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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건 조회 1,703회 작성일 2010-07-11 19:57
야구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광환(58회) 서울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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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광환(58회) 서울대 감독
기사입력 2010-07-11 14:14 |최종수정 2010-07-11 14:39

이광환 서울대 야구부 감독. 감독은 물론이려니와 코치, 구단 정비인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만은 프로야구 감독 시절보다 편하다고(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란 뜻이다. 요즘 들어선 사회적 신분과 별개로 ‘받은 만큼 베푼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반대말도 있다.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다. 사회 지도층의 비도덕적 행위를 뜻한다. 근간엔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있는 사람이 더하다’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사회 각 분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한창 자리 잡는 지금. 과연 야구계는 어떨까. 한 야구인은 “아직 국내 야구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보다 노블레스 말라드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단언했다.

“계약금, 연봉으로 수억 원씩 받은 프로야구 감독 가운데 은퇴하고서 유소년이나 아마추어 야구선수들을 무료로 지도했던 이가 있다면 손 한번 들어보라고 해라. FA(자유계약선수)로 수십억 원을 챙긴 스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일본은 은퇴한 지도자와 선수들이 지역사회나 야구계를 위해 봉사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야구를 이용하려고만 든다. 야구 지도층 인사만 봐도 그렇다. 역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가운데 야구인의 존경을 받았던 이가 누가 있었나. 전임 총재만 해도 비리에 연루돼 도망치듯 KBO를 나오지 않았는가. 야구 덕분에 쌓아올린 부와 명예를 다시 야구를 통해 돌려주면 좋으련만…아직 우리 야구계엔 ‘받은 만큼 돌려주는 문화’가 낯선 것 같다.”

반론도 있다. 많은 야구인은 “받은 만큼 베풀기엔 내 코가 석 자”라고 말한다. “기부도 좋고, 봉사도 이해하지만, 손에 뭐라도 쥐고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는 기부를 성금이나 기부금을 내는 행위로만 한정했기 때문이다. 봉사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우월적 지위에 있는 이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행위라고 오인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기부와 봉사는 뭘까.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대가 없이 내놓는 것이다. 자신의 앎과 경험을 다른 이와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결국, 그 속에서 삶의 기쁨과 보람을 찾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광환(62) 서울대 감독이야말로 그런 삶을 사는 이다.

양지보다 음지를 지향했던 이광환

지난 5월 경기도 남양주 리틀야구장에서 열린 '다산기 전국리틀야구대회' 시상식에 참가한 이광환 감독(사진 오른쪽). 그는 한영관 대한리틀야구연맹 회장(왼쪽)과 함께 한국 리틀야구 부흥에 앞장 섰고, 이윽고 결실을 맺었다. 한국 리틀야구팀은 두 이가 힘을 합치기 전인 2006년 이전만 해도 20개 남짓했다. 그러나 지금은 단 4년 만에 110개로 증가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사에 큰 획을 남긴 지도자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 베어스(두산의 전신) 타격코치를 맡아 윤동균, 김우열, 김유동 등 개성이 뚜렷한 선수들을 잘 관리해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OB 코치를 그만둔 뒤엔 타 구단의 구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세인트루이스)과 일본(세이부)으로 날아가 코치 연수를 받았다. 지금의 감투보다 미래의 프로야구를 위해, 선진야구 습득이 절실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88년 OB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이 감독은 미 메이저리그 스타일의 ‘자율야구’를 표방했다. 당시 야구계는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웠다. ‘체벌과 타율’에 의존했던 프로야구에 아직 자율은 무리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을 밀어붙였고, 선수들 스스로 알아서 훈련하는 문화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1991년 LG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뒤에는 ‘신바람 야구’를 주창하며 팀을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금은 4강도 꿈인 LG지만, 이 감독이 재임했던 1990년대 중반은 포스트 시즌 진출은 뉴스거리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LG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하며 강팀으로 군림했다.

2001~2003년까지 한화에서 지휘봉을 잡고 2003년 다시 LG로 돌아왔던 이 감독은 2008년 히어로즈를 끝으로 20년간의 프로감독 생활을 접었다.

누구보다 화려했던 현역 지도자 생활을 보낸 그였는지라, 은퇴 후에도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협회장을 맡아달라’, ‘야구사업을 같이하자’, ‘로비를 도와주면 큰돈을 드리겠다.’ 등 수많은 제의로 그를 유혹했다.

