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기억할 홍성흔(86회)의 아름다운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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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억할 홍성흔(86회)의 아름다운 ‘2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리차’라는 살얼음판 리드를 앞에 두고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롯데 홍성흔과 타격선두 박용택(LG)의 빅뱅은 결국 미스매치였다.
또다시 2위. 지난해(2008)에도 까마득한 후배 김현수(두산)에게 치여 2위 자리로 밀려난 바 있는 홍성흔은 결국 2년 연속 타격부문 2위에 오른 최초의 선수로 이름 석 자를 역사 속 한 페이지에 남긴 것에 만족해야 했다.
불과 며칠 전(9월 22일),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홍성흔은 박용택을 되려 2리차로 앞서 있었다.
하지만 ‘가을야구’ 티켓이 걸린 4위자리를 놓고 삼성, 히어로즈와 마지막까지 피말리는 승부를 펼치고 있는 팀 사정상 자신의 타율을 전 부치듯 이리저리 뒤집어 볼 한가한 여유를 부릴 수 없었던 홍성흔은 22일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에 빠지며 금쪽같던 1위 자리를 박용택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그날 경기가 없었던 박용택으로선 그야말로 ‘어부지리(漁夫之利)’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23일), 박용택은 송진우의 은퇴경기가 열린 한화와의 대전경기에서 저절로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가슴에 꼭 품고 경기내내 한화 류현진의 탈삼진 행진을 바라보며 덕아웃을 지켰다.
그러고보면 그간 타격왕을 놓고 치열한 경쟁구도를 끌어왔던 두 선수의 25일 잠실 빅매치가 팬들의 기대대로 전개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징조는 이미 이날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포스트시즌에 나갈 4강의 윤곽과 팀 서열이 모두 결정이 난 상태였지만, 25일 LG와 롯데의 잠실경기에는 2만 명(1만8227명)에 가까운 팬들이 운집했다. 시즌 말미 승패와 관계없는 잔여 경기에 이처럼 많은 관중이 몰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상당수의 팬들은 홍성흔과 박용택이 벌일 타격왕 경쟁 결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야구장을 찾아온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터였다.
그러나 홍성흔에겐 다시 한번 타격 1위자리에 복귀할 수 있는 도전 기회가 끝내 주어지지 않았다. 첫 타석 고의4구성 볼넷을 시작으로 네 번째 타석까지 홍성흔은 4연속 볼넷으로 걸어나가야만 했다. 네 번째 타석까지 홍성흔이 마주한 투구 17개 중에서 16개가 ‘볼’이었다. 그것도 아주 확연한.
그나마 포수가 완전히 일어나서 투구를 받지 않아 기록상 고의4구로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4연타석 고의4구나 진배없었다.
이만수(당시 삼성)의 타격 3관왕을 지켜내기 위해 홍문종(롯데)을 이틀간 9연타석 고의4구로 걸러 내보냈던 25년 전(1984년)의 씁슬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칠 수 없게 들어오는 볼을 향해 억지로라도 갖다 맞추려는 시도를 한번쯤 해봤으면 하는 속좁은(?) 그림을 그려도 봤지만 홍성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1루로 걸어나간 후, 덕아웃에 둥지를 틀고 있는 박용택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인위적으로는 어떻게 안되는 상황임을 알고 이미 마음을 비운 얼굴이었다.
9회초 마지막 타석에 들어설 홍성흔이 안타를 쳐낸다 해도 박용택을 따라 잡을 수 없음을 재삼 확인한 LG는 그제서야 정면승부를 지시했고, 홍성흔은 중견수 플라이로 자신의 도전과 롯데의 2009시즌의 대미를 그렇게 후회없이 거둬들였다.
지금까지 수위타자 바로 아래 칸, 타격 2위자리에 두 번 이상 이름을 올린 선수는 홍성흔 말고 3명이 더 있었다. 김종모(해태. 1983년과 1986년)와 강기웅(삼성. 1989년과 1993년) 그리고 이승엽(삼성. 1997년과 2002년)이다. 특히 김종모는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타격천재라 불리며 수위타자를 4번이나 차지했던 장효조(당시 삼성)의 그늘에 가려 끝내 햇빛을 보지 못했다.
