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사는 길 찾기 위해 노력, 국민 존경을 받아야 좋은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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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용산문제, 사회에 환원한다는 정신으로 해결을”
정진석 추기경(78)은 경향신문 창간 63주년 특별 대담에서 ‘인간답고 품위 있게 사는 세상’을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정치·경제·사회 현안과 쟁점을 푸는 해법에 대해 “‘사람 답게 사는 길’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어떻게 하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어떻게 그 길을 찾을지를 생각하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정치인과 정치 현안에 대해 직설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공동선’ ‘경제정의’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강조하며 우회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정 추기경은 근황과 건강을 묻는 질문에 “국민 다수가 염려해 준 덕분에 별 탈 없이 잘 지낸다. 건강하다, 건강하지 않다에 대해 별 의식없이 지내는 자체가 ‘건강하다’는 징표일 것”이라며 웃었다. 정 추기경은 매일 저녁 1시간가량 서울대교구청 마당에서 묵주 기도를 겸한 산책을 한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과 경향신문 김석종 문화에디터와의 대담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집무실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 올해 초 김수환 추기경 선종이 사회에 남긴 유산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참 평범하면서도 매우 핵심적인 말씀을 남겨주셨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을 말씀하신 거예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말씀하신 거지요.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특성이고,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분명한 방법입니다. 오늘날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그 상황에서 미워하면 더 못살겠죠. 어려워도 식구끼리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 살 만하잖아요.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가족이 오순도순 살 수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사람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부터 실천할 수 있습니다. 각 가정이 화목하면 같은 아파트 층에 사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좋은 의미의 전염이 될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이렇게 살면 좋겠다는 뜻에서 그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 시절 명동성당은 민주화 1번지로 불렸습니다. 그 의미를 되짚어주신다면요.
“김 추기경께서 민주화 운동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신 것은 모두가 사람의 품위를 지키고,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뜻에 따른 것이라 봅니다. 또 그 시대가 민주주의를 요청했다고 해석합니다. 민주주의는 사람답게 사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만 민주주의가 바로 인간의 완전한 행복, 인간다움과 같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보완되어야 할 요소가 있는 사상입니다. 3000~4000년 전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으니 민주주의 같은 말을 할 필요도 없었겠죠. 민주주의는 독립된 단어가 아니라 경제 상황, 도덕적인 측면, 국민의 양심, 민도와 상관 있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느닷없는 말같지만 사람의 판단 기준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사상이 아주 달라질 수 있죠.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순교자들을 최상의 의인이라고 봅니다. 순교자는 현세를 초월해 내세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에요. 현세에 기준을 둔 사람들이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죠. 통속적인 말로 ‘신앙이 밥 먹여주느냐’고 하잖아요. 신앙인은 그 ‘밥 안 먹여주는 신앙’이 ‘밥 먹여주는 것’ 이상으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이고,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김 추기경님이 당시에 민주주의 활동을 하신 것은 그 시대 상황에서 훌륭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시대적 분위기, 경제, 도덕적 측면과 분리될 수 없는 상황에서 행동하셨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4대강을 비롯해 노동·교육·인권·언론·복지·시민사회 모든 부문에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하셨는데요.(웃음) 우리는 지구라는 큰 배에 같이 타고 있어요. 65억 인구가 다 같이 살아야 하고, 미래 후손도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 자원은 모든 인류와 모든 생명체를 위한 공동의 자원입니다. 그런데 소수의 인간과 소수의 나라가 이 자원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다른 생물체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는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하느님이 주신 것이지 소수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주신 게 아닙니다. 한국 사회도 바로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아우성입니다. 공평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지구 자원이 전체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 공동선은 개인 이익과 반드시 같은 게 아닙니다. 공동선을 위해 써야 하는데, 권력을 가진 자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국력과 우리의 자원도 한국민 전체의 공동선을 위해 써야 합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매일 저녁 7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생명평화 미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천주교 성직자가 중심이 돼 용산 희생자 유족을 돕고 있습니다. 용산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제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인 이강서 신부를 용산 현장에 파견했습니다. 여태까지 이런 예는 없었습니다. 유가족 위로와 조속하고 원만한 문제 해결을 우선적인 임무로 부여했습니다. 지난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났을 때도 사태의 장기화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사태 해결을 주문했습니다. 용산 문제와 관련해, 기업의 생산과 노사 관계, 사회 여러 부문과의 관계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사가 이득을 얻으려면 자본과 노동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부문이 기여해야 합니다. 우선 국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회사 자본이 달리면 은행이 돈을 빌려줍니다. 은행이 기여를 하는 거지요. 근로자들은 학교에서 교육시킵니다. 모든 직원이 건강하게 활동한다면 병원도 기여한 게 있습니다. 대중교통 수단을 사용하니 운수업체도 기여하는 겁니다. 회사 이익에 국가나 사회 전체 어느 한 부문 기여하지 않은 데가 없어요. 환원해야죠. 사회환원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일이 아닙니다. 그런 정신으로 용산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익을 독점하면 안되어요. 공동체 전체가 정의롭게 분배가 되어야죠. 어떤 한 사람이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정진석 추기경(오른쪽)과 김석종 경향신문 문화 에디터가 지난달 30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집무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정지윤기자
-최근 개각 청문회를 보면 총리나 장관 등 국가 지도자들의 불법, 탈법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청문회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이 존경 받으려면, 존경 받을 만해야 존경받잖아요. 우리는 우리를 이끌어주는 사람을 위해 특별 대우를 합니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은 면책 특권이 있는데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라고 힘을 주는 것이지 백성에게 해를 끼치거나 힘들게 하는 데 권력을 쓰라고 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명박 대통령과는 최근 언제 만나셨습니까.
