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처럼…두산처럼…病도 이겨낼겁니다”_64회 홍영선 교우(서울성모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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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30여년간 우리 팀에 사랑을 보내온 한 팬이 말기암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기를 보러 왔다. 그 팬 앞에서 떳떳할 수 있도록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하도록 하자”
10일,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둔 두산 덕아웃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김경문 감독의 훈시가 끝나자 선수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그라운드로 나갔다. 5시간에 걸친 엎치락 뒤치락 숨가쁜 접전끝에 11회초, 두산은 삼성에 2점을 내주며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이들의 끈질긴 투지는 결국 ‘기적’을 낳았다. 11회말 선두타자 이종욱을 시작으로 5타자가 모두 안타 및 4사구로 출루하면서 내리 3점을 거둬들이며 짜릿한 역전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1루쪽 날개석에서 지켜보는 한 팬의 입에서는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28년간 두산(당시 OB) 베어스 팬으로 지금 말기 림프종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이환(40)씨였다.
▶골수 야구팬 이환씨, 야구서 힘을 얻다=이환씨가 두산팬이 된 것은 프로야구가 개막한 1982년부터의 일이다. 당시 OB베어스였던 두산의 활약을 보며 자라난 그는 야구장에서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고, 야구를 보며 데이트를 즐기다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아내와 야구장을 다닐 만큼 골수 야구팬으로 야구는 생활이었다.
그런 그가 젊은 나이에 림프종 진단을 받으면서 행복했던 가정생활도 점차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또 요양병원을 다니며 집과 떨어져 있다보니 아들(12)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졌다. 건강과 가정의 화목이라는 두가지 행복에서 동시에 멀어진 이환씨에게 다시 힘을 준 것은 그의 사랑, ‘야구’였다.
그는 관계가 서먹서먹해진 아들을 불러다 야구규칙을 하나하나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축구만 좋아하던 아들도 야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더니, 하일성씨가 펴낸 야구교재를 사달라 주문하고는 야구에 흠뻑 빠졌다. 덕분에 봄부터 가을까지, 야구가 있는 시즌에 대화거리가 생긴 부자는 점점 거리를 좁혀갔고, 이제는 그 어떤 부자보다 절친한 사이로 거듭나게 됐다.
하지만 아픈 몸으로 경기장을 가는 것이 어려운 그들 부자는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 그가 야구장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서울성모병원 홍영선 원장과의 색다른 인연때문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잠시 한담을 나누던 환자와 의사는 서로 원년부터 두산을 좋아해온 야구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홍 원장의 진료에 고마움을 표시하려던 그는 어느날 홍 원장에 두산 야구모자를 선물했다. 그리고 이에 감탄한 홍 원장은 이환씨의 바람인 야구경기 관람을 위해 잠실구장 입장권을 끊어왔다. 주치의와 함께 가면 야구 관람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 배려였다.
이들의 아름다운 야구장 동행 이야기는 소문을 타고 두산의 김진 사장과 김경문 감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김경문 감독은 이들의 두산 사랑에 감동해 플레이오프 3차전에 환자와 홍 원장을 함께 초대했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환자가 선수, 감독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30여년간 두산을 사랑해온’ 팬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였다.
▶“이환씨를 생각하며 뛰었다. 오늘의 승리로 힘좀 받아가셔서 완쾌하시길 바란다”=환자가 관람석에 있다는 소식에 지친 두산 선수들은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1회부터 삼성에 선취점을 뺏긴 이들은 곧바로 추격에 나섰다. 4회, 3점을 거두며 역전에 성공한 이들은 8회초, 삼성의 불의의 일격을 받아 연장에 돌입하게 됐다.
비까지 맞아가며 7번의 포스트 시즌 경기를 치뤄온 두산은 어느덧 선수가 바닥난 상태였다. 11회초, 삼성에 두점을 내준 상황에선 김 감독마저 ‘오늘은 안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마지막 투지를 불태웠다. 두산은 11회말, 3점을 내리 뽑아내며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이날 그라운드에서 뛴 두산 선수는 총 24명. 선발 로테이션에 걸려있는 2명만 빼고 전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에서 뛴 셈이다. 11회에는 지친 주전 김동주를 쉬게 하려고 발이 느린 용덕한을 대주자로 내보내는 진풍경마저 벌어졌다.
경기가 끝난 후 환자와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만남을 가졌다. 환자가족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종욱은 “저를 가장 좋아해주신다니 너무 감사하다. 오늘 이환씨를 생각하며 뛰었다. 오늘의 승리로 힘좀 받아가셔서 완쾌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환씨 역시 “오늘 정말 짜릿한 역전 극을 가져온 두산의 ‘끈질긴 야구’와 허슬플레이에 감동을 느꼈다”며 “두산 야구처럼 끈질기게 병을 이기고 살아나 보겠다“고 말했다.
두산 선수단 전원은 이 환씨 가족과 홍 원장을 둘러싸고 기념촬영도 가졌다. 촬영전 한 선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건 코리안 시리즈 우승보다 감격적인 사진이야”. 끈질긴 승부로 팀과 팬 모두에 ‘기적’을 안겨준 두산 선수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m.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39)
10일,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둔 두산 덕아웃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김경문 감독의 훈시가 끝나자 선수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그라운드로 나갔다. 5시간에 걸친 엎치락 뒤치락 숨가쁜 접전끝에 11회초, 두산은 삼성에 2점을 내주며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이들의 끈질긴 투지는 결국 ‘기적’을 낳았다. 11회말 선두타자 이종욱을 시작으로 5타자가 모두 안타 및 4사구로 출루하면서 내리 3점을 거둬들이며 짜릿한 역전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1루쪽 날개석에서 지켜보는 한 팬의 입에서는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28년간 두산(당시 OB) 베어스 팬으로 지금 말기 림프종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이환(40)씨였다.