타격 3위까지로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2004년에도 타격 3위에 홍성흔의 이름이 올라 있음을 알 수 있다. 1위를 한번도 못해보고 타격 3위 안에 세 차례나 이름을 들이민 선수는 홍성흔 외에 김성한(해태. 1983, 1985, 1988년 모두 3위) 한 명 뿐이다.
가끔 야구장에서도 들을 수 있는 외국노래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다.
‘The winner takes it all’
1970년대 세계를 주름잡았던 ‘아바’라는 혼성 4인조 그룹의 대표적인 히트곡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 곡의 가사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의역하자면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지만, 패자는 왜소한 모습으로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어야 함을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모 기업 CF 광고카피에 나오던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라는 말도 떠오른다. 모두 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이 난무하는 프로세계의 비정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말들이다.
그렇지만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이 하는 야구에 있어선 그 해석을 조금은 달리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승자만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공감할 수 있는 말은 결코 아닌 듯 싶다.
타격왕 타이틀과 그에 따르는 부상이 전부라면 맞는 말이 되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은 아닐 것이다. 2등도 경우에 따라서는 1등보다 더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을 2009 타격왕 도전을 통해 홍성흔은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이 껍질 뿐인 위로의 말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아무튼 찾아온 기회를 지키기보다 실리보다 명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경쟁자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선택한 홍성흔을 ‘재야(在野)의 2009 수위타자’로 팬들은 마음과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이날 경기를 중계했던 모 스포츠 TV 방송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타격 1위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클텐데….”
“다른 사람을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같은 처지였다고 해도 동료들이 나를 위해 그렇게 노력했을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면대결을 피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박용택과 눈이 마주쳤어도 서로 웃을 수 있었습니다. 박용택은 훌륭한 타자고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타격왕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좋지 않은 공이었지만 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는지….”
“방망이를 던져서라도 맞추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코치님도 오늘 만큼은 나쁜 볼에 손이 나가도 용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체적인 타격 밸런스가 무너질 것 같아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27)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리차’라는 살얼음판 리드를 앞에 두고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롯데 홍성흔과 타격선두 박용택(LG)의 빅뱅은 결국 미스매치였다.
또다시 2위. 지난해(2008)에도 까마득한 후배 김현수(두산)에게 치여 2위 자리로 밀려난 바 있는 홍성흔은 결국 2년 연속 타격부문 2위에 오른 최초의 선수로 이름 석 자를 역사 속 한 페이지에 남긴 것에 만족해야 했다.
불과 며칠 전(9월 22일),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홍성흔은 박용택을 되려 2리차로 앞서 있었다.
하지만 ‘가을야구’ 티켓이 걸린 4위자리를 놓고 삼성, 히어로즈와 마지막까지 피말리는 승부를 펼치고 있는 팀 사정상 자신의 타율을 전 부치듯 이리저리 뒤집어 볼 한가한 여유를 부릴 수 없었던 홍성흔은 22일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에 빠지며 금쪽같던 1위 자리를 박용택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그날 경기가 없었던 박용택으로선 그야말로 ‘어부지리(漁夫之利)’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23일), 박용택은 송진우의 은퇴경기가 열린 한화와의 대전경기에서 저절로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가슴에 꼭 품고 경기내내 한화 류현진의 탈삼진 행진을 바라보며 덕아웃을 지켰다.
그러고보면 그간 타격왕을 놓고 치열한 경쟁구도를 끌어왔던 두 선수의 25일 잠실 빅매치가 팬들의 기대대로 전개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징조는 이미 이날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포스트시즌에 나갈 4강의 윤곽과 팀 서열이 모두 결정이 난 상태였지만, 25일 LG와 롯데의 잠실경기에는 2만 명(1만8227명)에 가까운 팬들이 운집했다. 시즌 말미 승패와 관계없는 잔여 경기에 이처럼 많은 관중이 몰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상당수의 팬들은 홍성흔과 박용택이 벌일 타격왕 경쟁 결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야구장을 찾아온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터였다.
