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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신바람 야구의 전설’ 이광환 서울대 감독
입력 2012.07.01
90년대 ‘투수 분업화’ 이끌고
이젠 지도자에 야구학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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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대학교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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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내야 펑고를 쳐주며 수비 자세를 교정해주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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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땀을 흘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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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에 열중이던 이 감독과 이 학교 야구장에서 가끔 면을 익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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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자연스레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이 감독과의 대화는 2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그의 야구 얘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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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을 정도였다.
◆“야구는 기다림의 스포츠다”
이 감독은 프로야구 LG의 마지막 우승 감독이다.
LG는 1994년 이 감독의 ‘신바람 야구’를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이 감독이 LG 감독에서 물러난 뒤에도 일반인에게 LG 감독의 이미지는 남아 있다.
때마침 LG가 연패에 빠져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었기에 다소 민감하지만 LG의 부진 이유와 해결책 등에 대해 물었다.
그는 “LG의 야구를 보면 쫓긴다는 인상을 받아. 성적에 대한 압박이 심한 거지. 그렇다 보니 선수들도 페이스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서 조급해지는 것”이라며 “야구는 기다림의 스포츠야. 당장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손해 본 트레이드 같은 사례가 얼마나 많았나. LG만의 팀 컬러를 구축하면 실력있는 선수들로 구성돼 있으니 잘 할 거라고 믿어”라고 대답했다. 이 감독은 자신만의 야구 철학이 확고했던 지도자였다. 일본과 미국에 야구 유학을 다녀온 뒤 선진야구를 한국 야구에 도입하려 노력했다. 그 예로 마무리 투수가 100이닝 이상을 우습게 던지던 1990년대 당시 이 감독은 마무리 투수를 철저히 관리하며 투수 분업화를 추구했다.
“투수운영뿐이 아니야. 훈련 방법, 훈련량, 출근 시간 등까지 팀 운영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지. 예를 들어 선수들은 3시간 전, 코치들은 4시간 전에 출근할 것을 지시했지. 감독인 나는 5시간 전에 출근해서 미리 라인업과 경기 운영의 틀을 짜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올 때 알려주는 거야. 스타팅 멤버와 교체 멤버 간의 훈련 방법이나 훈련 강도, 식사량까지도 다르게 하면서 경기를 준비해야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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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환 감독은 ‘야구에 미친 사람’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대 야구장에서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야구는 기다림의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남정탁 기자 |
중요하다”
이 감독은 서울대 야구부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서울대와 한국야구위원회(KBO), 대한야구협회가 공동으로 만든 베이스볼 아카데미 원장도 맡고 있다.
베이스볼 아카데미는 과거의 경험에 따른 운동 기능 중심의 지도에서 벗어나 야구를 과학·학문적 관점에서 접근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야구 정보학, 야구경영전략 등 한마디로 ‘야구학’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러나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수강하러 온 지도자들의 처음 반응은 시큰둥했단다.
“당장 이기는 게 중요한 현장 상황에서 야구 역학과 생리학 같은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강 후에는 모두들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베이스볼 아카데미 사무실을 오가다 서울대 야구부가 연습하는 것을 본 게 이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배경이다.
순수 아마추어들로 이뤄져 창단 후 겨우 1승을 거둘 만큼 야구실력은 미숙하지만,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남다른 그들을 보며 이 감독은 ‘누가 조금만 가르쳐 주면 야구를 더 재미있게 즐길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감독을 자청했다.
“저기 중견수 보고 있는 녀석 보이지. 저 친구가 지난 학기 모든 수업 A+를 받았어. 공부하다가 잘 안 풀리면 야구하고, 야구가 제 뜻대로 안 될 때는 공부를 한다더라고. 지금까지는 운동만 하던 프로 선수들을 가르치다 공부만 하던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또 다른 재미와 보람을 느껴.” 이 감독이 가리킨 주인공은 바로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재학 중인 소병민(20)씨였다. 야구 초보였던 소씨는 어느덧 팀의 1번 타자와 주전 중견수를 꿰찰 만큼 실력이 늘었고 야구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말이 듣기 싫어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이 감독은 “서울대 학생들로 말하면 전국에서 모인 수재들이잖아. 그런 만큼 그동안 자기밖에 모르는 친구들도 많다고. 야구를 통해서 협동과 희생정신을 가르치는 거지”라면서 “이 사회의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은 친구들인데 야구를 통해 리더십 이전에 멤버십을 가르치는 거지. 멤버십 없어 어떻게 리더십을 가질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야구에 대해서 시설 인프라의 확충만을 이야기하는데 시설 인프라만큼 중요한 것이 인적 인프라라고 생각해. 야구를 알고 좋아하는 관료나 행정가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야구에 대한 투자도 더 활발해질 거 아냐. 야구는 축구에 비해 인적 인프라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거든. 야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키우는 게 30년 후를 도모하는 일인 만큼 나는 즐겁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
◆“10구단 창단은 꼭 필요한 일”
현재 야구계의 가장 큰 화두는 10구단 창단이다. 이 감독도 적극적인 찬성파였다.
그는 “질적 저하가 우려될 수는 있다. 하지만 10구단 창단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다.
예전 6구단 체제에서 7구단, 8구단 체제로 바뀌었을 때도 똑같은 말이 나왔지만 결국은 프로야구는 더 발전했다”면서 “질적 저하 등의 논리로 넘어가면 아무것도 못 만들지. 그런데 명심할 것은 반대하는 구단들도 동업자인 만큼 설득과 협상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는 점”이라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 감독은 야구의 전통 확립을 강조한 지도자다. 90년대 중반 사재를 털어서 제주도에 야구 박물관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의 복귀를 묻자 “프로 감독을 하면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등 건강이 정말 많이 나빠졌거든. 이제는 정말 프로 감독 생각은 없어”라며 단호히 말했다.
“지금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시작한 지 겨우 3년 됐는데, 좀 더 자리 잡도록 도와야지. 그리고 서울대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내 스스로 인재를 키우는 일이라 생각하면 너무나 즐겁고 보람돼. 몇 백개씩 내야 펑고 쳐줄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지금처럼 살고 싶어.”
남정훈 기자
●1948년 3월 8일생 ●중앙고-고려대 졸 ●1988 ∼ 1992 OB 베어스 감독 ●1992 ∼ 1996 LG 트윈스 감독 ●2000 ∼ 2002 한화 이글스 감독 ●2002 ∼ 2003 LG 트윈스 감독 ●2008 ∼ 2008 우리 히어로즈(현 넥센) 감독 ●2010, 5∼현, 서울대 야구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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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자율야구가 "제멋대로"하는게 아니라는걸 이제는 모든 구단이 알기때문에 "자율야구"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게한 이광환 감독님은 최고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한화이글스는 요즘 왜 그 모양일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