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회 기형도(1960~1989) 詩人 20주기를 앞두고 > 교우소식


교우소식

댓글 3건 조회 2,142회 작성일 2008-12-23 18:59
70회 기형도(1960~1989) 詩人 20주기를 앞두고

본문



 

기형도

 

 

1960. 2.16(음력)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 출생 3남 4녀중 막내로 당시 부친은 황해도에서

 

피난 온 후 교사를 거쳐 공무원으로 재직함.

 

서해안 간척사업에 실패한 부친이 유랑 후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 정착하여,

 

이사하게 됨.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 수해 이재민이 정착촌을 이루었던 소하리는 아직까지

 

도시 배후의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1985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인 "안개"의 배경이 된다.

 

 

 

시흥국민학교, 신림중학교, 중앙고등학교(70회)를 거쳐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1979)하여 정치외교학과를 졸업(1985)함.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에서 일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함.

 

1989년 3월 7일 새벽(03:30경), 가을 시집출간을 위해 준비하던 중 종로 2가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 됨.(피카디리 극장)

 

 사인은 뇌졸중.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수원교구 묘지에 묻힘.

 

<10월 - 기형도>

1
흩어지는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요절시인 기형도가 남긴 대중 가요 노랫말이 20년 만에 햇빛을 봤다.

기형도 시인이 사망하기 2년 전 1987년에 가사를 쓴 왈츠풍 노래 '시월'이 가수 심수봉의 최근 음반에 수록된 것.

'시월'은 당시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기형도 시인이 동료 기자이자 대학가요제 출신의 작곡가 박광주(51) 씨의 곡에 가사를 붙이며 완성됐으나 그동안 노래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박광주 씨에 따르면 곡이 완성된 직후 친분이 있던 심수봉 씨에게 한 번 불러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가사가 너무 시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해 음반에 실리지 못했다.

그 후 잊혀졌던 이 노래는 2년 전 한 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오랜만에 심수봉을 만난 박 씨가 다시 제안하며 빛을 보게 됐다.

문학 애호가인 심수봉 씨는 "지금 보니 가사가 너무 마음에 와닿는다"며 이 노래를 지난달 발표한 11집의 13번째 곡으로 실었다.

'시월'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저기 어두운 나무 어둔 길 스치는 바람 속에서/말없이 서있는 추억 있어 나 여기 떠날 수 없네/이제 다시는 갈 수 없고 다시 이제는 오지 못할 꿈이여 시간들이여/나는 왜 잊지 못하나 길은 또 끊어지는데/흐르리 밤이여 숲이여 멈추리"
박광주 씨는 "기형도가 대중에게 많이 불리길 소망하며 써준 가사인데 그동안 묻혀있어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20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밝혔다.

박 씨는 역시 자신이 작곡하고 기형도가 노랫말을 붙인 트로트풍의 노래 '내 마음 낙엽'도 심수봉의 11집에 실릴 계획이었으나 다른 노래들에 밀려 빠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 11월호의 표지가 시인 기형도(1960~1989) 초상화로 꾸며졌습니다. 내년 3월이면 기형도 시인 20주기가 됩니다. 문학청년들 사이에 통과제의(通過祭儀)의 경전처럼 읽히면서 지금까지 40여만부 이상 팔린 기형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출간 20주년이기도 합니다. 이를 맞아 기형도론(論)을 모은 한 권의 책이 내년에 나올 예정입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하는, 어느덧 한국인의 애송시로 꼽히는 〈빈집〉의 시인 기형도는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서울 시내의 한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가 남긴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절망과 고독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던 청춘의 우울한 영혼을 노래했습니다. 시집 제목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시인을 대신해서 평론가 김현(1942~1990)이 정했습니다. 시집 해설을 쓴 김현마저 세상을 뜸으로써 이 작은 책의 활자들은 문학적 비문(碑文)이 됐고,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독자들의 영혼에 뜨겁게 각인됐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기형도는 젊어서 죽음을 예감했던 시인'이란 식으로 어둡게 인식됐습니다.

