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의사 ‘마지막 밤’ 보낸 日구금장소 찾았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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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 ‘마지막 밤’ 보낸 日구금장소 찾았다
기사입력 2012-12-28 03:00:00 기사수정 2012-12-28 03:00:00
처형장 밝혀냈던 김광만 PD… 日보고서 배치도 분석 확인
지금은 공중화장실로 변해
매헌 윤봉길 의사(1908∼1932)가 처형되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낸 일본군 제9사단 위수구금소(衛戍拘禁所) 터가 일본 이시카와(石川) 현 가나자와(金澤) 성 뒤편의 현 공중화장실 자리인 것으로 확인됐다.
근대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김광만 더 채널 대표 PD(57)는 이시카와 현립 역사박물관에서 ‘이시카와 현립 역사박물관 보존 공사 보고서’(1998년)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보고서의 일부인 ‘병기창 병기고 발굴 보고서’에서 윤 의사가 구금됐던 위수구금소 위치가 나와 있는 1941년 당시 가나자와 성내 군사시설 배치도를 확인했다.
김 PD가 27일 본보에 공개한 배치도에 따르면 구금소는 벽이 세 겹이나 되고 한반도와 만주 침략의 선봉 부대인 제9사단 사령부 청사와 윤 의사의 처형을 담당했던 보병 제7연대 막사로 둘러싸여 있었다.
김 PD는 “이달 17일 보고서의 배치도를 토대로 ‘가나자와 윤봉길 암장지 보존회’ 회원들과 현장 답사해 가나자와 성 뒤편 공중화장실 위치가 위수구금소 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곳에 공중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은 1999년이다.
김 PD는 2002년 윤 의사가 총살당하기 직전 직후의 모습, 총살 장면 등 생애 마지막을 담은 사진 3장을 발굴했고 지난해에는 윤 의사의 정확한 처형장을 찾아낸 바 있다.
▶본보 2011년 4월 29일자 A12면… ‘윤봉길 의거’ 79주년… 순국현장을 가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 의거를 일으킨 윤 의사는 5월 25일 상하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11월 일본 오사카로 호송됐고 12월 18일 제9사단 사령부 위수구금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19일 오전 7시 40분 이시카와 현 미쓰코지(三小牛) 육군 공병작업장 내 골짜기에서 총살형으로 2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 PD는 “윤 의사가 마지막 시간을 보낸 위수구금소와 순국지, 암장지를 윤 의사의 독립운동 성역지로 만들어 재일교포 사회,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평화교육장으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지금은 공중화장실로 변해
일본군 제9사단 위수구금소 터로 확인된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성 뒤편의 현재 공중화장실 자리. 윤봉길 의사가 생의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이다. 김광만 PD 제공
근대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김광만 더 채널 대표 PD(57)는 이시카와 현립 역사박물관에서 ‘이시카와 현립 역사박물관 보존 공사 보고서’(1998년)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보고서의 일부인 ‘병기창 병기고 발굴 보고서’에서 윤 의사가 구금됐던 위수구금소 위치가 나와 있는 1941년 당시 가나자와 성내 군사시설 배치도를 확인했다.
김 PD가 27일 본보에 공개한 배치도에 따르면 구금소는 벽이 세 겹이나 되고 한반도와 만주 침략의 선봉 부대인 제9사단 사령부 청사와 윤 의사의 처형을 담당했던 보병 제7연대 막사로 둘러싸여 있었다.
김 PD는 “이달 17일 보고서의 배치도를 토대로 ‘가나자와 윤봉길 암장지 보존회’ 회원들과 현장 답사해 가나자와 성 뒤편 공중화장실 위치가 위수구금소 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곳에 공중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은 1999년이다.
김 PD는 2002년 윤 의사가 총살당하기 직전 직후의 모습, 총살 장면 등 생애 마지막을 담은 사진 3장을 발굴했고 지난해에는 윤 의사의 정확한 처형장을 찾아낸 바 있다.
▶본보 2011년 4월 29일자 A12면… ‘윤봉길 의거’ 79주년… 순국현장을 가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 의거를 일으킨 윤 의사는 5월 25일 상하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11월 일본 오사카로 호송됐고 12월 18일 제9사단 사령부 위수구금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19일 오전 7시 40분 이시카와 현 미쓰코지(三小牛) 육군 공병작업장 내 골짜기에서 총살형으로 2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 PD는 “윤 의사가 마지막 시간을 보낸 위수구금소와 순국지, 암장지를 윤 의사의 독립운동 성역지로 만들어 재일교포 사회,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평화교육장으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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