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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청명과 한식이 이다지도 멀단 말인가 [2012.09.03 제926호] |
[S라인] 박종우 사태 관련 일본에 ‘굴욕적’ 문서 보낸 책임 누가 져야 하나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보다 조중연 회장에 더 큰 책임 있다 |
나는 어릴 때부터 축구를 참 좋아했다.
동네 가게 유리창을 매일같이 깨트리며 공을 찼는데, 전두환 통치하의
1980년대는 축구를 구경하는 것도 편안하지 않았다.
프로리그가 출범했지만 나는 내 나름의 판단이 가리킨 이정표를 따라
서울 동대문운동장과 정반대에 있는 1호선 저 끄트머리의 항구도시
쪽으로 가야 했다.
그러던 어느 해, 모든 것이 시들해질 무렵 동대문운동장에 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운동장은, 고향 같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라면박스를
뒤집어쓰고 관전했고, 박종환 감독의 천안 일화(현 성남 일화)가 패했을 때는
아저씨 팬들과 함께 ‘박종환’을 연호하며 운동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때는 그런 풍경이 다반사였다.
사무총장 사퇴가 시원해 보이겠지만
또 누가 있었던가.
김주성이 있었다.
중앙고 출신의 김주성은 3학년 때 고교상비군에 선발돼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대학 입학 자격을 얻어 조선대로 진학했다.
또래 선수로 김종부, 신연호, 김판근 등이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의 스타들이었다.
조선대 시절, 무명의 김주성은 영하의 날씨에도 손에 동상을 입을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다.
그 결과 역대 최초의 1억원 계약금으로 대우에 들어갔고
최연소로 대표팀에도
선발돼 월드컵을 세 차례나 뛰었다.
전성기 때는 ‘아시아 최고 선수상’을 3년 연속 받았다.
잠시 독일 보훔으로 떠났다가 1994년 부산대우(현 부산아이파크)로
복귀한 김주성은 이듬해부터 스위퍼를 맡아 1997년에는 K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그해 MVP까지 수상했다.
바로 그 경기들을 나는, 기이하게도 한가로워진 1990년대의 경기장에서
보았던 것이다.
우상이 내 앞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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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은 은퇴 이후 지도자의 길 대신 국제스포츠 행정가의 길로 혼자
걸어갔다.
경성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으며,
국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국제축구행정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그 뒤 김주성은 축구협회의 국제부장을 지내며 우리 축구문화의 후진성을
조금이나마 극복해내는 데 일조했다.
2006년 국제부장 취임 100일에 맞춰 가진 인터뷰에서 김주성은
“인생에서 축구는 한 부분이지 전부는 아니다.
지식을 등한시하지 말고 학교 생활도 충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벌써 몇몇 독자들의 쓴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야생마 김주성’ ‘삼손 김주성’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소.
하나 작금의 사태에서 김주성은 왕년의 스타가 아니라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아니오.
굴욕적인 문서를 일본축구협회에 보낸 실무 책임자라,
어떤 궤변으로도 비판의 덫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딴은 그렇다.
나는 지금 김주성 총장이 아무 책임도 없다는, 위에서 다 시킨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책임이 있다.
최근 불거진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에 대한 매끄럽지 못한 사후 처리
과정에도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 총장 스스로, 원칙과 대의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최고 수뇌부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이행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
사무총장직을 사퇴한다?
시원해 보인다.
아마 그런 수순을 밟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란 말인가.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2000년 아시안컵 대회 때 허정무 감독을
경질하며 자신도 책임이 없지 않다며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일반’이라는 명언을 남겼으나, 12년이 넘도록 전무에서 부회장을 거쳐
회장까지 승진하며 군림하고 있다.
그사이 수많은 감독들이 경질됐고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공금 횡령 및 이를 덮으려는 억대의 비리 사건도 있었다.
그 지저분한 사건을 수습하려고 김주성 총장이 지난 1월 취임했다.
그런데 이제 박종우 사태와 관련해 또 사무총장만 갈아치우면 그만인가.
조중현 회장이 책임지는 일 없이 김 총장의 사퇴나 징계로 일단락된다면
이는 한국 축구 행정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실무 책임자의 목을 자를지언정 최고 책임자의 상투는 건드리지 못하는
이런 꼼수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면 정몽준 명예회장의 ‘상왕 체제’도
끝내 비극으로 종막을 고하게 될 것이다.
한국 축구의 유일무이한 자산
축구계를 돌아보라.
지금 대한축구협회 안팎의 30∼50대 중에서 이제 막 석사를 마친 신예나
노익장 운운하는 원로 말고, 책임지고 일할 만한 나이에 있는 축구인들
중에서, 그것도 스타 플레이어 출신 중에서, 국제적 네트워크와 일정한
행정 능력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안타깝게도 김주성이 유일무이하다.
그와 비슷한 길을 걸으려 했던 홍명보 감독은 행정가의 길에서 잠시
벗어나 2005년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김주성 총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일정하게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완전히 축구계에서 떠나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훗날 반드시 귀하게 쓰일 인재다.
프란츠 베켄바워나 미셸 플라티니처럼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김주성 개인을 위한 충언이 아니다.
축구계 안팎에서 선수 경력과 행정 능력과 국제 경험을 가진 인재로는
유일무이하다.
제발, 당장 떠나야 할 사람들이 떠나야 한다.
