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관 퇴임 후 유림으로…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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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도산서원.조선 중기 성리학을 완성한 퇴계 이황(李滉) 선생이 만년에 머물며 제자를 길러냈던 곳이다. 여름 한낮의 열기는 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의 물줄기마저 더디게 만드는 것 같다. 인터뷰 약속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까. 한 노인장이 천천히 서원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흰 두루마기 옷자락을 날리며 꼬장꼬장하게 걷는 것이 옛 서당의 훈장 모습 그대로다.
한국국학진흥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66)."한국 정신문화의 1번지 도산서원에 잘 오셨습니다"라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기자의 입에서는 불쑥 "네,장관님"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로서의 그에 대한 기억이 더 또렷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관료생활을 마친 뒤 로펌 고문이나 대학 석좌교수 등으로 경력을 이어가게 마련인데,속세를 멀리하고 이런 골짜기까지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선비수련원 이사장은 어떻게 맡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서울대에서 사학을 전공할 때부터 유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 안동을 자주 찾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게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이라는 직함은 정말 가당치 않은 것이었죠.그러나 안동 유림들은 제가 유학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실력 있는 행정 관료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1년간 고사했지만 결국 2008년 3월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저를 이사장으로 선임했습니다. "
▼국학진흥원장이시기도 한데 국학이 뭔가요.
"국학(國學)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모든 고문서와 고문헌 같은 기록물을 활용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옛 기록물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유학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진흥원은 사실상 유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직접 강의도 하시는 것 같던데요.
"쑥스럽지만 선비정신을 알리기 위해 직접 강의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기업인들도 선비정신을 알기 위해 이곳을 자주 찾습니다. 최근에는 KT 임원 35명이 1박2일간의 교육 과정에 입소해 '21세기 나의 삶과 선비정신'이라는 제 강의를 들었는데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정부 부처에서 현실 정책을 폈던 경험이 있다 보니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선비정신이란 어떤 것입니까.
"한국은 이제 선진국에 가까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됐지만,행복지수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지하철 '개똥녀'니 '쩍벌남'이니 하는 불쾌한 말들은 남을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죠.모두들 자신만 행복하면 되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선비정신은 한마디로 나를 낮추는 '겸손'과 남을 배려하는 '공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
▼기업에서도 선비정신이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요즘 많이 나오는 상생과 동반성장도 선비정신의 기반 속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기업이 자기 이익만 극대화시키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치의 양보와 배려도 없다면 결국 모두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대기업이 중소 협력업체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선비정신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죠.중소 협력업체 역시 대기업의 입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중소 협력업체가 부품을 제대로 못 만들면 대기업이 망하고,대기업이 망하면 중소 협력업체들도 같이 문을 닫게 됩니다. "
▼부처 간 이기주의가 심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비정신이 절실한 까닭입니다. 내가 중요한 만큼 상대방도 중요하고,내가 속한 곳이 중요한 곳인 만큼 상대편의 조직도 중요하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나와 내 조직에 되돌아오는 게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윈윈'하는 것이죠.나는 이기고 상대방은 지게 만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서로 더 존중하면서 함께 잘 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
▼선비정신을 배우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됩니까.
"성공하려면 실력도 쌓아야 하지만,남도 견제하고 편법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선비정신을 익히면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게 성공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 내가 속한 공동체가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사회의 행복이라는 파이를 키워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공무원 낙하산이나 전관예우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 운이 좋아서 능력보다 오랫동안 공직에 머물렀습니다. 업무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었죠.그때 퇴직 후에 필요한 것은 돈,건강,일 세 가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대개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죠.퇴직 이후에 좋은 자리로 가려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거리를 찾으라고 조언해주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남들이 가치를 인정해주는 일이면 더 좋겠죠.이제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에 은퇴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아야 합니다. 은퇴 이후 삶이 인생 전체의 성패와 직결된다고 봅니다. "
▼무상복지 논쟁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공자님 말씀에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謀其政)'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책을 논할 위치에 있지 않으면 섣불리 말하지 마라'고 해석할 수 있죠.솔직히 현직을 떠난 지 오래된 제가 지금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
◆주요 약력
△1945년 경북 상주 출생 △중앙고,서울대 사학과 △제10회 행정고시 합격(1971년)△경제기획원 예산실 총괄심의관(1994년) △통계청장(1997년)△조달청장(1999년)△기획예산처 차관(2000~2002년)△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2002~2004년)△기획예산처 장관(2004~2005년)
안동=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3)
"선비정신의 다른 말은 `윈윈`…나를 낮추고 남을 높여야 성공"
● 장관 퇴임 후 유림으로…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행복의 파이를 키워라
공동체가 잘 돼야 나도 잘 돼…서로 존중하는 길 찾아야
기업의 선비정신은 '상생'
대기업-中企 입장 바꿔 생각…어느 한쪽 일방적 양보는 곤란
행복의 파이를 키워라
공동체가 잘 돼야 나도 잘 돼…서로 존중하는 길 찾아야
기업의 선비정신은 '상생'
대기업-中企 입장 바꿔 생각…어느 한쪽 일방적 양보는 곤란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이 흰 두루마기 옷자락을 날리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김 이사장은 "선비정신은 개인은 물론 기업간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동=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도산서원.조선 중기 성리학을 완성한 퇴계 이황(李滉) 선생이 만년에 머물며 제자를 길러냈던 곳이다. 여름 한낮의 열기는 서원 앞을 흐르는 낙동강의 물줄기마저 더디게 만드는 것 같다. 인터뷰 약속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까. 한 노인장이 천천히 서원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흰 두루마기 옷자락을 날리며 꼬장꼬장하게 걷는 것이 옛 서당의 훈장 모습 그대로다.