“지난 7월 청와대 오찬 때 만났습니다. 서민을 위해 노력하시겠다고 해서 옳은 방향이라고 했죠. 대통령께서는 구체적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뱅크 이야기를 하시며 종교계의 협조를 구하시기에 ‘지지한다’ ‘잘 하신다’고 했어요. 천주교에서 오래전 시작했던 신용협동조합 즉 신협운동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좋은 지도자 예를 들어주십시오.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라고 합니다. 반란을 몇번 겪었는데도 겸손해요. 반란을 일으키면 욱해서 무차별 억압을 할 수도 있는데 모세는 그러지 않았아요. 끝까지 참고 겸손했어요. (한국의 정치 지도자 이야기는 빼고) 모세 이야기만 해야겠습니다.(웃음)”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장애인 이야기부터 하고 싶습니다. 열 사람 중 한 사람이 장애인입니다. 어느 민족이고 사회고 다 10% 정도입니다. 자립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동물의 세계라면, 무자비하게 도태되겠죠. 인간은 안 그렇잖아요. 이게 사람다운 거죠. 시각 장애 아이들,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감추는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청주교구 교구장으로 있을 때 교구 내 꽃동네, 충주성모학교(시각장애 특수학교), 충주성심학교(청각장애 특수학교)를 관심 갖고 지켜봤습니다. 장애인 가정 중 열에 아홉은 돌볼 사람이 없고, 복지 시설도 부족해요. 복지 국가, 행복한 나라가 되려면 국가 공동체가 장애인을 배려해야죠. 청년 실업,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 실업층에게는 꿈을 가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또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기회를 잡습니다. 인생은 결국 자기가 개척하는 겁니다.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계십니다.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한국 천주교회가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북한에 지원한 금액은 800억원가량입니다. 서울대교구는 밀가루·옥수수·감자·콩 등 구호물자는 물론 결핵약·어린이영양제 원료 등 보건 의료 물자, 경운기, 탈곡기 등 농업 물자를 지원해 왔습니다. 2000년부터는 국수기계와 콩기름 생산시설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담당자들이 매년 3~4회 시설 모니터링을 위해 방북했고요. 95년 첫 민족화해미사를 봉헌한 이후 지금까지도 매주 화요일 명동대성당에서 민족화해미사를 봉헌하며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북한의 굶주리는 동포를 위한 대북 지원과 민족화해 노력을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다만 북한 인권 문제도 있는데, 하루빨리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날이 오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국제기능올림픽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공학도입니다. 50년에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가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지요. 어려서부터의 꿈이 발명가였는데, 전쟁을 겪으며 발명이 인간을 이롭게 하기보다 전쟁 무기로 개발돼 사람을 죽이는 데 이용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쟁 중에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는데, ‘하느님이 덤으로 주신 삶은 많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이라 생각하게 됐고, 전쟁 뒤에 신학대학에 입학했지요. 인간을 이롭게 하는 공학에는 여전히 관심이 많습니다. 관련해 주요 20개국(G20) 진출은 경하할 만한 일입니다. 30~40년간 매일 다른 나라에 끌려다니다가 이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기술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대우를 덜 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능올림픽에 출전하는 청소년들 중에 많은 수가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체육 올림픽은 그나마 알아주는 것 같은데 기능올림픽은 금메달을 따도 상대적으로 안 알아주는 것 같아요. 당사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 희망을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달 9일 명동 주교관을 찾아왔기에, 기능올림픽 수상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최근에는 성가 동요 음반을 내셨습니다. 노래를 잘 하시는 모양입니다. 애창곡은 무엇입니까.
“대중가요는 배울 기회가 없었죠. 제 애창곡은 성가입니다. 성가는 다 좋아하죠. 혼자서 남이 안 듣는 데서 부릅니다.(웃음) 대중가요는 몇년 전에 대중 강연에서 ‘하숙생’을 부른 적이 있어요. 오셔서 고맙다는 뜻도 있는데, 그때 강연 내용이 인생은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런 거였죠. 노래가 강연 주제에 맞아 불렀습니다. 엄숙한 강연에서 불렀는데, 신선함을 느꼈다는 평도 들었습니다.(웃음)”
-추기경님 저서와 번역서만 47권입니다. 저술활동도 활발하게 하시는데, 요즘 하고 계신 작업이 있으십니까.
“<햇볕 쏟아지는 언덕에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준비하는데 올해 안에 출간됩니다. ‘햇볕 쏟아지는 언덕’은 명동이에요. 책은 에세이 비슷한데, 과학, 현실, 신앙, 자유에 관한 주제 10개로 써 원고를 일단 넘겼습니다. 인터넷과 자유, 구체적으로 자유의 한계에 대해서도 썼습니다. 공익을 위해 제정된 게 법입니다. 법의 범위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게 자유입니다. 기차가 철도, 철길 위에서만 자유지, 철길을 벗어나면 파멸이에요. 다른 사람을 해치는 자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새기고 따라야 할 성경 말씀을 들려주신다면요.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길이라 함은 사람이 가야 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길을 따라 가며 진리를 만나셨습니다. 진리를 터득하면 그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또 마태오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하셨어요. 이 세상에 무거운 짐을 지지 않은 사람들이 드물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지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모든 짐을 다 지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사람들도 심정적으로 힘들잖아요. 세상 사는 게 힘들어요. 불교에서는 인생고해라고 하잖아요. 예수님은 그걸 보신 거예요.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책임전가 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야죠. 기차와 철길 비유도 들었는데, 바로 그 길입니다.”
<정리 김종목기자 jomo@kyunghyang.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