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 대통령감 있으면 봉사할 용의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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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영연구소: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바라는 후보상과 그 후보가 어떠한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김종인: 경제 자체는 이제는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싫던 좋던 간에 그 동안에 많이 성장했다. 경제구조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졌기 때문에 정부가 일일이 관여할 때는 지났다. 정부는 이제 시장경제에서 파생되는 결과를 어떻게 조화를 시키느냐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70~80년대 경제정책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가 파생시킨 문제, 양극화와 같은 문제를 해소시켜야 하며,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불안한 사회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경제정책은 시장으로부터 파생된 문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해결해서 한국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에 맞추어져야 한다. 대표적으로 저출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는,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 사이에 역동적 균형을 맞춰나가는, 이런 부분에 지식도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경제가 변하면 사회 자체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사회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8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를 지배할만한 경제력이 있다고 하였는데, 90년대 이후 그 한계가 드러났다. 국민은 훌륭한데 정치는 무기력한 상황이 근래 일본의 상황이라 하는데 그 이유가 정치가 재계의 편의대로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부 자체의 기능을 충실히 실행할 수 있는 강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할 수 있어야 하므로 경제세력과 각종 이익집단 위에 보다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직한 사람, 사전에 한국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을 하고, 이 인식을 바탕으로 준비를 철저히 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 5년 임기가 짧지가 않다. 대통령 되고나서 그때부터 공부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 되기 전 지식이 전부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배울 수도 없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정치경영연구소: 자유주의에 대한 생각과 한국에서의 자유주의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종인: 자유주의 논쟁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각한다. 자유라는 것을 흔히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로 나누어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 볼 때, 경제정책 최고의 목표는 가급적 물질적 자유를 극대화시켜주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이 길을 가다, 빵을 보았을 때 빵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향상시켜주는 것이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의 최상의 목표다. 경제정책에서 물가안정이니 환율이니 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목표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제정책의 최대의 목표도 곧 자유이다. 즉 물질적 자유의 극대화라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는 이렇게 볼 수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제약이 없는 자유를 준다는 것인데, 이는 자유 자체에 침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법을 지켜야한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늘날 사회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끄는 나라들을 보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자유를 어느 정도 속박을 한다. 자기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업에게 지나치게 사회적 책임을 지라는 것도 제대로 된 요구는 아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만을 지게 되면 이윤의 개념이 없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법과 그 사회의 관행을 지키면서 이윤을 최대로 많이 내는 것이며, 그러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야 세금도 많이 낼 것 아닌가. 법은 모든 기업이 기본적으로 잘 지켜야 한다. 그러면 이윤공유제 같은 것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도 철저히 지키고, 하도급법도 철저히 지키면 중소기업, 대기업 동반성장이라는 말도 필요가 없다. 법을 잘 지켜나간다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자유라는 말만 쓰게 되면 애매모호하다. 그러면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이 자유인가? 자유라는 것은 현실적 감각으로 인식해야하는 것이다.
정치경영연구소: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주제나 이슈는?
김종인: 요즘 관심이 가는 분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고민 중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사회라는 것이 그대로 두면 조화가 안 된다. 그래서 조화된 사회라는 말을 쓴다. 흔히 조화로운 사회라는 말을 쓰는데, 사회는 스스로 조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조화된 사회를 이루려면 한국 사회 현재의 여건을 잘 알아야 한다. 각종 이익집단이 생기고, 이들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 집단들이 어떻게 잘 공통분모를 이루느냐 하는 문제에서부터 정부가 고민을 해야 한다. 정당도 같은 맥락에서 노력해야 한다.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이 역동적 균형을 이루려면 결국 사회 안정의 조건과 경제발전의 조건부터 성립되어야 가능하다. 사회 안정이라는 것이 경제발전을 통해서 이루게 되는 것인데, 여기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복지라는 것은 사회 안정을 위한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하다.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이런 균형을 잡기 위해 잘 활용하고 방안을 도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대선후보들이 이런 것을 얼마만큼 공약으로 약속을 하는지 유심히 보고 있다.
