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 -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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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다
기사입력 2011-10-29 03:00:00 기사수정 2011-10-29 04:56:38
《 10·26 재·보궐선거 하루 뒤인 27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80·오른쪽)과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48)가 만났다. 두 사람은 선거 민심과 문학, 행복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의 ‘팬’을 자처하는 추기경은 성경책과 세례명 ‘그레이스’를 선물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
27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옆 주교관 추기경 집무실에서 신경숙 작가(48)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80)과 인사를 나눈 뒤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았다. 잠시 뒤 그가 꺼낸 것은 손때가 묻은 성경(聖經)이었다.
신 작가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추기경께서 보내준 것”이라며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판과 영문판을 정 추기경에게 선물했다. 신 작가가 “2년 전 뵈었을 때보다 더 건강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자 정 추기경은 “신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잘 듣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두 사람은 10·26 재·보궐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과 세대갈등, 문학과 종교, 가족과 행복 등 다양한 주제로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추기경께서 성경을 보내준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 작가=여러 나라를 다니는 동안 (성경을) 읽고 싶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께 부탁했는데 추기경께서 직접 글을 쓴 성경을 보내주실 줄 몰랐죠. 해외에서 시차 때문에 새벽에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았는데 성경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정 추기경=하느님이 신경숙 씨를 보살펴 주셔서 내가 선물할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웃음)
정 추기경은 성경의 표지 다음 장에 ‘친애하는 신경숙 씨. 하느님의 훌륭한 도구로 선택되셨음을 축하드리고, 전폭적으로 후원할 것을 약속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썼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신 작가를 위해 ‘그레이스’란 세례명을 선물했다. 정 추기경이 세례명을 선물한 것은 처음이다.
―추기경께서도 연말에 새 책을 출간한다고 들었습니다.
▽정=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요?
정 추기경이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자 좌중에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아∼ 제목이 ‘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예요”라고 웃으며 침묵을 깬 것은 신 작가였다.
▽정=독재자들이 재산을 많이 감춰뒀는데, 그 안전한 금고가 아닙니다. 하늘이 안전한 금고죠. ‘하늘에 보화를 쌓아라’, 즉 ‘남을 위해 선용하라’는 뜻입니다.
▽신=추기경께서 쓴 책이라고는 상상 못할 제목이네요.(웃음) 안 볼 수 없겠는데요.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안철수 씨는 대선후보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세대 간의 확연한 의식차를 보여준 선거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정=사람은 다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안 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투표한 사람들도 자기 투표에 책임을 져야 하고, 정치를 하시는 분들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갈등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지만, 뽑힌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야 합니다.
▽신=충분히 예측된 투표 결과죠. 시민의식은 굉장히 올라왔는데 정치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정치 쪽만 모른 거죠.
―새 시장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정=사랑은 주고받는 거지 일방통행은 없습니다. 표 받은 만큼 국민에게 보답을 해야 합니다.
▽신=정말 동감입니다.
―암 투병 중인 최인호 작가를 보면서 종교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신=문학과 종교는 서로 통하고 의지하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문학이 제게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문학 속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를 지닌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을 저라고 생각해 편하기 때문입니다. 패배자들과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시선을 준다는 의미에서 문학과 종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돈이 아니라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인간의 행복입니다. (심지어) 하느님도 세상을 창조한 뒤 자기 작품을 알아주는 이가 없자 당신과 가장 비슷한 사람을 만든 겁니다. 작가도 자신을 알아주는 독자가 없다면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죠.
▽신=문학은 어찌 보면 끊임없는 세상에 대한 질문이고, 종교는 그것에 대한 대답 같습니다. 똑같이 인간을 사랑하고 의미를 부여하다 어느 순간 질문과 대답으로 갈라지는 게 문학과 종교 아닐까 합니다.
―그럼 기자는 어떻습니까.
▽정=창작하고 보도는 다르지 않나요.(웃음)
―신 작가는 최근 ‘엄마를 부탁해’ 일본판 출간 때문에 일본에 다녀왔는데요.
▽신=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공황이나 상실감이 컸습니다. 재난 이후 가장 중요한 단어는 ‘가족’이랍니다. 지진 이후 오히려 결혼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떨어져 살던 부부도 같이 살려고 한답니다.
▽정=재난을 당했을 때 인류애가 발휘된다면 그 재난을 좀 더 쉽게 잘 이겨낼 수가 있겠지요.
―동아미디어그룹의 종합편성TV 채널A가 12월 개국합니다. 어떤 방송이 되기를 바라는지요.
▽정=좋은 소식뿐 아니라 언짢고 보도하기 싫은 뉴스도 있을 겁니다. 어려운 뉴스일수록 희망을 불어넣는 멘트 하나를 더 부탁합니다.
▽신=제 책에 쓴 말을 인용한다면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어떤 방송을 하든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기를 바랍니다.
―요즘 무엇을 하실 때 가장 행복합니까.
▽정=요즘 기도할 때마다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묻습니다. ‘나한테 맡겨라’라는 대답을 들을 때 행복하죠.
