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CEO] 제12차 세계한상대회장 홍명기 듀라코트 회장 <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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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 CEO] 제12차 세계한상대회장 홍명기 듀라코트 회장
51세 늦깎이 창업…기술있어 두렵지 않아
34년 직장생활 끝내고 2만달러로 사업 시작…철근부식 막는 `세라나멜` 미국서 시장 점유율 1위 1세대·차세대 한상 융합글로벌 시장 이끌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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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03 18:22:18 | 최종수정 2013.11.03 20:1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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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좋은 점부터 얘기해야 할까요, 나쁜 점부터 얘기해야 할까요."
백발이 성성한 홍명기 듀라코트 회장(79)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 이민과 도료제조 회사를 운영하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아버지가 하는 일이 내게 적합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대쪽으로 하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올해 제12차 세계한상대회 대회장을 맡은 홍명기 듀라코트 회장을 지난달 30일 한상대회가 열리고 있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만났다. 듀라코트는 건축용 철근의 부식을 막기 위한 `세라나멜`이란 브랜드로 유명하다. 홍 회장이 1985년 51세에 창업해 연매출 2억5000만달러로 미국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는 `강소기업`이다.
홍 회장의 아버지는 평화신문(대한일보) 대표, 수도극장(스카라극장) 대표를 역임했고, 동양 최대 안양종합촬영소를 설립한 영화인 홍찬 씨다. 왜 홍 회장은 아버지의 반대 길을 걸을 생각을 했을까.
"아버님은 `네가 네 발로 서야 한다`고 독립심을 강조하셨어요. 모든 것이 노력하면 이뤄질 수 있다면서."
아버지 홍찬은 홍 회장이 한 살 때 홍 회장의 생모와 이혼한다.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그 이후 다섯 살에 아버지가 재혼을 해서 새어머니가 오셨고 동생을 낳으니까 내가 집을 떠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앙중학교를 다니던 열세 살에 집을 나왔다. 일본으로 밀항하려고 부산으로 내려가 40일을 살았다. "선친이 결국 부산에서 저를 찾아냈지요. 하지만 집에서 떠나야 한다는 게 머리 속에 계속 있었습니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시험에 낙방하자 바로 미국 콜로라도주립대로 진학했다가 할리우드와 공동 영화 제작을 추진하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할리우드 인근에 위치한 UCLA로 옮긴다.
하지만 아버지의 영화사업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는 1964년 화병으로 숨을 거둔다. 아버지의 부침을 보며 그는 졸업 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택했지만 승진 차별에 좌절했다. 직장생활 34년 만인 1985년 저축한 자금 2만달러를 털어 듀라코트를 창립한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간호사로 일하던 아내가 `이제는 때가 됐다`고 격려를 하더군요. 큰 힘이 됐습니다."
사업은 대박을 쳤다. 6개월 만에 150만달러를 벌었다. 비결은 연구개발(R&D)이었다.
"사업을 해보니 품질은 기본이더군요. 다른 제품과 다른 특성이 있어야 합니다. 연구개발로 차별화를 둘 수 있었어요."
듀라코트는 색이 변하지 않도록 자외선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도료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품질보증기간도 40년으로 했다.
하지만 품질만 가지고는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홍 회장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두 가지를 꼽았다. 납품을 제 시간에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해결하는 것이다.
듀라코트를 성공으로 이끈 또 다른 키워드는 신뢰다. 스미토모철강은 홍 회장이 듀라코트를 세울 때부터 도료를 납품한 `창업 고객`이다. 하지만 스미토모철강의 일본인 경영진은 홍 회장을 보면 "You, Koreans"(당신 같은 한국인들은)라고 부르며 비하했다. 홍 회장은 `신뢰`로 이를 극복한다.
"한번은 호주 BHP에서 스미토모 납품량의 7배를 주문했습니다. 왜 고민을 안 해봤겠어요. 하지만 거절했지요."
듀라코트가 스미토모와의 신뢰를 지켰다는 소문이 업계에 쫙 퍼졌다. 듀라코트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스미토모에서 `You, Koreans`도 사라졌다. 홍 회장은 젊은 사업가에게 하고 싶은 말도 `신뢰`라고 말했다. 1992년은 그의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된 해다.
"그해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폭동이 일어나 한인커뮤니티가 불에 타는 모습을 봤습니다. 폭동을 보면서 이제는 우리가 미국사회에서도 주인 역할을 할 때가 됐다고 느꼈어요. 차별을 능가할 수 있도록 사람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한상대회에도 전 세계에서 130여 명에 달하는 젊은 차세대 한상들이 모였다. "기존의 1세대 리딩 CEO들과 차세대 한상들이 융합하는 곳이 세계한상대회입니다.
홍 회장은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나오는 "소인은 장사를 통해 이문을 남기지만, 대인은 거래를 통해 사람을 남긴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는 `밝은미래재단`을 세우면서 1000만달러(약 114억원)를 한인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 700만달러(약 80억원)를 기부했다.
■ He is…
△1934년 서울 출생 △1953년 중앙고 졸업 △1959년 UCLA 화학과 학사 △2002년 미국 라시에라대학 인류복지학 명예박사 △2001~2003년 제10기 민주평통 LA협의회 회장 △200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자문위원 △2010년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이사장 △201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2013년 세계한상대회 대회장 △듀라코트 회장
[김기정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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