▲ 서양화가 전지연씨가 그린 기형도 시인의 초상화. /문학사상 제공

그런데 문학사상 11월호에 기형도를 회상한 글을 쓴 김영승 시인은 "기형도는 죽음의 시 순교자인가? 죽음의 화신인가? 죽음의 사도인가? 다 가당치 않은 허언들"이라며 "한국 현대시 100년을 맞아 기형도의 시를 죽음에서, 카타콤에서 구원하고 해방시켜주는 것은 살아있는 시인들이 할 일"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내가 만난 시인 기형도는 유령이 아니라 '라면 먹을까요? 라면? 라면 말고 떡라면 먹지요. 떡라면 어때요? 아 경악! 경악? 갈비탕 드시겠어요? …' 하고 재잘대길 잘하던 아주 경쾌하고 발랄한 보편 타당성 있는 청년이었다'는 겁니다. "나는 진실로 처음 기형도를 만났을 때나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의 시편 그 어느 구석을 정독해 보아도 '죽음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 김영승은 "그것은 삶의 냄새였고 그 죽음의 이미지들은 그렇게 살고 싶어했던 삶의 한 건강한 장치였을 뿐이다. 그의 시는, 아니 시적 공간은 다 연극의 소도구, 조명 같은 장치이며 효과였을 뿐"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사실 김영승 이외에도 기형도의 서정성과 환상성을 주목한 시인·평론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때이른 죽음이 만든 기형도 시인의 전설은 이제 20주기를 맞아 새로운 시인의 탄생 설화로 바뀔 때가 된 모양입니다.

 

 

 



꽃 (기형도 시인)

내 靈魂(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庭園(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신동엽·기형도… 갈수록 그리워지는 시인
 
[조선일보] 2008년 12월 22일(월)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1930~1969) 시인과
 
〈빈집〉의 기형도(1960~1989) 시인이 내년에 각각 40주기와
 
 20주기를 맞는다.
 
문단에서는 이들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재평가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신동엽 시인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작품 〈이야기하는 쟁이꾼의 대지〉가 당선되면서 '짧고도 찬란했던 10년'(데뷔 10년 만에 세상을 떴다)의 문을 열었다.
 
이후 〈산에 언덕에〉, 〈금강〉,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의 작품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기록한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 남아 있다.
 
시인의 40주기를 맞아 시인의 고향인 충남 부여에 문학관이 건립된다.
부여군은 부여읍 동남리에 위치한 생가를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아 연면적 162㎡ 규모의 신동엽 문학관을 세울 계획이다.
 
문학관은 4월에 착공돼 빠르면 내년 말 완공될 예정이다.
 
《신동엽 전집》(창비·1975)도 내년 개정판을 낸다.



기 시인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등단했지만 미처 시집을 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 유일한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과 유고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이 출간돼 있다.



《기형도 전집》(1999)을 냈던 문학과지성사는 내년 초 《기형도 기념문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고인의 벗이었던 소설가 성석제씨를 비롯한 동료 문인들과 후배 시인들이 쓴 추모 글과 평론 등이 수록된다.
계간 《문학과사회》는 20주기 추모 특집도 준비한다.


 



 
 
  2006/06/18 

 

-= IMAGE 1 =-


고 기형도 시인 시비건립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경기도 광명시 실내체육관 앞 야외공원에 기형도(1960-1989) 시인의 시비가 세워진다.
광명문화원(원장 안수남)은 16-18일 광명시 실내체육관 일대에서 진행되는 '광명 문화·학습 축제' 기간에 기형도 시인 시비건립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기형도 시인은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태어나 다섯 살 되던

 

1965년 당시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주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시 '빈집' '안개' '정거장에서의 충고' 등 도시 배후의 전형적 농촌 모습을

 

가지고 있던 소하리를 배경으로 삼은 다수의 시를 발표했다.

이 시비는 이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2003년 결성된 기형도기념사업회가 제안해 광명시가 1천만 원을 들여 건립했다.

 

시비에는 이 지역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시 '어느 푸른 저녁'이 새겨진다.

시비 제막에 앞서 이날 오후 3시부터 광명문화원 공연장에서 '살아있는 기형도 문학'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린다'

 

문학평론가 김춘식(동국대 교수), 박철화(중앙대 교수), 이광호(서울예대 교수) 등이 발제자로 나온다.

이어 오후 6시부터 시비제막식과 함께 시낭독회와 추모행사가 열린다.

 

실내체육관 특설무대에서는 '시와 함께하는 노래'라는 주제로 기념공연이 열리고,

 

 17-18일 실내체육관 광장에서 '시인 기형도 기념 전시 및 체험' 행사가 마련된다.

기형도 시, 심수봉이 부른다
 
[중앙일보] 2007년 12월 25일(화) 

[중앙일보 정현목] 한국 현대시의 큰 별인 요절 시인 기형도(1960~89·左)씨가 남긴 노랫말이 음반으로 제작됐다.
 
가수 심수봉(52·右)씨가 최근 내놓은 11집 앨범에 수록된 ‘시월’이다
.
시인이 사망한 지 17년 만이고 노랫말을 만든 지 19년 만이다.

