 마음을 비우고 의존한 세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자기에게 누가 가장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사람인지 찾아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정신 바짝 차렸어야 하는데, 이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정치는 후회하는 날이 끝나는 날이다.”
―국민과 대선 주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각성을 해서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아야지. 우리나라 국민은 역동성을 갖고 있다. 너무 절망할 필요 없다. 금 모으기 때 중산층 이하만 내놨다. 20억 달러 모아줬는데 세상에 그런 나라 없다. 누군가 제대로 국민을 설득하면 국민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다음 대통령 되려는 사람은 쓸데없는, 황홀한 말 하지 말아야 한다. 재벌 노동자 중산층 등 각계각층에 실태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제대로 알리고 협조를 호소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지금은 금방 나라가 무너질 것 같지만 이 정도 수준의 나라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구정물이 흘러가야 새것이 나오지 않겠느냐.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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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MainTop/3/all/20161031/81081736/1#csidx8b71b656b5441f38a625c479fdc2a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