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 면방직 기업’ ㈜경방 김각중 명예회장(33회, 제10대 중앙교우회장, 2000년 자랑스러운 중앙인상) 별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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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면방직 기업’ ㈜경방 김각중 명예회장 별세
기사입력 2012-03-19 03:00:00 기사수정 2012-03-19 03:00:00
‘선공후사’ 철학… 섬유산업 세계화에 한평생
대한민국 최초의 면방직기업이자 국내 1호 상장기업인 ㈜경방의 김각중 명예회장이 17일 정오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1925년 고 김용완 경방 명예회장의 1남 4녀 가운데 맏이로 서울에서 태어나 93년 된 대한민국 대표 섬유기업인 경방을 지속가능한 중견기업으로 키운 대표적인 2세 경영자였다. 재계는 “평생을 한국 섬유산업의 세계화와 한국 경제 발전에 바친 분”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경방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인촌 김성수 선생이 ‘우리 옷감은 우리 손으로’라는 창립이념 아래 세운 경성방직회사에서 출발했다. 대표적인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경성방직은 우리나라 상장 1호 법인으로 1941년에는 만주지역에 남만방적을 세워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 진출을 실현하기도 했다.
고인의 부친은 중앙학교 시절 인촌과 인연을 맺고 인촌의 막내 여동생인 고 김점효 여사와 결혼한 뒤 1938년 경성방직 지배인으로 시작해 이후 38년을 섬유산업에 몸담았다. 고인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고종사촌이다.
고인은 1944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64년 유타대에서 이론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학계에 몸담았던 그는 1969년 감사로 경방의 경영에 참여, 이듬해 경성방직을 주식회사 ‘경방’으로 바꾸고 국내 대표 섬유 수출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주도했다.
1975년 부친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뒤 33년 동안 경방을 이끌며 한국 섬유산업의 중흥을 이뤄냈다. 1980년대까지 경기 용인, 반월, 광주에 공장을 준공해 1987년 수출 1억 달러 돌파라는 신기원을 달성하는 등 국내 섬유기업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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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3-19 03:00:00 기사수정 2012-03-19 03:00:00
‘선공후사’ 철학… 섬유산업 세계화에 한평생
㈜경방의 김각중 명예회장은 1975년 경방 대표이사 회장에 오른 뒤 줄곧 한국 섬유산업의 세계화와 한국 경제 발전에 힘써왔다. 고인이 200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시절 자신의 희수(77세) 축하연 겸 새 회장단 상견례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고인은 1925년 고 김용완 경방 명예회장의 1남 4녀 가운데 맏이로 서울에서 태어나 93년 된 대한민국 대표 섬유기업인 경방을 지속가능한 중견기업으로 키운 대표적인 2세 경영자였다. 재계는 “평생을 한국 섬유산업의 세계화와 한국 경제 발전에 바친 분”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경방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인촌 김성수 선생이 ‘우리 옷감은 우리 손으로’라는 창립이념 아래 세운 경성방직회사에서 출발했다. 대표적인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경성방직은 우리나라 상장 1호 법인으로 1941년에는 만주지역에 남만방적을 세워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 진출을 실현하기도 했다.
고인의 부친은 중앙학교 시절 인촌과 인연을 맺고 인촌의 막내 여동생인 고 김점효 여사와 결혼한 뒤 1938년 경성방직 지배인으로 시작해 이후 38년을 섬유산업에 몸담았다. 고인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고종사촌이다.
고인은 1944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64년 유타대에서 이론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학계에 몸담았던 그는 1969년 감사로 경방의 경영에 참여, 이듬해 경성방직을 주식회사 ‘경방’으로 바꾸고 국내 대표 섬유 수출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주도했다.
