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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수(061)
제가 선배들껜 외람되지만 환갑지나 진갑앞두고
느닷없이 황당하게 /// 정말 타의에 의해서
분필가루를 먹게 되었습니다
저를 사랑해주시던 어른들께 궁금증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큰 목적은
여하튼 재학중인 후배들에게 나름 인포메이션을 주기위한
목적이 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중앙이 당연히 인문계 학교 이긴 하지만--
오날날-- 법대 의대생들까지 과거 '띤따라'를 지망하며--
연예계가 위상과 비젼의 현실적상승기류에 따라
대단한 상종가를 치고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선배님 은사님 재단쪽에선 가능한 한 저희 중앙 졸업생들이
서울 의대30명 치대 50명
법대 10명 카이스트 5명 포항공대 3명
하버드 2명 옥스퍼드 3명 나머지 전원 연고대
그것도 상대 경제과 이상이면 좋고 또 덩실 덩실 이겠지만 ---
우린 현실에 살구 있군요 선배님들///
혹~~~~~~~~~~~~~시라도 간혹 방송 연예계쪽에
관심이있거나 지망하는 경우라면
제가 교두보가 되겠습니다
3월1일부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홍보를 총괄하며
아이들을 가르키는 대학선생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교수연구실은 031 670 6527이고
휴대전화는 동문회에 공개되 있습니다
업무 파악때문에 월화수목은 거의 안성에서 자고있습니다(외롭구요)
지금은 입시철이 아닙니다만 필요하시면 언제고
가능한 한 도우미 스텐바이 하게ㅆ습니다
이제 또다시 중앙출신 남궁원 최불암 장혁 하명중 등등
한국의 대표 스타가 나온다고
우리 중앙역사에 조금도 흠이 될 턱이 없습니다
형님들과 스승님들의 건강과 정진을 기도드리며
61회 돌반출신 고 영 수
인사드립니다
고씨의 인생철학은… “정의” |
군대 가서도 특혜 싫어 연예대 거부 보병 근무 |
“간단합니다. ‘정의’죠.” 개그맨 혹은 방송인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을 묻자 고영수씨는 거침없이 ‘정의’라고 말했다.
“연예계를 자꾸 오해하고 하는 것은 일각에서 정의롭지 않아서 그래요. 경기 중에 왜 ‘휘슬’을 붑니까. 반칙을 했으니 부는 겁니다. 반칙을 안 하면 휘슬을 불 필요가 없죠. 모함, 반칙 이런 거 하면 안 돼요….” 개그맨의 덕목으로 정의를 꼽는 그의 말이 다소 의외였지만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그 때문인지 후배들이 저를 좋아하면서도 까다로운 선배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저는 유도하다가 다쳐서 육군 신검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해병대를 가려고 신검을 받았는데 더 어렵더군요. 그래서 ‘백’을 썼어요. 해병대에 입대하게 해달라고…. 입대를 한 뒤 연예대에 차출됐는데… 연예대 가면 좋죠, 1주일에 한 번 휴가 나오고… 하지만 그런 게 싫어서 또 백을 썼어요. 그냥 보병으로 근무하게 해달라고. 누구는 나 보고 바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난 특혜 보는 거 싫고 반칙하는 거 싫었어요.” 고씨의 집안은 인텔리 집안으로 소문 나 있다. 부친은 보성전문(지금의 고려대)을 나왔고, 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도 진명여고를 나왔다. 그가 몸 개그를 거부하고 스탠딩 개그 혹은 언어의 조련사임을 고집하는 건 ‘인텔리’ 출신의 자존심일까.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나는 그냥 하는 거예요. 좋으니까. 스탠딩 개그가 체질이니까…. 바보 개그도 저는 존경합니다. 심형래가 하는 ‘띠리리 리리리~’ 이게 얼마나 웃겨요. 그거 나는 못해요. 그 사람은 주특기가 포병이고 나는 보병인 거지. 근데 ‘야, 그것도 군인이냐’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한국 코미디계를 주름잡는 양대 산맥 중 ‘몸 개그’는 배삼룡 - 심형래 - 이창훈, 이런 식으로 대를 이어왔다. 그럼 ‘스탠딩 개그’는? “아무래도 후라이보이(곽규석)를 얘기해야죠. 그 다음에는 역시 나 아닌가요. 하하하.” |
“노래보다 ‘썰’이 더 먹혀 개그맨 됐죠”
게재 일자 : 2010년 11월 26일(金)
1세대 ‘개그맨’ 고영수씨
고영수씨가 지난 24일 경기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 강변의 휴양단지 건설현장에서 두툼한 방한복을 껴입은 채 ‘과거사’를 얘기하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오랜만입니다. 여전하시네요.
