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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881회 작성일 2009-10-05 10:48
‘한옥DNA’ 대물림 3대 … “가문의 자부심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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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한옥DNA’ 대물림 3대 … “가문의 자부심이죠” [중앙일보]

2009.10.02 01:52 입력 / 2009.10.03 01:21 수정

 
  장기인 선생의 생전 모습과 건축 용어에 대한 설명을 손수 써넣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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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아버지가 만든 종이 카드에서 서까래 를 배웠다. 아버지가 ‘개판널’ ‘상량’ 같은 용어를 카드에 써넣으면, 아들은 이를 순서에 맞게 정리했다. 사전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아버지는 쉬는 날에도 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집을 그리거나 집에 대한 글을 썼다. 하지만 아들은 싫지 않았다. 언젠간 나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 돼야지.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건축학을 전공했고, 아버지의 건축사무소를 물려받았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실측자를 잡아주며 고궁을 익혔다. 할아버지는 “이게 주춧돌이고, 이게 기둥”이라며 구조를 일러주었다. 손자 역시 망설임 없이 건축학 공부를 했고, 할아버지가 만든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거들고 있다.

이것은 한옥을 사랑한 3대(代)의 이야기다. 2006년 작고한 장기인 선생(당시 90세)과 아들 장순용(62) 대표, 그리고 손자 장필구(33)씨가 그들이다. 한국 전통건축 연구에 틀을 잡은 장기인 선생, 건축사무소를 이어 받아 남대문 실측과 창경궁 복원 설계 등 500여 건의 문화재 용역에 참여한 장순용 대표, 그리고 서울대 건축학과 박사 과정을 밟으며 한옥을 연구하고 있는 장필구씨. 이들에게 한옥은 무엇일까. 아들과 손자의 답은 같았다. “그것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허름한 사무실

“이게 우리 집안의 유산입니다.” 서울 청담동의 30년 된 아파트 상가 5층. 삼성건축사사무소 장 대표가 창고 문을 열었다. 30㎡ 남짓한 공간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누렇게 바랜 건축 설계도면들은 천장까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도면 한 켠엔 창덕궁·창경궁·광통교 등 내로라하는 문화재의 이름이 작게 씌어 있었다. 이 회사엔 이런 창고가 두 개 더 있다. 모두 고건축 관련 설계도면이다. 대를 이어 내려온 도면이 수만 장에 이른다.

건축사무소는 상가 4층에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긴 전통건축 전문 설계사무소. 하지만 내부는 허름했다. 천장에 비가 새는지 비닐을 대어 놓은 곳도 있었다. 장기인 선생은 1965년 을지로에 사무실을 열었다. 85년에 당시 임대료가 쌌던 이곳 상가로 사무실을 옮겼다. 필구씨가 한옥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장 대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사무실 창고를 꽉 채운 도면이다. “내가 문을 닫으면 이 자료들을 다 어찌하나 그 생각뿐이었는데, 한 시름 덜었지요.” 장 대표가 비닐 댄 천장 아래에 서서 웃었다.

#사전을 만들다

 
  삼성건축사사무소 장순용 대표(오른쪽)와 아들 장필구씨가 서울 운니동 운현궁의 별당 이로당(二老堂) 앞에 함께 섰다. 장 대표는 1993년 복원 설계를 맡았던 운현궁을 두고 “한옥 구조의 궁금증을 풀어준, 가장 애착이 가는 고궁”이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문화재관리국도 없던 50년대. 장기인 선생은 취미처럼 한옥을 연구했다. 양·한옥 가릴 것 없이 설계 일을 맡되, 휴일이면 고궁을 찾고 지방 출장에 갈 때면 주변의 문화재를 둘러봤다. 집에 있을 땐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전통건축과 관련된 책을 썼다. “일제 시대에 일본식 건축만 배웠다는 것이 한으로 남아계셨던 것 같아요. ‘우리 건축을 배울 데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죠.”

장 선생은 손수 건축 현장의 일본어 용어를 우리말로 바꿔 정리해 1만7000여 개의 카드를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용어집』(58년)이었다. 나중에 『한국건축사전』(85년)으로 발전했다. 장 선생이 83년 위장병으로 쓰러진 뒤 건축사무소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집필에만 전념했다. 그가 남긴 한국 건축 대계 시리즈는 『단청』 『기와』 『창호』 등 10여 권이 넘는다. 지금도 건축학계에서 고건축을 배우려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한옥을 선택하다

문화재 복원 설계는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83년 30대 중반에 건축사무소를 물려받은 아들은 월급날마다 도망치고 싶었다. 대부분의 문화재가 방치돼 있던 시절이었다. 관공서에서 나오는 설계비로는 지방 실사를 두세 번 다녀오기도 힘들 만큼 빠듯했다.

그래도 아들은 전통건축이 좋았다. “일을 하나 맡을 때마다 또 하나를 배웠죠. 운현궁에선 궁궐의 원형, 해가림판의 사용법 같은 것을 배웠어요.” 복원 공사 때 버려진 도배지도 그는 주워 모아뒀다. “도배지 문양도 궁궐용은 따로 있어요. 이렇게 기록도 없고 연구도 안 된 분야가 너무 많아요.” 80년 중반 경영난에 사무소를 구조조정하며 전통건축 보수 설계 파트만 남긴 것도 그래서다.

박사 과정을 끝내고 나면 사무소를 이어받게 될 필구씨는 복원 설계를 넘어 한옥을 신축하는 일을 하려 한다.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종합건축사전』의 원고도 마무리해 출판할 생각이다. “갈수록 한옥 일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잖아요. 할아버지가 시작한 일을 제가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게 우리 집안의 자부심입니다.”

임미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 1대 장기인(2006년 작고)씨는

▶ 중앙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한국은행 복구(1952년) ▶제2회 대한건축사협회장

▶ 저서: 『한국건축사전』 『한국목조건축공법』 『창호』 등

■ 2대 장순용(62)씨는

▶ 한양대 건축공학과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 ▶서울대·한양대·성균관대 등 출강

▶ 창덕궁·창경궁·덕수궁 등 주요 궁궐 복원 설계 ▶숭례문 정밀실측조사

■ 3대 장필구(33)씨는

▶한양대 건축학부 ▶서울대 건축학 박사 과정 중

▶서울대에 기부된 김좌근 고택 복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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