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준(70회)-매경 경제부장 데스크칼럼 > 교우소식


교우소식

댓글 0건 조회 1,784회 작성일 2009-10-23 14:28
전병준(70회)-매경 경제부장 데스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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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鄭총리님 벤치를 벤치마킹하세요

 
 
 
 
얼마 전 정운찬 총리의 애제자인 한 언론인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정 총리의 야구사랑을 화제로 이야기하던 중 그는 내게 불쑥 "정 총리의 어린시절 포지션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호리호리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외모를 생각한 나는 "숏스톱이나 2루수가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포수`였다.

정운찬 총리는 야구광이다. 기자도 야구를 무척 좋아한다. 언젠가 한번 메이저리그를 화제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기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정 총리가 미국 야구를 접했을 70년대로 돌아가보기로 했다.(그는 71년 8월부터 78년 12월까지 미국에 있었다.)

정 총리가 미국 야구를 보며 마음이 설랬을 70년대 중반 메이저리그 최강팀은 이른바 `빅 레드 머신`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신시내티 레즈였다. 물론 70년대 초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루기는 했지만 미국인들은 누가 뭐래도 75년, 76년 월드시리즈를 2연패한 신시내티 레즈를 70년대 최강으로 꼽는다.

인구 50만명도 안 되는 올드 시티 신시내티. 그곳을 근거지로 하는 레즈가 70년대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당시 레즈의 멤버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메이저리그 최다안타(4256개)에 빛나는 피터 로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2루수 중 한 명인 조 모건, 당대 강타자 조지 포스터와 쿠바계 토니 페레즈, 철벽수비 데이브 켄셉션과 켄 그리피 주니어의 아버지로 유명한 켄 그리피 시니어. 이들이 모여 꿈의 라인업을 구성했다. 물론 명선수들 위에는 명감독이 있었다. 훗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월드챔피언으로 만들어 두 팀에서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스파키 앤더슨이 그다. 선수로서는 별볼일 없었지만 냉철하고 이지적인 승부사 기질로 위대한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야구를 좀 아시는 분은 누군가 한 명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다름아닌 자니 벤치다. 공격형 포수의 전형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포수 중 한 명이다. 두툼하면서도 과묵한 인상에 언뜻언뜻 보이는 인자함까지 한마디로 포수의 얼굴이다. 아니 얼굴뿐만 아니라 실제로 `빅 레드 머신`의 전성기를 논할 때 그를 빼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그를 `레즈의 심장`이라 부르곤 했다. 저마다 개성 있는 스타들을 하나로 묶어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질책하던 그가 없었다면 `전설의 레즈`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어렸을 때 포수를 보다가 공에도 여러 번 맞았다는 정운찬 총리.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미국 야구를 처음 접했을 때 자신의 어린시절 포지션인 포수로 최고 명성을 얻고 있던 자니 벤치. 나이도 한 살 차이다. 나는 기자의 상상력을 동원해 오늘날 정 총리가 벤치로부터 총리직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 한두 가지 교훈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명을 고분고분 따르는 총리를 주문한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이 효율적일수록 국가적 시너지가 커진다고 생각한다. 명감독 앤더슨이 덕아웃에서 총지휘를 했다면 벤치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조율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들어본 적이 없다. 둘 다 스타였고 월드시리즈 2연패 주역들이었다. 세종시 문제, 경제위기 극복, 사회적 갈등 치유, 사교육 및 남북관계 등 여러 분야에서 총리는 특유의 철학을 가지고 내각을 이끌어야 한다.

내각의 유기적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정 총리의 역할이 기대된다. 당시 레즈는 백인(벤치, 로즈, 켄셉션), 흑인(모건, 포스터, 그리피), 히스패닉(페레즈) 등 다인종 스타로 구성된 팀이었다. 벤치는 맏형으로서 이들을 단결시키면서 앤더슨의 야구철학을 구현하는 첨병 역할을 해냈다. 정 총리가 이명박 정부의 중도ㆍ실용정책을 현장에서 지휘하는 `MB정부의 벤치` 가 되기를 기대한다.

