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명(62회) 전북도지사 경제특보
본문
혁신 일으킨 천재 원숭이처럼
김재명 전북도지사 경제특보 | 제267호 | 20120421 입력
|
13세기 이후 유럽에 ‘0’이라는 숫자가 처음 전해졌을 때 일반인은 물론 당시 절대지배세력이었던 교회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종교재판관들 중 일부는 ‘0’이란 거의 악마의 수라고 이해했다. 어떤 수와 곱해도 ‘0’이 되고, 아무리 더하고 빼도 그대로이니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이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악마의 수’는 ‘혁명의 수’였다.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다른 수의 오른쪽 어깨 옆에 붙이면 그 수가 10배로 증가하니 귀신이 놀랄 일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는 데 10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그 이후 ‘교회 부기’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오를레앙의 성처녀’인 잔다르크. 문맹이었던 어린 소녀가 어떻게 전쟁의 최일선에서 군인들을 지휘해 불패의 영국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까?
신기술에 대한 초감각 때문이었다. 당시 막 등장한 ‘대포’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포수는 몇 명 되지도 않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잔다르크가 죽고 수십 년이 지나서도 프랑스 전체의 포병 수는 50명을 넘지 못했다.
이렇게 신무기 ‘대포’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희귀한 시절, 어린 소녀는 신기술을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프랑스를 구해 낸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신기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런 현상을 ‘잔다르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일본 마가쿠 원숭이 중에 ‘이모(IMO)’라는 이름의 원숭이가 있었다.
일명 ‘천재 원숭이’로 알려졌다. 이 원숭이가 해낸 업적을 살펴보자.
과거에는 모래밭에 떨어진 감자를 먹을 때 손가락으로 모래를 떨어 낸 뒤 먹던 관습에서 벗어나 감자를 바닷물 속에 던져 넣어 씻어 먹었다.
모래밭에 떨어진 쌀을 주워 먹을 때 일일이 손으로 집어먹는 대신 ‘이모’는 모래와 쌀을 함께 퍼다가 물에 던져 넣어 모래는 가라앉히고 떠 있는 쌀만을 먹었다.
‘이모’의 이상한 행동을 눈여겨보던 몇 마리가 모방한 뒤 전체 집단으로 확산됐을 것이다. ‘혁신’은 이렇게 시작된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한 집단 내에서 ‘혁신’이 보편화되려면 통상 100마리 혹은 100여 명이 채택할 때까지의 기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 4·11 총선을 치르고 다들 기쁨과 회한이 교차하고 있던 그 순간,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 이준석 위원이 한마디했다.
“적합하지 않은 의원 당선인은 출당시켜야 옳다”고. 아마도 그 순간 모두가 조용했을 것이다.
애당초 공천이 안 됐어야 할 인물들이지만 늦었더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 위원의 말은 새누리당에만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정치 전반에 대한 고함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사회 혁신과 무능한 정치조직에 대한 혁신 발언이다.
통합진보당의 심상정 당선인이 언론 인터뷰에서 좌파가 그리 부정하던 ‘경기동부연합’이 통합진보당의 실세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도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진정한 발언과 용기들이 우리의 암담한 정치·사회현실에 희망을 주는 요소가 되고 정치 혁신을 가져오는 큰 발자국이 될 것이다.
처음에야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윈스턴 처칠이 어느 학교의 졸업식 연설을 하게 됐다.
그는 연단에 올라 젊은이들을 한참 내려다본 뒤 “절대 포기하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둘러본 후 좀 더 큰 목소리로 “절대 포기하지 마시오!”라고 하더니 또다시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절대 포기하지 마시오!!” 하고 외치고는 연단을 내려왔다.
끝이었다.
조용하던 장내에 기립박수가 한없이 이어졌다.
우리 국민이 기립박수를 칠 일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김재명 부산 출생.
중앙고·성균관대 정외과 졸업.
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으며 전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 『광화문 징검다리』가 있다.
치킨게임
김재명 전북도지사 경제특보 | 제262호 | 20120318 입력
|
미국 팬암기 1736편과 KLM항공 4805편도 다른 3대의 여객기와 함께 활주로가 하나뿐인 작은 로스로데오 공항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고는 지시에 따라 이륙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KLM 4805편이 활주로의 한쪽 끝에서 이륙 신호를 기다렸다.
안개 외에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활주로의 반대편에선 팬암 1736편이 역시 이륙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두 여객기의 기장들은 자신이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지시를 받았다고 각기 믿고 있었다.
옅은 안갯속으로 두 대의 비행기는 달리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리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못한 채. KLM 4805편이 시속 265㎞에 접어들며 막 이륙하려는 바로 그 순간, 두 여객기는 공중 충돌하며 불길에 휩싸였다.
세계 최악의 항공사고였다.
583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6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륙 순간 관제요원이 이어폰으로 축구경기를 듣고 있던 것도 문제였지만 기장들의 ‘설마’가 대참사를 초래한 것이다.
195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도 그렇게 죽었다.
55년 9월 30일 오후 촬영장을 벗어나 ‘포르셰 550 스파이더’를 몰고 자동차경주장으로 향하던 그는 LA 인근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중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은색 차를 발견했다.
양쪽 차는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상대가 늦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맹렬한 폭발음과 함께 두 차는 박살 나고 운전자들도 즉사했다.
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이 있었다. 바로 ‘치킨게임’이었다.
한밤중 도로 양끝에 두 대의 차를 세워놓고 마주 달리게 한 다음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게임이다.
‘겁쟁이’라고 매도되고 ‘치킨’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
공멸이다. 미·소 사이의 무분별한 군비 확장 경쟁 자체가 치킨게임으로 명명됐다. 국제정치학 용어가 된 것이다.