정치경영연구소: 어린 시절과 청년기, 성장과정은 어떠하였나?
김종인: 어린 시절은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아주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여러 가지 향유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세 끼 밥 먹고, 학교 다니면 그것도 다행으로 생각되던 시기였다. 여느 사람처럼 나는 고생을 많이 하고 산 사람은 아니다. 집안 환경이라는 것이 자연적으로 어린 시절에 영향을 많이 미칠 수밖에 없는데, 할아버지께서 좀 유별나신 분이기 때문에, 나라와 정치에 관련해서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거에 관심이 많았다.(웃음). 우리나라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국회의원 유세장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유세장을 다니면서 될 사람, 안될 사람 식별을 하고 다녔다.(웃음) 한국의 근대사를 잘 알게 된 계기가 이런 경험에 바탕한다.
기억에 남는 것으로, 56년 이승만, 신익희 대통령 선거에 처음으로 경제구호가 나오게 된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이것이 당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 이후 군에 갔는데, 4.19가 터졌다. 요즘 공직자 병역문제로도 시끄러운데, 병역이라는 문제는 자기 자신과 집안에 분위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아버지가 4살 때 돌아가셨는데, qnqn선망독자였고 법적으로 군대 안 가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 할아버지의 교육이 남자로 태어나서 국방의 의무를 안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신체검사도 안 받고 자원해서 군대를 갔다. 생각해보니 세상이라는 것이 요령껏 사는 사람이 많으면 나라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요령껏 사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 실체가 드러나게 돼있다. 61년 5 · 16이 일어나고 군사통치가 진행되다가 63년에 처음으로 민간인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때 할아버지께서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에 대항하는 야당을 우리집에서 만드셨는데, 62년 12월 그 무렵부터 정치 심부름을 다녔다. 정치를 하려고해서 했던 것이 아니고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1년 동안 정당의 생리를 그때 많이 배우고, 정치인의 행태, 권력자와 야권의 관계도 경험을 하게 되었다. 책과 돈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을 그 때 많이 배웠다. 할아버지께서 63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64년 초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자마자 독일로 유학을 갔다.
학부 때부터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한 가지 편한 것이 한국에 경제학 선배나 스승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선배나 스승의 얘기가 틀려도 선배이고 스승이기 때문에 그것을 공박하기가 힘들다. 이런 것에 구애받을 이유가 없어서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한국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공부를 했다. 유학생활에 힘든 점은 특별히 없었고, 내 성격 상 지도교수들과 많이 다퉜다(웃음). 졸업 무렵 한국에 유신이 시작되었는데 지도교수가 권위주의 체제에서 살기 어려울 텐데 독일에 더 있다가 한국이 변화하면 가라고 했다. 그 때 편히 살려 독일에 온 거 아니다라고 말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나오기 전에 우연찮은 계기로 서강대 재정학 교수 자리가 있다고 해서, 마침 내 전공이 재정학이라 73년에 서강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한국이 60년대 말까지 2차 경제개발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3차로 넘어가는 단계에 돌아왔는데, 이때에는 한국에 적용될 정책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래서 비교적 일찍부터 정부정책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76년 중산층을 위한 재산형성저축제도와 77년 도입된 근로자 사회의료보험 도입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 후 이런 저런 계기가 되어서 80년에 정치에 뛰어들게 되었다.
다음 대통령 될 사람이 진짜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봉사를 해 줄 용의가 있다. 그동안 대통령 출마하고 싶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내가 조언을 해주는 정도에 머물렀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딱 마음에 들고, 이 사람이 되면 참 나라가 잘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자원봉사 하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내 나름대로 구상한 것을 줄 것이다. 받아주고 안 받아주는 것은 당사자 마음인 것이고(웃음).
대한민국 국민들이 굉장히 깨어있어서 흔히들 좌파, 우파, 보수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정서를 제대로 판단을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된 것이 한국에 좌파가 많아서 된 것이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이 된 것도 우파가 많아서 된 것이 아니다. 다음 대통령 나올 사람도 이런 것을 착각하면 안 될 것이다.
