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취임 100일 맞은 최광식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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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취임 100일 맞은 최광식 문화재청장
中ㆍ日은 민간이 앞장…문화재 환수 기업도 나서야 日소장 조선왕실의궤 7월초 반환, 외규장각도서 이어 또하나의 경사 `숭례문 화재` 불행한 사건 계기로 우리문화에 대한 국민관심 살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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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5.27 17:03:39 |
그의 별명은 `을지문덕`이다.
180㎝의 장신에 기골이 장대해서만 붙은 별명은 아니다. 지난 2003년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 사태가 불거졌을 때 그는 수나라를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처럼 중국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당시 고구려역사왜곡대책위원장을 맡은 그가 물은 것은 딱 한 가지였다.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 제사를 지낸 적 있느냐고?" 이 질문에 중국 측은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왕조의 정통성을 따질 때 제사를 누가 지내는지는 아주 중요한 사안입니다. 동명왕 제사를 안 지내면서 어떻게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바로 `현대판 을지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최광식 문화재청장(58)이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장 시절에도 큰일을 많이 치렀다.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담 업무만찬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매끄럽게 진행한 데 이어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실무도 맡았다. 그런 그가 `말도 말고 탈도 많은` 문화재청장에 오른 지 100일이 됐다. 취임하자마자 그는 일본 궁내청 소재 조선왕실의궤 반환, 광화문 현판 재제작, 숭례문 복원 등 굵직굵직한 현안을 떠안았다. 여기에다 10월 2일 문화재청 개청 50주년을 앞두고 각종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초여름 기운이 완연한 최근 광화문 뒤쪽에 자리잡은 고궁박물관에서 그를 만났다.
-(박물관장 때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G20 정상회의 환영만찬이 기발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 아이디어를 냈지요. 외국에서는 베르사유궁이나 루브르에서 정상회담을 많이 합니다. 금융 등 무거운 이슈를 얘기할 때는 더욱 부드럽게 접근하는 거죠. 더구나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처음에는 경복궁에서 하자고 했는데 날씨가 춥고 저녁이어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 때문에 박물관으로 정했지요.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는데.
▶업무만찬이 끝난 뒤 제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스터 프레지턴드, 박물관 인상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한국 문화가 이렇게 독특한지 몰랐다. 한국에 또 이런 훌륭한 문화시설이 있었느냐"며 감탄하더군요. 나중에 영상을 보니 오바마 대통령이 자리에서 혼잣말로 `어메이징`(amazing) `그레이트`(great) `판타스틱`(fantastic)이라고 하는 게 보입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만찬 중 세계 정상들이 자기에게 이것저것 물어봐서 뿌듯했다고 하더군요.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는 정상들이 보기에도 한국 문화가 독특하다는 얘기입니다. 아직도 외국인들은 한국이 잘살긴 하지만 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아류로 보는 측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 문화재를 보면 생각이 바뀝니다.
-G20 정상회의 말고 중앙박물관장으로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을 들자면.
180㎝의 장신에 기골이 장대해서만 붙은 별명은 아니다. 지난 2003년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 사태가 불거졌을 때 그는 수나라를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처럼 중국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당시 고구려역사왜곡대책위원장을 맡은 그가 물은 것은 딱 한 가지였다.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 제사를 지낸 적 있느냐고?" 이 질문에 중국 측은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왕조의 정통성을 따질 때 제사를 누가 지내는지는 아주 중요한 사안입니다. 동명왕 제사를 안 지내면서 어떻게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바로 `현대판 을지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최광식 문화재청장(58)이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장 시절에도 큰일을 많이 치렀다.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담 업무만찬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매끄럽게 진행한 데 이어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실무도 맡았다. 그런 그가 `말도 말고 탈도 많은` 문화재청장에 오른 지 100일이 됐다. 취임하자마자 그는 일본 궁내청 소재 조선왕실의궤 반환, 광화문 현판 재제작, 숭례문 복원 등 굵직굵직한 현안을 떠안았다. 여기에다 10월 2일 문화재청 개청 50주년을 앞두고 각종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초여름 기운이 완연한 최근 광화문 뒤쪽에 자리잡은 고궁박물관에서 그를 만났다.
-(박물관장 때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G20 정상회의 환영만찬이 기발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 아이디어를 냈지요. 외국에서는 베르사유궁이나 루브르에서 정상회담을 많이 합니다. 금융 등 무거운 이슈를 얘기할 때는 더욱 부드럽게 접근하는 거죠. 더구나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처음에는 경복궁에서 하자고 했는데 날씨가 춥고 저녁이어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 때문에 박물관으로 정했지요.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는데.