치킨게임이란 단어가 생긴 지 60여 년이 흘러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그것이 재현되고 있다. 자충수를 거듭하던 여당이 간판을 새로 바꿔 단 것도 그렇고, 민주통합당이 과거를 부정하면서까지 정권 재창출 전략을 펼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자충수다.
그게 아니라고 강변한다면 최소한 불순세력에 오염된 듯하다.
대통령 단임제를 선택한 나라의 필연적 운명은 다른 정권이 결정한 정책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하는 ‘양보’의 양식에 바탕을 두어야만 가능하다.
적어도 뒤집어야 할 정책에 어느 정도의 ‘커트라인’을 그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당시 자신들이 결정한 정책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국가적 정책들을 지금 와서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선다. 이런 식으로 과거를 뒤집는다면 다음, 그리고 다다음 정권들도 이를 되풀이할 것이다. 공무원들로선 ‘지옥’이다.
정치권은 정작 대다수 국민에게 도움을 줄 ‘의약품 수퍼 판매’ 같은 민생법안조차 자신들의 이해득실 때문에 소신을 저버린다. 일본으로부터 소식이 날아왔다.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세비를 14% 줄이기로 합의했단다.
여당인 민주당이 스스로 연간 세비를 300만 엔씩 삭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야당인 공명당이 호응해 이번에는 급여 20% 삭감을 제안했다.
이에 질세라 여당인 민주당은 아예 의원 수를 80명쯤 줄이는 걸 검토하고 있다.
지방의회들도 의원 세비를 삭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께 물어보자.
이 게임의 이름은 뭔가요?
김재명 부산 출생. 중앙고·성균관대 정외과 졸업.
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으며 전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 『광화문 징검다리』가 있다.
에스키모 늑대사냥과 공짜 복지
김재명 전북도지사 경제특보 | 제257호 | 20120212 입력
|
이케아 마케팅의 최대 특징은 ‘DIY(Do it Yourself)’다. 맞춤형 가구의 재료를 싸게 사 직접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DIY 마케팅이 성공하려면 심플디자인이 필수다.
조립이 쉽도록 힘 하나 들지 않는 ‘육각형 렌치’와 그림 방식의 ‘조립 공정도’도 첨부된다.
그리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이케아 카탈로그’를 매달 우송한다. 이런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한다고 한다.
사실 이케아의 DIY보다 앞서 들여왔으면 싶은 게 있다.
바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통치이념이자 대처리즘의 기본정신인 ‘Do It Yourself’ 정신이다.
중산층 가정의 식료품집 둘째 딸로 태어난 대처는 54세인 1979년 5월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단명 총리’에 그칠 것이란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리며 11년간 총리직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런 대처리즘의 최대 특징이 ‘Do It Yourself’다. 그 핵심은 대중 자본주의다.
국력을 회복시키려면 중산층이 일어나야 하고 그러려면 중산층 내면에 숨어 있는 DIY 정신을 다시 일깨워 국민들 스스로 흘린 땀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해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단 1페니도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지는 않는다.” 대처가 늘 하던 말이다.
그는 시장개방경제가 나라 경제를 구할 것이라 믿어 기업 규제를 과감히 풀었다.
그러나 불법 파업에 대해선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다.
탄광노조가 격렬한 장기 파업 끝에 백기를 든 것을 계기로 불법 파업은 급감했다.
훗날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에 영국 경제가 호황을 누린 밑바탕이 됐다.
또한 대처는 사회복지 정책의 확대에 반대했다.
과도한 복지가 국가 재정을 허약하게 하고 국민을 타락시킨다고 본 것이다.
복지는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러한 대처의 중산층 활성화 정책이 오늘날 ‘복지 천국’을 꿈꾸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리스의 국가 파산 위기 역시 복지 천국의 종말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스 경제의 붕괴 원인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부정부패’를, 이코노미스트지는 ‘과도한 복지에 따른 방만한 공공지출’을, CNN은 ‘썩을 대로 썩은 권력층과 국민 전체의 조세회피 풍조’를 각각 꼽았다.
그리스 경제의 붕괴 원인들로부터 대한민국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처 전 총리 이상의 유능한 능력을 지닌 두 명의 여성 정치인이 새롭게 우리의 여당과 야당을 이끌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4·11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에서 쏟아내는 선심성 공약들은 하나같이 ‘무한 무상복지’ 성격의 달콤한 내용뿐이다.
‘공짜 복지’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정치인과 달리 국가 재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 입장은 전혀 다르다.
추경예산안 편성이 없다면 미리 짜여진 전체 예산은 마치 제로섬 같아서 무언가 늘리면 이미 짜놓은 다른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복지를 위해 무엇을 줄이겠는가?
미래성장 동력을 줄이는 것이 통례다.
먼 앞날의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다른 복지 예산을 줄여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한마디로 피 팔아서 약 사먹는 일이다.
에스키모인들은 늑대 사냥을 할 때 아주 예리한 양날의 단도에 짐승의 피를 잔뜩 발라놓곤 얼음 속에 손잡이를 꽉 박아 칼끝이 하늘을 향하게 꽂아둔다.
그러면 늑대가 피 냄새를 맡고 다가와 혀로 피를 핥기 시작한다.
한참을 핥다보면 예리한 칼날에 자신의 혀가 베어져 이제는 자신의 피로 칼날을 적시게 된다. 늑대는 자신의 피 냄새에 빠져 아픈 줄도 모르고 피를 핥다가 결국 죽어간다.
생각 없는 복지란 그런 것이다.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