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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외교관 생활로 봉직했던 최혁 교우가 55동기회 고희연에서 축시를 헌시 하였습니다.
中央 55回 七旬宴에 부치는 詩
2014년 12월 9일 최 혁
나라가 광복을 되찾은 바로 그해에
해방둥이로 세상에 나온 우리들
50년 전 정든 중앙의 교정을 나와
미지의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들,
숙명처럼 제각기 다르고 생소했던
세상의 여정과 뒤안길을 돌아
성공보다 많았던 실패와 좌절을 딛고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인간사에 울고 웃으며
용케도 넘어지지 않고 이 자리에 다시 모인 친구들.
세월은 유수와 같다지만
70년이 어찌 짧다 하리오.
인생은 일장춘몽과 같다 하지만
어찌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한갓 꿈이라 하리오,
누구에게나 삶은 진실되고 진지한 것이니
우리가 걸어온 세월 속에는
우리의 굼과 땀, 눈물과 애환이
세상을 이겨낸 인고와 용기가 구비구비 서려있고
대한민국의 현대사, 눈부신 근대화와 민주화의 발자취가
역사가 되어 남았으니
또 모두 단란한 가정의 존경받는 가장들이 되었으니
이 어찌 소중하고 대단하지 않으리오.
그러니 오늘은 우리모두 잔을 들어
우리 안에 남아있는 회한과 탄식들을 털어내고
크게 웃으며 서로 축하하고 치하하세나
그리고 마음 깊이 감사하세나
우리가 사랑하고 지켜야 할 조국이 있음에,
보릿고개와 결핍의 시대에
오직 하해와 같은 사랑과 정성으로 우리를 키워주고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를 일러주신 우리 부모님들께
철모르던 홍안소년들에게 세상사는 지성과 인성
국민 된 자의 도리를 가르쳐준 모교에,
늘 부족한 살림 속에서도
40년 넘게 우리 곁은 지키며
아이들을 낳아 곱게 키워준 사랑하는 우리 아낙들에게,
또 밝고 바르게 커준 우리 아이들에게,
긴 세월 변함없이 속 깊은 우정을 나누어준
언제 만나도 반가운 친구들에게,
이 모두가 있었기에
우린 비록 부귀와 영광을 얻진 못했어도
출세를 위해 영혼을 팔거나 술수를 부리지 않고
이렇게 의연하고 떳떳하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낙엽을 지게 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세월이라네,
그 어쩔 수 없는 세월 속에서
이제 여기저기 몸이 불편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는
힘없고 마음 약한 노인이 되어가면서도
손주들과 놀다 보면 다시 천진난만한 아이로 돌아가는
이상한 나이가 되었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왜 이토록 분열과 갈등, 증오가 가득 차고
사건 사고가 그치지 않으며 공동체 의식과
예의 법도가 무너졌는지
나라 걱정에 한숨을 쉬는 노인이 되었네 그려.
그러니 우리 보다 더 젊게 즐겁게 살기로 약속하세
어차피 한 번 밖에는 살지 못하는 인생이 아니던가,
또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지 않던가,
해보고 싶었던 것도 못해본 것도 해보면서,
그리고 가는 날 까지 건강하게 사세나
적게먹고 많이 움직이며 마음을 편히 하는 것 외에
딴 방도가 없음을 잘 알지 않는가,
그리고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들에게 독주는 권하지 마세.
이제 우리 다 같이 머리 숙여 기도하세,
우리의 세 가지 소원
이 땅의 평화
우리 자손들이 보다 행복한 미래
우리들의 품위 있는 세상과의 하직을 위해,
매일매일 감사하며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로
항상 이웃을 생각하며
마음이 가난하고 온유한 자로 살게 해주십사 기도하세
어쩌다 먼저 떠난 보고 싶은 친구들
몸이 아파, 사정이 어려워, 멀리 이국땅에서 사느라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세.
그리고 이해가 가기 전에 전화라도 한 통씩 하세.
자 이제 우리 모두 잔을 들어 건배하세
우리의 행복한 노년을 위해
우리의 진하디 진한 우정을 위해!
그래 오늘저녁에는 모처럼 모두 한번 얼큰하게 취해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