▶업무만찬이 끝난 뒤 제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스터 프레지턴드, 박물관 인상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한국 문화가 이렇게 독특한지 몰랐다. 한국에 또 이런 훌륭한 문화시설이 있었느냐"며 감탄하더군요. 나중에 영상을 보니 오바마 대통령이 자리에서 혼잣말로 `어메이징`(amazing) `그레이트`(great) `판타스틱`(fantastic)이라고 하는 게 보입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만찬 중 세계 정상들이 자기에게 이것저것 물어봐서 뿌듯했다고 하더군요.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는 정상들이 보기에도 한국 문화가 독특하다는 얘기입니다. 아직도 외국인들은 한국이 잘살긴 하지만 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아류로 보는 측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 문화재를 보면 생각이 바뀝니다.
-G20 정상회의 말고 중앙박물관장으로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을 들자면.
▶고려불화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전시죠. 한국 아름다움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려불화` 전시를 보기 전에는 한국 아름다움을 자연스러움과 단순함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고려문화는 화려하고 섬세하고 우아합니다. 외국사람들도 깜짝 놀랐어요. 세계에서 이런 걸 처음 본다고.
-박물관장 때도 일복이 많으셨는데, 청장에 취임한 후에도 현안이 많습니다.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대통령이 큰일을 하셨죠. 실무적으로는 지난해 말 제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있을 때 진행됐습니다. 사실 20년간 한 권만 돌려주고 전혀 진전이 없었잖습니까. 문화재청에 오니까 1965년 한ㆍ일협정 때도 못왔던 조선왕실의궤도 오고…, 불법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이렇게 많이 온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근에는 6명으로 구성된 국외문화재팀이 문화재청에 생겼습니다. 있는 걸 줄이는 판에 오히려 문화재 환수 인력은 늘어나고 있는 셈이죠. 이 조직은 문화재 환수를 총괄하는 행정조직이고 민간에 환수재단을 만들려고 합니다. 일종의 투 트랙이죠. 국제법 전문가와 시민운동가,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환수재단을 만들어서 정치적으로 환수가 어려운 문화재는 시장에서 구입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민간 차원에서 문화재를 사오는 사례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간송 전형필 선생 같은 분이 계셨지만.
▶중국에서는 화교들이 많이 사고 일본에서는 기업이 나서서 자국의 문화재를 환수합니다. 옛날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했을 때 쿠웨이트의 중요한 유물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나중에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나오자 쿠웨이트 왕실이 사들였습니다. 공주가 박물관장이었죠. 세계 유수 박물관 한국실에 가보면 문화 차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일본실과 중국실은 자국 유물이 많은데 한국실에는 유물이 없어요. 많은 사람이 저에게 중앙박물관은 뭐하느냐고 질책을 했죠. 유물을 빌려 주어서라도 채우라고 말입니다. 사실 중국실과 일본실은 그 나라 동포나 기업이 기증한 거예요. 우리는 이런 점이 약합니다.
-문화재가 반환되고 나니 서로 자기가 소장하겠다고 나서는 데가 많은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온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어람용(御覽用)`이기 때문에 전시도 하겠지만 디지털 자료도 만들고 연구 자료로서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겁니다. 일본 궁내청에서 반환되는 도서도 보물로 지정되겠죠. 어디다 둘 것이냐 소장처와 관련한 문제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보관시설입니다. 시설이 좋아야 도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문화재위원이 심의하겠지만 항온ㆍ항습이 되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새로 만들 광화문 현판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청장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광화문 현판에 대해서입니다. 한글로 할 것이냐 한자로 할 것이냐, 글씨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를 묻습니다. 원래 경복궁 복원의 기준이 1880년 고종 중건 당시였는데 많은 분이 한글 얘기를 합니다. 원래대로 두자는 의견도 많습니다. 의견수렴을 더 하고 공청회를 더 거쳐 마지막에 문화재위원들이 심의할 예정입니다. 역사학자들은 한자로 하자는 의견이 많은데, 요즘 학생들은 `광화문`을 거꾸로 `문화광`이라고 읽기도 한다더군요.
-사학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앙박물관장을 맡았고, 문화재청장도 마찬가지인데.