[전병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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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2 16:44:52 입력


[데스크 칼럼] MB는 무엇으로 역사에 남을까?

 
 
 
 
"망국적인 노사문제 해결 경제의 잠재성장률 높이는데 최선 다하고 세종시 문제 총리뒤에 숨지말고 직접 나서야"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들어 정치를 좀 하고 있다. 아니 불과 얼마 전까지 혐오하던 정치를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우여곡절 끝에 `친서민ㆍ중도정책`을 표방하면서부터 어찌 보면 본격적인 정치가의 길로 나선 느낌이다.

최근 잇따라 내놓는 서민정책들을 보면 `정치라는 게 결국 이런 건가` 하는 쓴웃음마저 나온다. 지난 7월 사재 기부로 본격적인 발동이 걸린 친서민 정책기조는 생계형 범죄 사면, 친서민 세제지원 방안, 서민 학자금 대출제도 개선, 보금자리주택 등으로 이어지더니 지난주에는 기업과 금융회사의 도움을 받아 10년 동안 2조원을 투입하는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으로 절정을 이뤘다. 이런 가운데 평소 이념적으로 상당히 거리가 있던 정운찬 씨를 총리로 내정한 것도 최근의 기류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친서민 행보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크게 높였다. 불과 몇 달 전 20%대에 머물던 MB의 지지율은 최근 40%를 넘어 50% 이상으로 치솟았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양산된 신빈곤층을 보듬고 붕괴된 중산층을 복원하기 위해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응 수긍은 간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래야 하느냐에 대해서 의문부호가 남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의 본질은 물론 민심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민심에도 얻어야 할 민심이 있고 버려야 할 민심이 있다. 떡을 던져주면 민심은 환호하지만 계속 떡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떡을 줄이거나 주지 않으면 민심은 변하기 마련이다. 화려한 연극공연 뒤에 텅빈 객석과 같다고나 할까.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전직 장관은 "정치는 마약과 같아서 필요한 만큼만으로 그치기가 어렵다"며 "서민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정부정책이 경제원칙을 벗어나 정치 이벤트로 왜곡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친서민 정책은 국민을 함께 가게 만드는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사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압축성장을 통해 국민을 가난에서 구제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일관된 물가안정책을 통해 성장의 기반을 다진 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외환위기 당시의 피눈물나는 구조조정이 오히려 가장 큰 업적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역사적으로 평가받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물론 눈앞에 닥친 최근의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역사적으로 남을 일은 아니다.

우선 망국적인 노사문제를 해결해야한다. 노태우 정부 이래 한국경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강성노조였다. 다시 경기가 슬금슬금 회복되면 강성노조는 독버섯처럼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 뻔하다. 그러기 전에 국민적 합의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불법적인 노동관행에 일대 메스를 가해야 한다. 비정규직법 해결, 복수노조 설립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 3대 노동 현안이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대책마련에 주력해야 한다. 최근 세계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글로벌 기업간 순위변동이다. 원천기술과 신성장동력을 가진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에 확연한 실력차가 드러나고 있다. 결국 국가간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은 정부 혼자 할 수도 없고 이 대통령 재임 중에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씨를 잘 뿌린다면 후세에 대표적인 MB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종시 문제를 본인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 적당히 충청도 출신 총리 뒤에 숨어 손에 피 안묻히고 넘어가는 요행수를 바라서는 곤란하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안될 것은 안된다고 천명하는 단호한 대통령만이 역사에 남을 수 있다.

[전병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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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1 16:44:26 입력


[데스크 칼럼] 중도ㆍ실용 이끌 `몽골기병` 찾아라
추진력과 순발력을 갖추고 충성심으로 무장한 인재 뽑아야…
진정한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는건 대통령 몫

 

 
 
 
 
최근 만난 MB 정부 창업공신 중 한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을 옆에서 모셔보니 일류 충신이 삼류 간신에게 번번이 패하더라." 경우에 따라서는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간사, 특히 권력 관계에서 이른바 간신들의 경쟁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기자는 받아들였다.