정치경영연구소: 한국에 바람직한 경제 롤 모델이 있다면?
김종인: 한국도 나름의 정치경제모델을 정해야하는데 아직 못 정해서 문제다. 예를 들어 영미식이냐 스칸디나비아식이냐, 독일식이냐, 일본식이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하고 실정이 맞지 않고, 여건이 다 다르다. 사회구성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 합당한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한국형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최소한 다음 기회부터는 이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대통령 후보를 찾고 있다. 다음번 대통령이 이 모델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그 다음 사람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에 박정희 대통령 이후에 성공한 대통령이 없는데 그 이유가 있다. 간단한 이유인데, 권력과 물질에 탐욕, 그리고 주변의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이다. 또 이익집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인데, 특히 경제세력이나 이익집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다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 가지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람을 다음 대통령으로 찾아야 한다.
처칠이 얘기한대로 한 나라의 지도자는 세계사, 각 나라의 흥망성쇠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변하는 상황에 어떻게 제대로 된 정책을 조합해서 문제를 풀 것인지가 필요하다. 일단 한국은 대통령만 잘 뽑으면 된다.(웃음)
정치경영연구소: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김종인: 할아버지(가인 김병로)다. 내 할아버지라서가 아니라 이 양반의 삶의 과정을 놓고 보았을 때 세상에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인데 이렇게 살고 간 분이 계시다는 것이 기억에 남고 존경한다.
정치경영연구소: 경제정책가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김종인: 독일에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이란 사람이 있다. 에르하르트의 확신과 소신이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독일경제는 없었을 것이다. 패전 후 독일 경제를 맡았던 영국, 미국 사람들이 독일로 하여금 자유시장경제를 못하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확신에 의해 담판을 져가면서 관철시켜 나갔다. 그래서 오늘날 독일 경제 질서를 확립시켰다.
정치경영연구소: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김종인: 젊은 사람들이 너무 일시적인 쾌락에 도취되지 말고, 정치를 백안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정치를 굉장히 백안시하는 경향이 큰데, 결국 좋든 나쁘던 간에 정치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여의도를 무시해도 결국 여의도 국회라는 곳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곳이다.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은 소시적부터 다른 유혹에 좌우되지 말고 그 방향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해야 나라가 잘되는 것이지, 젊은 세대가 그것을 포기하면 나라 장래가 암담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쓸데없는 것이다는 생각을 제발 안했으면 좋겠다. 사회에 대한 좋은 생각들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영국의 대처 같은 사람도 옥스퍼드에서 화학공부를 하고 식품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이것이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 다시 옥스퍼드 대학으로 돌아가 법률 공부를 했다. 여성운동의 뜻을 가지고 50년대 말(당시 34세)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하이에크의 '노예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안고 다니며 열심히 경제공부를 했다. 처음부터 수상이 되려고 정치를 한 것이 아니지만 결국 수상까지 하게 됐다.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를 실시한 대처리즘이 비판을 받지만, 영국병에 시달리고 있는 자국에 과감한 시장주의 경제를 도입하여 이를 개혁해 나가고자 한 것은 높이 평가를 받는다. 요지는 젊은 시절에서부터 국가,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고 정치에 입문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정치를 포기해선 안 된다.
