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 대통령감 있으면 봉사할 용의 있다"-1
본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만났다. 그는 박정희 정부 시절 의료보험을 도입하고, 전두환 정부 시절 헌법 119조 2항, 소위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고, 5.8조치를 통해 90년대 유례없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가져온 것으로도 유명한 경제정책전문가이다. 이런 그를 혹자는 한국 최고의 경세가(經世家)라 부르기도 한다.
김종인은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일천하고, '잘 살아보세!'라는 경제성장의 신화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을 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1980년대 재계의 힘이 갈수록 커져가는 시점에 경제세력의 무한확장욕구를 억제할 경제민주화 조항을 헌법에 집어넣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제정책전문가가 경제활동을 제한할 소지가 높은 조항을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헌법"에 집어넣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는 자유주의자가 아닌 게 아닐까? 이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그가 생각하는 자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배고픈 사람이 길을 가다, 빵을 보았을 때 빵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향상시켜주는 것이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의 최상의 목표다. 경제정책에서 물가안정이니 환율이니 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목표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제정책의 최대의 목표도 곧 자유이다."라는 답을 들려주었다. 여기서 이해가 되었다. 경제민주화 조항을 대한민국 헌법에 왜 굳이 집어넣었는지 말이다. 빵 하나를 훔친 이유로 평생을 죄인처럼 도망다녀야했던 장발장이 우리 사회에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쯤에서 그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오해를 받았을지 짐작이 갔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은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 헌법이 사회주의적인 헌법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나를 사회주의자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런가? 독일이 social market economy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이지 socialistic market economy, 즉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가 아니다. 이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인데,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안 되는 일들도 많다. 이것을 해결해야하고 이것을 내버려둬서 비사회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시장경제 자체가 깨진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작지만 경제세력과 이익집단 위에 있는 강력한 정부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질문을 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그는 사회적인 것과 사회주의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 그는 정책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의 실험 대상은 인간이다. 인간과 사회가 실험의 대상이기 때문에 굉장히 용의주도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정책 하나를 잘못해서 대한민국의 수천만 명이 고통을 받으면 그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사회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아가면서도 여러 정책들을 계속 밀어붙일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궁금했었는데, 그 정책들이 사람을 향해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책이 사람을 향해 있다.' 이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을 향한 정책을 만드는 이에게 내 마음도 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 대통령 될 사람이 진짜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봉사를 해 줄 용의가 있다. 그동안 대통령 출마하고 싶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내가 조언을 해주는 정도에 머물렀었는데, 이 사람이 되면 참 나라가 잘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자원봉사 하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내 나름대로 구상한 것을 줄 것이다. 받아주고 안 받아주는 것은 당사자 마음인 것이고. 한국에 합당한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한국형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최소한 다음 기회부터는 이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대통령 후보를 찾고 있다."
놀라웠다. 이런 이야기까지 할 줄이야.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도 알고, 우리도 알고,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도 알 것이 뻔한 상황에서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연거푸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정치에 눈을 뜨고, 우리나라 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사를 지켜봐온 그가, 다음 대선에서 이제까지 구상해온 정책패키지들을 마음 놓고 맡길 선수를 찾고 있다고 한다.
거참. 그 선수가 누가 될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혹시 당신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 지금 당장 찾아가보시라. 다만 주의사항이 있다면, 그를 찾아가기 전 아래 인터뷰를 아주 꼼꼼히 읽어볼 것! 특히 그가 말한 경제적 자유, 정치적 자유, 정책가의 자질에 대해서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어볼 것.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낭패를 당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왜냐고? 그 역시 아래 인터뷰를 꼼꼼히 읽어볼 것. 힌트가 있다면 그는 자유인이라는 것! 그것도 인간과 사회를 아주 많이 사랑한!
[인터뷰 전문]
정치경영연구소: 헌법 제119조 2항, 소위 김종인 조항이라 불리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빼놓을 수가 없다. 87년 개헌 당시 이 조항을 넣게 된 계기와 상황은 어떠하였나?