이 관계자는 "간신들은 충신들보다 더 부지런한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들 단결력이 충신들보다 훨씬 앞서지요. 한두 가지 일을 가지고 그들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정책 타이밍을 결정적으로 놓친다거나 여론을 오도해 대통령에게 전하거나 불철주야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한 일 없이 세월만 보낸 특징이 드러나지요. 또 대통령이 싫어할 만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물론 자신들 자리는 철저하게 지키면서…"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MB 정부 들어서는 특히 인사의 질과 타이밍에 대한 비판 여론이 끊이질 않고 있다. 물론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집권 초기부터 여론이 불리하게 작용한 데다 여야 관계 악화로 청문회에서 벌어진 이전투구 등이 그런 분위기를 고조시킨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이제 청와대와 내각 개편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번 인사는 MB정부 중반에 들어서면서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중도와 실용을 이끌 사람들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기자가 정치부장 시절 MB 대선켐프에서는 `몽골기병`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의 푸른군대`처럼 기동성 있고 주어진 임무를 철저하게 수행하며 목숨을 건 충성심으로 정권을 창출하자는 자기최면이었을 것이다. 집권 이후 이런저런 인사에서 국민에게 신망을 잃었다면 이번 인사에서는 대통령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권하고 싶다.

우선 집권 2년차야말로 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좌고우면할 여유가 없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구상을 하는 사유형보다는 일단은 치고나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행동파 인사가 필요하다. 모든 정책은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더의 선택이다. 이미 MB 스스로가 중도ㆍ실용을 집권2기 슬로건으로 결정한 만큼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소모적이다. 이런 면에서 순발력 있는 선제적 공격으로 분명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추진력 강한 `몽골기병` 같은 인재를 골라야 한다.

충성도 역시 `몽골기병`의 대표적 특징이다. 흔히 정치권에서 충성하면 `조폭들의 의리`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대통령 국정철학을 수행해 나가는 `정부와 정권에 대한 충성도`는 매우 중요하다. 충성도가 약하면 조금만 여론의 역풍이 불어도 머뭇거리거나 자리 보전에 매달리기 일쑤다. 이미 충성도가 검증된 인사 중에서 해당 업무에 적합한 사람을 고르는 게 실수를 최대한 줄이는 길이다. 덧붙이자면 대통령에 대한 직격탄을 몸으로 막고 때에 따라서는 대신 산화할 각오가 서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촛불사태`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도대체 내 일이라 생각하고 온몸으로 부딪치며 일하는 사람이 없다. 역시 정치는 충성도가 기본"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새롭다.

대통령이 부리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일하는 스타일과 결코 유리될 수 없다. 이 대통령 스타일은 총론에 강한 자유방임형이라기보다 디테일을 중시하면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꼼꼼한 실무형에 가깝다. 결국 큰 틀에서 정해진 정책 방향과 과제를 빈틈 없이 수행하는 인재들이 주변을 보좌해야 정권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대부분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를 인재의 전형으로 꼽는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MB정부에 필요한 인재는 순발력과 추진력, 충성도를 함께 갖춘 `몽골기병`이 아닐까.

[전병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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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7 17:02:28 입력

[데스크 칼럼] `중도` 칼날 위에 선 경제장관들

 
 
 
 
