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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202회 작성일 2011-03-13 16:41
소의영(64회) 아주대의료원장/의무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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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영 아주대의료원 의료원장

[대학병원 CEO에게 듣는다]


아주대병원은 설립된 지 17년만에 수원 지역 대표 대학병원으로 자리잡았다. 연구와 우수인재를 중요시 한 병원의 철학이 큰 역할을 했지만 인근에 신도시 개발이 잇따르면서 인구가 늘어난 외부적인 영향도 한 몫을 했다. 아주대병원은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다. 수원을 중심으로 한 광교신도시 개발 계획 등으로 인구유입이 지속되면서 서울에 위치한 다른 대학병원들이 이 지역에 대한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 지역 대형 대학병원과의 경쟁에서 이 지역 대표 병원의 자리를 수성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7∼8대 아주대병원장을 역임한 후 9대 의료원장과 병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소의영 의료원장에게 아주대병원의 경쟁력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3월 의료원장으로 취임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의료원장의 역할은 병원뿐 아니라 의과대학, 간호대학, 보건대학원, 연구소 등 의료원 산하 모든 기관의 성장을 같이 이끄는 것이다. 아주대의료원이 설립된 지 17년이 지났다. 이 짧은 기간에 아주대의료원과 의과대학은 빠른 시간 내에 성장을 했다고 본다. 이같은 성장 배경에는 연구와 우수한 인재를 중요시 한 초기 의료원 설립자들의 철학이 큰 역할을 했다. 이를 위해 같은 캠퍼스 내에 의과대학과 병원을 두었다. 이를 이어받아 의과대학, 간호대학, 연구소, 병원이 유기적인 체계를 갖춰 교육, 연구, 진료라는 목표에서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이끌겠다.

―아주대의료원의 특징은.

▲아주대병원은 경기 남부지역에서 중추적 위치를 굳혔다고 생각한다. 수원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지역 신도시를 감안하면 인구 증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하지만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완전한 의료시스템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병원 통계를 보면 1년에 응급환자가 8500명 가까이 된다. 이는 전국에서 1∼2위를 다투는 숫자다. 또 우리 병원은 1080병상인데 중환자실 비율이 10%를 넘는다. 이는 수원을 중심으로 한 경기 남부지역에서 응급환자, 고난도 치료를 요하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아주대병원뿐이라는 의미다.

―현재 병원 내 웰빙센터 공사가 한창이다.

▲병원이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환자를 위한 서비스공간이나 진료시스템이 850병상을 기준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병원이 성장하면서 병상 규모도 1000병상을 넘어섰고 외래환자도 3000명에서 4000명으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환자를 위한 서비스 공간이 굉장히 부족해졌다. 최근 대학병원에는 암환자와 심장혈관 계통 환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병원도 암환자 숫자로 보면 전국 5위를 유지할 정도로 진료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뇌졸중과 같은 질환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환자들이 오고 있다. 하지만 공간부족으로 진료가 하드웨어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시스템적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환자들이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도록 하기 위해 웰빙센터를 짓고 있다. 내년 11월 완공되는 웰빙센터는 지하 3층, 지상 5층, 총 면적 1만9834㎡(6000평) 규모다. 여기에서는 암센터와 뇌혈관센터를 한 곳에 모아 통합진료를 하며 건강검진센터도 들어선다.

―병상 수를 늘릴 계획은 없나.

▲사실 아주대병원은 항상 병상수가 부족하다. 병원에 입원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들린다. 500병상 정도 더 지어도 수용할 여건이 된다. 하지만 중증외상센터와 같은 특화된 부분만 300병상 늘릴 계획이다. 이 지역은 고속도로와 인접해있고 산업체가 많아 중증환자와 외상환자들이 많다. 사실 중증외상센터는 병원 경영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대병원이 대학병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경기도와 논의중인데 경기도 헬기를 빌려 환자 이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외상환자 통합시스템도 만들 계획이다.