1975년 부친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뒤 33년 동안 경방을 이끌며 한국 섬유산업의 중흥을 이뤄냈다. 1980년대까지 경기 용인, 반월, 광주에 공장을 준공해 1987년 수출 1억 달러 돌파라는 신기원을 달성하는 등 국내 섬유기업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고인은 경방을 이끄는 동안 ‘상식과 양식에 따른 경영’을 경영이념으로 삼았다. 상식을 무시하지 않고 양식에 따라 판단한다면 경영 실패는 없다는 것이다. 1972년에는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며 공장 증설을 반대하는 주주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용인공장을 신설해 건실하게 키우기도 했다.
그는 진솔하고 강단 있는 성품으로 유명했다. 경방 회장 취임 후 사장에게 경영권을 맡기는 등 전문경영인을 우대했다. 경기불황기인 1981년에는 사장으로 자진 ‘강등’하면서 노력한 끝에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또 고인은 국내 섬유업계의 큰어른으로 중앙염색가공회 회장(1974∼1985년), 한국섬유기술진흥센터 이사장(1980∼1989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1989∼1992년)을 역임했다. 1995년부터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명예회장을 맡아왔다.
1990년대 방직업이 하향세로 접어들자 제품의 고부가가치화에 힘을 쏟는 한편 유통업 등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경방필백화점을 운영하며 유통산업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2009년에는 옛 경성방직 자리(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4가)에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를 성공적으로 열기도 했다.
2000∼2003년에는 제26, 27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맡아 재계 대표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부친에 이어 부자가 나란히 전경련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친이 10년(4, 5, 9∼12대)간, 고인이 3년(회장대행 기간까지 포함하면 3년 4개월)간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고인은 국내외 경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1983년에는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으며, 이탈리아 핀란드 뉴질랜드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다. 또 기업 장학재단의 효시격인 ‘경방육영회’를 이끌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본보기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산업 발전과 동시에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며 “직원들과 한 가족 같은 돈독한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원칙을 잘 지켜온 덕분”이라고 말해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차현영 씨와 아들 준(경방 대표이사 사장), 담(경방 대표이사 부사장), 딸 지영 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졌으며, 영결식은 22일 오전 7시에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 광주시 송정동 선영. 02-3010-2000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그는 진솔하고 강단 있는 성품으로 유명했다. 경방 회장 취임 후 사장에게 경영권을 맡기는 등 전문경영인을 우대했다. 경기불황기인 1981년에는 사장으로 자진 ‘강등’하면서 노력한 끝에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또 고인은 국내 섬유업계의 큰어른으로 중앙염색가공회 회장(1974∼1985년), 한국섬유기술진흥센터 이사장(1980∼1989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1989∼1992년)을 역임했다. 1995년부터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명예회장을 맡아왔다.
1990년대 방직업이 하향세로 접어들자 제품의 고부가가치화에 힘을 쏟는 한편 유통업 등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경방필백화점을 운영하며 유통산업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2009년에는 옛 경성방직 자리(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4가)에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를 성공적으로 열기도 했다.
2000∼2003년에는 제26, 27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맡아 재계 대표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부친에 이어 부자가 나란히 전경련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친이 10년(4, 5, 9∼12대)간, 고인이 3년(회장대행 기간까지 포함하면 3년 4개월)간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고인은 국내외 경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1983년에는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으며, 이탈리아 핀란드 뉴질랜드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다. 또 기업 장학재단의 효시격인 ‘경방육영회’를 이끌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본보기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산업 발전과 동시에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며 “직원들과 한 가족 같은 돈독한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원칙을 잘 지켜온 덕분”이라고 말해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차현영 씨와 아들 준(경방 대표이사 사장), 담(경방 대표이사 부사장), 딸 지영 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졌으며, 영결식은 22일 오전 7시에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 광주시 송정동 선영. 02-3010-2000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7)
댓글목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교우회에서는 조화를 보내드렸으며 내일 사무처 단체 문상을 합니다. 교우님들의 많은 조문 있으시길 바랍니다.
훌륭하신 분이 역사속으로 묻히시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