김종인: 우리나라는 1962년에서부터 6차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압축성장을 이루었다. 오늘날 선진국들이 100년 이상 걸려서 이룩한 산업화를 한국은 40~50년 만에 달성한 것이다. 한국은 원래 자원이 없는 나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제한된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빠른 성장을 하기 위해 5개년 계획을 마련, 자원을 배분한 것이다. 빠른 성장을 위해 자원을 배분하다보니 몇몇 기업에게만 자원배분의 혜택이 돌아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국의 재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재벌의 탄생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경제가 발전하면 물질이 풍요로워지고 이는 곧 국민의 부의 증가와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국민의 행복의 증대로 생각하기 쉽다. 이 부분에서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경제의 부가 증가한다는 것은 부 자체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바탕으로 그것을 소유한 자들의 정치사회적 힘도 같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재벌과 경제세력의 성장 과정을 보면, 60년대는 태동기, 70년대는 확장기, 80년대는 안정기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 중반부터 내가 생각했던 것이 6차 경제개발 5개년 개발 계획이 끝나는 90년대 초에 가면 정치세력과 경제세력의 관계가 역전을 하는 상황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정치세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정치세력이라는 것이 당면한 정치사회적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이해관계를 유지해 나갈 필요도 있고, 여러 가지 법적 조치도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것이 정치세력이다. 그런데 경제세력의 힘이 우위에 있다면 그에 반하는 정책이나 법적 조치는 경제세력의 반발로 인해 무산되거나 관철되지 못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1935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 사회보장법 바로 전에 뉴딜의 근간이라 불리는 농업조정법, 국가산업부흥법(NIRA)등 1차 뉴딜의 위기극복정책을 펼쳤으나 기존 기득권세력이 위헌소송을 제기해 보수적 판사들의 판결에 따라 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이는 경제세력이 정치세력을 압도한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70년대 한국 재벌의 상황을 보면, 이후의 상황은 루즈벨트 당시 미국 기득권세력의 권한보다 막강하게 될 것이 훤히 보였다. 마침 헌법 개정을 하는 특위를 만들었는데, 그 특위에서 경제조항을 담당하는 위원장이 되었다. 한국 재벌의 힘이 증대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경험한 것이 이때인데, 내가 헌법개정위 경제분과위원장이 되니까 전경련에서 즉시 반응이 왔다. 당시 정주영씨가 전경련 회장이었는데, 신문에 전경련이 헌법개정과 관련해서 헌법개정을 위한 홍보대책위원회 조직을 하고 홍보대책위원장을 김우중 대우 회장이 맡고 예산을 20억이나 확보했다는 보도가 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이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경련 세미나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세미나에 가보았더니 언론계, 학계를 포함해서 약 30명 가량이 있었다. 대부분 전경련을 옹호하는 세력이었다. 세미나 개회사를 하시는 분이 당시 서울대 정병휴라는 노교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헌법에 기업과 관련된 내용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느냐라며 나를 겨냥해 빈정되는 듯한 말을 했다. 한 마디 할까 하였는데 당시 내 나이가 불과 40대 밖에 안 되었고 노인에게 불경하게 할 수 없어서 꾹 참았다.
세미나에서 자본주의 논쟁을 한참을 했는데, 내가 기업이 제멋대로 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스칸디나비아 식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있고, 영미식도 있고, 구라파대륙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있듯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다양하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성공한 자본주의와 실패한 자본주의의 예를 들었는데, 여기서 성공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발전 양상을 잘 분별해서 그로부터 파생된 문제들을 해결하여 조화를 이루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실패한 자본주의라고 설명했다.
세미나를 끝내고 점심을 먹는데 정주영씨가 나를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왜 미안했는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짐작컨대 70년대 중반부터 내가 재벌문제에 대해 간혹 얘기를 했는데, 혹시라도 내가 헌법에 재벌들을 규제하는 내용을 넣을 것이라 생각해서 안 좋은 시선을 가졌던 모양이다.