병상 운영은 의료전달 시스템이 확립되면 해결될 것이라 본다. 현재 1, 2차 의료기관에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을 대학병원에 와서 치료하고 입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300∼400병상 규모의 중소병원 중에도 치료를 잘하는 병원들이 경기 남부지역에 많다. 대학병원은 중증질환을 가진 환자를 치료하고 중환시기가 지나면 1, 2차 병원이 나머지 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암, 혈관 환자 등의 치료에 주력할 계획인가.

▲대학병원 진료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암환자, 심혈관환자, 이식환자 등 고난이도 환자 치료다. 이 환자들은 고령화와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 질환에 대한 치료가 대학병원의 역할이므로 투자가 필요하다. 또 아주대병원은 통증, 알레르기, 연골질환, 응급의료(중증외상) 등과 외국인 환자 유치, 임상시험센터 등 경쟁력과 가능성을 갖춘 분야가 있다. 이를 적극 키워나갈 것이다.

―해외환자 유치에 관심이 있나.

▲대학병원들은 다 관심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수가가 낮기 때문에 해외환자를 유치하면 수익적인 측면에서 매력이 있다. 아주대병원도 외국인진료센터 인원을 늘리는 등 활성화시키고 있다. 기존에도 미군을 비롯해 오산, 평택 지역에 있는 국내 거주 외국인 환자들이 꾸준히 병원을 찾고 있었다. 이 때문에 언어와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는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물론 수원이라는 지역적인 한계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갖춘 인프라를 적극 홍보해 해외에서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수원 지역에 다른 대학병원들이 병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곳이 많다.

▲금융위기 전에 4∼5개 병원들이 수원을 중심으로 병원설립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도 그런 계획들이 많이 발표될 것이라 예상된다. 물론 솔직히 긴장된다. 가능하면 이 지역에 우리 병원이 중심이 됐으면 하는 게 병원장의 마음이다. 타 대학병원들이 들어오면 경쟁이 심해지고 힘든 부분이 있다.

아주대병원이 수원에서 중심병원 역할을 하게 된 것은 3차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기 때문이다. 1, 2차 협력병원 350개 기관과 협력해 서로 필요한 부분을 제공하고 받는 등 유대관계를 잘 만들고 있다. 이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협력병원 직원 교육시스템, 리퍼 시스템 등을 잘 갖췄다. 경쟁병원이 생겨도 그 병원들과 협력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경쟁병원이 들어설 경우 수원지역이 의료클러스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경기도가 수원 이의동에 의료클러스터에 준하는 단지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연구, 제약 부문이 들어오고 주변에 대학병원이 여러 군데 있다면 하나의 의료산업 단지로 클 수 있다.


■소의영 원장은

아주대의료원 소의영 원장은 2005년부터 아주대병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7∼8대 원장을 지냈으며 지난 3월에는 제9대 원장뿐 아니라 의과대,

 

간호대 등 아주대의료원을 총괄하는 의료원장에 취임해 겸직 중이다.

소 의료원장은 '친절한 설명'이라는 배지를 가슴에 달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병원은 결국 사람이 중심"이라며 "병원에는 3000명 가까운 사람이 다양한 직종으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적 자원이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의사도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환자를 편하게 해주는 의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방송이나 신문에서 명의라고 소개되는 의사를 보면 출중한 실력도 갖췄으면서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많다"며 "밤늦게까지 회진을 돌고 진료를 보며 환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환자를 감성으로 대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소 의료원장은 갑상선 질환 명의로 자주 언론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4㎝ 이내의 양성 종양은 겨드랑이나 유두륜 부분을 통한 내시경시술을 진행해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특히 종양에서 분비되는 혈관 내피 성장인자가 신생 혈관을 형성해 갑상선암의 악성도와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과 이에 따라 혈관 내피 성장인자를 억제함으로써 종양(암)의 성장과 전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규명, 1996년 미국 암연구학회에서 발표해 주목받은 바 있다.



