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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769회 작성일 2008-10-23 16:17
[경향신문] ‘고바우 만화상’ 수상한 신문수 화백 45년 만화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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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리고 사람]“내 만화를 본 아이들 조금은 명랑해졌을 거야”
입력: 2008년 10월 23일 09:18:01
ㆍ‘고바우 만화상’ 수상한 신문수 화백 45년 만화인생

직업인이 누릴 수 있는 큰 영예의 하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나 권위자에게서 능력과 재능을 인정받는 일이다. 게다가 그 전문가·권위자의 이름이 걸린 상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예컨대 한국 고교야구 타자들의 더할 수 없는 영광은 천재 타자 이영민을 기려 제정된 ‘이영민 타격상’을 받는 것이며, 미국 프로야구 투수들은 ‘사이영 상’ 수상이 일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또 월드컵 축구 본선에 출전한 골키퍼들은 ‘야신 상’을 품에 안는 것이 자국의 우승·준우승만큼이나 값진 일이 될 터이다. 스포츠 분야뿐이 아니다. 미국의 언론인들이 ‘퓰리처 상’을 받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직역(職域)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였다는 사회적 공인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잘 알려진 김성환 화백의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고바우 만화상’의 제8회 수상자로 만화가 신문수 화백이 선정됐다. 고바우만화상 운영위원회가 밝힌 수상 사유는 “45년간 어린이 신문·잡지에 <도깨비감투> <칠칠이의 모험> <로봇 찌빠> 등의 뛰어난 명랑만화를 발표하여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었고, 만화가협회 회장으로 만화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신 화백을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만나 45년 만화인생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01년 제정된 고바우 만화상의 역대 수상자는 이홍우·이현세·박수동·김우영·황미나·이두호·허영만 화백 등이며 상금과 부상 등 운영경비는 모두 김성환 화백 개인이 마련해오고 있다.

오피스텔 5층에 마련된 그의 작업실을 들어서자 ‘바로 그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1960~70년대 코흘리개들이 머리를 처박은 채 만화방에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서가에는 신문수가 지금까지 그렸던 작품이 제본 또는 원본 상태로 보존돼 있었고, 박기당·김종래 등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만화가들의 작품도 꽂혀 있었다.

대한민국문화상 등 정부에서 주는 상과 언론사 및 사회단체에서 제정한 상은 많이 받아봤다는 신문수는 그러나 “이번 ‘고바우 상’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이번의 상이 ‘만화가가 만화가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문수가 보기에 김성환은 한국 현대만화의 선구자이자 네 컷의 신문 시사만화로 독재정권시절과 맞싸운 ‘민주화 유공자’이기도 하다.

신문수가 이번 수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상금 또한 넉넉하기 때문이다. ‘고바우 만화상’의 상금은 700만원이고, 부상도 20돈짜리 순금메달(300만원 상당)이어서 그는 이번에 무려 1000만원의 금품을 받게 되는 셈이다. 신문수는 “상금이 많다고 권위가 더 큰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경우 만화상 상금이 우리 돈으로 100만원 남짓하다”면서 “특히나 김 화백 개인이 만화계 후배를 위해 자신의 사재를 털어 쾌척한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상금으로 그는 내년 초 부인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고바우상 제정 당시 김 화백은 “만화가들이 매일 골방에 처박혀 있기보다는 단 한 번이라도 세계일주를 하면 창작의욕이 고취되고 상상력이 더욱 충만해질 것”이라고 밝혔고, 수상자들이 상금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이미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신문수가 무엇보다 이번 수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대목은 김 화백과의 개인적 인연이다. 습작을 그리고 있던 1963년 동아일보에 독자투고 만화를 보냈는데 심사위원이었던 김 화백이 그의 재능을 알아봤던 것이다. 소방차가 출동하다가 사이렌이 고장나자 소방관이 ‘앵~’하고 우는 아기를 안고 화재현장으로 달려가는 내용의 만화를 본 김 화백은 “아동만화로 대성할 유망한 젊은이”라고 칭찬했고, 그것을 계기로 신문수는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스물 다섯살에 김 화백과 맺은 인연이 칠십이 되어 값진 열매를 맺었으니 실로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명랑만화’란 장르는 <순악질 여사>로 널리 알려진 길창덕 화백이 60년대 초에 그렸던 일련의 작품에서 비롯된 것으로 신문수에 따르면 “재미있고 웃음이 나오는 만화”라고 한다. 이를테면 코미디의 만화적 버전인 셈이다. 특히 60년대 중반부터 80년 후반까지 어린이 잡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명랑만화는 전성기를 맞게 됐다. 신문수는 그 때 자신이 수많은 명랑만화를 그린 것에 대해 지금도 자부심과 긍지를 간직하고 있다. 요즘만큼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도 아이들은 공부에 찌들리고 매일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닦달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자신의 만화로 인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공부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면서 ‘명랑해졌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신문수를 비롯한 이 땅의 만화가들을 둘러싸고 있던 작업 환경은 참으로 열악한 것이었다. 만화 또는 만화가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극히 낮았던 데다가 극단적인 반공이데올로기와 단선적인 권선징악·계몽 이데올로기가 그들을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수는 “엄마·아빠가 한 이불을 덮고 있는 장면에 대해서는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가위질을 하기 일쑤였다”면서 “전쟁만화에서 피흘리는 장면도 잔혹하다며 퇴짜를 놓았다”고 말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만만한 게 홍어X’이라고 매년 어린이날이 되면 ‘아동들의 정서를 좀먹는 불량만화’가 서울 남산 어린이회관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가 삽시간에 불태워지는 것도 일종의 연례행사였다. 신문수는 “이를테면 짜장면은 ‘짜장면’이라고 표기해야 제격인데도 ‘자장면’이라는 원칙에 맞춰야 했으며 그것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가차없이 난도질했던 것이 그 당시의 검열·규제였다”면서 “그때 표현의 자유을 억업당했던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신문수 역시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살펴봐도 그가 그때 그렸던 만화가 매력이 있는 것은 작품 자체의 단순하고 건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의 대표작인 <도깨비 감투>는 우리나라의 전래 도깨비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머리에 쓰면 단숨에 모습을 감출 수 있는 감투를 얻은 주인공 혁이와 그 친구들이 벌이는 사건을 담고 있는데 아주 간단하면서도 기기묘묘한 상황을 펼쳐내는 이 작품은 만화적인 상상력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신문수가 만화가 또는 명랑만화가로서의 지위를 단단히 쌓은 계기는 단연 <로봇 찌빠>를 통한 ‘대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 캐릭터인 <로봇 찌빠>는 미국의 로봇회사에서 만들어졌지만 두뇌 회로 이상으로 ‘얼토 당토 않은 짓’을 일삼다가 한국의 개구쟁이 ‘팔팔이’네 집에 정착한다. 일본만화의 <아톰>처럼 제트추진 장치도 없이 머리통에 달린 구식 프로펠러로 하늘을 날고, 용모는 돼지코에 몸통은 깡통이지만 그 당시의 아이들은 바로 이처럼 ‘어수룩한 로봇’인 찌빠에 열광했다. 1974년 어느 어린이 월간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한 뒤 무려 18년간을 연재한 <로봇 찌빠>는 당시 어린이 문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로봇 찌빠>는 당시 신문수의 삶과 세계관이 투영된 작품이기도 했다. 그때 이미 일본만화의 <아톰>과 한국만화의 <로보트 태권V>가 나온 상태였는데 이 둘 다 너무나 ‘폭력적‘이고 ‘완벽해서’ 그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문수는 “<아톰>이나 <로보트 태권V>나 모두 덩치도 작지 않은 데다 상대방을 단숨에 박살내는 무시무시한 캐릭터여서 싫었다”면서 “그 같은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로봇보다는 약간은 모자라면서도 별볼일 없고, 바로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로봇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찌빠였다”고 말했다.