▶박물관장을 할 때도 제일 걱정했던 게 앞에 있던 분들이 고고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분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박물관이라고 하면 고고학이나 미술사를 생각했죠. 그런데 히스토리라는 게 어원상 `스토리(story)`입니다.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죠. 고고학이나 미술사가 구슬 하나하나에 천착한다면 역사학자들은 구슬을 엮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령 `백제금동대향로`를 고고학자들이 발굴했을 때는 유물의 크기나 출처가 중요하죠. 미술사학자들은 연꽃 봉황, 오악사의 미적 가치를 따지고, 역사학자는 용과 봉황, 신선이 있으니 당시 유교와 불교 도교가 융화돼 있었구나 추정할 수 있는 것이죠.
-중앙박물관장과 문화재청장 자리 차이는 어떨 때 느낍니까.
▶신문을 볼 때 확실히 다릅니다. 중앙박물관장일 때는 "오늘 뭐가 안 났나" 하고 신문을 봅니다. 좋은 문화재를 국민에게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많이 하니까 신문에 나올수록 좋지요. 그런데 문화재청장이 돼서는 "오늘 뭐 안 나왔겠지" 하면서 신문을 봅니다. 기사 보기가 두렵죠. 하하.
-숭례문이 불에 타고 나서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만 소중한 문화재를 잃고 얻은 귀한 교훈이 아닐까요.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 우리 문화재를 많이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화재는 느껴야지 달달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연도와 양식을 외워서는 자기 것이 안 됩니다. 문화재는 지식보다는 감성입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국 비즈니스맨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 나누는데 상대방이 우리나라 것을 물을 때 대답할 수준은 돼야지요.
-문화재청이 출범한 지도 벌써 50년이 됐습니다. 준비하고 있는 행사가 있습니까.
▶문화재청은 1961년 문화재관리국으로 출범한 뒤 사라지거나 훼손된 문화재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데 우선 힘써왔어요. 최근에는 문화유산의 활용과 관광 자원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10월 2일이 문화재청이 출범한 지 꼭 50년 되는 날인데 이날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헤리티지 패션쇼를 열 계획입니다. 고려청자와 대장경을 현대적인 패션에 활용하는 자리죠. 펜디가 2007년 만리장성에서 패션쇼를 열었는데, 문화재청 50주년의 의미를 담은 것이니 더 뜻깊은 행사입니다.
■ He is…
1953년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 사학과와 동 대학원 석ㆍ박사(한국고대사) 과정을 거친 역사학자. 한국역사민속학회장, 한국고대사학회장 등을 지냈다. 2003년 중국의 `동북공정` 사태가 불거지자 고구려역사왜곡대책위원장을 맡아 고구려연구재단(동북아역사재단의 전신) 출범을 이끌었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돼 `실세 관장`으로 3년간 장수했다. 지난해 11월 G20 서울정상회의 만찬장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유치해 대성공을 이끌어내면서 추진력과 행정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대담 = 황국성 문화부장 / 정리 = 이향휘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박물관장 때도 일복이 많으셨는데, 청장에 취임한 후에도 현안이 많습니다.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대통령이 큰일을 하셨죠. 실무적으로는 지난해 말 제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있을 때 진행됐습니다. 사실 20년간 한 권만 돌려주고 전혀 진전이 없었잖습니까. 문화재청에 오니까 1965년 한ㆍ일협정 때도 못왔던 조선왕실의궤도 오고…, 불법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이렇게 많이 온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근에는 6명으로 구성된 국외문화재팀이 문화재청에 생겼습니다. 있는 걸 줄이는 판에 오히려 문화재 환수 인력은 늘어나고 있는 셈이죠. 이 조직은 문화재 환수를 총괄하는 행정조직이고 민간에 환수재단을 만들려고 합니다. 일종의 투 트랙이죠. 국제법 전문가와 시민운동가,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환수재단을 만들어서 정치적으로 환수가 어려운 문화재는 시장에서 구입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민간 차원에서 문화재를 사오는 사례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간송 전형필 선생 같은 분이 계셨지만.
▶중국에서는 화교들이 많이 사고 일본에서는 기업이 나서서 자국의 문화재를 환수합니다. 옛날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했을 때 쿠웨이트의 중요한 유물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나중에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나오자 쿠웨이트 왕실이 사들였습니다. 공주가 박물관장이었죠. 세계 유수 박물관 한국실에 가보면 문화 차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일본실과 중국실은 자국 유물이 많은데 한국실에는 유물이 없어요. 많은 사람이 저에게 중앙박물관은 뭐하느냐고 질책을 했죠. 유물을 빌려 주어서라도 채우라고 말입니다. 사실 중국실과 일본실은 그 나라 동포나 기업이 기증한 거예요. 우리는 이런 점이 약합니다.