△56세 △전북 익산 △연세대의대 졸업 △연세대대학원 박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연구강사, 전임강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외과 연수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 △아주대학교 병원장 직무대리 △아주대학교 의료원 기획조정실장 △제7, 8대 아주대병원장 △대한내분비외과학회 부회장(현) △대한두경부종양학회 부회장(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비상근평가위원(현)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현) △제9대 아주대의료원장 겸 제 9대 병원장(현)



아주대 신임 의무부총장에 소의영 교수
 

 

주요 보직자 임명...의과대학장엔 임기영 교수

 

기사입력시간 2010.09.01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에 소의영 교수가 선임됐다.

 

의과대학장 겸 의학전문대학원장에는 임기영 교수가 임명됐다.

아주대학교는 9월 1일자로 주요 보직자 인사를 단행했다.

   
소의영 신임 의무부총장

먼저 신임 의무부총장은 외과학교실 소의영 교수가, 의과대학장 겸 의학전문대학원장은 정신과학교실 임기영 교수가 맡게 됐다. 또 간호대학장에는 박지원 교수(간호학과), 부속병원장에 유희석 교수(산부인과학교실) 연구지원실장에는 민병현 교수(정형외과학교실)가 각각 임명됐다.

소의영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1979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전임강사를 거쳐 1992년부터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외과에서 근무했다. 전문진료분야는 내분비 및 두경부 외과.

소 의무부총장은 아주대병원 제7~9대 병원장을 지냈으며, 9대 의료원장 직무 수행 중 이번 인사로 의무부총장을 겸직하게 됐다.

대외적으로는 대한외과학회 회원, 대한두경부종양학회 부회장,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부회장, 대한병원협회 기획이사, 사립대의료원장협의회 부회장, 대한대학병원협회 총무이사, 국제외과학회 회원,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ndocrine surgeons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국종, 아주대 병원도 살렸다…

 

'石선장 효과' 1000억원 넘어

 

의료 마케팅이 본격화되고 있는 요즘, 아주대학교 병원이 쾌재를 부르고 있다.

 

'석선장 효과' 덕분이다.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구조를 위해 실시한 '아덴만 여명작전' 중 치명적인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이 병원 의료진이 살려냈기 때문이다. 지난 5일엔 이명박 대통령이 병원을 방문해 또 한 번 전 국민의 시선을 모았다.

아주대 병원에 미친 석 선장 효과는 광고비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이 병원 홍보팀 노학래 팀장은 "석 선장이 아주대 병원으로 이송된 1월 29일부터 의식을 완전히 회복한 2월 28일까지 한 달간 신문·방송·인터넷 매체 등에 우리 병원이 거의 매일 노출되었으니 1000억원을 들여도 이 정도의 홍보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광고기획사
오리콤에 '석 선장'이 가져온 아주대 병원의 광고 효과에 대해 물었더니 유사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선 신문 1개 면에 석 선장과 아주대 병원이 노출됐을 경우, 1개 면 광고 단가를 3000만원으로 잡고 주요 신문 10곳에 노출되었다고 치면, 하루 3억원의 광고 효과를 낸 셈이다. 방송은 더하다.

 

1분에 4000만원이라는 방송 뉴스 효과를 고려해, 지상파는 물론 보도채널들의 각종 뉴스 프로그램에 보도된 시간을 총 100분으로 잡아도 하루 40억원이다.

 

인터넷 매체를 제외하고도 신문 방송 도합 하루 43억원의 광고 효과를 본 셈이고, 이것이 한 달간 지속되었으니 최소 1290억원의 광고비로 환산된다는 얘기다.

"정확한 리서치는 아니다"고 전제한 오리콤의 양윤직 미디어플래닝팀장은 "대강 추산만 하더라도 아주대 병원이 자신의 브랜드 인지도와 함께 의료의 질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무려 13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해가며 전 국민에게 홍보한 효과를 얻었으니 환상적인 마케팅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고 분석했다.