지난 1월 23일 일본 와세다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아시아티볼연맹’ 창립식에 한국티볼협회 고문 자격으로 참석한 이광환 감독(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이 일본티볼협회장인 가이후 도시키 전 수상(맨 왼쪽)과 환담하고 있다. 모든 야구인이 "무슨 티볼이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 감독은 KBO 육성위원장 시절부터 티볼보급에 힘썼고, 덕분에 아시아티볼연맹에서 한국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데 공헌햇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그러나 이 감독은 명예와 금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정작 그의 관심을 끈 건 유소년야구 활성화와 티볼을 통한 야구 저변 확대, 여자야구 보급 등이었다. 하나같이 누가 알아주지도, 돈이 되지도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성과도 컸다. KBO 육성위원장을 맡기 전, 전국의 리틀야구는 20개 남짓했다. 그러나 이 감독이 육성위원장을 맡고 난 뒤엔 200개로 늘었다. KBO 총재를 설득해 유소년 야구기금을 늘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자체 단체장을 만나 유소년 야구지원을 읍소한 덕분이었다.

티볼도 마찬가지다. 육성위원장 재직 시절부터 티볼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 감독은 티볼강습회에 직접 강사로 나서는 등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여자야구 역시 여자야구협회 부회장을 맡으며 누가 등 떠밀지도 않았는데 동분서주했다.

여느 야구인 같으면 이젠 쉴 법도 한데. 그러나 이 감독은 최근 서울대 야구부 감독을 맡으며 다시 그라운드로 복귀했다.

최약체 야구부 사령탑을 자청한 최고의 감독

실력은 꼴찌지만, 열정만은 우승팀 못지않은 서울대 야구부의 훈련장면(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 감독이 서울대 야구부 감독을 맡았을 때 야구계의 반응은 ‘이광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보수는 고사하고, 코치 한 명 없는 서울대 야구부를 유명 야구감독 출신 가운데 이 감독이 아니면 누가 맡았겠느냐”며 “이 감독만큼 기부와 봉사를 몸으로 실천하는 야구인도 드물다”라고 평했다.

사비를 털어 캄보디아에 야구장을 지어주는 등 야구 기부라면 이 감독 못지않은 허 위원이지만, 이 감독의 서울대 감독 취임은 야구계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란다.

서울대 야구부는 순수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됐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연유일까. 1977년 재창단하고 지금까지 서울대가 공식대회에서 승리한 경기는 단 한 번뿐이다. 2004년 9월1일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 B조 예선에서 광주 송원대에 2대 0으로 이겼다. 199연패 끝에 공식대회 첫 승이라, 서울대는 일약 언론과 야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로 다시 56연패를 기록하며 서울대 야구부는 대학야구계에선 더그아웃 한편에 세워진 배트처럼 존재감이 희박해졌다.

이 감독이 서울대 야구부 사령탑을 결심한 건 서울대·KBO·대한야구협회(KBA)의 야구지도자 전문 교육프로그램인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공동원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사무실이 서울대에 있는 관계로 이 감독은 오다가다 서울대 야구부원들의 훈련장면을 봤다.

야구실력은 미숙하지만,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남다른 그들을 보며 이 감독은 ‘누가 조금만 도와주면 더 야구를 재밌게 즐길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서울대 야구부 감독을 자청했다.

보수도, 명예도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 감독은 그것이 자신이 야구로부터 받은 사랑을 야구를 통해 돌려주는 길이라고 믿었다.

“서울대 학생들을 가리켜 ‘수재’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진정한 수재는 나 혼자 잘난 게 아니라, 남과 더불어 세상을 더 환하게 밝히는 이들이다. 야구는 나와 남을 하나로 묶는 매우 좋은 연결체다. 야구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가치를 학생들에게 전달한다면 그것 또한 야구인으로서 최고의 보람이 아닐까 싶어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5평 남짓한 '베이스볼아카데미' 사무실에서 손수 일정을 쓰고 있는 이광환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서울대 야구부원은 총 19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방학기간이라 팀 훈련에 참가하는 이는 10명도 되지 않는다. 여기다 인턴사원으로, 고시준비로 어쩔 수 없이 훈련을 거르는 이도 꽤 된다. 이 감독은 “언제 훈련하러 왔는지도, 가는지도 모를 만큼 선수들이 바쁘다”며 “그래도 행정고시에 붙었다고 인사하러 오는 선수들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온종일 훈련에 매달리는 다른 대학 야구부원들과 달리 서울대는 매주 두세번,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3시간가량 훈련한다. 정직하게 표현해 말이 훈련이지 레슨에 가깝다. 대학 입학 전까지 야구를 직접 해본 이가 드물어 타격, 투구, 수비, 주루 모두 기초부터 배운다. 이 감독이 “중학교 저학년 선수들과 맞붙어도 이기기 쉽지 않다”라고 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의 열정과 태도는 야구명문대의 선수들 못지않다. 3, 4학년이 됐을 땐 어디 가서 야구선수라고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된다고.

하지만, 그 정도 학년이면 취업과 고시준비로 바빠 대회에 출전하기가 어렵다는 게 서울대 야구부의 고민이다. 그래도 서울대 야구부의 존재 목적이 성적보단 ‘엔조이(즐기는) 베이스볼’이기 때문에 누구 하나 아쉬워하지 않는단다.