정주영 회장과 당시 오고 간 이야기를 기억해보면, 내가 정주영 회장이 중공업으로 시작을 해서 오늘날 재벌그룹으로 성장을 하고, 전경련 회장까지 하는 것이 다른 재벌 그룹에 비해서 괜찮은 그룹이라 생각한다고 얘기를 했다. 한 가지 정주영 회장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철칙처럼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훼손시키는 일을 하는 측면도 있다고 얘기했다. 정주영 회장이 무엇이 그런가라고 되묻기에, 어떻게 중공업만 하시던 분이 갑자기 소매업을 하느냐라고 얘기했다. 소매업이라는 것이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서 자기 생계를 영유하는 사람들이 많은 업종인데, 자본주의 경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이런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 생계를 영유하는 소매업자들이 많아야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정회장이 소매업까지 손을 대니 이런 소매업자들이 다 죽는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정주영 회장이 자기가 소매업을 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라고 묻기에, 현대백화점이라는 것이 소매업이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의 입장에서 현대백화점을 팔아버리는 것이 어떠냐고 얘기해보았더니, 다른 재벌이 안하면 정회장 자신도 안하겠다는 답변을 주었다. 사실 이는 그냥 계속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웃음).
이후에 전경련 헌법 개정에 대한 홍보대책위원장인 대우 김우중 회장을 만나서, 도대체 전경련이 왜 이렇게 헌법 개정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느냐라고 물었더니, 내가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와서 혹시라도 독일의 상황과 같이 근로자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의사공동결정권 같은 것을 헌법에 입안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다. 사실 의사공동결정권 같은 것은 당시 생각하지도 않았고, 헌법조문이 될 수도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은 헌법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할 테니, 쓸데없이 홍보대책위원회 같은 것 만들어서 소란만 일으키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난 후 전경련이 잠잠해졌다.
이후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꼭 넣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은, 향후 재벌이 법률과 언론을 장악한 상황 속에서 보수적 판사들이 판결을 내린다면 정부가 국가 운영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취할 수 없게 된다. 혹 취한다 해도 이것이 재벌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고, 또 이것이 위헌이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조항을 넣은 것이다.
사실 경제민주화 조항이 경제인들이 실제로 경영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그런데 아직도 전경련은 틈만 나면 이 조항을 없애고 싶어한다. 이는 거꾸로 생각하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법이 있으면, 그것이 공공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해도 언제든 헌법재판소로 달려가겠다는 의사를 반영한 것 아닌가. 앞서 이야기했던 루즈벨트 대통령 때 경제세력들이 위헌 소송을 통해 농업조정법, 국가산업부흥법(NIRA)등을 못하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발생 이후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해졌다. 정부가 일정한 규제를 가하지 않으면 시장경제 자체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경제민주화 조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불순한 동기가 아니고서는 달리 생각해 볼 수 없다.
정치경영연구소: 한국사회의 20~30년을 내다본 것 아닌가?
김종인: 자본주의 발달사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인데, 더군다나 미국이라는 큰 예가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보면 미국이 남북전쟁이 끝난 후 링컨 대통령이 앞으로 미국의 큰 위험은 무절제하게 자라나는 경제세력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역사적으로도 19세기 이후에 계속해서 경제세력이 문제가 되었는데 20세기 초까지 제대로 된 조치 없이 흘러가게 된다. 20세기 초에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고 진보적인 정책이 시작된다. 대표적으로 1890년에 시장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독점규제법인 셔만 반독점법(존 셔만)이 제정되었다. 셔만법 제정 당시에는 법 자체로 큰 이슈가 되지 못했지만,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임기 당시 트러스트 형태로 들어오는 대기업들을 셔만법으로 견제하면서 큰 이슈가 되었다. 나아가 독점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스탠다드 오일의 독점을 해체했다. 그때부터 미국의 경제구조에 변화가 시작되는데, 윌슨 대통령 때 더 강화되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때는 보다 더 강화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시기는 뉴딜을 통해 오늘날 미국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다른 국가의 역사와 흥망성쇠를 많이 공부해야 한다.