자기 보신을 위해 후배들 목을 자르거나 그 앞길을 막는 일을 당장
그만두고, 제발 당장 그만둬라.
무슨 청명과 한식이 이다지도 멀단 말인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인재’ 귀한 줄 모르는 스포츠계
올림픽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더 깊어지고 있다.
9월2일 밤, KBS 1TV의 스포츠 프로그램 <운동화>는 여자 펜싱 신아람 선수
의 오심 문제를 다뤘다.
석연치 않은 판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선수와 코치와 대한체육회가 어떻게
대처를 했느냐 하는 점이었다.
여러 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은 “규정에 따라
선수가 심판에게 직접 항의해야 하는데 언어 문제가 있어 제대로 못했고
지도자가 항의하다가 시간을 허송했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8월19일,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해서는 코치가 “이성을 잃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잊어버렸다”고도 했다.
<운동화>에 출연한 여자 펜싱의 심재성 코치는 석연치 않은 판정이
있을 때 코치도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영어, 불어, 독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아는 심 코치는 현장에서 정확하게
1초의 오심을 거론했다.
국제펜싱연맹 심판진이 심 코치를 경기장 밖으로 쫓아내지 않고 30분
가까이 비디오 판독을 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박 회장은 체육회가 각 종목 선수단에 오심이나 불리한 판정 발생 시
대처하는 요령이나 항의하는 방법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까지
시켰다고 했지만 <일요진단>에 함께 출연했던 양궁의 기보배 선수는
“그런 교육을 받은 일이 없다”고도 했다.
선수들은 훈련에만 매진하고 코치들이나 연맹 관계자들이 그런 교육을
받았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박 회장이 체육회가 모든 것을 제공했는데
선수는 ‘언어에 문제’가 있었고 코치는 ‘이성을 잃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잊어버렸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다.
런던에서 박 회장은 “누구와 토론해도 좋다. 공부를 제대로 하고 나와야
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는데, 그가 언급한 항의하는 절차와 방법에 관한
책자의 펜싱 부문을 쓴 사람이 바로 심재성 코치다.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 건이 불거졌을 때도 체육회는 그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을 시켰으나 축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 바깥에서
훈련했기 때문에 전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체육회가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할 일을 다했으니
선수나 코치 개인의 문제라는 식으로 술잔을 계속 돌리기만 한다면
끝내는 술상을 엎어버리게 되는 진실게임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후유증을 지켜보면서 내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대한체육회나
축구협회가 사람 귀한 줄 정말 모른다는 점이다.
뛰어난 선수와 노련한 지도자와 유능한 스포츠 외교 전문가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 귀한 줄 아는 조직은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당사자의 의견을 신중하게
청취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존중한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다.
펜싱의 심재성 코치와 축구의 김주성 사무총장은 해당 종목에서 선수,
지도자, 국제무대 등 3박자를 고루 갖춘 인재들인데 박 회장은 심 코치를
‘이성을 잃고 자기 할 일을 잊어버린’ 사람으로 간주했고,
축구협회는 사무총장을 평지풍파의 방패막이로 쓰고 있다.
심재성 코치는 선수생활을 마친 후 펜싱 종주국 프랑스로 건너가 국내
최초로 프랑스 국립 펜싱 지도자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체육청소년부의
국가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한 인물이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대한펜싱협회의 국제업무와 해외전지훈련을
담당해왔으며 수많은 대회의 경기 임원이나 심판을 맡아왔고 지금도
국제펜싱연맹 규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사람을 두고 규정도 모르고 이성을 잃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는
체육회장으로서의 엄중한 질책이 아니라 거의 명예훼손에 가까운 비난이
된다.
축구협회의 김주성 사무총장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로서는 역대 최연소로 대표팀에 선발되어 월드컵을 세 차례나 뛰었으며
‘아시아 최고 선수상’을 3년 연속으로 수상한 인물이다.
1997년 K-리그 우승과 MVP까지 성취한 후 은퇴한 김주성은 경성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쳤고 국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국제축구행정 프로그램까지 이수했다.
그 이후 축구협회의 국제부장을 지내면서 국내외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확보해왔다.
이런 인재가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물론 김 총장의 과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무총장이란 자리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는 가벼운 자리도 아니다.
일정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선수 경력에 국제스포츠 업무 경력과 다양한 네트워크를
갖춘 인물이 귀한 상황에서 김주성 같은 인재가 최고위층이 책임져야 할
일을 다 떠안고 사라진다면 그것은 너무나 큰 상실이다.
큰 대회가 끝나면 꼭 나오는 얘기가 ‘스포츠 외교 전문가 양성’이다.
런던올림픽 이후에도, 다름 아닌 박 회장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선수나 지도자 경력을 가진 사람을 국제스포츠 무대로 진출시켜서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인재의 유무가 아니다. 우리처럼 엘리트스포츠에
올인한 나라에서 인재가 왜 없겠는가.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 스포츠 행정 및 외교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해외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심 코치를 대하는 박 회장의 태도나 김주성 총장을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축구협회 수뇌부의 태도로 보건대, 진실로 문제는 인재를
장기판의 졸로 여기는 스포츠 권력의 무책임함이다.
인재는 많다.
그러나 스포츠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찬란하게 빛내줄
메달리스트나 상명하복의 부품만 원할 뿐이다.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