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든 봉사도 끝나면 ‘너무 좋았다’감격… 이것이 인간본성”
해외 의료봉사 15년째 박용준 글로벌케어 회장
“10년 후 전 세계 50개국에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케어의 원격진료 클리닉을 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의사처럼 진료에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첨단 정보기기를 많이 쓰는 나라가 없을 정도거든요.
국내에선 벌써 낙도환자 진료를 비롯해 제한된 범위에서 화상 원격진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촉진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엑스레이, 초음파 등 영상자료와 혈압, 맥박, 심전도 등 수치자료를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1차 판단이 이뤄집니다.
한국인은 새 기술에 대한 적응력도 높기 때문에 아마 한국 의료진에게 특화된 경쟁력 있는 분야가 될 겁니다.
물론 비정부기구(NGO)의 의료봉사에도 좋은 툴(도구)이 되겠지요.”
박용준(57) 글로벌케어 회장을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내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강당에서 만났다.
‘소외된 지구촌 이웃들의 희망주치의’ 글로벌케어가 제23회 아산상 대상을 받는 수상식장에서였다.
그는 1997년 출범한 글로벌케어에서 15년째 해외 의료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제2대 회장이 되고 나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한국 의료 비정부기구(NGO)의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글로벌케어는 부산 개발원조회의의 NGO 세션에도 참가합니다.
제가 해외원조 이사로 일하고 있거든요.
공적개발원조(ODA·선진국이 개도국이나 국제기구에 하는 원조) 중 의료개발 활용 가능성을 연구 검토 중입니다.
세계 보건경제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선구적으로 개발하려 합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 컬럼비아대 보건경제학 박사과정에 말라위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프로그램을 개설해 아프리카 대륙의 질병문제를 해결할 현지 인재를 직접 양성해주는 일 같은 거지요.
일본에도 ‘암다(AMDA)’라는 의료 NGO가 있지만 소규모에 활동도 소극적이에요. 개발원조에는 ‘타이드(조건부)’와 ‘언타이드(무상)’가 있는데 일본은 조건부가 많지요.
저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도 무상원조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더 크게는 기획재정부, 수출입은행의 유상원조를 코이카와 합쳐 원조청을 만들자는 생각입니다.
정부 내 별도 해외원조기구는 유럽국가 중 선례가 있습니다.”
박 회장의 ‘큰 봉사’ 행보는 해외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초수급자는 사회안전망에 의해 걸러지지만 차상위계층에 대한 의료지원은 아직도 많이 취약하다.
박 회장은 정부의 부담을 민간 의료봉사단체들이 앞장서 나눠지려 한다.
그는 올 4월 의료민간단체협의회(의민협)를 결성했다.
박 회장은 “이미 30군데의 NGO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보건복지부 내 신설된 나눔기획단을 채널 삼아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의료봉사 뿌리는 깊다.
1983년 연세대 의대 재학 중 ‘누가회’란 의료봉사모임에 들어가면서 농촌, 빈민가 등 의료서비스 소외지역을 다니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출발한 그의 봉사이력은 연세암센터와 미국 연구원 경력을 거쳐 경기 광명시에 내과를 열면서 해외로 확대됐다.
한번 떠나면 한 달 이상씩 걸리는 일정을 따라 네팔 등지로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1994년 르완다 난민사태 때 아프리카를 찾았다가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았다.
‘국경 없는 의사회’를 비롯해 서구 선진국 의료단체의 활약상을 목격하게 된 것. ‘우리도 늦기 전에 시작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판 국경 없는 의사회라 할 수 있는 글로벌케어가 출범한 것은 3년 뒤였다.
210명의 발기인이 탄생시킨 글로벌케어는 현재 150여개 회원병원에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전문인력 500여명과 자원봉사자 500여명, 정기후원자 1000여명 등 총 30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대가족으로 커졌다.
좋다.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훌륭한 분들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박 회장에게 살짝 무식한(?) 질문을 던져봤다. 인터뷰 초입부터 머릿속을 맴도는 원초적 의문이었다.
―가까운 곳에도 어려운 이웃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처럼 먼 데까지 가서 봉사해야 하는 건가요?