사실 아주대 병원은 '의료 마케팅'에 일찌감치 눈뜬 기관으로 유명하다.

 

1994년 수원시 원천동에 개원한 이 병원은 메디컬 드라마의 효시인 '종합병원'(1994~1996)에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개원 1년 만에 유명 의료원으로 떠올랐다.

 

지방 신설병원인데도 불구하고, 1995년 대입시험에서 아주대 의과대학 경쟁률이 45대1로 치솟았다.

 

이후에도 '해바라기','하얀 거탑' 등에 촬영장소를 제공하면서, 1995년 45만6001명이던 외래환자 수는 2010년 105만9167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종합병원'이 기획된 마케팅 전략이었다면 '석 선장 효과'는 '천운'에 가까운 대박이다. 광고가 아닌 뉴스로 보도됐다는 점, 병원의 존재성이 아니라 신뢰성을 높였다는 점, 무엇보다 '돈'을 들이지 않았다는 점! 아주대 병원측은 "'외상환자는 받으면 받을수록 손해'라는 말이 있을 만큼 3D 영역으로 통하지만 우리 병원이 포기하지 않고 10년 동안 외상외과 진료 시스템을 구축해온 것이 보상받은 셈"이라며 기뻐했다.

 
石선장 살려낸 이국종 교수
 

"난 잃을 게 없는 '칼잡이'… 세상은 날 의사라 부른다"
"환자 살릴수록 적자 쌓여… 괴로워 외국 용병업체 취업 생각도"

石선장에게 가다
왜 내가 오만에 갔냐고? 나도 서울대서 갈줄 알았다
"잘해야 기본" "죽는 길"…동료들도 말렸다

연착륙
한국 오자마자 수술하는데 칼 대는 곳 마다 고름…
2월 18일 되니 느낌 오더라 "비행기 착륙 직전 그 느낌"


"옥쇄를 각오하는 심정."

'아덴만 여명 작전' 중 총에 맞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에어앰뷸런스에 싣고 돌아온 지난 1월 29일, 의사 이국종(42·아주대 의대 중증외상센터장)의 말이다. 죽을 각오라는 거다. 뭐, 그리 비장하게 말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의 모습을 TV에서 봤다. 얼굴에 표정이란 게 전혀 없었다. 긴장이나 카메라 공포증과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

석 선장이 돌아온 다음 날인 지난 1월 30일 일요일 밤, 그를 만나러 갔다. 역시 무표정했고, 말투는 냉담했다.

냉랭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기자가 농담을 건넸을 때, 그가 말했다. "내 눈 똑바로 봐라. 목숨 다 내놓고 뭘 해본 적 있나." 그래도 어찌하여 두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눴다. 자정이 넘어 수원을 떠났을 때, 그가 전화를 해왔다. "인터뷰 내지 말아달라. 자존감이 없는데 무슨 인터뷰냐. 더욱이 선장님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한 3개월 후에 보자." 일단 쉬었다. 그리고 2주 후인 2월 13일, 그리고 지난 7일 세 번에 걸쳐 그를 만났다. 석 선장이 이국종의 환자였던 건 7일까지였다. 그가 예상한 '3개월'보다 훨씬 앞선 지난 8일부터 석 선장은 정형외과로 옮겼다. 그의 환자가 된 지 42일 만이다. 이제 살았다는 의미다. '까칠'했던 이국종이 인터뷰 중 맥주를 건넸다.

 
세상이 다 아는 VIP 환자
9일 경기도 아주대학교 병원으로 헬기에 실려 응급환자가 실려왔다. 외상전문의 이국종 교수가 응급 수술을 마친 뒤 수술방을 나서고 있다. 이국종의 요청에 따라, 경기도 119 응급서비스(119 EMS) 헬기가 아주대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기 시작했다.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주치의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런 위급한 환자는 그에게 일종의 존재 이유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석 선장이 1월 21일 총 맞았는데, 이 선생은 26일 오만에 도착했다. 오래 걸렸다. 혹시 '폼 나는' 사람 고르려다 그렇게 된 건가.