기 시인은 유년의 우울한 기억과 도시인의 서글픈 삶을 노래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 정치부·문화부·편집부 기자로 일했으며 89년 서울 종로의 한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 “21세기 이후 한국 시 대부분은 기형도의 자장(磁場) 속에 있다”(중앙대 박철화 교수)는 평가처럼 문단은 물론이고
 
일반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89년 나온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지금까지 40여만 부나 팔렸다.

왈츠풍의 노래인 ‘시월’은 시인이 숨지기 2년 전 동료기자이자 대학가요제 출신의 작곡가 박광주(51)씨의 곡에 가사를 붙여 완성됐으나 그동안 노래로 불리어지지 않았다.
 
꿈과 시간의 부질없음을 읊은 노랫말은 평소 시인의 문학세계와 맥을 같이한다.

“저기 어두운 나무 어둔 길 스치는 바람 속에서/말없이 서있는 추억 있어 나 여기 떠날 수 없네/이제 다시는 갈 수 없고
 
다시 이제는 오지 못할 꿈이여 시간들이여/나는 왜 잊지 못하나 길은 또 끊어지는데/흐르리 밤이여 숲이여 멈추리.”

‘시월’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사연도 많았다.
 
작곡자 박씨는 원래 곡이 완성된 직후 평소 친분이 있었던 심수봉씨에 “한 번 불러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심씨는 “가사가 너무 시적이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 후 잊혀졌던 이 노래는 2년 전 박씨가 한 가요프로그램에서 심씨를 오랜만에 만나면서 다시 불러줄 것으로 요청하며
빛을 보게 됐다.

문학 애호가인 심씨는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보니 가사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며
 
“지난달 발표한 11집의 13번째 곡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심씨의 남편인 MBC 라디오 김호경 부장도 “기 시인을 기리는 의미에서 ‘시월’을
 
이번 앨범에 수록하자고 아내에게 권유했다”고 밝혔다.

작곡가 박씨는 “시인은 이 가사를 대중에게 많이 불리길 소망하며 써주었는데 그간 묻혀있어 너무 안타까웠다”며
 
“노래로 만들어주기로 한 고인과의 약속을 지키게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역시 박씨가 작곡하고 고인이 노랫말을 붙인 트로트풍의 노래 ‘내 마음 낙엽’도 이번 앨범에 실릴 계획이었으나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심씨는 “‘내 마음 낙엽’도 훌륭한 노래지만 이번 앨범의 컨셉트에 맞지 않아 뺐다”며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발매할 베스트 앨범에 수록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현목 기자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이상하게도 캐테 콜비츠의 그림이 연상되는 시인이 있다. 이미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은 시인 기형도가 그러하다.

기형도의 시는 이미 잃어버린 우리의 사랑에 대해 노래한 것인지 모른다. 얼만큼 더 악화 되어야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세상이 올까?

케테 콜비츠의 동판화 작품 “칼 리프크네히터를 추모하며”를 보면 절망의 끝에선 인간의 극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이 판화에는 “산자가 죽은자에게, 1919년 1월  15일을 추모하며”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헌사는 프라일리히라트의 시 “죽은자가 산자에게”서 착안해 옴을 알 수 있다. 그녀의 판화는 강렬한 이미지를 주면서도 비애의 아름다움을 처절하게 간직하고 있다. 몇 안되는 자화상과 아이들그림, 수화등은 그녀의 감성을 읽게해준다. 그녀는 인간권력형태의 최악인 전쟁에서 자식들 모두를 잃고 짓밟히는 가난한자, 어린이, 노동자 그리고 유린당하는 여자들을 그림으로 기록 했던 것이다.

빵을, <1924>, 석판


<독일 어린이들이 굶고 있다>, 석판 1924


<여인>,에칭 1905


짓밟힌 사람들(Downtrodden ,1900)
- 빈사 상태의 아이를 어머니가 안고 있다. 아버지는 목을 졸라 죽이라고 줄을 내민다.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나는 감성적으로 고호와 모네가 좋지만 가장 가슴깊이 감동을 준 작가는 콜비츠이다.

그녀만큼 그리기 위해서는 그녀가 겪었던 그 고통을 모르곤 불가능한 일 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까지 세상은 그런 그림을 나오게 할 것인가?

불안한 세상 만큼 이나 불안한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인 것 같아 답답하다.

장마가 그치면 나는 조금더 밝아지고 싶다. 그래도 나는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에

기대를건다. 내 자신에게.........

