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교수 "땀흘린 사람들 실패했을 때 재기 도와주는 게 진짜 복지" <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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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경제혁신의 핵심은 기업가정신과 패자부활전입니다. 경제민주화 등은 본질을 비껴간 얘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지는 거의 ‘퍼주는 복지’인데, 이건 남유럽식 파멸로 가기 십상입니다.”
‘국내 벤처의 선구자’ 이민화 KAIST 교수(59)는 대선 시즌을 맞아 범람하는 정치적 수사(修辭)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이 교수는 초음파 의료기기 업체 삼성메디슨의 전신이자 한국 벤처기업의 효시인 ‘메디슨’의 창업자다. 이 교수는 최근 10번째 저서 《끝나지 않은 도전:도전과 개척의 삶 60년》이라는 자서전을 내놨다.
책 제목처럼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선구자의 삶을 살아왔다. 비록 메디슨은 2002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그의 손을 떠났지만, 그가 뿌린 씨앗(사내벤처)들은 알알이 움터 현재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교수는 현안에 대해 담담하고 거침없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복지’가 시대의 화두란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복지의 본질은 퍼주는 게 아니라 도전하다 실패한 사람들에게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재활복지, 즉 패자부활전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정부는 칸막이식 규제에서 벗어나 사업 플랫폼을 제공하는 ‘개방형 정부’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디슨이 부도나면서 국내 의료산업에 큰 누를 끼쳤다”고 지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저서에서 메디슨 부도에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고 했는데요.
“전략적으로 인수했던 오스트리아 현지 초음파기기 자회사 크레츠가 2000년 유럽증시에 상장되면서 5000억원 이상의 평가이익이 발생했습니다.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죠. 그런데 같은 해 말 미국발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연초 1조5000억원에 달하던 주식가치가 거짓말처럼 1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회사를 살리기 위해 크레츠를 GE에 1억유로에 매각하고 돈이 입금되던 2001년 10월 회사를 떠났습니다. 사임 직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혁신국가의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만들어 보자고 태스크포스(TF) 합류를 제시해 응했습니다. 그런데 TF 활동을 한 지 두 달여가 지나자 메디슨이 부도났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어요. 크레츠 매각대금으로 증자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메디슨은 외부 자금 수혈없이 법정관리를 벗어났습니다. 황당하지 않습니까. 당시 지인들은 ‘메디슨=이민화’인 상황에서 야당 정책 수립에 참여했던 건 큰 실수였다고 한탄했습니다.”
▷부도의 원인에 무리한 확장 등은 없었다고 봅니까.
“버블 붕괴가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겁니다. 갑작스런 충격이 올 땐 덩치가 큰 게 먼저 쓰러지니까요. 빙하기가 왔을 때도 공룡이 먼저 죽고 작은 생물들은 살아남지 않습니까. 안타까운 건 ‘메디슨 연방’이 붕괴되면서 국내 의료산업의 선순환 생태계가 형성될 기회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저의 메디슨 경영은 수많은 ‘사장’을 길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내벤처를 만들고 키워 밖으로 내보내고, 메디슨을 축으로 큰 생태계를 만들던 차에 부도가 난 겁니다. 메디너스 씨유메디칼 JVM 인포피아 뷰웍스 등 현재 순항 중인 많은 의료 기업의 전신이 메디슨의 사내벤처입니다. 메디슨 부도 이후 의료기기산업은 수입 의존 및 양극화로 인해 정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메디슨이 부도나지 않았다면 국내 의료산업은 현재보다 최소 두 배는 컸을 겁니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이 혼탁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총체적 역량을 갖춘 기업은 없고 각개약진하는 기업들만 있어 그럴 겁니다. 예를 들어 국내 대표 전자의무기록(EMR) 기업인 유비케어, 의료영상시스템 기업 인피니트헬스케어, 물류관리 기업 이지메디컴 등 세 회사도 메디슨 사내벤처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들이 메디슨 법정관리 과정에서 따로 매각됐죠. 이들의 역량이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가 나면 세계 최고 회사가 될 수 있을 텐데, 따로따로는 약합니다. 누군가 앞장서서 시장을 열고 여러 기업들을 한 비즈니스로 묶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디지털병원 지원사업을 시작한 겁니까.
“메디슨 노하우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는 핵심역량을 갖추는 단계입니다. 디지털병원 사업의 핵심은 원격장비, 원격진단, 원격교육입니다. 그런데 각국 정부 대상 사업이다 보니 진척이 빠른 편은 아닙니다. 현재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미 등 개발도상국 30여개국을 상대로 40여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계약이 체결된 것은 없지만 우리 기업들이 좋은 역량을 갖고 있는 만큼 반드시 성사될 겁니다. 강력한 경쟁자도 현재 시장에 없습니다. 비즈니스 모델 구축 자체가 어려운데, 어려운 만큼 기회가 있는 겁니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는 사업은 좋은 사업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시장이 있느냐, 차별화된 역량이 있느냐 두 가지입니다.”