‘찌빠’라는 명칭을 만들기 위해 그가 기울였던 노력 또한 각별했다. 신문수는 아이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수백개의 대안을 마련해놓았다가 최종적으로 ‘찌빠’로 결정했다. 일단은 영어나 한자어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의 음운구조를 따를 것, 그중에서도 아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경음(硬音)’일 것 등의 원칙을 따라가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찌빠’의 고향은 서울 강북구 쌍문동이다. 그가 신접살림을 차린 이래 딸을 셋 낳고 길렀던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신문수는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친구들도 몰래 모델로 삼다보니 자연스레 쌍문동이 ‘찌빠’의 고향이 됐다”면서 “지금도 그 동네만 생각하면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문수가 지금 생각해도 기특한 <로봇 찌빠>의 업적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이다. 찌빠가 북한의 할머니를 데리고 와서 남한의 아들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는데, 그 얘기가 나갔을 때 어린이 독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조부모 등도 폭발적인 반응을 보냈다고 한다. 신문수는 “그때는 이산가족 상봉의 개념조차 없었을 때였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면서 “찌빠가 과감한 민족화해 행적을 벌였던 것은 개인적으로 절친한 월남실향민 길창덕 화백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만화계 상황을 관련해 신문수는 “참으로 금석지감이 든다”고 말했다. 만화가 당당한 대중문화영역으로 진입한 지 오래인 데다가 만화작가 또한 ‘히트’를 칠 경우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화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거나, 만화가가 CF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그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의 만화, 또는 만화가에 아쉬움을 느끼는 대목은 작품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남을 뿐 ‘종이’로는 전승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 현재의 젊은 만화가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소홀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우려감을 표시했다. 강풀이 뛰어난 작가지만 이현세의 ‘까치’와 같은 캐릭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신문수가 만화 인생 45년을 가장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만화가는 고(故) 고우영이다. 동갑내기이기는 하지만 만화 경력으로는 훨씬 선배인 고우영은 스토리 텔링, 작화(作畵) 능력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만화가라는 것이다. 신문수는 “지금도 고우영이 그린 <삼국지>를 매일 보면서 그의 재능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수는 또 후배 작가 중에서는 <로망스>의 저자인 윤태호를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0대의 작가가 노인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는 능력에 반했다”고 말했다.

신문수는 원래 공군사관학교에 가려다가 ‘체중미달’로 뜻을 이루지 못한 뒤 학창시절 공부보다는 선생님들의 캐리커처를 이른 시간에 절묘하게 그렸던 재능을 살려 만화가가 됐다. 신문수가 만화가가 된 지 45년이 된 2008년은 그에게 세 가지 축복이 한꺼번에 닥친 해이기도 하다. 고바우 만화상을 받고, 모교인 중앙고로부터 ‘자랑스러운 중앙인’으로 뽑힌 데다 <로봇 찌빠>가 52부작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만화에만 모든 것을 쏟겠다”고 말했다.

신문수 화백은

▲1939년 충남 천안 출생

▲서울 중앙고 졸

▲1963년 대중잡지 아리랑에 데뷰

▲<칠칠이의 모험> <도깨비감투> <서울손오공> <로봇 찌빠> 등 작품 다수

▲한국만화가협회장, 한국간행물윤리위원 역임

<손동우기자 sdw@kyunghyang.com 사진 김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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