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연구권위자 현암 이을호(20회), 저서·논문 등 27권 전집 출간
본문
정약용 연구권위자 현암 이을호, 저서·논문 등 27권 전집 출간
현암은 1934년 고향인 전남 영광에서 독서회 '갑술구락부'와 청년 체육회인 '영광 체육단'을 조직하고 지역 운동을 폈다. 인근 순천 출생인 남승룡 선수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금메달)에 이어 동메달을 수상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남승룡 초청 단축 마라톤 대회'도 개최했다. 지역 운동이 확산되자 일제는 1937년 이들 단체가 '대한독립만세'와 '약소민족 옹호'라는 벽보를 읍내 곳곳에 붙였다는 구실을 붙여 현암을 비롯해 지역 인사 300여 명을 검거했다. 이 사건으로 현암은 목포형무소에서 1년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옥중에서 그는 다산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독파했다.
다산학(茶山學)의 개척자로 꼽히는 현암의 저서와 논문, 관련 논문이 최근 27권의 전집(한국학술정보)으로 출간됐다. '다산경학사상연구' 등 정약용 연구서와 사서(四書) 번역 등 선생의 저서와 역서를 망라했다. 오종일 전주대 명예교수는 "현암은 정치적 독립만이 아니라 정신적·문화적 독립을 이루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고 독자적인 한국학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현암은 광주의대 부속병원 약국장과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양 고전을 한글로 옮겼다. 전후(戰後)에도 현암은 1958년 '한글 맹자(孟子)'를 시작으로 1959년 '한글 논어', 1976년 '한글 중용·대학' 등 사서를 차례로 옮겼다. 그는 정년 퇴임 이후에도 광주박물관장과 다산학연구원 명예원장, 광록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학술·문화·환경 운동을 이끌었다. 현암은 1995년 광주광역시의 식수원인 동복호를 살리기 위한 운동을 한 공로로 조선일보와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공동 제정한 제1회 한일(韓日) 국제환경상을 받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현암 이을호 교우는 중앙20회를 졸업하고 제8회 자랑스러운 중앙인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 유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교우입니다.
귀 교우의 자녀로 55회 이원태 금호아시아나 그룹 부회장의 선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