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그려진 시인 이상화의 초상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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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그려진 시인 이상화의 초상 첫 공개
[중앙일보] 입력 2012.11.23 00:45 / 수정 2012.11.23 00:46스승인 서양화가 고희동 작품
일부 평론가 “진위 따져봐야”
춘곡(春谷) 고희동 화백이 그린 시인 이상화의 초상화. [사진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일제 치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했던 저항시인 이상화(1901~43). 중앙고보 시절, 그에게 미술을 가르친 사람은 국내 첫 서양화가로 알려진 춘곡(春谷) 고희동(1886~1965) 화백이다.
스승 고희동 화백이 그린 시인 이상화의 초상화가 22일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이날 서울 원서동 16번지 고희동 가옥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고 화백이 유화 물감으로 그린 이상화의 초상화를 24일부터 전시한다고 밝혔다.
고 화백은 동양화에 서양화 기법을 결합한 수묵채색화를 발전시킨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현재까지 세 점이 공개됐었다. 모두 1915년에 그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이다. 이상화의 초상은 네 번째 공개된 유화작품이다.
초상 뒷면에는 ‘1931 Ko Hei Tong, 우(友) Ree 증(贈)’이라고 기록돼 있다. 고 화백이 1931년 이 그림을 시인에게 주면서 남긴 사인으로 보인다. 김홍남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이사는 “고 화백은 일제 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화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전통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그가 시인 이상화의 초상화를 그린 것은 조국을 되찾기 위해 저항하는 예술가를 지지하고자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작품을 소장한 사람은 일반인 수집가로 알려졌다. 김 이사는 “김종학 화가와 친분이 있던 수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30여 년간 소장하고 있던 그림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작품의 등장을 의아해 하고 있다. 근대미술사가 최열씨는 “고희동은 1925년쯤엔 더 이상 유화를 그리지 않았고, 이상화는 1925년 8월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우파 계열의 고희동이 카프에서 활동한 좌파 문인 이상화의 초상을 정성 들여 그린 점이 의문”이라고 했다.
‘고희동 가옥’(등록문화재 제84호)은 고 화백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해인 1918년 직접 설계해 40여 년간 살았던 집이다. 고희동 가옥의 공개를 기념해 ‘이상화 초상’을 비롯한 고 화백의 그림 4점 등 서화작품 18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춘곡과 친구들’이 내년 1월 20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사랑채의 네 개 공간에 마련되며, 고 화백의 자료를 전시한 아카이브실과 동료 예술인과의 교류를 알 수 있는 서화 전시실 등으로 꾸며진다.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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