기자는 2007년 5월 당시 정치부장으로서 매일경제 편집국장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간 인터뷰에 배석한 적이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통령이 복잡다단한 경제문제에 답하면서 매우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어투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었다. 또 경제수치를 자료도 보지 않고 답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기자는 `대통령이 경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구나. 저 밑에서 소신 있게 경제장관을 하기가 간단치 않겠구나. 아니면 아무 말 하지 말고 잠자코 있거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경제에 문외한이다시피 했던 대통령이 불과 집권 3~4년 만에 경제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게 영 어색하고 미덥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한국 정치에는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다. 정권의 성격과는 별개로 경제관료들이 정권 내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며 경제를 사실상 주도적으로 끌고 왔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최근의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꾸준히 증대돼 왔다. 그런 배경에는 정권 창출 세력의 입장에서도 경제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른바 실세들이 개입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그 결과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최고 집권자를 설득하며 한국 경제를 잘 끌어온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박정희시대 고도성장을 주도한 남덕우, 김용환 씨를 비롯해 5공정권 당시 물가안정에 총력을 기울인 김재익, 88올림픽 이후 한국 경제의 도약을 잘 관리한 최각규, IMF 경제위기를 잘 극복해낸 이규성, 이헌재 씨 등이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 이들의 특징은 시대적인 경제상황을 인식하고 각자 특유의 노하우와 식견으로 당대의 경제문제를 해결해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지시를 단순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할지에 대해 대통령을 설득하고 실행권한을 얻어낸 케이스들이다. 그런 전통이 있었기에 낙후되고 척박한 정치환경 속에서 이나마의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앞서 언급한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훨씬 더 경제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분이 이명박 현 대통령이다. 오죽하면 `MB노믹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을까. 그런 이 대통령이 요즘 기존의 노선에서 선회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하고 있다. `서민` 또는 `중도`를 본격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시장`을 외쳐오던 경제장관들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ㆍ여당은 법인ㆍ소득세를 중심으로 한 감세정책은 그대로 간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개별소비세와 전세임대소득세를 부활하고 죄악세를 신설하는 증세 아이디어가 함께 거론되고 있다. 겉으로나마 강조해 왔던 `구조조정`도 `중도`에 밀릴 기세다. 신용보증기금은 8월부터 연말까지 채무액 5000만원 이하 소액채무자가 3%의 약정증거금을 내면 최대 2년간 채권회수 활동을 중지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빚을 제때 갚은 사람이 바보가 된다.

경기 및 출구전략 논쟁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기에 대한 인식의 공유 없이 부처마다 서로 다른 신호를 내보내며 방향을 흐트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심지어 한 장관의 입에서 희망과 경고의 메시지가 불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출구전략의 경우 장관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지 어느 시점에 어떤 정도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주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에는 싫든 좋든 IMF라는 국제기구가 방향성을 잡아줬다. 지금 그 역할을 해줄 주체는 대통령이 아니라 경제장관들이어야 한다.

최근 만난 외환위기 당시 실무주역 중 한 인사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일단 해보다가 안 되면 그때 가서 바꾸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득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동산가격 폭등을 비롯해 자칫 잘못하면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전병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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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17:07:08 입력

[데스크 칼럼] 경제팀에 `EPB의 DNA` 가 아쉽다
"`근원`보다 `눈앞`에 만급급한 현 경제팀
금융위기후 한국경제 비전제시 못하고 근본치유 차일피일 미뤄"

 

 
 
 
 
얼마 전 전직 경제부처 한 고위 관계자와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식사 말미에 이 관계자는 "우리 경제가 요즘 잘나가는 듯 보이는 건 세계경제가 그럭저럭 굴러가기 때문"이라며 "사정이 그런데도 정부는 마치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것처럼 넋을 놓고 있으니…"라며 아쉬워했다. 이 관계자는 또 "윤증현 경제팀이 금융정책 외에는 관심과 추진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경제 살리기는 비전과 상상력을 혼합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것이어야 한다"며 "경제팀 안에 `EPB의 DNA`를 하루빨리 부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PB의 DNA`. EPB는 1994년 사라진 경제기획원(Economic Planning Board)의 영어 약자다. 압축성장 시대인 1960~1980년대에 거시정책과 예산을 다루면서 한국경제의 비전을 제시한 기관이었다. 서석준, 진념, 강봉균 등 한국경제를 책임졌던 수많은 경제관료의 산실이기도 했다. 흔히들 "재무부는 땅을 보고 경제기획원은 하늘을 본다"고 말했듯이 EPB는 경제의 중장기적인 청사진을 만들고 5년, 10년 후 경제의 모습을 그리는 게 주임무였다.