한국국학진흥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66)."한국 정신문화의 1번지 도산서원에 잘 오셨습니다"라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기자의 입에서는 불쑥 "네,장관님"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로서의 그에 대한 기억이 더 또렷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관료생활을 마친 뒤 로펌 고문이나 대학 석좌교수 등으로 경력을 이어가게 마련인데,속세를 멀리하고 이런 골짜기까지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선비수련원 이사장은 어떻게 맡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서울대에서 사학을 전공할 때부터 유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 안동을 자주 찾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게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이라는 직함은 정말 가당치 않은 것이었죠.그러나 안동 유림들은 제가 유학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실력 있는 행정 관료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1년간 고사했지만 결국 2008년 3월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저를 이사장으로 선임했습니다. "
▼국학진흥원장이시기도 한데 국학이 뭔가요.
"국학(國學)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모든 고문서와 고문헌 같은 기록물을 활용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옛 기록물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유학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진흥원은 사실상 유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직접 강의도 하시는 것 같던데요.
"쑥스럽지만 선비정신을 알리기 위해 직접 강의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기업인들도 선비정신을 알기 위해 이곳을 자주 찾습니다. 최근에는 KT 임원 35명이 1박2일간의 교육 과정에 입소해 '21세기 나의 삶과 선비정신'이라는 제 강의를 들었는데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정부 부처에서 현실 정책을 폈던 경험이 있다 보니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선비정신이란 어떤 것입니까.
"한국은 이제 선진국에 가까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됐지만,행복지수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지하철 '개똥녀'니 '쩍벌남'이니 하는 불쾌한 말들은 남을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죠.모두들 자신만 행복하면 되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선비정신은 한마디로 나를 낮추는 '겸손'과 남을 배려하는 '공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
▼기업에서도 선비정신이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요즘 많이 나오는 상생과 동반성장도 선비정신의 기반 속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기업이 자기 이익만 극대화시키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치의 양보와 배려도 없다면 결국 모두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대기업이 중소 협력업체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선비정신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죠.중소 협력업체 역시 대기업의 입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중소 협력업체가 부품을 제대로 못 만들면 대기업이 망하고,대기업이 망하면 중소 협력업체들도 같이 문을 닫게 됩니다. "
▼부처 간 이기주의가 심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비정신이 절실한 까닭입니다. 내가 중요한 만큼 상대방도 중요하고,내가 속한 곳이 중요한 곳인 만큼 상대편의 조직도 중요하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나와 내 조직에 되돌아오는 게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윈윈'하는 것이죠.나는 이기고 상대방은 지게 만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서로 더 존중하면서 함께 잘 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
▼선비정신을 배우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됩니까.
"성공하려면 실력도 쌓아야 하지만,남도 견제하고 편법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선비정신을 익히면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게 성공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 내가 속한 공동체가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사회의 행복이라는 파이를 키워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공무원 낙하산이나 전관예우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 운이 좋아서 능력보다 오랫동안 공직에 머물렀습니다. 업무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었죠.그때 퇴직 후에 필요한 것은 돈,건강,일 세 가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대개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죠.퇴직 이후에 좋은 자리로 가려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거리를 찾으라고 조언해주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남들이 가치를 인정해주는 일이면 더 좋겠죠.이제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에 은퇴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아야 합니다. 은퇴 이후 삶이 인생 전체의 성패와 직결된다고 봅니다. "
▼무상복지 논쟁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공자님 말씀에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謀其政)'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책을 논할 위치에 있지 않으면 섣불리 말하지 마라'고 해석할 수 있죠.솔직히 현직을 떠난 지 오래된 제가 지금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
◆주요 약력
△1945년 경북 상주 출생 △중앙고,서울대 사학과 △제10회 행정고시 합격(1971년)△경제기획원 예산실 총괄심의관(1994년) △통계청장(1997년)△조달청장(1999년)△기획예산처 차관(2000~2002년)△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2002~2004년)△기획예산처 장관(2004~2005년)
안동=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