인터뷰 및 정리: 김남수, 김경미, 양태성 정치경영연구소 연구원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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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경제 자체는 이제는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싫던 좋던 간에 그 동안에 많이 성장했다. 경제구조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졌기 때문에 정부가 일일이 관여할 때는 지났다. 정부는 이제 시장경제에서 파생되는 결과를 어떻게 조화를 시키느냐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70~80년대 경제정책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가 파생시킨 문제, 양극화와 같은 문제를 해소시켜야 하며,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불안한 사회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경제정책은 시장으로부터 파생된 문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해결해서 한국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에 맞추어져야 한다. 대표적으로 저출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는,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 사이에 역동적 균형을 맞춰나가는, 이런 부분에 지식도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경제가 변하면 사회 자체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사회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8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를 지배할만한 경제력이 있다고 하였는데, 90년대 이후 그 한계가 드러났다. 국민은 훌륭한데 정치는 무기력한 상황이 근래 일본의 상황이라 하는데 그 이유가 정치가 재계의 편의대로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부 자체의 기능을 충실히 실행할 수 있는 강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할 수 있어야 하므로 경제세력과 각종 이익집단 위에 보다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직한 사람, 사전에 한국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을 하고, 이 인식을 바탕으로 준비를 철저히 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 5년 임기가 짧지가 않다. 대통령 되고나서 그때부터 공부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 되기 전 지식이 전부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배울 수도 없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정치경영연구소: 자유주의에 대한 생각과 한국에서의 자유주의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종인: 자유주의 논쟁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각한다. 자유라는 것을 흔히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로 나누어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 볼 때, 경제정책 최고의 목표는 가급적 물질적 자유를 극대화시켜주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이 길을 가다, 빵을 보았을 때 빵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향상시켜주는 것이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의 최상의 목표다. 경제정책에서 물가안정이니 환율이니 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목표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제정책의 최대의 목표도 곧 자유이다. 즉 물질적 자유의 극대화라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는 이렇게 볼 수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제약이 없는 자유를 준다는 것인데, 이는 자유 자체에 침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법을 지켜야한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늘날 사회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끄는 나라들을 보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자유를 어느 정도 속박을 한다. 자기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업에게 지나치게 사회적 책임을 지라는 것도 제대로 된 요구는 아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만을 지게 되면 이윤의 개념이 없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법과 그 사회의 관행을 지키면서 이윤을 최대로 많이 내는 것이며, 그러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야 세금도 많이 낼 것 아닌가. 법은 모든 기업이 기본적으로 잘 지켜야 한다. 그러면 이윤공유제 같은 것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도 철저히 지키고, 하도급법도 철저히 지키면 중소기업, 대기업 동반성장이라는 말도 필요가 없다. 법을 잘 지켜나간다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자유라는 말만 쓰게 되면 애매모호하다. 그러면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이 자유인가? 자유라는 것은 현실적 감각으로 인식해야하는 것이다.
정치경영연구소: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주제나 이슈는?
김종인: 요즘 관심이 가는 분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고민 중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사회라는 것이 그대로 두면 조화가 안 된다. 그래서 조화된 사회라는 말을 쓴다. 흔히 조화로운 사회라는 말을 쓰는데, 사회는 스스로 조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조화된 사회를 이루려면 한국 사회 현재의 여건을 잘 알아야 한다. 각종 이익집단이 생기고, 이들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 집단들이 어떻게 잘 공통분모를 이루느냐 하는 문제에서부터 정부가 고민을 해야 한다. 정당도 같은 맥락에서 노력해야 한다.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이 역동적 균형을 이루려면 결국 사회 안정의 조건과 경제발전의 조건부터 성립되어야 가능하다. 사회 안정이라는 것이 경제발전을 통해서 이루게 되는 것인데, 여기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복지라는 것은 사회 안정을 위한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하다.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이런 균형을 잡기 위해 잘 활용하고 방안을 도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대선후보들이 이런 것을 얼마만큼 공약으로 약속을 하는지 유심히 보고 있다.
정치경영연구소: 어린 시절과 청년기, 성장과정은 어떠하였나?
김종인: 어린 시절은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아주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여러 가지 향유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세 끼 밥 먹고, 학교 다니면 그것도 다행으로 생각되던 시기였다. 여느 사람처럼 나는 고생을 많이 하고 산 사람은 아니다. 집안 환경이라는 것이 자연적으로 어린 시절에 영향을 많이 미칠 수밖에 없는데, 할아버지께서 좀 유별나신 분이기 때문에, 나라와 정치에 관련해서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거에 관심이 많았다.(웃음). 우리나라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국회의원 유세장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유세장을 다니면서 될 사람, 안될 사람 식별을 하고 다녔다.(웃음) 한국의 근대사를 잘 알게 된 계기가 이런 경험에 바탕한다.
