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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2세 이하 리틀야구대표팀을 이끌고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안고 돌아온 박종욱 감독. 오랫동안 리틀야구 지도자로 활약한 덕분에 그는 어느 누구보다 어린 선수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한 마디로 인기 폭발이었다. 한국을 출발할 때만 해도 인천공항에는 기자 한 명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5일 만에 돌아온 인천공항에는 100여명의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고, 그들을 맞이하기 위한 가족과 동료 선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제 68회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미국 대표팀인 시카고팀(일리노이)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 얘기다.
워낙 극적이었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반전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리틀야구 대표팀을 이끈 박종욱 감독 및 코칭스태프(황상훈, 박근하 코치)와 선수들을 섭외하기 위한 미디어의 경쟁도 치열했다. 리틀야구연맹 한영관 회장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할 만큼 리틀야구 대표팀은 최근 가장 ‘핫’한 이슈메이커였다.
선수단이 귀국한 다음날인 8월 27일, 박종욱 감독과 2명의 코치를 장충리틀야구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전날 밤 늦은 시간의 귀국으로 인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은 그래도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리틀야구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박종욱 감독을 먼저 만나본다.
월드시리즈 우승보다 한국대표 선발전이 더 치열했다!
먼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 참가한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은 서울지역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국내 선발전에서 서울 연합팀(인천 포함)이 경기, 남부(서울, 인천, 경기를 제외한 전지역) 연합팀들을 제치고, 한국 대표로 아시아-퍼시픽 지역 예선에 출전, 우승을 차지했다. 덕분에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출전권(아시아-퍼시픽 대표)을 따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에서 벌어진 월드시리즈에 출전했다가 29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박종욱 감독은 동대문리틀야구를 이끄는 감독이다. 중앙고와 영남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프로에 지명받지 못하는 바람에 곧장 은퇴를 했다고 한다. 같은 세대에 야구를 한 동기들로는 김선우, 장성호, 서재응 등이 있다. 은퇴 후 곧장 덕수중에서 코치를 시작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성동초 코치를 거쳐 광진구 리틀야구-동대문 리틀야구를 맡으며 유소년 야구와 깊은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박 감독은 월드시리즈 우승보다 한국 대표팀을 뽑는 선발전이 더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서울과 경기, 남부권 지역 대표팀들이 각각 경기를 치른 후 최소 실점을 한 팀이 대표팀으로 뽑히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그 세 팀 중에서 서울 연합팀의 전력이 가장 약했다. 처음 경기 연합팀이랑 맞붙어 2-1로 졌고, 경기랑 남부 연합팀이 붙어 남부가 이겼다. 그런 상황에서 서울이 남부 연합팀과의 경기에서 가까스로 이겼고, 최소 실점으로 극적 승리를 거뒀다. 세 팀 중 탈락 후보 1순위였던 서울 연합팀이 한국 대표팀 자격으로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퍼식픽 지역 예선에 참가했고, 번번이 한국의 발목을 잡았던 대만을 물리친 끝에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출전권(아시아-퍼시픽 대표)을 따냈다.”