그러나 홍성흔에겐 다시 한번 타격 1위자리에 복귀할 수 있는 도전 기회가 끝내 주어지지 않았다. 첫 타석 고의4구성 볼넷을 시작으로 네 번째 타석까지 홍성흔은 4연속 볼넷으로 걸어나가야만 했다. 네 번째 타석까지 홍성흔이 마주한 투구 17개 중에서 16개가 ‘볼’이었다. 그것도 아주 확연한.
그나마 포수가 완전히 일어나서 투구를 받지 않아 기록상 고의4구로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4연타석 고의4구나 진배없었다.
이만수(당시 삼성)의 타격 3관왕을 지켜내기 위해 홍문종(롯데)을 이틀간 9연타석 고의4구로 걸러 내보냈던 25년 전(1984년)의 씁슬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칠 수 없게 들어오는 볼을 향해 억지로라도 갖다 맞추려는 시도를 한번쯤 해봤으면 하는 속좁은(?) 그림을 그려도 봤지만 홍성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1루로 걸어나간 후, 덕아웃에 둥지를 틀고 있는 박용택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인위적으로는 어떻게 안되는 상황임을 알고 이미 마음을 비운 얼굴이었다.
9회초 마지막 타석에 들어설 홍성흔이 안타를 쳐낸다 해도 박용택을 따라 잡을 수 없음을 재삼 확인한 LG는 그제서야 정면승부를 지시했고, 홍성흔은 중견수 플라이로 자신의 도전과 롯데의 2009시즌의 대미를 그렇게 후회없이 거둬들였다.
지금까지 수위타자 바로 아래 칸, 타격 2위자리에 두 번 이상 이름을 올린 선수는 홍성흔 말고 3명이 더 있었다. 김종모(해태. 1983년과 1986년)와 강기웅(삼성. 1989년과 1993년) 그리고 이승엽(삼성. 1997년과 2002년)이다. 특히 김종모는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타격천재라 불리며 수위타자를 4번이나 차지했던 장효조(당시 삼성)의 그늘에 가려 끝내 햇빛을 보지 못했다.
타격 3위까지로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2004년에도 타격 3위에 홍성흔의 이름이 올라 있음을 알 수 있다. 1위를 한번도 못해보고 타격 3위 안에 세 차례나 이름을 들이민 선수는 홍성흔 외에 김성한(해태. 1983, 1985, 1988년 모두 3위) 한 명 뿐이다.
가끔 야구장에서도 들을 수 있는 외국노래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다.
‘The winner takes it all’
1970년대 세계를 주름잡았던 ‘아바’라는 혼성 4인조 그룹의 대표적인 히트곡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 곡의 가사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의역하자면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지만, 패자는 왜소한 모습으로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어야 함을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모 기업 CF 광고카피에 나오던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라는 말도 떠오른다. 모두 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이 난무하는 프로세계의 비정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말들이다.
그렇지만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이 하는 야구에 있어선 그 해석을 조금은 달리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승자만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공감할 수 있는 말은 결코 아닌 듯 싶다.
타격왕 타이틀과 그에 따르는 부상이 전부라면 맞는 말이 되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은 아닐 것이다. 2등도 경우에 따라서는 1등보다 더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을 2009 타격왕 도전을 통해 홍성흔은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이 껍질 뿐인 위로의 말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아무튼 찾아온 기회를 지키기보다 실리보다 명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경쟁자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선택한 홍성흔을 ‘재야(在野)의 2009 수위타자’로 팬들은 마음과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이날 경기를 중계했던 모 스포츠 TV 방송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타격 1위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클텐데….”
“다른 사람을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같은 처지였다고 해도 동료들이 나를 위해 그렇게 노력했을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면대결을 피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박용택과 눈이 마주쳤어도 서로 웃을 수 있었습니다. 박용택은 훌륭한 타자고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타격왕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좋지 않은 공이었지만 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는지….”
“방망이를 던져서라도 맞추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코치님도 오늘 만큼은 나쁜 볼에 손이 나가도 용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체적인 타격 밸런스가 무너질 것 같아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