“아직 쓸만 해요. 요즘은 국산도 좋거든요.”(웃음)
30여년 전 ‘코미디’가 아닌 ‘개그’라는 이름으로 혜성과 같이 등장해 시청자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고영수(60)씨는 첫 대면부터 폭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고씨의 살아있는 농담과 툭툭 터지는 넉살을 듣고 있으면 과연 올해 환갑의 나이가 맞나 하는 생각이들 정도다.
하긴 슬랩스틱류의 ‘몸 동작’ 하나 없이 그냥 ‘입’만 갖고 안방을 주름잡던 그가 아닌가.
지난 24일 오후 찾아간 경기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의 한 복합휴양단지 건설현장은 때마침 뚝 떨어진 기온에 강바람까지 불어와 제법 추웠다. 지인이 내년 여름에 개장할 이곳에 와서 일을 봐주는 게 요즘 낙이란다. 고씨는 사무실이 지저분하다며 굳이 야외의 한 공간으로 안내했다. “춥죠?… 지난해 인터뷰 하시다가 기자 두 분이 얼어죽었는데….”(웃음)
“뭐 지분이 있다기보다는… 난 옵서버죠. 내가 나이 30이 넘었거든요… 사람들이 50이 넘다보면 우연히 30을 넘는 경우가 있어요.(웃음) 여기서 나무 가지치기도 하고 마당도 쓸고…(웃음) 나이 먹어가면 미래 설계하는 거 어렵지 않습니까. 이런 데다가 계획을 세우고 그러면 좋지 않을까 해서 말이죠. 이곳은 앞으로 내가 살 곳이에요.”
고씨는 건설현장의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한국 것들은 단가가 비싸요.
그래서 인도네시아에 가서 다 맞춤을 해왔죠. 나무와 풀까지 모두 사와서 여기서 엮고 조립한 거예요.
지붕은 해초인 것 같은데. 전문용어로 그냥 ‘잡풀’이라고 그래요.(웃음)
제가 전공을 토목학을 했어요. 원래 토목기사예요.”
고씨는 명문 중앙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당시로선 보기 드문
‘인텔리’ 출신 개그맨이다.
“중앙고 출신 중에 정치하는 사람, 대기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고교 평준화 반대예요. 명문이 있어야죠.”
고씨는 서울에 거주하면서 거의 매일 이곳에 출근하다시피한다.
“요새 ‘남자의 자격’이란 예능 프로를 보면 죽기 전에 해야 할 몇 가지 그러잖아요. 나는 진짜로 죽기 전에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어요. 학교 다닐 때 유도 대표선수를 했는데, 운동선수로 평생 끝나는 게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장사도 해보고 싶고, 깡패도 해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어요.”
―그 중 몇 개나 해보셨나요.
“몇 개 못했죠. 지금부터 하려고요. 그래서 여기에 와 있잖아요. 리조트가 만들어지면 제가 이곳의 엔터테인먼트 PD 역할을 할 겁니다. ‘통기타의 밤’, ‘샹송의 밤’ 이런 것도 개최하고.”
고씨가 가사를 바꿔 만든 샹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솜씨가 정말 일품이었다.
원래 가수 지망생이었다니 그럴만도 한 것 같다.
“원래 가수로 데뷔했어요. 라디오 프로에 노래를 하러 갔죠.
이종환씨가 했던 라디오 프로인데, 노래 몇 곡 하고 잠깐 대화 나누는 프로예요.
나는 노래 한 곡 하고 말을 20분을 했단 말입니다.
그랬더니 이종환씨가 ‘야, 너 다음부터는 기타 갖고 오지 마’라고 하더군요.
입만 갖고 오라는 거예요. 그게 대학 1학년 때였어요.”
고씨가 방송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가수 조영남씨와의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대학 1학년 때인 1970년도의 일입니다.