재벌들의 위치가 사회경제적으로 막강해지는 상황에서 이것을 보지 못하는 경제학자들은 사회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경제학자는 의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의사는 환자의 병력을 조사하고 진단해서 정확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또 앞으로의 건강에 대해서도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다. 경제학자도 마찬가지다. 경제학을 하는 사람이 현상만을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경제상황에 따라 나라가 어떻게 가야할 것인지 생각을 하고 대비를 시켜야 한다. 지금껏 한국경제에 대해서 내가 얘기한 것대로 안되어야 하는데 자꾸 그렇게 되어버려서 이제는 얘기를 그만해야겠다라고 생각도 한다.(웃음)
IMF 외환위기l 같은 경우도 그냥 온 것이 아니다. 90년대 초부터 재벌들에게 무한한 투자여력을 보장해주고, 모든 규정을 재벌들 편의대로 하다 보니, 과잉투자, 과잉부채가 드러나고 이러다보니 IMF로 가는 첩경이 된 것이다. 경제정책이라는 것이 환율이나 이자가지고 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적이라는 말과 사회주의적이라는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
김종인: 내가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나를 사회주의자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런가? 독일이 social market economy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이지 socialistic market economy, 즉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가 아니다. 이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신자유주의를 잘 모르는데, 신자유주의의 본산은 1947년 밀튼 프리드먼과 폰 하이에크가 제네바 호수 근처 파크호텔에서 몽페레린 소사이어티를 창설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모임의 참석 멤버가 200명 가량 되었는데, 이 200명 중에 1948년 이후에 독일의 경제질서를 만든 사람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2차 대전 후, 시장경제를 가장 충실히 실현해 나간 국가가 독일이다. 독일이 시장경제를 실현해 나가면서 social(사회적)이라는 말을 넣은 이유를 보면, 시장경제를 확고히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인지하고 그것을 정부가 해결해야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정부가 해결하지 않으면 시장경제 자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무정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인데,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안 되는 일들도 많다. 이것을 해결해야하고 이것을 내버려둬서 비사회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시장경제 자체가 깨진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작지만 경제세력과 이익집단 위에 있는 강력한 정부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몽페레린 소사이어티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독일이 2차 대전 후에 사회주의 경제를 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독일의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은 인풋-아웃풋(input-output) 모형도 거부한 사람인데, 그 이유가 다 계획경제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거부한 것이다. 독일이 2차 대전 후에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을 폈다고 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다. 다시 말해 독일은 사회주의 경제를 한 것이 아닌, 사회적 시장경제를 한 것이다.
프레시안아세 퍼왔습니다.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43)
김종인은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일천하고, '잘 살아보세!'라는 경제성장의 신화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을 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1980년대 재계의 힘이 갈수록 커져가는 시점에 경제세력의 무한확장욕구를 억제할 경제민주화 조항을 헌법에 집어넣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제정책전문가가 경제활동을 제한할 소지가 높은 조항을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헌법"에 집어넣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는 자유주의자가 아닌 게 아닐까? 이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그가 생각하는 자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배고픈 사람이 길을 가다, 빵을 보았을 때 빵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향상시켜주는 것이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의 최상의 목표다. 경제정책에서 물가안정이니 환율이니 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목표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제정책의 최대의 목표도 곧 자유이다."라는 답을 들려주었다. 여기서 이해가 되었다. 경제민주화 조항을 대한민국 헌법에 왜 굳이 집어넣었는지 말이다. 빵 하나를 훔친 이유로 평생을 죄인처럼 도망다녀야했던 장발장이 우리 사회에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쯤에서 그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오해를 받았을지 짐작이 갔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은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 헌법이 사회주의적인 헌법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나를 사회주의자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런가? 독일이 social market economy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이지 socialistic market economy, 즉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가 아니다. 이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인데,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안 되는 일들도 많다. 이것을 해결해야하고 이것을 내버려둬서 비사회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시장경제 자체가 깨진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작지만 경제세력과 이익집단 위에 있는 강력한 정부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질문을 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그는 사회적인 것과 사회주의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 그는 정책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의 실험 대상은 인간이다. 인간과 사회가 실험의 대상이기 때문에 굉장히 용의주도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정책 하나를 잘못해서 대한민국의 수천만 명이 고통을 받으면 그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사회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아가면서도 여러 정책들을 계속 밀어붙일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궁금했었는데, 그 정책들이 사람을 향해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책이 사람을 향해 있다.' 이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을 향한 정책을 만드는 이에게 내 마음도 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 대통령 될 사람이 진짜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봉사를 해 줄 용의가 있다. 그동안 대통령 출마하고 싶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내가 조언을 해주는 정도에 머물렀었는데, 이 사람이 되면 참 나라가 잘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 적극적으로 자원봉사 하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내 나름대로 구상한 것을 줄 것이다. 받아주고 안 받아주는 것은 당사자 마음인 것이고. 한국에 합당한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한국형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최소한 다음 기회부터는 이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대통령 후보를 찾고 있다."