"23일부터 정부, 삼호해운에서 갈 수 있나 물어보더라. 그러더니 24일 '
서울대병원에서 누가 간다'고 해서 난 수술 들어갔다. 그날 밤 다시 전화로 '내일 갈 수 있나' 묻더라. '잘해야 기본' '가면 죽는 길'이라고 말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팀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난 잃을 게 없으니까."

―의사가 잃을 게 없다니 무슨 뜻인가.

"묻지 마라.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석 선장 상태가 정말 위중할 땐 언제였나.

"오만에 가서도 상황이 매우 안 좋았고, 돌아와 바로 수술하는데 배를 열었더니 칼 대는 곳마다 고름이 나오더라.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배는 10여일 후쯤 봉합했다. 삽관 제거 후에도 호흡기능부전이 와서 애먹었다."

―안정권에는 언제쯤 들어왔나.

"2월 18일쯤 되니까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 느낌이 오더라. 연착륙시키기 위해 이후 3일간 정신없었다. 25일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석 선장이 잘못되면 "왜 아주대로 갔느냐, 그럴 줄 알았다"고 논란이 될 우려도 컸다. 의사가 말을 세게 한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알고 있다. 나는 대단한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환자 상태를 정확히 모르는 여러 의사들이 '기관 절제를 더 일찍 했어야 했다'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얘기들 하더라. 내 인생, 아주대 입장에서 이렇게 유명세가 큰 환자는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사실 선장님은 중증도로 봤을 때, 내 환자 중 상위 30% 정도였다. 후배들은 중간 정도라 하더라. 석 선장님의 차트엔 증상이 두 줄이다(그럼에도 10가지가 훨씬 넘는다). 그런데 네 줄짜리 환자도 수두룩하다."(중증외상특성화센터는 의외로 고요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중환자만 모여 있기 때문이다.)

―석 선장과 정서적 교감 같은 게 있나.

"사실 해적에게 납치돼도 가만히 있으면 걱정 없이 되레 편하게 지낼 수 있다더라. 그런데 선장님이 그런 (용기있는) 행동을 한 거 아닌가. 처음엔 '훌륭한 분이구나, 꼭 살리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며칠 전 얘기해보니 간단치 않은 분이더라. 뭐랄까, 정신이 있다고 해야 하나."

―석 선장 몸에서 빼낸 총알 잃어버렸다고 논란이 됐는데, 왜 잃어버렸나. 정말 이 선생이 잃어버린 건 맞나.

"해양경찰과 검찰 조사만 7번 받았다. 그나마 이 일을 하면서 본 사람 중 검사가 가장 일을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얘기는 더 할 수 없다."

―지난번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병원에 왔을 때 사진을 보니, 표정이 싸늘하더라. 원래 표정이 그런가.

"손 대표에게 '(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응급의료체계 중 중증외상분야가 상태가 좋지 않다'고 직언을 한 후에 찍어서 더 그렇게 나왔을 거다. 특별히 무슨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만에서 우리 정부 사람들과 호흡 맞추는 일은 어땠나. 정부 사람들이 일 잘하나.

"거기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언론의 반응' '정무적으로'였다. 그 얘기도 더 이상은 하기 힘들다."

