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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872회 작성일 2009-04-08 09:36
[경향과의 만남]김종인(49회)“세계경제 본질적 변화 시작…금융규제 강화가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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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前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인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6개월을 넘으면서 세계 경제에 미세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다소 호전되고 있고,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지만 경제위기가 언제 극복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발 경제위기는 과도한 부채를 통한 성장은 허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경제위기에 각 나라가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것은 수식어에 불과하고, 각국이 스스로 경제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각국이 금융규제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 정부만 금융규제 완화에 매달리고 있다”며 “금산분리 완화는 금융규제 강화라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 시스템에 본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정책당국자들이 지금까지의 경제관념이나 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은행 국유화도 마다하지 않는 유연성과 능동성을 정책당국자들이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전 의원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19일 서울 부암동에 있는 김 전 의원의 개인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전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 6개월이 넘었습니다. 이번 경제위기는 언제 극복될 것으로 보십니까.

“미국발 경제위기는 과도한 부채를 통한 거시 경제지표 성장은 허구였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부채를 계속 늘려가면 경제지표상으로는 성장하게 되지만 거품이 터지게 되면 위기가 닥치게 마련입니다. 경제위기에 전 세계 각국이 공동보조한다는 것은 수식어에 불과합니다. 각국이 스스로 경제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지요. 각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고 있는데 지금은 경제학 이론이 작동하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개입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입니다. 금융위기에다 실물경제 침체가 겹쳤기 때문에 통상적인 경기회복보다는 3~4배가량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경기회복 패턴은 밑바닥 부분이 아주 긴 ‘U자형’이 될 것 같습니다. 2007년 세계 경제의 총생산대비 부채비율이 1929년과 비슷하다는 점을 보면 경제회복 전망이 쉽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국내 경제 전망은 어떻습니다.

“전 세계 경기가 좋지 않은 만큼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내수 확대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그것도 1~2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양극화가 심화돼 중산층이 많이 탈락했고, 상당수의 국민들은 구매력을 상실했습니다. 분배구조의 개선, 재분배 매커니즘이 다시 작동하려면 1~2년으로는 어림없습니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진작과 건설투자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으니 경기침체 때마다 써오던 카드를 다시 꺼내고 있는 것입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투기를 어느 정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보는 것 같은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부동산 정책을 쓰다 보면 새로운 문제의 씨앗을 심게 될 것입니다. 1930년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시행할 당시와 달리 지금은 건설투자를 해도 고용이 크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공공투자 확대에 대한 회의론이 나올 정도입니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구조조정 방향을 말씀해주시지요.

“정부는 옥석 구분없이 모든 중소기업 대출의 만기를 연장해주고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되 실업문제는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정치적 고려가 앞서면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적은 나라에서 조선·건설 부문에 기업들이 마구 진출하는 것을 용인하면 자원분배의 왜곡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한때 강소국을 본받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유럽의 강소국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독점 기업입니다. 우리나라도 국내 시장의 규모를 잘 따져 자원배분을 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전 세계 각국은 금융규제에 나서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금융규제 완화에 주력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경제가 짧은 기간에 압축성장을 한 탓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나타났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양극화가 심화됐습니다. 이번 경제위기가 끝나면 종전의 경제 패턴이 다시 작동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각국의 산업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거고, 경제의 본질 자체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금산분리 완화 정책은 경제흐름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GM캐피털이나 GE캐피털 등 대기업이 세운 금융기관이 망해가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우리 정부가 읽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지난해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세계 경제에 이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도 이를 감안하지 않는 ‘상황인식의 오류’를 범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정책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펴야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경제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효율성을 높이면서 사회안정을 꾀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합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면 경제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국내 금융기관의 상황은 어떻게 보십니까.

“대기업들의 재무구조가 튼튼하다고 하지만 올해 말쯤에는 자금난이 오게 되고, 금융기관에 자금을 빌리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입니다. 해외건설 부문의 공사발주가 취소되거나 공사가 중단되면 자금압박이 심해질 텐데 이런 실물경제 위기상황을 금융기관들이 제대로 받쳐줄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정부는 금융 안정성을 위해 공적자금 투입을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 공적자금 투입의 전제조건으로 금융기관 경영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고, 문책할 것은 문책해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습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정책당국자들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정책당국자는 현시점에서 가능한 정책과 그렇지 않은 정책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경제정책은 예술품이나 창작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예술가적 기질과 상상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이론이나 행정능력만으로는 안 되고, 매일 변화하는 상황을 통찰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지켜본 뒤 대응해야 합니다.”

-정책당국자들에게 필요한 또다른 덕목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정책을 하는 사람들은 ‘~주의자’라며 진보나 보수라는 도식에 구애되거나 종래의 관념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미증유의 경제위기 상황인 만큼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정책수단을 유연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은행을 차라리 국유화하는 편이 비용이 덜 들어갈 것으로 보인데 이를 과감하게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경제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농업을 거의 안락사시키려 하는 것은 국가경영 철학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국가는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대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돌발사태로 전 세계 교역이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야 하는데, 쌀농사를 짓는 대신 제조업에서 돈을 벌어 쌀을 수입하면 된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 김종인은 누구

학계와 정·관계를 두루 거치며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제전문가다. 1940년 광주 출신으로 중앙고·한국외대를 졸업한 뒤 독일 뮌스터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도 재직했다. 김 전 의원은 우리나라 헌법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근거를 명기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87년 헌법특위에서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은 그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제119조 2항을 작성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보건사회부 장관을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명돼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유도하는 ‘5·8부동산 조치’ 등 재벌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합리적 보수’로 분류되는 그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이기도 하다.

<글 서의동·사진 정지윤기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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