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출발점 ‘1960년 한국의 봄’…4월혁명은 아직도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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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출발점 ‘1960년 한국의 봄’…4월혁명은 아직도 진행형 [중앙일보]
50년 전 민주주의 외친 10인 … 그들이 말하는 ‘4·19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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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12년 만인 1960년 오늘 ‘신생국’ 대한민국에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자”는 거대한 불길이 타올랐다. 186명이 희생됐고,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났다. 그 4·19가 50주년을 맞았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서 있다. 반세기 전 민주주의를 외쳤던 10명으로부터 ‘4·19 정신’을 들어봤다.
고정애·백일현·허진 기자
※가나다순, 괄호 안은 당시 신분. ① 4·19 당시 한 일 ② 한국 현대사에서 갖는 의미 ③ 주역으로서 아쉬운 점
류덕희 경동제약 회장(성균관대 화학 4년)
박관용 전 국회의장(동아대 정치학 4년)
박명수 전 중앙대 총장(중앙대 행정학 4년)
송석구 전 동국대 총장(동국대 철학 3년)
안동일 변호사(서울대 법학 3년)
이성근 전 한성대 총장(연세대 정치학 3년)
이세기 전 의원(고려대 정치학 4년)
이청수 전 KBS 해설위원장(서울대 정치학 2년)
전대열 민주평통 운영위원(전북대 정치학 3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경동고 3년)
역사는 4·19를 어떻게 평가했나
‘피의 화요일’
●1960년 4월 19일 무렵
●‘4·19사태’, ‘4·19데모’, ‘4·19사건’도 혼용
‘4월혁명’, ‘ 4·19혁명’, ‘4·19민주혁명’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직후부터 제2공화국까지
● 60년 8월 12일 윤보선 대통령, 취임 때 “거룩한 4월혁명은 대다수 국민의 민권탈환의 금자탑”
‘4·19의거’
●박정희 정부 때 ‘의거’로 규정
● 66년 4·19 6주년 박 대통령 “4·19의거를 통해서 새 역사 창조의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4·19혁명’
●김영삼(YS) 정부 이후
● 93년 33주년 YS “4·19혁명은 전 국민이 참여한 운동으로 이제 재평가돼야”
●94년 12월 국가유공자예우법에 ‘4·19의거’→‘4·19혁명’
● 2009년 49주년 이명박 대통령 “(4·19 주역들이) 정권을 안잡아 숭고한 민주 의지가 역사에 더 빛난다”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35)
댓글목록
당시나는 중앙중학교 3학년생(17세) 이었고 경무대앞까지 혼자 ..그리고 이승만 박사의하야때까지 서울의거리를 군중들과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그저 군중심리에 휘말려 든것으로 지금알고있으나 그것이 진정한 불의와 부정에 대한 정의의 표현의 초심이었으리라!)
그 당시 경찰관들이 제복을 골목에 마구벗어 버리고 달아나는모습이나 신문로 파출소 에 들어섰을때 학생과군중들의 담대한행동이나 부도덕한행동 이모든것이 6,25 동란때의 모습을 상기시키기도했다,
동양극장앞 전찻길 에 싸놓은 이기붕씨집 에서나온 비단등등의물건을 불태웠든모습과 그물건응 챙겨가는 얌체족들 그리고 경무대앞에서 총 탄에맞아 쓰러진 학생들을 시발택시 위에까지싣고가는 모습 모두가 진정 아수라장이었다.이박사의햐야 발표가 있던 날 이대여학생( 당시에 그 여대생은 다리에 총상을 입었던걸로 알고있음)이 핫생과 일반 군중들과함께 "이 승만독재 정권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상처의 아품도잊고서 미친듯이 돌아다녔던 모습이생생하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나를 찿아 광화문 (당시 모교국어선생 임광, 임한, 선생집에내가 세들어살고있었음)에서 학교까지를 몇번이고 정신없이 왔다갔다하셨다고 나에게 후에 말씀해주셨다,진정한 정의를 위해 젊은 학생들과 경륜이있는 어르신들 (국민)의 함께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을 함양했던 것이아닌가?
우리는 다시한번 4-19 를 조명해보지않으련가?
그리고서 우리의후손들에게 가르치는 자의 옳고바른 본을 보여주어 배우는 후손들과 한마음한뜻으로 분쟁없이 合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있는 홍익인간의세계를 이루어보자!
그 당시 경찰관들이 제복을 골목에 마구벗어 버리고 달아나는모습이나 신문로 파출소 에 들어섰을때 학생과군중들의 담대한행동이나 부도덕한행동 이모든것이 6,25 동란때의 모습을 상기시키기도했다,
동양극장앞 전찻길 에 싸놓은 이기붕씨집 에서나온 비단등등의물건을 불태웠든모습과 그물건응 챙겨가는 얌체족들 그리고 경무대앞에서 총 탄에맞아 쓰러진 학생들을 시발택시 위에까지싣고가는 모습 모두가 진정 아수라장이었다.이박사의햐야 발표가 있던 날 이대여학생( 당시에 그 여대생은 다리에 총상을 입었던걸로 알고있음)이 핫생과 일반 군중들과함께 "이 승만독재 정권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상처의 아품도잊고서 미친듯이 돌아다녔던 모습이생생하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나를 찿아 광화문 (당시 모교국어선생 임광, 임한, 선생집에내가 세들어살고있었음)에서 학교까지를 몇번이고 정신없이 왔다갔다하셨다고 나에게 후에 말씀해주셨다,진정한 정의를 위해 젊은 학생들과 경륜이있는 어르신들 (국민)의 함께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을 함양했던 것이아닌가?
우리는 다시한번 4-19 를 조명해보지않으련가?
그리고서 우리의후손들에게 가르치는 자의 옳고바른 본을 보여주어 배우는 후손들과 한마음한뜻으로 분쟁없이 合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있는 홍익인간의세계를 이루어보자!
내게는 너무나 많은 쓸거리가 있다 그런데 왠지 쓸려면 사라지고 ....하니 나에게 글쓸수있는 재능은 제로(zero)인가 ...
그래서 나는 죽지않고서 나의 뇌리에 떠돌고있는 내생에 경험과 보아온사실을 하나도 보탬도없고 덜함도없고 인봉함도없이 있던그대로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적어두고싶고 꼭 행하리라 이것이나의 남은 삶의 목표가될지니라! .."그래도 못다한말"(전 숙대 교수김남조시인 님이쓰신)이란 제목으로 차후 내목숨이 붙어있는 한 꼭 쓰고야 말리라
감사합니다! 이제 남은 생을 내가 사는 이유는 단한가지 권선 징악 을 행하면서...살리라!
그래서 나는 죽지않고서 나의 뇌리에 떠돌고있는 내생에 경험과 보아온사실을 하나도 보탬도없고 덜함도없고 인봉함도없이 있던그대로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적어두고싶고 꼭 행하리라 이것이나의 남은 삶의 목표가될지니라! .."그래도 못다한말"(전 숙대 교수김남조시인 님이쓰신)이란 제목으로 차후 내목숨이 붙어있는 한 꼭 쓰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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