공교롭게 윤증현 경제팀에는 EPB 출신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윤 장관을 필두로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이 그렇고 진동수 금융위원장,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임종룡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모두 재무부 출신이다. 강만수, 최중경 전 재정부 장ㆍ차관도 같은 출신이어서 이 정부 들어 사실상 모피아(구 재무부 출신 관료)들이 경제정책을 전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이는 금융위기라는 특수성과 좋게 말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장기적인 구상을 `구름 잡는 소리`로만 생각하며 눈 앞에 보이는 지극히 단기적인 문제 해결에만 치중하는 스타일이다. EPB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던 박병원 전 경제수석이 쫓겨나다시피 청와대를 떠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한국경제의 화두는 `금융위기 이후의 비전`으로 모아지고 있다. 현재의 위기를 잘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후 경제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진화해 나갈 것이냐가 가장 큰 관심사다. 이 점에서 기자는 현 재정부를 비롯한 경제팀의 인식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경세제민의 틀`이 바뀌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에서 승부할 큰 그림보다는 하루하루를 넘기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예를 들어 내수의 중요성이 커진다면 국내 서비스산업을 언제 어떤 식으로 키워 수출ㆍ내수의 균형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 나와야 하는데 말만 무성했지 디테일한 청사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깊이 있는 근원 치유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를 위해 감독체계 개편이 절실하다는 지적은 지난해부터 계속 제기돼 왔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전쟁 중에 무슨 말을 갈아타느냐"며 근원 치유를 차일피일 미뤄온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최근 미국 정부가 연방제도준비이사회(FRB)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 소비자금융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정책안을 만들자 마지못해 움직이는 모습이다. 외부충격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던 구 재무부의 잘못된 관행이 현재 재정부와 금융위에 만연하다는 비판이 높다.

거시정책에 대한 무관심도 그 연장선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EPB 출신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특히 이 정부 들어와서 거시적 관점에서 경제를 보려는 노력은 거의 사라졌다"며 "그러다보니 작은 시그널에도 경제를 보는 정부의 시각이 왔다갔다 하는 사례가 많다"고 질타했다. 그는 "윤 장관이 자주 경기저점이나 회복시기를 말하는데 이는 실상을 호도할 수 있다"며 "대외요인에 아무런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V자 회복을 운운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최근 경제팀을 보면 `근원`보다는 `눈 앞`에만 급급한 MB정부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전병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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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2 17:03:15 입력


데스크 칼럼] 달러버블 붕괴에 주목하라

 
 
 
 
"미국 국채 투매로 달러화 폭락 가능성…수출에만 목매는 한국경제에는 치명타…구조조정 서둘러야"

최근 한국경제에 대한 다소 낙관적인 견해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주식시장이 예상 밖으로 잘 버텨주고 있고 우려했던 1분기 기업실적도 그럭저럭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비판적이었던 외국언론들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이어 뉴욕타임스도 최근 "한국경제가 1분기를 통해 경기반등의 희망을 키웠다"고 보도했다. 이러다 보니 벌써 `경기 바닥론` 논쟁이 일면서 바닥이 상반기니 하반기니 하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과연 안전한가. 미증유의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경제는 별 문제없이 흘러갈 것인가. 기자는 이 대목에서 상당한 착시현상이 있다고 본다. 외견상 한국경제는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결코 안전한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얼마 전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위기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한 데 대해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현 경제의 본질을 상당히 냉정하게 분석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그나마 한국경제가 버텨오고 있는 것은 이른바 `환율효과` 때문이다. 국제위기 때면 나타나는 `달러화 강세` 현상 덕에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대규모 기업 감원도 없고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한 국제공조 차원에서 재정ㆍ금융을 총동원해서 돈을 풀다보니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들먹거리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달러화 강세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글로벌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이른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종식되면 달러화의 하향 재평가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된다. `달러화 만능` 인식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버블 속에서 과대평가된 달러화의 폭락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 붕괴에 이어 지난해 부동산 버블이 꺼졌고 다음은 달러화 버블이 꺼질 차례라는 우려다.