“인간이란 존재를 정신심리학적으로 바라봤을 때 우리 안에 사랑이란 실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돕고 싶은 마음, 그게 본성입니다.
이타적 유전자라고 할까, 하나님이 그걸 주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사회를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다행히 그런 유전자가 있어 불완전하지만 서로 의존하는 삶이 유지되고 있는 거지요.
가까운 이웃뿐 아니라 먼 이웃에게도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이타적 유전자를 극대화해야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나도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살아가잖습니까?
세계란 지구촌에서 공감대 없인 살아갈 수 없을 겁니다.
NGO의 장점은 국경이 없다는 거죠. 국경 없는 교육자, 국경 없는 음악가들도 많아요.
공유된 가치는 국경을 넘어갑니다.
생명사랑과 존중 같은 국경 없는 공유가치를 나눠야죠.
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국내외 봉사현장을 다니면서 ‘너무 괴로웠어요’ 하는 사람은 한번도 본 적이 없고 ‘너무 좋았어요’ 하는 사람만 봤습니다.
이웃을 위해 후원금을 낸다든지 하는 돕는 행위 자체에 스스로 놀라고 ‘이거 기분 좋은데’ 하는 게 인간의 본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에게 주고 손을 내밀고 하는 것도 훈련이거든요.
주는 사람에겐 큰 기쁨이 있습니다.
이런 기쁨과 자주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게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거죠.
기쁨을 남에게도 소개해야겠구나, 같이 나눠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자연히 들게 돼요.”
―한국이 남을 도울 자격이 있을까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해외여행 횟수가 크게 늘어났잖아요?
10년 전 대한민국의 봉사에 대한 생각과 지금의 생각은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NGO를 하면서 2000년 초만 해도 주변에서 해외 재난현장에 왜 가냐고들 묻곤 했는데, 2004년 쓰나미 참사를 경험하면서 한국민에게 일대 변환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NGO뿐 아니라 해병전우회, 기생충박멸협회, 가족협회 등 많은 단체가 현장에 오기를 원했고 실제로 왔습니다.
한국인들이 도처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은 선진화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왔구나 생각했지요.
앞으로도 여기저기서 폭발적인 공감과 움직임이 일어날 겁니다. 우리 국민의 봉사수준이 높아졌어요.
저는 이것을 희망적·소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네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계를 주시하고 있구나 생각하지요. 세계적 이슈에 동참하는 NGO도 점차 늘어날 것입니다.”
―교회 집사로 일하고 계신데 봉사와 종교가 상관관계가 있나요?
“하나님은 인류에게 두 가지 선물을 줬어요.
하나가 바이블(성서), 다른 하나는 사이언스(자연과학)입니다.
아프리카의 200년 선교 역사를 뒤집어보면 놓친 게 있어요.
케냐 등을 보면 70% 이상이 교회에 나가는데 정작 부패는 꼴찌에서 몇 등 하는 수준이다, 이거 문제가 있지요.
신학교는 세웠는데 종합대학은 안 세웠다, 이겁니다.
바이블 선교만 전한 거죠. 밸런스가 깨지며 인간 삶의 틀이 뒤틀려버린 거죠.
제3세계를 바라볼 때도 두 가지를 통합적으로, 균형적으로 펼쳐가야 합니다.
교육, 봉사, 순결한 도덕적 삶이 제3세계와 교류할 때 나눠야 할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은?
“국경 없는 의사회 같은 NGO를 의사들이 시작했지만 이를 키운 건 저널리스트들이라고 해요.
우리 글로벌케어도 사회복지사, IT전문가, 경영전문팀이 살림을 꾸려나갑니다.
NGO는 비영리기관이지만 일할 때는 전문적으로 경영을 해야만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어요.
팀 단위로,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글로벌케어 밑에 경영연구소를 두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재능기부와 나눔의 정신이 빅뱅을 맞은 시기입니다.
시류를 타야 합니다.
우리 후원자의 50% 이상이 20 ~ 30대입니다.
이들은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40 ~ 50대보다 훨씬 에너지가 크죠.
젊은 세대의 봉사 에너지를 슬기롭게 키워나가고 현명하게 써야 합니다.”
인터뷰 = 노성열 차장(사회부)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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