▷호민관 시절 개혁을 주도하다 중도 사임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충분히 예상했었지만 관료들의 견제가 심했습니다. 규제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을 만든 것이 성과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규제가 반복적으로 올라와도 예전에는 걸러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기업인 등 민원인에 대한 보복금지 규정을 총리실 지침으로 만든 것과, 대-중소기업 간 거래관행 실태조사(호민인덱스)를 만든 것도 수확입니다. 하지만 큰 규제를 깨려면 여러 부처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현재 호민관 제도는 한계가 있습니다.”
▷경제민주화, 동반성장 등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결국 경제시스템을 혁신하자는 말인데 다 똑같은 얘기고, 사실 본말이 바뀌었습니다. 혁신경제는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확실히 해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믿고 맡기고, ‘성실실패’를 용인해줘야 가능합니다. 제가 메디슨 때 했던 일입니다. 이게 바로 도전, 기업가정신의 본질입니다. 열심히 했는지 안 했는지는 뻔히 보이니까 성실실패를 가려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단, 반복되는 비슷한 실패는 용서할 수 없죠. 패자부활전이 안 되고, 한 번 실패하면 끝나는 상황에서 혁신경제는 없습니다. 복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총론을 잘 세워야 합니다. 유럽은 복지 비용의 70% 이상이 재취업을 위한 복지, 즉 재활복지입니다. 우리는 전부 퍼주는 복지만을 생각하고 재활복지가 없습니다. 기업가정신, 신뢰, 투명성 등 사회적 자본과 함께 가지 않으면 복지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복지를 늘리자는 게 아니라,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란 질문이 선행돼야 합니다. 한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 등 부처 신설 공약이 각 대선 주자들로부터 나오는데요.
“분명한 것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 독임부처는 다시 생겨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독임부처를 신설하면 해당 분야는 몰라도 타 분야와의 융합이 힘들어집니다. 성장의 본질은 개방과 투명성입니다. 이제 정부는 부처주의, 규제주의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차피 양질의 서비스는 기업들이 만들어내니, 정부는 그 서비스를 꽃피울 플랫폼 구성에 주력하면 됩니다. 그런데 정부는 항상 권력과 밀착돼 있으니 그게 힘듭니다. 권력은 개방을 거부하고, 개방이 안된 분야는 경쟁력이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법률, 교육, 정부 정책 등 분야가 그렇습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박하게 평가를 받는 부분도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입니다. 정부2.0이라는 개방정부의 화두는 이미 호주 등 일부 선진국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그동안 맡았던 수많은 직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꼽자면.
“다 마음에 들지만, 벤처기업협회장을 할 때가 보람이 컸습니다. 메디슨 사장을 하면서 만들었던 건데, 한 기업의 사장이 만드는 가치보다 훨씬 폭넓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공직을 맡거나 정계에 진출할 의사는 없습니까.
“저는 공직에 적합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는 예전에 하고 싶으면 이미 했을 겁니다. 제가 앞으로 할 일은 새로운 분야에 터를 일구고 씨를 뿌리는, 다시 말해 비전과 초기 틀을 만드는 일인 것 같습니다. 키워나가는 것(오퍼레이션)은 다른 적임자들이 많습니다. 또 각 산업 분야의 ‘틈새’를 메꿔나가는 일에도 주력할 생각입니다. 일반적 시각이나 정책, 언론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의외로 참 많습니다.”
이민화 교수는 메디슨 창업한 벤처 1세대…초대 기업호민관으로 활동
이민화 KAIST 교수는 197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1978년부터 4년간 대한전선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1985년 메디슨을 창업했다. 1995년 한국벤처기업협회를 설립해 5년간 초대 회장을 지냈다. 코스닥시장 출범에 깊이 간여했으며, 1997년 벤처기업 육성을 명시한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에도 기여했다. 2000년에는 한국기술거래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2009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초대 기업호민관으로 재직했다. 2009년 6월부터는 KAIST 이노베이션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단법인 유라시아네트워크 이사장, 청년창업포럼 명예회장 등도 맡고 있다. 2006년에는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장 등과 함께 ‘한국을 일으킨 60인의 엔지니어(서울대, 공학한림원 선정)’에 선정됐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9)
이민화 교수 "땀흘린 사람들 실패했을 때 재기 도와주는 게 진짜 복지"
입력: 2012-10-21 17:19 / 수정: 2012-10-22 03:36
자서전 '끝나지 않은 도전' 펴낸 이민화 KAIST 교수
복지담론에 대해
'퍼주기' 식은 남유럽 같은 파멸 불러…사회적 자본 확충이 더 시급
바람직한 정부 모델
기업 도와주는 플랫폼 제공해야…성실실패 용인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복지담론에 대해
'퍼주기' 식은 남유럽 같은 파멸 불러…사회적 자본 확충이 더 시급
바람직한 정부 모델
기업 도와주는 플랫폼 제공해야…성실실패 용인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이민화 KAIST 교수가 서울 도곡동 KAIST 미디어캠퍼스에서 경제 혁신과 복지의 전제조건, 기업가정신과 패자부활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경제혁신의 핵심은 기업가정신과 패자부활전입니다. 경제민주화 등은 본질을 비껴간 얘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지는 거의 ‘퍼주는 복지’인데, 이건 남유럽식 파멸로 가기 십상입니다.”