기억에 남는 것으로, 56년 이승만, 신익희 대통령 선거에 처음으로 경제구호가 나오게 된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이것이 당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 이후 군에 갔는데, 4.19가 터졌다. 요즘 공직자 병역문제로도 시끄러운데, 병역이라는 문제는 자기 자신과 집안에 분위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아버지가 4살 때 돌아가셨는데, qnqn선망독자였고 법적으로 군대 안 가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 할아버지의 교육이 남자로 태어나서 국방의 의무를 안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신체검사도 안 받고 자원해서 군대를 갔다. 생각해보니 세상이라는 것이 요령껏 사는 사람이 많으면 나라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요령껏 사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 실체가 드러나게 돼있다. 61년 5 · 16이 일어나고 군사통치가 진행되다가 63년에 처음으로 민간인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때 할아버지께서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에 대항하는 야당을 우리집에서 만드셨는데, 62년 12월 그 무렵부터 정치 심부름을 다녔다. 정치를 하려고해서 했던 것이 아니고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1년 동안 정당의 생리를 그때 많이 배우고, 정치인의 행태, 권력자와 야권의 관계도 경험을 하게 되었다. 책과 돈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을 그 때 많이 배웠다. 할아버지께서 63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64년 초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자마자 독일로 유학을 갔다.
학부 때부터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한 가지 편한 것이 한국에 경제학 선배나 스승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선배나 스승의 얘기가 틀려도 선배이고 스승이기 때문에 그것을 공박하기가 힘들다. 이런 것에 구애받을 이유가 없어서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한국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공부를 했다. 유학생활에 힘든 점은 특별히 없었고, 내 성격 상 지도교수들과 많이 다퉜다(웃음). 졸업 무렵 한국에 유신이 시작되었는데 지도교수가 권위주의 체제에서 살기 어려울 텐데 독일에 더 있다가 한국이 변화하면 가라고 했다. 그 때 편히 살려 독일에 온 거 아니다라고 말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나오기 전에 우연찮은 계기로 서강대 재정학 교수 자리가 있다고 해서, 마침 내 전공이 재정학이라 73년에 서강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한국이 60년대 말까지 2차 경제개발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3차로 넘어가는 단계에 돌아왔는데, 이때에는 한국에 적용될 정책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래서 비교적 일찍부터 정부정책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76년 중산층을 위한 재산형성저축제도와 77년 도입된 근로자 사회의료보험 도입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 후 이런 저런 계기가 되어서 80년에 정치에 뛰어들게 되었다.
다음 대통령 될 사람이 진짜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봉사를 해 줄 용의가 있다. 그동안 대통령 출마하고 싶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내가 조언을 해주는 정도에 머물렀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딱 마음에 들고, 이 사람이 되면 참 나라가 잘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자원봉사 하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내 나름대로 구상한 것을 줄 것이다. 받아주고 안 받아주는 것은 당사자 마음인 것이고(웃음).
대한민국 국민들이 굉장히 깨어있어서 흔히들 좌파, 우파, 보수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정서를 제대로 판단을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된 것이 한국에 좌파가 많아서 된 것이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이 된 것도 우파가 많아서 된 것이 아니다. 다음 대통령 나올 사람도 이런 것을 착각하면 안 될 것이다.
정치경영연구소: 한국에 바람직한 경제 롤 모델이 있다면?
김종인: 한국도 나름의 정치경제모델을 정해야하는데 아직 못 정해서 문제다. 예를 들어 영미식이냐 스칸디나비아식이냐, 독일식이냐, 일본식이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하고 실정이 맞지 않고, 여건이 다 다르다. 사회구성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 합당한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한국형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최소한 다음 기회부터는 이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대통령 후보를 찾고 있다. 다음번 대통령이 이 모델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그 다음 사람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에 박정희 대통령 이후에 성공한 대통령이 없는데 그 이유가 있다. 간단한 이유인데, 권력과 물질에 탐욕, 그리고 주변의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이다. 또 이익집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인데, 특히 경제세력이나 이익집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다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 가지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람을 다음 대통령으로 찾아야 한다.