놀라웠다. 이런 이야기까지 할 줄이야.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도 알고, 우리도 알고,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도 알 것이 뻔한 상황에서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연거푸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정치에 눈을 뜨고, 우리나라 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사를 지켜봐온 그가, 다음 대선에서 이제까지 구상해온 정책패키지들을 마음 놓고 맡길 선수를 찾고 있다고 한다.
거참. 그 선수가 누가 될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혹시 당신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 지금 당장 찾아가보시라. 다만 주의사항이 있다면, 그를 찾아가기 전 아래 인터뷰를 아주 꼼꼼히 읽어볼 것! 특히 그가 말한 경제적 자유, 정치적 자유, 정책가의 자질에 대해서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어볼 것.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낭패를 당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왜냐고? 그 역시 아래 인터뷰를 꼼꼼히 읽어볼 것. 힌트가 있다면 그는 자유인이라는 것! 그것도 인간과 사회를 아주 많이 사랑한!
[인터뷰 전문]
정치경영연구소: 헌법 제119조 2항, 소위 김종인 조항이라 불리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빼놓을 수가 없다. 87년 개헌 당시 이 조항을 넣게 된 계기와 상황은 어떠하였나?
김종인: 우리나라는 1962년에서부터 6차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압축성장을 이루었다. 오늘날 선진국들이 100년 이상 걸려서 이룩한 산업화를 한국은 40~50년 만에 달성한 것이다. 한국은 원래 자원이 없는 나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제한된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빠른 성장을 하기 위해 5개년 계획을 마련, 자원을 배분한 것이다. 빠른 성장을 위해 자원을 배분하다보니 몇몇 기업에게만 자원배분의 혜택이 돌아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국의 재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재벌의 탄생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경제가 발전하면 물질이 풍요로워지고 이는 곧 국민의 부의 증가와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국민의 행복의 증대로 생각하기 쉽다. 이 부분에서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경제의 부가 증가한다는 것은 부 자체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바탕으로 그것을 소유한 자들의 정치사회적 힘도 같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재벌과 경제세력의 성장 과정을 보면, 60년대는 태동기, 70년대는 확장기, 80년대는 안정기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 중반부터 내가 생각했던 것이 6차 경제개발 5개년 개발 계획이 끝나는 90년대 초에 가면 정치세력과 경제세력의 관계가 역전을 하는 상황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정치세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정치세력이라는 것이 당면한 정치사회적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이해관계를 유지해 나갈 필요도 있고, 여러 가지 법적 조치도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것이 정치세력이다. 그런데 경제세력의 힘이 우위에 있다면 그에 반하는 정책이나 법적 조치는 경제세력의 반발로 인해 무산되거나 관철되지 못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1935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 사회보장법 바로 전에 뉴딜의 근간이라 불리는 농업조정법, 국가산업부흥법(NIRA)등 1차 뉴딜의 위기극복정책을 펼쳤으나 기존 기득권세력이 위헌소송을 제기해 보수적 판사들의 판결에 따라 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이는 경제세력이 정치세력을 압도한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70년대 한국 재벌의 상황을 보면, 이후의 상황은 루즈벨트 당시 미국 기득권세력의 권한보다 막강하게 될 것이 훤히 보였다. 마침 헌법 개정을 하는 특위를 만들었는데, 그 특위에서 경제조항을 담당하는 위원장이 되었다. 한국 재벌의 힘이 증대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경험한 것이 이때인데, 내가 헌법개정위 경제분과위원장이 되니까 전경련에서 즉시 반응이 왔다. 당시 정주영씨가 전경련 회장이었는데, 신문에 전경련이 헌법개정과 관련해서 헌법개정을 위한 홍보대책위원회 조직을 하고 홍보대책위원장을 김우중 대우 회장이 맡고 예산을 20억이나 확보했다는 보도가 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이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경련 세미나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세미나에 가보았더니 언론계, 학계를 포함해서 약 30명 가량이 있었다. 대부분 전경련을 옹호하는 세력이었다. 세미나 개회사를 하시는 분이 당시 서울대 정병휴라는 노교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헌법에 기업과 관련된 내용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느냐라며 나를 겨냥해 빈정되는 듯한 말을 했다. 한 마디 할까 하였는데 당시 내 나이가 불과 40대 밖에 안 되었고 노인에게 불경하게 할 수 없어서 꾹 참았다.