월드시리즈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나이 제한이 있다. 2001년 5월 1일 이후에 태어난 선수들로 만 12세 이하 만이 참가할 수 있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2001년 4월 30일에 태어난 선수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남부 연합팀과 경기 연합팀은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차고 넘쳤다. 서울 연합팀은 잘하는 선수가 약 10명 정도되고, 나머지 3명 정도는 실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제대로 된 라인업을 짜기가 어려울 만큼 선수 구성에 빈틈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시아-퍼시픽 지역예선을 치르며 몰라보게 달라지더라. 특히 최해찬은 지역 예선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3명 중 1명이었다. 그러나 월드시리즈 기간 동안에는 주장 황재영과 함께 한국팀의 마운드와 타석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일등 공신이었다. 이렇듯 13명의 선수들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한국 선발전 때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기량을 선보였다. 하루 아침에 실력이 성장했다고 보기보다는 큰 대회에서 위축되지 않고 즐기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마음껏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승이 확정된 후 마음껏 기뻐하는 한국 리틀야구대표팀 선수들.(사진=llbws 제공)
추신수, 류현진도 미국에서 응원 보내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지역 예선을 통과한 미국 8개 지역 선발 대표팀과 국제 8개 지역 선발 대표팀(아시아-퍼시픽, 캐나다, 멕시코, 호주, 카리브해, 라틴 아메리카, 유럽-아프리카, 일본)이 각각 미국그룹과 국제그룹으로 조를 나눠 경기를 진행했다.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스포츠 전문채널 ESPN에서 미 전역으로 생중계했다. 덕분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와 류현진도 어린 후배들이 낯선 미국 땅에서 벌인 감동의 드라마를 시청하며 응원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박종욱 감독은 아시아-퍼시픽 지역예선을 잡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솔직히 앞으로 다가올 리틀리그 월드시리즈가 어느 정도의 규모와 감동을 선사할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그저 29년 만에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시리즈에 참가한데 대해 더 큰 의미를 두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무대라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까 한적한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회를 직접 보러 온 관광객들과 사람을 압도하는 경기장 분위기 등이 장난이 아니었다.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 대부분이 미국은 처음이었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대회장에 도착했고, 숙소에서 짐을 푼 이후 갑자기 현실이 느껴지면서 두렵기까지 하더라.”
개막식 전날 선수들은 카퍼레이드를 경험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이 조용한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겠나 싶었지만, 카퍼레이드가 시작하자 거리에는 약 4만 명가량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며 함성을 질렀다고 한다.
“선수들을 태운 트럭이 5km 정도의 거리를 지나가는데 2시간이 걸렸다. 거리의 사람들은 선수들에게 사탕을 던져주고 각 나라의 국기를 흔들며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우리 선수들은 고사하고 나도 태어나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오후 2시부터 경기가 열리면 오전 10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느 순간 내 마음 속에는 승리에 대한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미국에 도착할 때만 해도 1승이나 2승만 올려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회 규모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코리아의 자부심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럽-아프리카를 대표해 참가한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 치열한 승부를 벌일 수 있었다.”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동안 ‘작두’ 탔던 박종욱 감독
한국 리틀야구대표팀은 체코를 맞아 3-3 동점까지 내달리다가 벤치의 노련한 작전과 선수들이 투타에서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치는 바람에 10-3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박찬호까지 직접 현장에서 관전한 강호 푸에르토리코와의 경기는 5회까지 1-5로 지고
있다가 4-5까지 따라 붙은 6회 초, 위에서 언급한 최해찬이 무사 1, 3루 상황에서 우전 안타를 터트려 5-5 동점을 이끌었다. 이때 3루
주루코치를 맡은 박종욱 감독은 1, 3루에 있는 선수들에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작전을 지시했다. 바로 더블 스틸이었다. 6-5, 대역전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한국 선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숙적 일본과는 두 번이나 맞대결을 펼쳤다. 일본에는 일본 리틀야구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다카하시 다쿠마가 존재했다. 한국대표팀으로선 다카하시를 제대로 공략해야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결과는 한국이 이겼고, 일본은 패한 후 패자부활전을 거쳐 다시 국제그룹 결승에서 한국과 맞붙었지만, 한국은 투구수 제한을 유리하게 이용한 반면, 일본은 그 계산에 실패한 나머지 결승에서 그들의 자랑인 다카하시를 마운드에 올릴 수 없었다.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어린 선수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투구수 20개 이하일 땐 연투 가능, 21개서부터 35개는 하루 휴식, 36개서부터 50개는 이틀 휴식, 51개서부터 64개는 사흘 휴식, 66개부터 85개(한계 투구)는 나흘을 쉬도록 강제 규정해 놓았다. 패한 팀은 승리한 팀보다 패자부활전을 통해 올라와야 했기 때문에 주력 투수들의 투구수 제한 규정을 잘 이해해야만 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 다카하시를 무리하게 등판시켰다가 투구수 제한에 걸려 이후 국제그룹 결승전에서는 다카하시를 출전시킬 수 없었다. 일본의 패인은 아마도 그 부분이 아닐까 싶다. 투구수 제한 말이다.”