이미 적지 않은 해외석학들은 `달러의 위기` 시나리오에 주목해왔다.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가 지속되면서 미국 정부가 국채를 찍어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달러를 찍어 이를 떠안는다. 달러가 넘쳐나면 그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기감의 정점에서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매입을 거부하거나 투매에 나서게 될 것이다. 국채 투매에 따른 금리상승은 그 자체로 세계경제의 대재앙이다. 더욱 중요한 포인트는 FRB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 문제다. `최고 안전상품`으로 각광받던 미국 국채의 브랜드 가치를 말아먹은 것으로 판명되는 순간, FRB는 신용상실에 따른 통제불능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FRB와 달러화에 대한 국제신뢰가 깨지면 세계경제는 조종사를 잃은 비행기처럼 추락할 수밖에 없다.

달러의 위기가 현실화됐을 때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미국 국채의 최대 고객인 중국과 일본이 될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 국채 가격이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경제에 2차, 3차 위기를 가져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달러의 위기는 한국경제에도 치명적이다. 우선 수출경쟁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할 우려가 크다. 그나마 불안하게 버텨온 한국경제는 급격한 경기하락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중국발, 일본발 충격이 더해지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달러의 위기와 관련해 한국의 선택 폭은 그리 넓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경제 안에서 달러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여가면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 및 기업의 체질을 개선해 놓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지금 국내 분위기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괜히 있지도 않을 위기를 과장해 기업을 옥죌 필요가 없다는 안이한 시각이 주류다. 이들은 달러화 폭락은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달러화 폭락은 이미 목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전병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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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7 17:09:12 입력

[데스크 칼럼] G20에서 신뢰와 실리를 챙기자

 
 
 
 
최근 야구대표팀의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선전이 화제다. 비록 아쉽게 일본에 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한국 야구의 수준을 전세계에 알린 감명 깊은 대회였다.

며칠 후면 `경제의 WBC`격인 G20 정상회의가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다. 정상회의장에는 각국에서 4명씩만 참석하는데 우리 대표단은 감독 겸 주장격인 이명박 대통령과 윤증현 재정부 장관,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안호영 외통부 통상교섭조정관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회담이 의미를 갖는 것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 논의되기 때문이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몇 개국의 밀실논의에서 벗어나 실제 세계경제를 끌어가고 있는 주요국들이 대부분 망라돼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사실 지난해 10월 처음 논의할 때만 해도 G20정상회의에 대한 기대는 저조했다. G20보다는 G13, G14의 실효성이 더 높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았다. G20에 새삼스럽게 힘이 실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직면한 세계가 G20체제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G20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선진국과 신흥국이 10개국씩 참여하고 있다는 점, 전세계 GDP의 85~90%와 교역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 한국은 세계 12~13위 수준의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G13 또는 G14에 끼기에는 벅찬 상황이었다. 신흥국, 아시아국으로서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우리에게는 세계적 논의에 낄 수 있다는 점에서 행운인 셈이다.

자 이제 `경제의 WBC`라는 대화의 장은 마련됐다. 그렇다면 우리 대표단은 어떤 전략을 갖고 정상회담에 임해야 할 것인가. 우선 세계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체제를 강화하는 데 매우 협조적이고 필요한 국가라는 인식을 주어야 한다. 사실 한국은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두 가지 평가를 함께 받아왔다. 무섭게 성장하는 경제라는 평가와 함께 주변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만 주장해온 나라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그것이다. 간혹 한국의 국가적 품격에 대한 지적이 나오곤 했던 것도 후자의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이 국제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진정으로 세계 각국과 공조하려는 결연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참가국들에 인식시켜줘야 한다.

보호주의에 대한 반대 여론 확산에도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사실 경제위기 이후 불고 있는 각국의 보호주의 움직임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는 매우 중대한 문제다. 자칫 우리의 성장기반을 크게 약화시킬 수도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보호주의가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에 치명타라는 것을 알면서도 국내 정치적인 사정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 대표단은 보호주의로의 회귀는 세계경제의 공멸이라는 주장을 강력히 제기해야 한다.