세미나에서 자본주의 논쟁을 한참을 했는데, 내가 기업이 제멋대로 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스칸디나비아 식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있고, 영미식도 있고, 구라파대륙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있듯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다양하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성공한 자본주의와 실패한 자본주의의 예를 들었는데, 여기서 성공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발전 양상을 잘 분별해서 그로부터 파생된 문제들을 해결하여 조화를 이루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실패한 자본주의라고 설명했다.
세미나를 끝내고 점심을 먹는데 정주영씨가 나를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왜 미안했는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짐작컨대 70년대 중반부터 내가 재벌문제에 대해 간혹 얘기를 했는데, 혹시라도 내가 헌법에 재벌들을 규제하는 내용을 넣을 것이라 생각해서 안 좋은 시선을 가졌던 모양이다.
정주영 회장과 당시 오고 간 이야기를 기억해보면, 내가 정주영 회장이 중공업으로 시작을 해서 오늘날 재벌그룹으로 성장을 하고, 전경련 회장까지 하는 것이 다른 재벌 그룹에 비해서 괜찮은 그룹이라 생각한다고 얘기를 했다. 한 가지 정주영 회장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철칙처럼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훼손시키는 일을 하는 측면도 있다고 얘기했다. 정주영 회장이 무엇이 그런가라고 되묻기에, 어떻게 중공업만 하시던 분이 갑자기 소매업을 하느냐라고 얘기했다. 소매업이라는 것이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서 자기 생계를 영유하는 사람들이 많은 업종인데, 자본주의 경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이런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 생계를 영유하는 소매업자들이 많아야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정회장이 소매업까지 손을 대니 이런 소매업자들이 다 죽는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정주영 회장이 자기가 소매업을 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라고 묻기에, 현대백화점이라는 것이 소매업이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의 입장에서 현대백화점을 팔아버리는 것이 어떠냐고 얘기해보았더니, 다른 재벌이 안하면 정회장 자신도 안하겠다는 답변을 주었다. 사실 이는 그냥 계속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웃음).
이후에 전경련 헌법 개정에 대한 홍보대책위원장인 대우 김우중 회장을 만나서, 도대체 전경련이 왜 이렇게 헌법 개정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느냐라고 물었더니, 내가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와서 혹시라도 독일의 상황과 같이 근로자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의사공동결정권 같은 것을 헌법에 입안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다. 사실 의사공동결정권 같은 것은 당시 생각하지도 않았고, 헌법조문이 될 수도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은 헌법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할 테니, 쓸데없이 홍보대책위원회 같은 것 만들어서 소란만 일으키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난 후 전경련이 잠잠해졌다.
이후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꼭 넣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은, 향후 재벌이 법률과 언론을 장악한 상황 속에서 보수적 판사들이 판결을 내린다면 정부가 국가 운영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취할 수 없게 된다. 혹 취한다 해도 이것이 재벌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고, 또 이것이 위헌이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조항을 넣은 것이다.