한국과의 1차전에서 패한 일본대표팀 숙소는 눈물 바다를 이뤘다고 한다. 그런데 2차전에서마저 패한 다음부터는 한국팀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이전의 한일 대표팀 선수들이 아니었다. 2차전이 끝난 후론 서로의 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아주 친하게 어울렸다. 일본 선수들은 미국과의 결승전에 나선 한국대표팀을 위해 우리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와 열심히 응원전을 펼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감동이 물밑 듯했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감독은 결승전은 이전 경기들보다 오히려 수월하게 치렀다고 말한다. 선수들이 완전히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고, 자신감이 하늘을 뚫을 기세라, 자신은 오히려 선수들이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만 했다고 몸을 낮춘다.
“결승전에서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렵다는 일본도 꺾었는데, 미국은 해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다. 물론 중심 타선에서 엄청난 타격감을 뽐내는 팀이라 방심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약간의 긴장감과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져도 좋다. 대신 후회 없이 해보자’라고 얘기했는데, 아이들은 지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웃음).”
그들의 마음에 담고 뛰었던 태극기를 꺼내 마운드에 꽂는 선수들.(사진=llbws 제공)
유명 선수 출신들이 리틀야구 지도를 할 수 있을까?
29년만의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안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선수들은 우승 세리머니로 우사인 볼트의 번개 세리머니를 흉내 내며 기자들에게 깜짝쇼를 선보였다. 국민들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월드시리즈에서 보인 드라마 같은 역전 승부에 열광했고 감동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또 다시 현실과의 싸움 앞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우승을 하고 돌아왔지만, 리틀야구의 현실은 그대로이다. 전국에 7개의 리틀야구장이 있지만, 서울은 장충리틀야구장 외엔 단 한 곳도 없다. 팀들 마다 각 학교의 운동장을 빌려 쓰며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데, 이젠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것도 지쳤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우승에 도취하지 말고, 힘 있는 정부와 야구인들이 나서 아이들을 위해 리틀야구장 건립에 적극 힘써주길 바란다. 공부를 병행하는 아이들이 제대로 뛰고 달릴 수 있는 야구장이 세워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박 감독에게 내년에도 서울 연합팀을 맡아 월드시리즈 진출을 노려 볼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다음 지도자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며 손사래를 친다.
“지도자로선 어린 나이에 세계의 큰 무대를 경험했다. 선배 지도자들 중에는 지도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다. 만약 다시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다른 분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과 감동과 깨달음을 맛봐야 한다고 본다. 난 한 번으로 족하다. 이번 대회동안 내가 받은 감동은 앞으로 리틀야구팀을 이끌어가는 데 큰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적은 보수에 선수들이 마음껏 야구할 수 있는 운동장도 없지만, 박 감독은 자신의 성향이 리틀야구 지도자에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리틀야구 지도자도 유명 선수 출신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아마 나 같아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지도자보다 TV를 통해 열광했던 지도자가 온다면 그에게 야구를 배우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나. 프로야구 선수 출신들은 돈도 안 되고, 힘만 드는 리틀야구에 현실적으로 관심을 두기가 어렵다. 그러나 여력이 된다면 리틀야구에도 손을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 화려한 유소년 클리닉은 아니지만, 흙바닥에서 뛰고 구르며 야구하는 걸 최고의 행복으로 아는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어린이가 국가의 미래라면 리틀야구가 한국야구의 미래인 것이다. 겉치레와 생색내기로 유소년 야구를 운운하지 말고, 진정 한국야구의 미래를 위해 리틀야구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상훈&박근하 코치, “리틀야구의 현실에 관심
가져주길”
리틀야구 대표팀을 이끈 황상훈 코치(왼쪽)와 박근하 코치. 각각 서대문리틀야구와 강동리틀야구 감독이기도 하다.(사진=일요신문 임준선 기자) |
리틀야구 대표팀의 황상훈 코치는 충암고 출신으로 졸업 후 충암고에서 5년간 코치
생활을 하며 미국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마이너리그팀에서 활약 중인 이학주와 넥센의 문성현, 두산의 홍상삼 등과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박근하 코치는 강동리틀야구 감독으로 이번 리틀야구 대표팀에서 코치를 맡아 선수들과 함께 뜻 깊은 시간들 보냈다. 신일고-영남대 졸업 후 한전에서 실업야구 선수로 활약하다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곧장 은퇴, 군 복무를 마치고 2007년부터 리틀야구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박 코치는 최근 2015 프로야구 신인 2차지명회의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된 투수 임석현이 자신의 제자라고 밝혔다.