―오만 의료진이 제대로 했다면 석 선장이 좀 더 일찍 회복될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응급의료체계에 관한 한 오만은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이다. 오만은
영국식 중증외상시스템을 갖춰 놓고,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움직인다. 정말 영화처럼 스태프들 호흡이 척척 맞더라. 인구 30만인 우리 지방도시에서 외국인 노동자 환자가 복부 관통상을 포함해 온몸에 6발의 총을 맞았다면 과연 살아날 수 있었을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첫 수술은 오만에서 아주 잘했다. 거기가 인구가 적은 이슬람 국가라 피가 모자라고, 첨단 의료기기나 첨단의약품이 우리나라에 더 많기 때문에 여기로 온 거다. 거기 오만이 우습다고? 웃기지 말라고 해라."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아니었더라면, '아덴만 여명 작전'의 성공도 장담하기는 힘들었다. 사진은 석 선장이 지난 1월 22일 오만 살랄라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모습. / 아주대 병원 제공
수술이 끝난 후… 의사 이국종이 기사 쓰지 말라며 보낸 이메일에 들어 있는 사진. 그는 이렇게 썼다. '수술 직후에 엉망인 수술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선 너무나 평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바다에 큰 함선이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피가 흥건한 바닥에 '외과 이국종'이라 쓰인 슬리퍼가 눈에 띈다. 원래는 컬러사진이다.
◆종이로 소나기 막는 기분

응급실을 떠올려 보자. 진짜 급한 환자도 있지만 약이나 주사 같은 간단한 처방으로 끝나는 경우도 상당수다. 어떤 의사는 이걸 '야간 약국'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야간에 난 대형 교통사고 환자나 공장 사고 환자들은 여전히 이 병원 저 병원 떠돌다가 죽기 십상이다. 심한 외상이 여러 곳인 중증외상(trauma)환자의 경우, 제때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죽는 환자 비율이 약 30% 선이다. 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이 수치는 일본이나 미국의 두세 배다. 중증외상을 다루는 응급센터 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전국 6개 지역에 '권역별 응급의료센터'를 지정, 설립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현장에 가서 보니 아예 고참의사용 당직실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 정부 방안에는 전문의가 야근할 경우 20만원 내외의 야근비를 주고, 당직실을 만드는 내용이 들어 있을 정도다. 이국종은 몇년 전 이런 상황을 "종이로 소나기를 막는 기분"이라고 했었다.

―우리 상황이 대체 어떻기에 그런가.

"자기 손에 피 묻혀 본 사람, 즉 진짜 칼잡이는 별로 없는데, 외상의학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많다. 이미 들어간 돈으로 치면, 우리나라 병원은 세계 톱 수준의 외상의학센터를 확보했어야 한다. 그런데 병원만 크게 지어놓고 시스템, 의사가 없다. 응급센터 지어놓고 응급실로 전용하는 경우도 많다."

―외상외과 응급체계의 문제는 뭔가.

"응급실 당직 의사는 주니어가 대부분이다. 내장 다 터져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중증외상환자 수술은 어렵다. 큰 병원들은 시설이 좋아도 중증외상환자를 받지 않는다. 비용에 비해 수가가 안 나오니까. 반면 병실이 비는 병원들은 중증외상환자를 받아 침상을 채우려고 하는데, 그런 데는 시설이 안 받쳐 준다."

―이 선생이 준 책자와 영상자료를 보니 외상환자 살리는 시스템은 매우 간단하더라. 환자의 부상 정도에 따라 레벨을 나누고, 거기 맞는 병원으로 후송하고, 바로 처치하는 것이더라. 그게 왜 그리 어렵나.

"대한민국 대형병원 응급실처럼 이렇게 병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없다. 외상센터의 경우 이렇게 많은 응급실 병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충분한 수술실과 중환자실 규모가 필요하다. 헬기로 40㎞ 정도는 커버할 수 있다. 권역별로 짓고, 환자 구분 체계 매뉴얼 확실히 만들고, 외상센터마다 전문의들이 집에 안 가고 당직 잘 서면 된다. 내가 연수 가서 보니, 인구 1000만명이 되는 큰 도시 런던에 거점병원 4개가 있더라. 거기서 정보 주고받으면서 철통같이 외상환자들을 치료한다. 그러니까 예방 가능한 사망률이 그렇게 낮은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전문의가 별로 야근을 안 선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외래 선호는 불가피하다. 외래 환자는 반가운 환자다. 낮 시간에 약속 맞춰 서로 기분 좋게 딱 만나고, 시간 정해놓고 헤어지면 되는 거다."

