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경제 전문가인 김종인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 그는 최근 각종 방송과 신문 등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격변하는 경제 상황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날카롭게 내놓고 있다. 그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런 때일수록 경제 위기가 사회 위기로 나아가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3월5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만난 그는 ‘신뢰와 사람’의 문제를 주로 언급했다. “경제 문제라고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안 된다”라며 위기 상황에서 정책 집행자들이 총체적인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0년생인 그는 독서와 집필, 방송 출연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며 나이를 잊고 살고 있었다. 목소리도 우렁찼다.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 위기의 성격을 어떻게 보는가?
과거에도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29년 대공황이 대표적이다. 지금의 경제 위기를 그때와 비교하는 사람도 많다. 이번 위기는 거품이 너무 많이 끼어 터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돈이 옛날처럼 교환·매개 기능을 떠나 상품이 되어버렸다. 돈을 가지고 돈을 버는 산업이 커졌다. 금융시장이 날로 팽창했다. 팽창 속도도 빨랐다. 실물도 같이 팽창했다. 돈이 돈을 버는 식이 되었다. 절제 없이 가다 보니 한 군데가 막히자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금융 위기와 실물 위기가 같이 왔다. 특이한 상황이다. 과거에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래서 심각한 것이다.
이런 흐름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미국의 금융 위기가 완전히 씻어지지 않았다.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미국의 전·월세, 주택 가격, 땅값은 아직 바닥까지 안 내려갔다. 더 내려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측을 할 수 없다. 우리의 주된 수출 시장인 중국·유럽·미국 등 어느 곳 하나 전망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 내수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우리는 소비재가 아니라 중간재를 중국에 보내 생산·수출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정도 이득을 볼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외국 언론에서 이른바 ‘한국 위기론’을 거론했다.
맞다, 틀리다라고 얘기할 필요가 없다. 실력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수밖에 없다. 논쟁한다고 해소될 사항이 아니다.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보면 어떤가?
우리는 미국발 금융 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나라는 아니다. 유럽의 금융 기관들은 미국 파생상품에 끼어들었다가 손실을 많이 보았다. 아이슬란드는 국가 부도가 났고, 영국, 아일랜드도 어렵다. 동유럽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금융 기관들은 상대적으로 파생상품에 물려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금융 허브’ 운운하며 신용보다는 외연을 확대하는 데 치중했다. 감독 시스템도 미국식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감시가 느슨해졌다. 단기 외채도 많이 갖다 썼다. 이처럼 자체적인 문제가 있다.
대기업들이 버티다가 자금 수요가 발생하게 되면 우리 금융권이 부응할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느냐에 회의적이다. 지금 빨리 자기자본을 늘려준다거나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등 금융 부문을 정상화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과 영국에서 은행을 국유화하자는 얘기가 나오겠나.
경제 위기 상황을 경제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문명사적인 대전환기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수정이 가능했기 때문에 발전해왔다. 자본주의는 ‘보이는 손’이 조종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자본주의가 무절제하게 가면 실패하게 되어 있다. 안정적으로 가려면 반드시 절제가 필요하다. 그냥 두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절제를 하지 못한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축구 경기에 심판이 왜 있나. 지금은 선택할 여지가 없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위기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 이론의 도그마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경제 정책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무슨 주의자라고 말하면 자격이 없다.
경기 회복과 관련해 V자형, U자형, L자형 등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처음부터 V자형 회복은 불가능했다. 외환위기 때는 1년 마이너스 성장하다가 회복했다. 이번 위기도 이런 식으로 금방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신뢰만 잃을 것이다.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한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미국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전세계 경제가 판가름 난다. 미국은 어떤가? 빨리 회복될 수 없다. 단순한 시장 변동에서 발생한 위기와 금융이 결부된 위기는 치유 기간이 다르다. 내년에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올해보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을 정책 목표로 잡고 가야 한다.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3년 정도 걸릴 것이다.
정부는 내수를 진작하는 것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남의 나라의 상황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경제 여건을 갖고 있다. 이러한 해외 시장 여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내수로 보완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데, 내수로 수요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해외 시장이 침체되어 불확실하고 국내의 수요도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하겠나.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봄이 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문제이다. 무조건 희망을 얘기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말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니 신뢰가 없는 것이다.
경제 위기에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보는가?
리더십이 뭔가. 상황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서 나온다. 상황을 엉뚱하게 인식하면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그렇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지난 1년간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을 보면 그런 형태이다. 정권이 출범하기 전에는 아름다운 청사진을 가질 수 있다.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해결할 길이 없다. 정책 집행자들은 이런 정책을 하면 무엇이 성취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도구만 얘기해봐야 의미가 없다.
내수를 진작하는 노력도 좋은데, 한계가 있다. 그 자체가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돌리지 못한다. 우리 사회도 위기가 올 요소를 갖고 있다. 경제 정책에서 묘미 있게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저소득층에 대한 생계 안정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선결 과제이다. 사회적인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슬기롭게 힘을 모아 대처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불안 요인을 해결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30조원 추경 편성이 이야기되고 있다.
추경을 안 할 수는 없다. 문제는 30조원 추경을 편성한다는데 어디에 쓴다는 목표가 없다. 우리나라는 민간 부문의 부채가 너무 많다. 구조를 정상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이것을 줄여주어야 한다. 추경은 먼저 목적을 분명하게 정한 뒤 거기에 맞게 규모를 정해야 한다. 투입 시기도 적절해야 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1993년부터 10년 가까이 1조2천억 달러를 경기 부양을 위해 쏟아부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정부 빚만 늘었다. 일본의 지난 10년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L자형 경기 회복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돈을 쏟아부어도 일본식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고 걱정한다.
윤증현 장관 등 현 경제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기존의 경제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별다르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 과거 관습대로 가는 정책 외에는 더 나올 것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일선에서 진두 지휘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진두 지휘한다고 해서 리더십이 생기나. 위기를 해결해나갈 사람들이 위기라고 하면 어떻게 하는가. 우리 능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곳에서 발생한 요인은 해결할 길이 없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졌으면 우리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발버둥을 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올 수 없다. 쓸데없는 희망을 주지 마라.
위기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나?
이번 위기는 특이한 성격을 갖고 있다. 금융 위기와 실물 위기가 같이 부딪혀 있다. 위기 이후에도 종전의 사고방식대로 경제가 운영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의 본질이 상당히 변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저탄소 녹색 성장을 내걸지 않았나. 위기를 겪으면서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환경 문제 등이 부각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위기는 사람이 해결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경제는 사람이 있으면 일어난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지도자와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짧은 시일 내에 경제 규모가 세계 13위인 나라가 되었다. 그러한 저력을 가진 국민이다. 국민 경제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그런 확신을 갖고 가야 한다. 겪어야 할 것은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민의 저력을 믿고 경제 혼란이 사회적인 혼란이 되지 않도록 잘 해나가면 얼마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절망하거나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불가항력의 일이 발생한 것인데, 경제 정책이 이것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면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경제 정책을 하는 사람은 의사와 같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진단을 정확히 해야 한다.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처방을 정확히 할 수 없다.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 나빠질 수 있다. 경제를 경제 현상으로만 보면 안 된다. 잃어버린 10년이다, 좌파 정권이라고 말하는데 그 정권에서 핵심 역할 한 사람을 데려다 쓰고 있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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