서울 명동에 ‘5분 스튜디오’가 있었어요.
사보이호텔 앞 ‘내쉬빌’이라는 곳인데.
내가 갔던 데가 우연히도, 난 정말 모르고 갔는데 말이죠…
객석에서 누구든 나와 5분 동안 마이크 붙잡고 노래를 부르는 곳이에요.
1등 하면 맥주가 공짜였죠.
그런데 내가 한 시간을 해버렸어요.
한 시간 동안 ‘썰’을 푸는데 앞에서 군복 입은 사람 하나가 뒤집어지더라고.
끝나고 나서 나한테 소주 한 잔 하자고 해요.
그게 영남이 형이야. 그래서 같이 술 먹었죠.
그 형 옆에 CBS 라디오방송 PD가 같이 있었고….”
―조영남씨를 뒤집어지게 했던 그 ‘썰’ 기억납니까.
“물론이죠. 기타를 집어들고 팝송 ‘Sad Movie’를 직접 개사한 ‘반공’ 노래를 불렀어요.”
고씨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익살맞은 표정에 배꼽 빼는 가사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친구와 얘기하다 불만불평 나오는 자/ 이른 아침 산에 가서 축축해서 나오는 자/ 모두 다 신고해서 백만원 받아내자~.’ 좌중에 또 다시 폭소가 터졌다.
“내가 몸 개그를 안 하는데… 대신 말로는 사기를 많이 칩니다. 당위성이 있는, 그럴 듯한 얘기를 떠벌리는 건데, 사람들이 다 듣고 나면 뒤늦게 ‘속았다’고 생각하죠.”
고영수 하면 각종 스포츠 방송을 순우리말로 중계하는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언젠가 박통(박정희 대통령)이 축구용어를 한국어로 전부 고치라고 한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말 야구 해설을 시작했죠.
‘홈런’은 ‘담넘어’, ‘감독’은 ‘이끈이’, ‘심판’은 ‘통밥꾼’, ‘타자’는 ‘까는 이’, ‘슬라이딩’은 ‘미끄러지기’, ‘도루’는 ‘훔쳐들어가기’, ‘와인드 업’은 ‘몸부림’, ‘번트’는 ‘앞톡까기’, ‘아웃’은 ‘안돼!’, ‘세이프’는 ‘괜찮아!’ 이렇게 중계를 했어요.
‘아, 훔쳐 들어가 미끄러지기, 통밥꾼 안돼!… 통밥꾼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죠. 이렇게….”(웃음)
그가 입만 떼면 웃음이 나온다.
그 특유의 목소리와 표정까지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이거는 실제로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심각하게 검토를 하는 건데요. 축구에서도 농구처럼 포인트제로 하라는 것을 내가 처음 제안했어요.
골문 40m 지점에 금을 긋고 거기서 슛 해서 들어가면 2점, 골문을 맞고 나오면 유효슛, 골키퍼가 겨우 막으면 절반… 진짜로 FIFA가 포인트제를 검토하고 있다니까요.”
―선생님 말씀은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진짠데….”
―선생님이 개그맨이라는 말을 처음 도입했다는 데 맞습니까.
“설이 많죠. 다 거짓말이고요. 개그맨이라는 용어는 당시 한 주간지 기자가 우리를 소개하면서 ‘대학생 웃긴 애들’ 이렇게 쓰려니 좀 그렇고 해서, 나름 찾아보다가 개그맨이라는 말을 어디서 건져냈어요. 그래서 우리를 ‘개그맨’이라고 소개했어요. 어쨌든 방송 개그 시절의 시작은 저라고 보면 되죠.”
―개그와 코미디가 뭐가 다릅니까.
“굳이 영역을 나누자면 개그는 각본 없이 나가는 거고요. 코미디는 다 정해서 나가죠. 우리(개그맨)는 그냥 나갑니다.”
―시나리오가 있고 없다… 굳이 코미디와 개그를 구분하자면 이런 거네요.
“이미 대본으로 연습 훈련이 돼 있는 게 코미디고 그렇지 않은 게 개그… 근데 이젠 많이 무너졌어요. 요즘은 코미디도 많이들 준비한 거에서 벗어나 있고, 애드립하다가 서로 웃잖아요. 개그도 맹연습해서 나오는 경우가 많고….”