7월 8일 서울대를 방문했을 때 학교 관계자는 "이광환 감독이 매번 훈련시간보다 3, 4시간 일찍 출근해 그라운드를 손수 정비한다"고 말했다. 이날 이 감독은 정확히 3시간 30분 전에 출근했다. 이 감독이 서울대 감독직을 맡겠다고 했을 때 학교 측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무보수와 열악한 환경을 들어 난처해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야구로부터 받은 은혜를 야구를 통해 갚는 건 야구인의 의무"라며 학교 측을 안심시켰다. '감독은 카리스마로 선수를 제압하는 이가 아니라,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는 조언자'라는 게 이 감독의 감독관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 감독은 훈련 시작 3시간 전에 출근한다. 오후 2시면 사무실에 도착해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선수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한다. 오후 3시 30분엔 어김없이 운동장에 나가 손수 그라운드에 물을 뿌리고, 먼저 도착한 선수들을 개인지도한다.

따지고 보면 이 감독은 프로 감독일 때도 가장 먼저 출근했다. 선수보단 코치가, 코치보단 감독이 먼저 야구장에 출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야구관이다.

“1991년 LG 감독이 됐을 때, 선수는 3시간, 코치는 4시간 전에 출근할 것을 지시했다. 먼저 야구장에 와서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전력분석을 해야 그날 경기를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저항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프로야구의 일상이 됐다. 이렇게 사전 준비를 완벽하게 하려면 누구보다 감독이 가장 먼저 출근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하는 오후 5시부터 이 감독은 직접 배트를 들고 펑고를 친다. 수비가 부족한 선수가 있으면 직접 수비자세를 취하며 가르친다. 그러나 이 감독의 지도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질책보단 칭찬, 주입보다 창의’가 그것이다.

이 감독은 아무리 스윙자세가 엉성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스스로 스윙을 하며 문제점을 찾기까지 기다린다. 자신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엔조이 베이스볼’의 핵심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직접 펑고를 치는 이광환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7월 8일 서울대 야구부를 찾았을 때 운동장 한편에서 야구를 즐기던 일반 학생들은 이 감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분이 정말 이광환 감독이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유명 프로야구 감독이 은퇴 후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가 없이 지도하는 게 그만큼 낯선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기부는 돈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

훈련 전 그라운드에 물을 뿌리는 이광환 감독. 선수들의 부상방지와 쾌적한 훈련환경을 위해 이 감독은 뙤약볕 아래에서 한 시간이 가깝게 물을 뿌렸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 감독은 “서울대 야구부가 더 좋은 팀이 되려면 야구장 보수공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야구장은 야구장이라고 하기엔 미흡하다. 구장 규모는 둘째치고, 50개가 넘는 야구동아리와 함께 사용하는 바람에 구장 관리 상태가 좋지 않다. 여기저기 땅이 파여 있고, 자갈이 섞여 있어 부상의 위험이 크다.

실제로 서울대 야구부원과 일반 동호인 가운데 불규칙 바운드로 부상을 당해 아예 야구를 그만둔 이도 상당수다.

이 감독은 인조잔디를 깔고, 전체적으로 구장을 정비하는데 10억 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 재원 조달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안을 세우고 있었다.

“기업이 시설물을 지어 기부하고, 시설물에 기업명을 붙이는 이른바 네이밍 마케팅을 통해 구장 증·개축이 가능하다. 서울대 내 SK 경영관, 포스코 생활체육관, CJ 어학연구소가 있는 만큼 반드시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직접 모금 운동에 나서 학생들에게 더욱 나은 환경을 제공해줄 참이다. 그것이 어차피 감독의 할 일이니까.”

서울대이기 때문에 특별 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서울대의 야구 인프라 개선이 엄혹한 한국야구 인프라의 획기적인 변화에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야구계가 이 감독과 서울대 야구부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부에선 “프로야구 감독 시절 벌어둔 돈이 있으니 그나마 봉사할 여유라고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감독은 세간의 시선과 다르게 벌어둔 돈이 거의 없다. 1995년 제주도 서귀포에 야구박물관을 짓는데 그동안 번 돈을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감독이 사비를 털어 야구박물관을 짓지 않았다면 한국야구사의 많은 기록물이 한줌의 재로 사라졌을 일이다.

제주도 서귀포에 위치한 야구박물관. 이광환 감독이 사재를 털어 지었다. 한국 유일의 야구박물관이자 기념관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 감독은 취재 말미에 “기부 혹은 봉사라는 말은 쓰지 마라”고 했다. “야구인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게 어째서 기부고 봉사냐”고 되물었다. 되레 “자신이 가진 야구경험과 기술을 전달할 수 있어 고마울 뿐”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 감독을 시작으로 야구인 가운데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야구는 인기스포츠를 넘어, 명실공히 존경받는 스포츠가 될 것이다. 이 감독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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