황 코치는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가장 기억나는 일로 자신을 월남전에 참전했다고 밝힌
한 미국인 자원봉사 할아버지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선수들에게 다가와서 ‘너희는 미국까지 어떻게 왔니? 배를 타고 온 거니? 아시아의 최고 팀은 일본인데, 일본을 이길 수 있는 거냐?’라고 물으시더라. 대회 초반에는 일본이 아시아의 최고라고 강조하셨는데, 우리가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이기고 국제그룹 결승전에서도 또 다시 승리를 거두니까 그제야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셨다. 그리고 한국이 배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갈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셨다. 할아버지는 무엇보다 일본을 두 차례나 꺾은 한국 아이들의 실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
박근하 코치는 리틀리그 월드리시즈에서 체코, 푸에르토리코, 그리고 일본과의 1차전이 가장 힘들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월드시리즈 첫 게임이었던 체코전은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 관중들 앞에서 야구한 건 처음이었다. 양탄자처럼 푹신거리는 천연잔디에서 야구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야구장 환경과 잔디 상태 등에
적응이 안 돼 어려운 경기를 하겠다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이 첫 게임부터 정말 잘 풀어나갔다. 우리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까지
거둔 배경에는 체코전에서 첫 단추를 잘 꿰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 감독은 교민들의 응원을 보며 뭉클했던 사연도 들려줬다.
“다른 나라들은 소속 선수들의 학부형들이 따라 왔다. 그런데 우리 선수단은 진짜 단촐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연맹 관계자분들을 제외하면 함께 온 학부형들이 없었다. 그때 우리를 위해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을 펼쳐주신 교민들이 계신다. 뉴저지는 물론 멀리 캘리포니아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그들이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목이 터져라 불러주실 때는 가슴 한켠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교민들의 응원이 선수들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리틀야구 대표팀에선 감독과 코치들로 서로의 역할이 나뉘어졌지만, 태극마크를 떼면 박종욱 감독과 황상훈, 박근하 코치는 리틀야구를 이끄는 감독들이다. 대회에서 맞붙었을 때는 경쟁팀, 라이벌 관계이지만, 대표팀에서 만난 세 명의 지도자는 마치 오랫동안 한 팀에서 뛴 사람들 마냥 호흡이 척척 맞았다고 한다.
박 코치는 “박종욱 감독이 가장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랑 황 코치는 박 감독이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 경험 없는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그 부분을 보완해가려고 노력했다. 경기를 앞두고선 세 사람이 모여 밤새도록 전략도 짜고 선수 분석을 하며 머리를 쥐어짰다. 대회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의견 충돌 없이 선수단을 이끌었다. 아마도 우리 가슴에 태극마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황 코치는 이젠 기적 같았던 우승의 기쁨에 도취해 있기 보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이끄는 리틀야구팀은 평일 훈련시에는 서대문구 내의 학교 운동장을 빌려가면서 사용하고, 주말에는 충암고 운동장을 이용한다. 그러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천호대교 밑의 고수부지 밑에서 돌을 주워가며 야구할 때도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야구장이다. 리틀전용야구장이다. 주위 눈치 안보고 마음껏 야구할 수 있는 야구장이 필요하다.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던 현안이지만, 아직도 이 부분은 해결해 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만 같다.”
황 코치는 또한 리틀야구팀들이 점점 많아지는 데 비해 이들을 받아들일 만한 중학교 야구부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취미반이 아닌 선수반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어 해도 그들을 받아들일 만한 야구부 숫자가 점차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한영관 리틀야구연맹 회장도 리틀야구의 척박한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리틀야구 팀이 가장 적은 나라에서 거둔 엄청난 수확이라 그 감격이 더 크지만, 이젠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한다. 대한야구협회나 한국프로야구연맹 등에서 리틀야구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리틀야구 대표팀의 세리머니로 재탄생(?)한 번개 세리머니.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의 또 다른 감동이었다.(사진=llbws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