―얼마 전에도 장중첩증 아이가 경북지역 여러 큰 병원에서 거절당하고 이 병원 저 병원 돌다 죽었다. 왜 큰 병원에서 '우리 병원은 중증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질 않나.

"계륵이다. 병원 위상도 있으니까. 그게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더 위험하다."

―그날 당직의사의 부도덕성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가.

"복합적인 문제다.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그대로 투영된 거다. 한국은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자기 할 일을 미루는 게 익숙하지 않은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경쟁이 없다. 의사는 현재 상태에서는 해외와 경쟁할 필요가 많지 않다."

피곤해 보인다, 그의 인생

이국종이 응급외상센터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동료에게 '이 선생이 왜 이리 스트레스를 받는가' 하고 물었다. 

지난해 그의 적자가 7개월간 800,000,000원이 넘었다는 얘기를 해줬다. 피를 폭포처럼 쏟는 환자를 수술할 때는 혈액이 50봉지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건 작은 예일 뿐이고, 그가 쓰는 첨단의료장비·인력·약품 등 투입하는 비용에 비해 받는 치료비는 훨씬 적다. 

행려병자를 치료하다 사망하면 그 비용도 이국종의 '적자'로 기록된다. 이런 계산은 대부분 병원에서 다 하는 일이다.

―외상외과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더라.

"굉장히 슬플 때가 있다. 내가 뭘 것 같은가. 때로 내가 병원에서 불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조직의 휴짓조각 같은 느낌 아나. 생각해봐라. 병원이 소년소녀가장에게 1억원만 기부해도 좋은 일 한다고 칭찬할 거다. 그런데 내가 일을 하면 할수록 병원 적자폭이 커진다고 한다. 병원 욕하지 마라. 아주대 병원은 굉장히 훌륭한 병원이다. 나를 아직도 거둬 여전히 붙어 있지 않나. 다른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의 경우, 대부분 사직하거나 전공을 바꿨다. 몇년 전 외상외과 하다가 브랜치병원으로 발령 난 어떤 선배한테 다시 해보라고 했더니, '생각도 하기 싫다'고 하더라. 가슴이 답답하다."

―밖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니까 자부심이 클 줄 알았다.

"어떤 의사가 진검승부를 할 것 같나. 심장 여는 사람? 아니다. 진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열심히 하는 의사는 성형외과 의사들이다. 수입이 안 좋으면 바로 문 닫으니까. 환자가 느끼는 만족감은 대단하다. 하지만 중증외상환자는 자기가 어떻게 다쳐 왜 이 병원에 왔는지 모른다. 좀 좋아지면 나한테, 간호사한테 욕하는 사람도 많다."

―왜 욕을 하나.

"외래에서 만난 환자가 이상하면 '저 자신 없는데, 큰 병원 가세요' 하면 그만이라고들 하더라. 외상 환자는 그게 안 된다. 내가 만난 환자 중엔 조폭 양아치도 있었고, 상당수가 저소득층이다. 복받치는 게 많은 사람들이다."

―암 수술 잘 해주면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지 않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는데 욕을 먹는다?

"암환자는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의사에게 숙이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내 환자분들은 나를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게 아니다. 운전하다 의식 잃었다가 깨어보니 인공항문이 생겨 있고, 하반신도 못 쓰면 누구나 열받지 않겠나."

―왜 이 병원에는 그런 환자만 오나.

"에어백 있는 외제차 타는 환자는 딱 한 번 왔었다. 분당의 병원에서 안 받아줘서. 노동층은 외상으로 죽을 확률이 화이트칼라보다 20배 이상 높다. 내 환자 중엔 건설노동자·공장 노동자·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같은 이들이 많다. 내가 총상전문가라고 언론에 나와 웃었다. '내가 언제 총상전문가였지?'하고. 공장에서 분당 5000~6000회로 돌아가던 볼트가 빠져 배에 박히면 간장·담도·췌장이 다 파열된다. 그거에 비하면 총상은 간단하다. 프레스에 눌리면 내장이 터지고 장기가 밑으로 다 빠진다. 그런 환자들을 봐왔으니 선장님이 그다지 중증환자로 안 보이는 거다."(이국종의 사진 파일에는 내장이 다 깨져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이 서서히 사람 모습을 갖춰 가다가 걸어서 퇴원하는 과정이 날짜별로 담겨 있다. 현대의술의 신비다)

―그런데 중증외상치료 체계가 부실하다는 얘기는 별로 공론화된 적이 없다.