▽신=시골(전북 정읍시)에 있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어머니가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추기경께서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정=6·25전쟁 중에 항상 ‘내가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는데 여전히 그런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에 대해 엄격합니다. 저녁에는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나’ 생각하고, 아침에 눈 뜨면 ‘오늘 하루를 더 살게 해 주시는구나’라며 감사해요. 다른 계획보다는 하루, 한 순간을 가장 보람 있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신=미국에서 푹 쉬려고 했는데 못 쉬고 책 때문에 많은 여행을 했으니 새 작품을 쓰고 싶지요. 내용은 아직 비밀입니다. (정 추기경을) 만나 뵙고 나니 마음속의 빈곳이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외로운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셨으면 합니다.
진행=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정 추기경-신 작가 “병마 떨치고 글 통해 세상에 힘을 주길” ▼
암투병 중인 최인호 작가 쾌유기원 메시지
최인호 “추기경 격려에 큰 힘 얻어”
“최인호 작가는 글을 통해 나에게 큰 힘을 준 일이 많았습니다.”(정진석 추기경)
“지난 작품을 쓰시면서 다른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하셨으니 또 작품이 나올 겁니다.”(신경숙 작가)
대담 중 정 추기경과 신 작가는 올해 5월 암과 싸우며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출간한 소설가 최인호 씨(66·사진)의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가톨릭 세례명이 베드로인 최 작가는 2006년 동아일보를 통해 정 추기경과 특별회견을 했고 부부가 정 추기경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신 작가는 “미국에 있을 때 선생님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책을 좀 보내달라고 해서 읽었다”며 “작가이자 개인으로 가장 나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가장 좋은 쪽으로 자신을 바꿔가는 모습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건강이 빨리 좋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최근 최 작가와 한 통화에서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면 더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대담에 함께한 허영엽 신부는 최 작가의 요청에 따라 정 추기경과 전화를 연결했다. 최 작가가 나중에 ‘하느님이 쓰시는(사용하시는) 것을 꼭 믿으라’는 추기경의 말이 큰 힘이 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아픈 분이 어디서 그런 글을 쓸 힘이 나올까 한참 생각했다”면서 “재주만 갖고 글을 쓴다면 그런 힘이 안 나온다. 나를 포함해 세상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 그 재능을 더 오래 발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5)
기사입력 2011-10-29 03:00:00 기사수정 2011-10-29 04:56:38
“사랑은 주고받는 것… 정치, 표 받은만큼 국민에 보답해야”
27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옆 주교관 추기경 집무실에서 신경숙 작가(48)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80)과 인사를 나눈 뒤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았다. 잠시 뒤 그가 꺼낸 것은 손때가 묻은 성경(聖經)이었다.
신 작가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추기경께서 보내준 것”이라며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판과 영문판을 정 추기경에게 선물했다. 신 작가가 “2년 전 뵈었을 때보다 더 건강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자 정 추기경은 “신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잘 듣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두 사람은 10·26 재·보궐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과 세대갈등, 문학과 종교, 가족과 행복 등 다양한 주제로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추기경께서 성경을 보내준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 작가=여러 나라를 다니는 동안 (성경을) 읽고 싶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께 부탁했는데 추기경께서 직접 글을 쓴 성경을 보내주실 줄 몰랐죠. 해외에서 시차 때문에 새벽에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았는데 성경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정 추기경=하느님이 신경숙 씨를 보살펴 주셔서 내가 선물할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웃음)
정 추기경이 신 작가에게 선물한 성경 정진석 추기경이 4월 미국에 체류 중이던 소설가 신경숙 작가에게 보낸 성경책. 정 추기경의 친필 인사말이 적혀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정 추기경은 성경의 표지 다음 장에 ‘친애하는 신경숙 씨. 하느님의 훌륭한 도구로 선택되셨음을 축하드리고, 전폭적으로 후원할 것을 약속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썼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신 작가를 위해 ‘그레이스’란 세례명을 선물했다. 정 추기경이 세례명을 선물한 것은 처음이다.
―추기경께서도 연말에 새 책을 출간한다고 들었습니다.
▽정=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요?
정 추기경이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자 좌중에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아∼ 제목이 ‘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예요”라고 웃으며 침묵을 깬 것은 신 작가였다.
▽정=독재자들이 재산을 많이 감춰뒀는데, 그 안전한 금고가 아닙니다. 하늘이 안전한 금고죠. ‘하늘에 보화를 쌓아라’, 즉 ‘남을 위해 선용하라’는 뜻입니다.
▽신=추기경께서 쓴 책이라고는 상상 못할 제목이네요.(웃음) 안 볼 수 없겠는데요.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안철수 씨는 대선후보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세대 간의 확연한 의식차를 보여준 선거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정=사람은 다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안 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투표한 사람들도 자기 투표에 책임을 져야 하고, 정치를 하시는 분들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갈등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지만, 뽑힌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야 합니다.