처칠이 얘기한대로 한 나라의 지도자는 세계사, 각 나라의 흥망성쇠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변하는 상황에 어떻게 제대로 된 정책을 조합해서 문제를 풀 것인지가 필요하다. 일단 한국은 대통령만 잘 뽑으면 된다.(웃음)
정치경영연구소: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김종인: 할아버지(가인 김병로)다. 내 할아버지라서가 아니라 이 양반의 삶의 과정을 놓고 보았을 때 세상에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인데 이렇게 살고 간 분이 계시다는 것이 기억에 남고 존경한다.
가인 김병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호는 가인(街人). 우리나라의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1913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한 후 1914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1916년 경성법학전문학교 조교수, 1917년 보성전문학교 강사를 거친 다음, 1919년 서울에서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이 기간중 조선변호사협회 회장과 조선인변호사회장을 역임하면서 왕성한 법정투쟁을 하였다. 3·1운동 사건을 비롯하여 단천사건, 간도사건, 정의부사건, 광복단사건, 105인사건, 흥사단사건, 안창호사건 등 매년 100여 건에 달하는 변론으로 독립투사 구출에 진력하였다. 또한 민족정기 앙양과 인권옹호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북풍회(北風會)의 창설을 비롯하여 이상재·안재홍 등과 함께 신간회에 관여하여 직접적인 민족해방운동에 나섰다. 1945년 한국민주당의 대표총무위원을 지냈고, 이듬해 남조선 과도정부의 사법부장, 정부수립 이후에는 초대 대법원장 겸 법전편찬위원장으로서 법질서 확립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55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962년에는 문화훈장 대한민국장과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만년에는 국민당을 창당하는 등 재야 정당통합에 심혈을 기울였다. 항상 후배 법관들에게 청렴과 강직을 강조한 그는 소신있는 법관, 강직한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철저히 지켰으며, 해박한 법률지식의 소유자였다. <출처-브리태니커> |
김종인: 독일에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이란 사람이 있다. 에르하르트의 확신과 소신이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독일경제는 없었을 것이다. 패전 후 독일 경제를 맡았던 영국, 미국 사람들이 독일로 하여금 자유시장경제를 못하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확신에 의해 담판을 져가면서 관철시켜 나갔다. 그래서 오늘날 독일 경제 질서를 확립시켰다.
정치경영연구소: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김종인: 젊은 사람들이 너무 일시적인 쾌락에 도취되지 말고, 정치를 백안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정치를 굉장히 백안시하는 경향이 큰데, 결국 좋든 나쁘던 간에 정치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여의도를 무시해도 결국 여의도 국회라는 곳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곳이다.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은 소시적부터 다른 유혹에 좌우되지 말고 그 방향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해야 나라가 잘되는 것이지, 젊은 세대가 그것을 포기하면 나라 장래가 암담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쓸데없는 것이다는 생각을 제발 안했으면 좋겠다. 사회에 대한 좋은 생각들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영국의 대처 같은 사람도 옥스퍼드에서 화학공부를 하고 식품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이것이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 다시 옥스퍼드 대학으로 돌아가 법률 공부를 했다. 여성운동의 뜻을 가지고 50년대 말(당시 34세)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하이에크의 '노예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안고 다니며 열심히 경제공부를 했다. 처음부터 수상이 되려고 정치를 한 것이 아니지만 결국 수상까지 하게 됐다.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를 실시한 대처리즘이 비판을 받지만, 영국병에 시달리고 있는 자국에 과감한 시장주의 경제를 도입하여 이를 개혁해 나가고자 한 것은 높이 평가를 받는다. 요지는 젊은 시절에서부터 국가,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고 정치에 입문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정치를 포기해선 안 된다.
인터뷰 및 정리: 김남수, 김경미, 양태성 정치경영연구소 연구원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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