‘국내 벤처의 선구자’ 이민화 KAIST 교수(59)는 대선 시즌을 맞아 범람하는 정치적 수사(修辭)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이 교수는 초음파 의료기기 업체 삼성메디슨의 전신이자 한국 벤처기업의 효시인 ‘메디슨’의 창업자다. 이 교수는 최근 10번째 저서 《끝나지 않은 도전:도전과 개척의 삶 60년》이라는 자서전을 내놨다.
책 제목처럼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선구자의 삶을 살아왔다. 비록 메디슨은 2002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그의 손을 떠났지만, 그가 뿌린 씨앗(사내벤처)들은 알알이 움터 현재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교수는 현안에 대해 담담하고 거침없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복지’가 시대의 화두란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복지의 본질은 퍼주는 게 아니라 도전하다 실패한 사람들에게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재활복지, 즉 패자부활전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정부는 칸막이식 규제에서 벗어나 사업 플랫폼을 제공하는 ‘개방형 정부’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디슨이 부도나면서 국내 의료산업에 큰 누를 끼쳤다”고 지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저서에서 메디슨 부도에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고 했는데요.
“전략적으로 인수했던 오스트리아 현지 초음파기기 자회사 크레츠가 2000년 유럽증시에 상장되면서 5000억원 이상의 평가이익이 발생했습니다.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죠. 그런데 같은 해 말 미국발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연초 1조5000억원에 달하던 주식가치가 거짓말처럼 1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회사를 살리기 위해 크레츠를 GE에 1억유로에 매각하고 돈이 입금되던 2001년 10월 회사를 떠났습니다. 사임 직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혁신국가의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만들어 보자고 태스크포스(TF) 합류를 제시해 응했습니다. 그런데 TF 활동을 한 지 두 달여가 지나자 메디슨이 부도났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어요. 크레츠 매각대금으로 증자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메디슨은 외부 자금 수혈없이 법정관리를 벗어났습니다. 황당하지 않습니까. 당시 지인들은 ‘메디슨=이민화’인 상황에서 야당 정책 수립에 참여했던 건 큰 실수였다고 한탄했습니다.”
▷부도의 원인에 무리한 확장 등은 없었다고 봅니까.
“버블 붕괴가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겁니다. 갑작스런 충격이 올 땐 덩치가 큰 게 먼저 쓰러지니까요. 빙하기가 왔을 때도 공룡이 먼저 죽고 작은 생물들은 살아남지 않습니까. 안타까운 건 ‘메디슨 연방’이 붕괴되면서 국내 의료산업의 선순환 생태계가 형성될 기회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저의 메디슨 경영은 수많은 ‘사장’을 길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내벤처를 만들고 키워 밖으로 내보내고, 메디슨을 축으로 큰 생태계를 만들던 차에 부도가 난 겁니다. 메디너스 씨유메디칼 JVM 인포피아 뷰웍스 등 현재 순항 중인 많은 의료 기업의 전신이 메디슨의 사내벤처입니다. 메디슨 부도 이후 의료기기산업은 수입 의존 및 양극화로 인해 정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메디슨이 부도나지 않았다면 국내 의료산업은 현재보다 최소 두 배는 컸을 겁니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이 혼탁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총체적 역량을 갖춘 기업은 없고 각개약진하는 기업들만 있어 그럴 겁니다. 예를 들어 국내 대표 전자의무기록(EMR) 기업인 유비케어, 의료영상시스템 기업 인피니트헬스케어, 물류관리 기업 이지메디컴 등 세 회사도 메디슨 사내벤처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들이 메디슨 법정관리 과정에서 따로 매각됐죠. 이들의 역량이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가 나면 세계 최고 회사가 될 수 있을 텐데, 따로따로는 약합니다. 누군가 앞장서서 시장을 열고 여러 기업들을 한 비즈니스로 묶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디지털병원 지원사업을 시작한 겁니까.