▽신=충분히 예측된 투표 결과죠. 시민의식은 굉장히 올라왔는데 정치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정치 쪽만 모른 거죠.
―새 시장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정=사랑은 주고받는 거지 일방통행은 없습니다. 표 받은 만큼 국민에게 보답을 해야 합니다.
▽신=정말 동감입니다.
―암 투병 중인 최인호 작가를 보면서 종교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신=문학과 종교는 서로 통하고 의지하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문학이 제게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문학 속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를 지닌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을 저라고 생각해 편하기 때문입니다. 패배자들과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시선을 준다는 의미에서 문학과 종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돈이 아니라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인간의 행복입니다. (심지어) 하느님도 세상을 창조한 뒤 자기 작품을 알아주는 이가 없자 당신과 가장 비슷한 사람을 만든 겁니다. 작가도 자신을 알아주는 독자가 없다면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죠.
▽신=문학은 어찌 보면 끊임없는 세상에 대한 질문이고, 종교는 그것에 대한 대답 같습니다. 똑같이 인간을 사랑하고 의미를 부여하다 어느 순간 질문과 대답으로 갈라지는 게 문학과 종교 아닐까 합니다.
―그럼 기자는 어떻습니까.
▽정=창작하고 보도는 다르지 않나요.(웃음)
―신 작가는 최근 ‘엄마를 부탁해’ 일본판 출간 때문에 일본에 다녀왔는데요.
▽신=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공황이나 상실감이 컸습니다. 재난 이후 가장 중요한 단어는 ‘가족’이랍니다. 지진 이후 오히려 결혼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떨어져 살던 부부도 같이 살려고 한답니다.
▽정=재난을 당했을 때 인류애가 발휘된다면 그 재난을 좀 더 쉽게 잘 이겨낼 수가 있겠지요.
―동아미디어그룹의 종합편성TV 채널A가 12월 개국합니다. 어떤 방송이 되기를 바라는지요.
▽정=좋은 소식뿐 아니라 언짢고 보도하기 싫은 뉴스도 있을 겁니다. 어려운 뉴스일수록 희망을 불어넣는 멘트 하나를 더 부탁합니다.
▽신=제 책에 쓴 말을 인용한다면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어떤 방송을 하든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기를 바랍니다.
정진석 추기경과 신경숙 작가가 27일 서울 명동대성당 주교관 앞뜰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정 추기경은 “생전 연로하신 어머니께 ‘엄마’라고 불렀더니 얼굴이 다 환해지시며 좋아하시더라”고 하자 신 작가는 “엄마란 말을 더 자주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요즘 무엇을 하실 때 가장 행복합니까.
▽정=요즘 기도할 때마다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묻습니다. ‘나한테 맡겨라’라는 대답을 들을 때 행복하죠.
▽신=시골(전북 정읍시)에 있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어머니가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추기경께서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정=6·25전쟁 중에 항상 ‘내가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는데 여전히 그런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에 대해 엄격합니다. 저녁에는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나’ 생각하고, 아침에 눈 뜨면 ‘오늘 하루를 더 살게 해 주시는구나’라며 감사해요. 다른 계획보다는 하루, 한 순간을 가장 보람 있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신=미국에서 푹 쉬려고 했는데 못 쉬고 책 때문에 많은 여행을 했으니 새 작품을 쓰고 싶지요. 내용은 아직 비밀입니다. (정 추기경을) 만나 뵙고 나니 마음속의 빈곳이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외로운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셨으면 합니다.
진행=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정 추기경-신 작가 “병마 떨치고 글 통해 세상에 힘을 주길” ▼
암투병 중인 최인호 작가 쾌유기원 메시지
최인호 “추기경 격려에 큰 힘 얻어”
“최인호 작가는 글을 통해 나에게 큰 힘을 준 일이 많았습니다.”(정진석 추기경)
“지난 작품을 쓰시면서 다른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하셨으니 또 작품이 나올 겁니다.”(신경숙 작가)
대담 중 정 추기경과 신 작가는 올해 5월 암과 싸우며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출간한 소설가 최인호 씨(66·사진)의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가톨릭 세례명이 베드로인 최 작가는 2006년 동아일보를 통해 정 추기경과 특별회견을 했고 부부가 정 추기경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신 작가는 “미국에 있을 때 선생님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책을 좀 보내달라고 해서 읽었다”며 “작가이자 개인으로 가장 나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가장 좋은 쪽으로 자신을 바꿔가는 모습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건강이 빨리 좋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최근 최 작가와 한 통화에서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면 더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대담에 함께한 허영엽 신부는 최 작가의 요청에 따라 정 추기경과 전화를 연결했다. 최 작가가 나중에 ‘하느님이 쓰시는(사용하시는) 것을 꼭 믿으라’는 추기경의 말이 큰 힘이 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아픈 분이 어디서 그런 글을 쓸 힘이 나올까 한참 생각했다”면서 “재주만 갖고 글을 쓴다면 그런 힘이 안 나온다. 나를 포함해 세상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 그 재능을 더 오래 발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