―최근 몇년간 공중파 방송에 등장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습니까.
“불쌍해 보이지 않으려고요.
방송은 예전에 잘 나갔다가 최근 뜸한 사람들을 좀 불쌍하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어요.
질문을 그렇게 합니다. ‘쓸쓸하시죠’ 이런 식으로. 나는 그게 싫어요.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그런 게.
방송에 안 나와도 뭔가 인생에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거거든요.”
―그럼 요즘 뭐에 재미를 붙이고 사십니까.
“바로 옆에 배우 심혜진이 살아요.
이곳 리조트 주인이 심혜진 남편이고요.
잘 아는 처지죠.
심혜진 아버지가 내 중앙고 선배고요.
둘이 축복받는 일이 있을 때 결혼 연출을 내가 했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 리조트 꾸미는 거 내가 맡게 됐죠. 토목을 떠난 지 무지 오래됐지만 재미를 붙이고 있어요.”
―그럼 이 리조트 일이 대단히 중요한 비즈니스가 되겠네요.
“비즈니스가 아니고 나의 라이프(생활)입니다. 이제 앞으로 내 집이 여기가 될 테니까. 다들 그럽니다… 전원주택에 산다고 하면 뭐 인생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아~ 상추나 뜯어먹고 사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고씨는 하마터면 최대 방송실수로 이어질 뻔했던 상황을 기막힌 순발력으로 넘긴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했다.
“대학생 3학년 때 CBS 라디오 DJ로 생방송을 하던 날이었어요. 실수였는지 갑자기 시그널 음악이 나오기에 피날레 멘트에 들어갔죠. ‘네, 지금까지 제작에 이민제, 기술에 김진성…’
여기까지 했는데 갑자기 스튜디오 밖에서 난리가 났어요.
뭔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방송시간이 5분이 남았다는 거예요.
잠시 2~3초 멍해졌다가 금방 멘트를 이어갔습니다.
‘제작에 이민제, 기술에 김진성… 이 두 분이 애를 써주셨고요… 아~ 두 분을 낳아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리고요.
두 분 태어날 때 잘 받아주신 간호사 선생님들 고맙고요. 학교 다닐 때 도와준 친구들 시험 때도 잘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설날 추석 때 두 분에게 용돈을 준 친척분들 감사하고요…
방송사를 튼튼하게 설계해 주신 분들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제가 오늘 방송을 잘 할 수 있게 옥상의 안테나 용접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스튜디오 밖이 완전 뒤집어졌어요. 그게 CBS 역사에 기록이 돼 있다고 합니다.”
고씨는 개신교 신자다. 교회에서의 직분을 물으니 ‘그냥 신도’라고 말했다.
집사·권사 이런 것보다 교회 주인이 성도라고 그는 강조했다.
“예수님이 숨이 넘어갈 때 ‘아버지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한 그 부분에서 ‘껌뻑’ 갔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아들인 거 다 알고 부활할 거 다 알고 계셨잖아요.
그러면 ‘아버지 나를 부르시나이까’라고 해야 하는데 ‘아버지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했잖아요. 굉장히 인간적인 예수상을 느꼈어요.”
―스스로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심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말씀을 들으면 내면은 ‘시리어스’(심각)한 것 같은데.
“다시 말씀드릴게요. 저는 ‘시리어스’를 ‘퍼니’하게 하는 사람이에요. 진지함에서 재미도 나와요. 시리어스하지 않으면 익사이팅하지 않거든요. 미국 개그에 이런 게 있어요.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하니까 성경을 구약부터 신약까지 다 읽고 싶다고 해요. 교도관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하니까 사형수가 ‘그건 당신 사정이고, 저는 시간 많습니다’라고 해요. 진지함 속에서 즐거움도 나오고 재미도 나오는 겁니다.”
듣고 보니 진지함에서 재미가 나온다는 건 그의 개그철학 혹은 인생철학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진지하지 않고 말재주만 믿는다면 금세 밑천이 떨어지게 될 게 분명하다.
고씨가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절이 개그 생활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한 말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군사정권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상황을 고민하고 비틀어대면서 ‘진지함 속의 퍼니한’ 개그가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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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