사실 경제민주화 조항이 경제인들이 실제로 경영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그런데 아직도 전경련은 틈만 나면 이 조항을 없애고 싶어한다. 이는 거꾸로 생각하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법이 있으면, 그것이 공공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해도 언제든 헌법재판소로 달려가겠다는 의사를 반영한 것 아닌가. 앞서 이야기했던 루즈벨트 대통령 때 경제세력들이 위헌 소송을 통해 농업조정법, 국가산업부흥법(NIRA)등을 못하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발생 이후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해졌다. 정부가 일정한 규제를 가하지 않으면 시장경제 자체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경제민주화 조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불순한 동기가 아니고서는 달리 생각해 볼 수 없다.
정치경영연구소: 한국사회의 20~30년을 내다본 것 아닌가?
김종인: 자본주의 발달사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인데, 더군다나 미국이라는 큰 예가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보면 미국이 남북전쟁이 끝난 후 링컨 대통령이 앞으로 미국의 큰 위험은 무절제하게 자라나는 경제세력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역사적으로도 19세기 이후에 계속해서 경제세력이 문제가 되었는데 20세기 초까지 제대로 된 조치 없이 흘러가게 된다. 20세기 초에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고 진보적인 정책이 시작된다. 대표적으로 1890년에 시장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독점규제법인 셔만 반독점법(존 셔만)이 제정되었다. 셔만법 제정 당시에는 법 자체로 큰 이슈가 되지 못했지만,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임기 당시 트러스트 형태로 들어오는 대기업들을 셔만법으로 견제하면서 큰 이슈가 되었다. 나아가 독점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스탠다드 오일의 독점을 해체했다. 그때부터 미국의 경제구조에 변화가 시작되는데, 윌슨 대통령 때 더 강화되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때는 보다 더 강화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시기는 뉴딜을 통해 오늘날 미국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다른 국가의 역사와 흥망성쇠를 많이 공부해야 한다.
재벌들의 위치가 사회경제적으로 막강해지는 상황에서 이것을 보지 못하는 경제학자들은 사회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경제학자는 의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의사는 환자의 병력을 조사하고 진단해서 정확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또 앞으로의 건강에 대해서도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다. 경제학자도 마찬가지다. 경제학을 하는 사람이 현상만을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경제상황에 따라 나라가 어떻게 가야할 것인지 생각을 하고 대비를 시켜야 한다. 지금껏 한국경제에 대해서 내가 얘기한 것대로 안되어야 하는데 자꾸 그렇게 되어버려서 이제는 얘기를 그만해야겠다라고 생각도 한다.(웃음)
IMF 외환위기l 같은 경우도 그냥 온 것이 아니다. 90년대 초부터 재벌들에게 무한한 투자여력을 보장해주고, 모든 규정을 재벌들 편의대로 하다 보니, 과잉투자, 과잉부채가 드러나고 이러다보니 IMF로 가는 첩경이 된 것이다. 경제정책이라는 것이 환율이나 이자가지고 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적이라는 말과 사회주의적이라는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
김종인: 내가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나를 사회주의자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런가? 독일이 social market economy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이지 socialistic market economy, 즉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가 아니다. 이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신자유주의를 잘 모르는데, 신자유주의의 본산은 1947년 밀튼 프리드먼과 폰 하이에크가 제네바 호수 근처 파크호텔에서 몽페레린 소사이어티를 창설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모임의 참석 멤버가 200명 가량 되었는데, 이 200명 중에 1948년 이후에 독일의 경제질서를 만든 사람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2차 대전 후, 시장경제를 가장 충실히 실현해 나간 국가가 독일이다. 독일이 시장경제를 실현해 나가면서 social(사회적)이라는 말을 넣은 이유를 보면, 시장경제를 확고히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인지하고 그것을 정부가 해결해야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정부가 해결하지 않으면 시장경제 자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무정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인데,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안 되는 일들도 많다. 이것을 해결해야하고 이것을 내버려둬서 비사회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시장경제 자체가 깨진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작지만 경제세력과 이익집단 위에 있는 강력한 정부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몽페레린 소사이어티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독일이 2차 대전 후에 사회주의 경제를 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독일의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은 인풋-아웃풋(input-output) 모형도 거부한 사람인데, 그 이유가 다 계획경제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거부한 것이다. 독일이 2차 대전 후에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을 폈다고 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다. 다시 말해 독일은 사회주의 경제를 한 것이 아닌, 사회적 시장경제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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