▶골수 야구팬 이환씨, 야구서 힘을 얻다=이환씨가 두산팬이 된 것은 프로야구가 개막한 1982년부터의 일이다. 당시 OB베어스였던 두산의 활약을 보며 자라난 그는 야구장에서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고, 야구를 보며 데이트를 즐기다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아내와 야구장을 다닐 만큼 골수 야구팬으로 야구는 생활이었다.
그런 그가 젊은 나이에 림프종 진단을 받으면서 행복했던 가정생활도 점차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또 요양병원을 다니며 집과 떨어져 있다보니 아들(12)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졌다. 건강과 가정의 화목이라는 두가지 행복에서 동시에 멀어진 이환씨에게 다시 힘을 준 것은 그의 사랑, ‘야구’였다.
그는 관계가 서먹서먹해진 아들을 불러다 야구규칙을 하나하나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축구만 좋아하던 아들도 야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더니, 하일성씨가 펴낸 야구교재를 사달라 주문하고는 야구에 흠뻑 빠졌다. 덕분에 봄부터 가을까지, 야구가 있는 시즌에 대화거리가 생긴 부자는 점점 거리를 좁혀갔고, 이제는 그 어떤 부자보다 절친한 사이로 거듭나게 됐다.
플레이오프 3차전 경기가 끝난뒤 두산 덕아웃에서 홍영선 서울성모병원장, 주천기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 두산 김경문감독, 이 환씨 아들과 이 환씨(왼쪽부터)가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하지만 아픈 몸으로 경기장을 가는 것이 어려운 그들 부자는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 그가 야구장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서울성모병원 홍영선 원장과의 색다른 인연때문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잠시 한담을 나누던 환자와 의사는 서로 원년부터 두산을 좋아해온 야구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홍 원장의 진료에 고마움을 표시하려던 그는 어느날 홍 원장에 두산 야구모자를 선물했다. 그리고 이에 감탄한 홍 원장은 이환씨의 바람인 야구경기 관람을 위해 잠실구장 입장권을 끊어왔다. 주치의와 함께 가면 야구 관람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 배려였다.
이들의 아름다운 야구장 동행 이야기는 소문을 타고 두산의 김진 사장과 김경문 감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김경문 감독은 이들의 두산 사랑에 감동해 플레이오프 3차전에 환자와 홍 원장을 함께 초대했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환자가 선수, 감독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30여년간 두산을 사랑해온’ 팬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였다.
▶“이환씨를 생각하며 뛰었다. 오늘의 승리로 힘좀 받아가셔서 완쾌하시길 바란다”=환자가 관람석에 있다는 소식에 지친 두산 선수들은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1회부터 삼성에 선취점을 뺏긴 이들은 곧바로 추격에 나섰다. 4회, 3점을 거두며 역전에 성공한 이들은 8회초, 삼성의 불의의 일격을 받아 연장에 돌입하게 됐다.
비까지 맞아가며 7번의 포스트 시즌 경기를 치뤄온 두산은 어느덧 선수가 바닥난 상태였다. 11회초, 삼성에 두점을 내준 상황에선 김 감독마저 ‘오늘은 안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마지막 투지를 불태웠다. 두산은 11회말, 3점을 내리 뽑아내며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이날 그라운드에서 뛴 두산 선수는 총 24명. 선발 로테이션에 걸려있는 2명만 빼고 전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에서 뛴 셈이다. 11회에는 지친 주전 김동주를 쉬게 하려고 발이 느린 용덕한을 대주자로 내보내는 진풍경마저 벌어졌다.
말기 림프종을 앓고 있는 두산팬 이 환(좌)씨가 플레이오프 3차전 11회에 선두타자로 나와 안타를 치며 승리를 견인한 이종욱과 함께 악수를 하며 병마와 싸울 의지를 다짐하고 있다(위). 손시헌의 적시타로 두산의 승리가 결정된 직후 이 환씨와 아들, 그리고 홍영선 서울성모병원장(왼쪽부터)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승리를 기뻐하고 있다. |
경기가 끝난 후 환자와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만남을 가졌다. 환자가족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종욱은 “저를 가장 좋아해주신다니 너무 감사하다. 오늘 이환씨를 생각하며 뛰었다. 오늘의 승리로 힘좀 받아가셔서 완쾌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환씨 역시 “오늘 정말 짜릿한 역전 극을 가져온 두산의 ‘끈질긴 야구’와 허슬플레이에 감동을 느꼈다”며 “두산 야구처럼 끈질기게 병을 이기고 살아나 보겠다“고 말했다.
두산 선수단 전원은 이 환씨 가족과 홍 원장을 둘러싸고 기념촬영도 가졌다. 촬영전 한 선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건 코리안 시리즈 우승보다 감격적인 사진이야”. 끈질긴 승부로 팀과 팬 모두에 ‘기적’을 안겨준 두산 선수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m.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39)
댓글목록
훈훈한 감동이네요. 투병 생활에 활력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