G20을 상시체제로 끌고갈 수 있는 모멘텀을 구축해야 하는 것도 대표단의 과제다. 물론 이것은 우리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기존 G8 멤버 외의 국가들과 공조해서 불씨를 살려가야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이번 위기가 지나가면 아마도 세계는 정치ㆍ경제적인 국가 순위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의미있는 순위 변동은 G20 국가 내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틀림없다. G20의 모멘텀을 살려가지 못할 경우 자칫 위기 이후 우리의 운명을 남이 결정하는 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G20 국가정상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미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잡혀 있지만 그 외 국가 지도자들과도 공식ㆍ비공식적인 접촉을 추진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중대한 결정도 국제 지도자들과의 인간적 관계에서 이루어진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명박 외교의 핵심은 신뢰와 실리다. 이 대통령이 이번 G20 회담에서 이 정신을 반드시 살려주길 기대해 본다.

[전병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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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0 18:58:18 입력


[데스크 칼럼] `똑똑한 관치`가 해법이다

 
 
 
 
지난해 9월부터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중간중간 복기해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월가의 투자은행(IB)에 정통한 사람들은 지금도 아쉬운 가정을 한 가지 하곤 한다. `만일 미국 정부가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방치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월가 금융위기는 세계 제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그 분수령이었다. 이미 베어스턴스가 문을 닫은 상황에서 위기의 불길이 월가 전체로 번질 것을 우려한 헨리 폴슨 재무장관 등 부시 행정부의 핵심들은 리먼 파산으로 그 불길을 끄려고 했다.그것으로 위기가 그쳐주길 기대했던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이라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결론적으로 리먼브러더스 파산결정은 엄청난 패착이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을 사건이 불과 몇 개월을 지나면서 수천 개의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로 번진 것이다. 지난 98년 롱텀캐피털 사건 당시 FRB가 신속하게 구제금융을 지원해 문제를 해결한 것과는 판이한 결과였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 정부가 미국금융의 상징인 씨티은행을 사실상 국유화하고 추가로 금융권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으려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미국발 위기가 세계 경제를 미증유의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이미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이 사실상 파산했고 위기의 불길은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몰려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 아직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저 10년 전 외환위기의 경험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기자가 이 시점에서 그나마 한국의 경제위기 돌파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역설적으로 `관치금융의 역사` 때문이다. 사실 미국 정부가 이번 위기를 핸들링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과감하고 신속한 `관치금융의 경험`이 부족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금융자율과 규제완화의 역사 속에서 이른바 `똑똑한 관치`의 경험이 없었고 결국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많은 경제위기가 지나친 관치에서 초래됨을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기존의 시장메커니즘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하고 이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똑똑한 관치`라는 생각이다.

글로벌 관치가 정당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명백하다. 관치보다 더한 뭐라도 좋으니 이 위험한 고비부터 넘겨달라는 시장의 요구 때문이다. 세계금융의 중심지인 미국부터가 그렇고 은행 국유화를 일찌감치 단행한 영국 등 유럽도 같은 분위기다. 요컨대 `정당한 관치금융`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정부 개입에 대한 시장의 거부감이 사라진 셈이다.

이제 논점은 어떻게 `똑똑한 관치`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느냐다. 따지고 보면 국내에서도 성공한 관치금융이 적지 않았다. 1997~1998년 외환위기와 2003~2004년 카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책은행으로 하여금 LG카드, 현대건설, 대우조선 등을 인수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뒤탈없이 시장불안을 잠재우고 기업도 되살렸다. 과거 사례를 볼 때 성공한 관치의 공통점은 시장안정 등 명분에 충실했고 타이밍을 잘 맞췄으며 과감하고 신속한 금융지원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제일은행 매각건이나 현대-LG의 반도체 빅딜, 외환은행 매각 등은 명분과 타이밍,사후관리 차원에서 `흠`을 남김으로써 실패한 관치금융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에는 관치 전문가들인 모피아들이 대거 발탁됐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관치금융 전문가들이다. 기왕에 해야 하는 관치라면 정말 제대로 해주었으면 한다. 이들이 진정 `똑똑한 관치`를 수행하느냐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

[전병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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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2 17:40:36 입력, 최종수정 2009.03.03 08:13:23


[데스크 칼럼] 이성태 총재 남은 1년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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