"정책 결정하고 사인하는 분들이 사고를 당하면 유수한 병원 의사들이 밤에도 뛰어나온다. 그분들 사인은 외상이 아니라 당뇨나 암, 심혈관계 질환 같은 것이다. 그런 분야에는 약도, 기기도 첨단이 들어오고, 어느 병원이나 밤에 대응을 잘한다. 하지만 사회취약계층이나 보통 사람이 화를 크게 입으면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게 된다."

―그 때문에 정부가 중증외상센터, 권역별 응급센터를 지정한다는 거 아닌가.

"중증외상·응급센터에 대한 정부나 사회 관심이 4~5년 주기로 왔다가 사그라지더라. 이젠 좀 지쳤다. 변하는 게 별로 없으니까. 의욕적이던 보건복지부 담당자들도 자주 바뀌어 어렵다. 게다가 사회취약층인 외상환자들을 위해 정부지원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면 이익집단이 끼어든다."(다른 전문가는 "외상외과 전문의를 벌써 양산했다고 주장하는 곳이 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외상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게 절망적이어서, '잃을 게 없다'고 한 것인가.

"너무 힘들어 한때 해외취업난만 계속 찾아보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블랙워터(세계 최대 용병회사·현재 XE)에 취직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니까. 최소한 외상외과에 대한 수요와 존중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

"석·박사 논문이 대량 간 절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석·박사 지도교수이자 당시 외과과장님께서 외상외과를 권하시더라. 별생각 없이 남았다. 수술하는 것도 좋고, 대학에 남아서 공부 계속하고 학생도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실 이렇게 오래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다지 큰 꿈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꿈과 기대가 너무 많아 애정도, 화(火)도 많은 것 같다.

"지금도 배를 갈랐을 때 피가 확 솟거나, 췌장 깨진 환자 수술을 맡으면 긴장된다. 그런데 이게 마약 같은 면이 있다. 잔디밭 스프링클러처럼 여기저기서 확 솟던 피를 수술로 막으면 드디어 혈압이 딱딱 잡힌다. 저승에 가 있던 사람이 살아오는 거다. 배에 고름이 가득해 하루 넘기기 힘들겠던 사람이 살아나기도 한다. 그게 다 손끝에서 결정 나니까."

―성격이 까칠한데도 장애 얻은 환자들이 지원받을 곳도 알아봐 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버지가 장애2급 국가유공자다. 6·25 때 지뢰를 밟아 눈과 팔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이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냉랭하고 비정한지 잘 안다. 그래서 의대에 갔다."

"석 선장님 살린 것은 내가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다" "누구라도 이렇게 할 수 있다"며 기사를 쓰지 말라고 면전에서, 전화로 기자를 여러 차례 괴롭히던 이국종이었지만, 행여 쓴다면 잊지 말라고 당부한 말이 있다. "석 선장님에겐 국가가 보상해줘야 한다. 훈장도 주고. 군인이 아니라 안 된다 하면 누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겠나. 정말 반드시 되도록 해야 한다."

이국종과 이야기하는 것은 고되다. 열정은 뜨겁고, 비판은 호되고, 태도는 냉소적이다. 과도한 자기비하는 자부심의 다른 얼굴같기도 하다. 집에도 잘 안 가는, 새벽 언제든 전화를 받는 이 의사, 조금은 '미친 의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어떤 광기가 있다면, 그건 분명 사람을 살리는 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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