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서울 北村의 '골동품 목욕탕' 아시나요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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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1.13 17:41
반세기 동안 자리 지킨 목욕탕
쪽창·바구니 등 옛 풍경 그대로… 영화·드라마 단골 촬영지로 떠
'골동품 목욕탕'이라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북촌의 명소가 됐다는 서울 계동 중앙탕. 여탕 문을 밀고 들어서자 종업원이 쪽창을 열고 "어서 오세요!" 했다. 입장료는 5000원. 탈의실로 들어서면 '목욕비가 왜 이렇게 비싼 거야?' 하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우선 옷과 가방, 신발을 여느 찜질방 신발장만한 비좁은 옷장에다 꾸겨 넣어야 한다. 공용 화장품은 마지막 한방울까지 아껴 쓰라고 거꾸로 세워놨다. 벽에는 대한민국 제1호인 듯한 낡은 에어컨과 선풍기가 달렸다. 뿌예진 욕탕 유리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예닐곱 명이 앉아 때를 밀고 있다. 대부분 할머니들이었다.
톱스타가 목욕했다는 욕탕은 그러나 누추했다. 수도꼭지가 모두 합해 8개. 어떤 꼭지는 위로 들어야 물이 나오고, 어떤 꼭지는 아래로 눌러야 물이 나왔다. 탕은 성인 5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 타일, 쪽창 사이로 스며드는 외풍이 세서 여자들은 탕의 온도를 뜨끈하게 하느라 분주했다. 일명 '다라이'로 불리는 플라스틱 간이욕조도 보인다. 황공하게 '사우나'도 있었다. 황토사우나도 아니고 이슬사우나도 아닌 어두컴컴한 사우나 앞에 '열탕'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뜻밖의 횡재를 만났다. 이 볼품없는 열탕의 나무의자에 걸터앉은 지 1분도 안 돼 땀이 줄줄 났다. 관리자 박씨가 자랑스러워했다. "그게 춘천옥으로 만든 거예요. 열이 좋으니 땀이 잘 날 수밖에. 목욕물도 우리가 수천만원 들여서 설치한 육각수 파이프라인을 통해 나오는 물이에요. 내가 그 물로 반신욕하고 나서 감기에 안 걸리잖아요."
중앙탕의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현재 주인인 담란향(68) 할머니가 중앙탕을 인수한 게 1968년이라고 하니 최소 40년은 넘는 셈이다. 전 주인은 목욕탕을 중앙고등학교의 야구부·축구부 선수들의 샤워실 용도로 만들었단다. 그걸 담 할머니가 인수한 뒤 대중탕으로 개조했다. 화교인 담 할머니의 '경력'도 재미있다. 충무로 중앙탕의 딸로 태어나 목욕탕 경영 노하우를 익혔고, 결혼 후 청량리에서 중화요리집을 운영하다 계동으로 이사와 '중앙탕'을 열었다. 열몇 살 때부터 중앙탕 세신사로 일해왔다는 '미스 고'는 목욕탕의 산 역사. 그녀는 40년 전 목욕탕 요금이 650원이었다고 전했다.
찜질방·스파라는 말이 나오기 전인 1990년대까지 중앙탕은 전성기였다. 설·추석 명절이면 하루 400여명이 드나들었다. "새벽 한두 시까지 영업했어요. 옷장이 모자라 대바구니에 옷을 첩첩 쌓아 놓았다니까요." 유명인들도 단골이었다. "북촌이 우리나라 10대 재벌들이 사는 곳이잖아요? 이명박 대통령도 북촌 살던 시절 몇 번 오셨지요. 믿음치과 김영환 의원도 단골이었고요."
요즘 하루 손님 수는 일본인 관광객 포함해 20~30명. 수지가 안 맞아 부동산에 내놨다는 소문도 돌았다. 계동 주민인 권태미(43)씨는 "목욕탕 전체가 우리의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골동품인데 감각 있는 디자이너가 잘 다듬어서 예쁘게 보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목욕탕은 동네 사랑방이기도 하다. 관리사 박씨 부부는 카운터에 앉아 오고 가는 손님들의 집안 형편, 식구들 안부를 일일이 물었다. 목욕을 막 끝내고 문을 나서는 40대 여인에게 인근에 찜질방도 많은데 왜 여길 오냐고 물었다. "시설만 화려하지, 별거 없잖아요? 때만 잘 밀리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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