-문화재가 반환되고 나니 서로 자기가 소장하겠다고 나서는 데가 많은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온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어람용(御覽用)`이기 때문에 전시도 하겠지만 디지털 자료도 만들고 연구 자료로서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겁니다. 일본 궁내청에서 반환되는 도서도 보물로 지정되겠죠. 어디다 둘 것이냐 소장처와 관련한 문제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보관시설입니다. 시설이 좋아야 도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문화재위원이 심의하겠지만 항온ㆍ항습이 되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새로 만들 광화문 현판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청장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광화문 현판에 대해서입니다. 한글로 할 것이냐 한자로 할 것이냐, 글씨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를 묻습니다. 원래 경복궁 복원의 기준이 1880년 고종 중건 당시였는데 많은 분이 한글 얘기를 합니다. 원래대로 두자는 의견도 많습니다. 의견수렴을 더 하고 공청회를 더 거쳐 마지막에 문화재위원들이 심의할 예정입니다. 역사학자들은 한자로 하자는 의견이 많은데, 요즘 학생들은 `광화문`을 거꾸로 `문화광`이라고 읽기도 한다더군요.
-사학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앙박물관장을 맡았고, 문화재청장도 마찬가지인데.
▶박물관장을 할 때도 제일 걱정했던 게 앞에 있던 분들이 고고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분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박물관이라고 하면 고고학이나 미술사를 생각했죠. 그런데 히스토리라는 게 어원상 `스토리(story)`입니다.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죠. 고고학이나 미술사가 구슬 하나하나에 천착한다면 역사학자들은 구슬을 엮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령 `백제금동대향로`를 고고학자들이 발굴했을 때는 유물의 크기나 출처가 중요하죠. 미술사학자들은 연꽃 봉황, 오악사의 미적 가치를 따지고, 역사학자는 용과 봉황, 신선이 있으니 당시 유교와 불교 도교가 융화돼 있었구나 추정할 수 있는 것이죠.
-중앙박물관장과 문화재청장 자리 차이는 어떨 때 느낍니까.
▶신문을 볼 때 확실히 다릅니다. 중앙박물관장일 때는 "오늘 뭐가 안 났나" 하고 신문을 봅니다. 좋은 문화재를 국민에게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많이 하니까 신문에 나올수록 좋지요. 그런데 문화재청장이 돼서는 "오늘 뭐 안 나왔겠지" 하면서 신문을 봅니다. 기사 보기가 두렵죠. 하하.
-숭례문이 불에 타고 나서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만 소중한 문화재를 잃고 얻은 귀한 교훈이 아닐까요.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 우리 문화재를 많이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화재는 느껴야지 달달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연도와 양식을 외워서는 자기 것이 안 됩니다. 문화재는 지식보다는 감성입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국 비즈니스맨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 나누는데 상대방이 우리나라 것을 물을 때 대답할 수준은 돼야지요.
-문화재청이 출범한 지도 벌써 50년이 됐습니다. 준비하고 있는 행사가 있습니까.
▶문화재청은 1961년 문화재관리국으로 출범한 뒤 사라지거나 훼손된 문화재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데 우선 힘써왔어요. 최근에는 문화유산의 활용과 관광 자원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10월 2일이 문화재청이 출범한 지 꼭 50년 되는 날인데 이날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헤리티지 패션쇼를 열 계획입니다. 고려청자와 대장경을 현대적인 패션에 활용하는 자리죠. 펜디가 2007년 만리장성에서 패션쇼를 열었는데, 문화재청 50주년의 의미를 담은 것이니 더 뜻깊은 행사입니다.
■ He is…
1953년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 사학과와 동 대학원 석ㆍ박사(한국고대사) 과정을 거친 역사학자. 한국역사민속학회장, 한국고대사학회장 등을 지냈다. 2003년 중국의 `동북공정` 사태가 불거지자 고구려역사왜곡대책위원장을 맡아 고구려연구재단(동북아역사재단의 전신) 출범을 이끌었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돼 `실세 관장`으로 3년간 장수했다. 지난해 11월 G20 서울정상회의 만찬장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유치해 대성공을 이끌어내면서 추진력과 행정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대담 = 황국성 문화부장 / 정리 = 이향휘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