“메디슨 노하우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는 핵심역량을 갖추는 단계입니다. 디지털병원 사업의 핵심은 원격장비, 원격진단, 원격교육입니다. 그런데 각국 정부 대상 사업이다 보니 진척이 빠른 편은 아닙니다. 현재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미 등 개발도상국 30여개국을 상대로 40여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계약이 체결된 것은 없지만 우리 기업들이 좋은 역량을 갖고 있는 만큼 반드시 성사될 겁니다. 강력한 경쟁자도 현재 시장에 없습니다. 비즈니스 모델 구축 자체가 어려운데, 어려운 만큼 기회가 있는 겁니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는 사업은 좋은 사업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시장이 있느냐, 차별화된 역량이 있느냐 두 가지입니다.”
▷호민관 시절 개혁을 주도하다 중도 사임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충분히 예상했었지만 관료들의 견제가 심했습니다. 규제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을 만든 것이 성과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규제가 반복적으로 올라와도 예전에는 걸러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기업인 등 민원인에 대한 보복금지 규정을 총리실 지침으로 만든 것과, 대-중소기업 간 거래관행 실태조사(호민인덱스)를 만든 것도 수확입니다. 하지만 큰 규제를 깨려면 여러 부처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현재 호민관 제도는 한계가 있습니다.”
▷경제민주화, 동반성장 등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결국 경제시스템을 혁신하자는 말인데 다 똑같은 얘기고, 사실 본말이 바뀌었습니다. 혁신경제는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확실히 해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믿고 맡기고, ‘성실실패’를 용인해줘야 가능합니다. 제가 메디슨 때 했던 일입니다. 이게 바로 도전, 기업가정신의 본질입니다. 열심히 했는지 안 했는지는 뻔히 보이니까 성실실패를 가려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단, 반복되는 비슷한 실패는 용서할 수 없죠. 패자부활전이 안 되고, 한 번 실패하면 끝나는 상황에서 혁신경제는 없습니다. 복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총론을 잘 세워야 합니다. 유럽은 복지 비용의 70% 이상이 재취업을 위한 복지, 즉 재활복지입니다. 우리는 전부 퍼주는 복지만을 생각하고 재활복지가 없습니다. 기업가정신, 신뢰, 투명성 등 사회적 자본과 함께 가지 않으면 복지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복지를 늘리자는 게 아니라,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란 질문이 선행돼야 합니다. 한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 등 부처 신설 공약이 각 대선 주자들로부터 나오는데요.
“분명한 것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 독임부처는 다시 생겨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독임부처를 신설하면 해당 분야는 몰라도 타 분야와의 융합이 힘들어집니다. 성장의 본질은 개방과 투명성입니다. 이제 정부는 부처주의, 규제주의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차피 양질의 서비스는 기업들이 만들어내니, 정부는 그 서비스를 꽃피울 플랫폼 구성에 주력하면 됩니다. 그런데 정부는 항상 권력과 밀착돼 있으니 그게 힘듭니다. 권력은 개방을 거부하고, 개방이 안된 분야는 경쟁력이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법률, 교육, 정부 정책 등 분야가 그렇습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박하게 평가를 받는 부분도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입니다. 정부2.0이라는 개방정부의 화두는 이미 호주 등 일부 선진국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그동안 맡았던 수많은 직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꼽자면.
“다 마음에 들지만, 벤처기업협회장을 할 때가 보람이 컸습니다. 메디슨 사장을 하면서 만들었던 건데, 한 기업의 사장이 만드는 가치보다 훨씬 폭넓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공직을 맡거나 정계에 진출할 의사는 없습니까.
“저는 공직에 적합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는 예전에 하고 싶으면 이미 했을 겁니다. 제가 앞으로 할 일은 새로운 분야에 터를 일구고 씨를 뿌리는, 다시 말해 비전과 초기 틀을 만드는 일인 것 같습니다. 키워나가는 것(오퍼레이션)은 다른 적임자들이 많습니다. 또 각 산업 분야의 ‘틈새’를 메꿔나가는 일에도 주력할 생각입니다. 일반적 시각이나 정책, 언론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의외로 참 많습니다.”
이민화 교수는 메디슨 창업한 벤처 1세대…초대 기업호민관으로 활동
이민화 KAIST 교수는 197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1978년부터 4년간 대한전선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1985년 메디슨을 창업했다. 1995년 한국벤처기업협회를 설립해 5년간 초대 회장을 지냈다. 코스닥시장 출범에 깊이 간여했으며, 1997년 벤처기업 육성을 명시한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에도 기여했다. 2000년에는 한국기술거래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2009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초대 기업호민관으로 재직했다. 2009년 6월부터는 KAIST 이노베이션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단법인 유라시아네트워크 이사장, 청년창업포럼 명예회장 등도 맡고 있다. 2006년에는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장 등과 함께 ‘한국을 일으킨 60인의 엔지니어(서울대, 공학한림원 선정)’에 선정됐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