       1998.    6.      30

 
 
 
 
 
 





겨울 / 기형도

- 우리들의 도시

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
풀리지 않으리란 것을, 설사
풀어도 이제는 쓸모 없다는 것을
무섭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외투 깊숙이 의문 부호 몇 개를 구겨넣고
바람의 철망을 찢으며 걸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이 世上에서 애초부터
우리가 빼앗을 것은 無形의 바람뿐이었다.
불빛 가득 찬 황량한 都市에서 우리의 삶이
한결같이 주린 얼굴로 서로 만나는 世上
오, 서러운 모습으로 감히 누가 확연히 일어설 수 있는가.
나는 밤 깊어 얼어붙는 都市앞에 서서
버릴 것 없이 부끄러웠다.
잠을 뿌리치며 일어선 빌딩의 환한 角에 꺾이며
몇 타래 눈발이 쏟아져 길을 막던 밤,
누구도 삶 가운데 理解의 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
숨어 있는 것 하나 없는 어둠 발뿌리에
몸부림치며 빛을 뿌려넣은 수천의 헤드라이트!
그 날[刃]에 찍히며 나 또한 한 점 어둠이 되어
익숙한 자세로 쓰러질 뿐이다.
그래, 그렇게 쓰러지는 法을 배우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온몸에 시퍼런 절망의 채찍을 퍼붓던 겨울 속에서 나는!











기형도 시인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중 막내로 출생.
1979년 연세대학교에 입학.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하여 문학수업을 시작
1980년 대학문학상 박영준 문학상에 <영하의 바람> 가작 입선
1982년 대학문학상 윤동주문학상(시부문)에 <식목제> 당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 당선
1989년 3월 7일 새벽 뇌졸증으로 사망.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 <짧은 여행의 기록>,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전집 <기형도 전집> 등

 

 

 





안개 /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江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江을 건너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步行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食口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식은 안개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 IMAGE 1 =-

짧은 여행의 기록
--------------------------

기형도

이 젊은 요절 시인은 이미 용희가
좋아하는 시인으로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용희가 너무 아끼는 것 같아서 감히 빌려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요즈음 시에 대한 나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제는 귀퉁이가 닳아서 낡아버린 책이나마
슬쩍 그의 책장에서 빼올 수 있었다.

그의 편지와 짧은 글들 속에서
나는 왠지 편안한 기분에 빠져 들 수 있었다.
나의 청년시절을 생각나게 하고 - 그의 대학 시절의 날짜들은
나의 학번과 일치한다.
그의 성격과
그의 우유부단함과 이별에 대한 공포심과 같은 것들에 대한 공감.

그러나 그의 글들에 대한 의심스러운 부분들마저도
그의 인간적인 면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사실들이 군데 군데 섞여 있는 현학적인 수사들도
별로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하고 있는 것같다.

그의 글들을 통하여 또 한 명의 치열하게
자기와의 투쟁을 벌이다
요절한 문학인의 한 면모를 느낀다.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바람의 집 - 겨울 판화(版畵) 1

                                                                 기형도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우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 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풀풀 수십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


   약속

                                 기형도


아이는 살았을 때 한 가지 꿈이 있었다.
아무도 그 꿈을 몰랐다.


죽을 때 그는 뜬 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별이 졌다고……

......................................................


한겨울, 그리 넉넉치 않은 집 방안,
겨울 외풍에 코끝이 시리고
이불 밖으로 삐죽이 나온 발끝이 시리고
머리맡에 놓인 요강의 오줌도 얼고,
널어놓은 내복 빨래 소매단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던 때가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안개처럼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면
진눈깨비 흩뿌리는 날이면


요절한 시인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그가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19)

댓글목록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작성일
70회에는 조병준 詩人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형도 詩人 20주기를 기념하여 모교에 기념시비건립을 70회 동기회에서
기형도 기념 사업회,문학과 지성사, 문학과 사회(계간),  교우회, 기타 친했던 문인들과
같이 추진해보는 것이 어떤지.......
no_profile 이성모(高05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작성일
조병준 시인과 기형도 시인은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였고,
기형도의 돌연한 죽음에 충격을 받은 조병준 시인은 인도
'마더테레사의 집'으로 들어가 천사생활을 시작합니다.
기형도와 조병준, 두보와 이백을 연상하는 70회의 자랑스런
쌍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두 시인의 시비를 모교 교정에 세워 재학생들에게 꿈과 긍지를
심어줌이 좋겠습니다.

교우소식

교우소식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37 계우관리자(高001)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9-01-02 1712
336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9-01-01 1584
335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25 2012
334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24 1604
333 계우관리자(高001)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24 1640
열람중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23 2143
331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22 1973
330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17 2037
329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12 2117
328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12 4004
327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12 2183
326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11 2049
325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09 1740
324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03 2238
323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2-02 2107
322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1-28 2025
321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1-28 1778
320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1-24 1949
319 no_profile 玄甫고영묵(高06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1-21 2092
318 no_profile 손창수(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2008-11-21 1876

Copyright © www.gyewoo.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