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억(57회)교우 인터뷰- 내 인생의 골프 문학은 영원히 함께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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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골프·문학은 영원히 함께 할 것”
골프와 교감 시·수필등 작품으로 옮겨
선친 뜻 이어받아 탈북자위한 사업주력
골프와 교감 시·수필등 작품으로 옮겨
선친 뜻 이어받아 탈북자위한 사업주력
골프와 문학은 다른 듯 너무도 닮아 있고 무엇보다도 교감할 때 가장 행복 하죠”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시인, 수필가, 동화작가, 여행작가, 교수(박사)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핸디0의 싱글골퍼로 불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라종억(57회) 박사는 단순히 골프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골프를 통해 자연과 동반자와 교감하면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다양한 글로 토해낸다.
골프장을 돌아보며 얻어진 심상을 시로서 그려낸다. 동적인 골프란 스포츠와 가장 정적인 시란 이미지를 잘 버무려 그가 만들어낸 문학적 장르가 바로 소묘시초(素描詩抄)다.
라박사가 골프 라운드를 통해 쓴 시만해도 수십편에 이른다.
크리스탈밸리, 서원밸리, 렉스필드, 이스트밸리, 청우골프장등 그의 손길이 닿으면 아름다운 시가 된다.
시뿐만아니라 전세계 골프장을 다니면서 쓴 여행기도 500페이지 분량을 써놨다. 이외에도 수필, 동화, 각 잡지에 쓴 골프컬럼이 서재에 잔뜩 쌓여있다.
“문학과 골프 안에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 있어요.
아마도 그것은 몰입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한다면 열정이겠죠”올해로 그가 골프를 시작한지 40년이 된다.
1968년 고려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그의 선친은 독립운동가이자 국회부의장을 지낸 라용균 선생으로 일찍이 런던 유학시절 골프를 배웠다.
라종억 박사가 골프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가히 서정적이고 시적이다. 선친을 따라 서울CC(지금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갔다가 아버지가 친 골프 볼이 붉은 석양으로 빨려들어 가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 황홀함을 잊을 수 없어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라 박사의 골프는 아들 라범수씨에게 이어져 지금은 보기 드문 `3대 골프' 명문가를 이루게 됐다.
라박사는 아직도 골프명문가하면 허정구회장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1974년에 열린 제21회 아마추어 골프선수권에서 대한골프협회 허정구 회장이 자신의 아들인 허광수(현KGA부회장)씨에게 우승컵을 수여하는 장면이 너무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골프는 단순히 비즈니스를 위한 수단과 골퍼 개인의 탐욕을 실현시켜주는 스포츠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들과 관계하며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 부산물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골프스승은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골퍼 홍덕산씨이다.
잠시 클럽을 놓은 적도 있지만 지금도 핸디0의 실력을 보이는 것도 홍덕산 프로에게 워낙 기초를 잘 배워서라며 은근히 스승을 치켜세운다.
골프장은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며 예술을 창조해내는 공장과 같다고 말한다.
자연에서 골프를 치며 느끼는 그 형언할 수없는 것들이 머리와 가슴에서 이슬처럼 맺혀 반짝일 때는 밤을 새워서 글을 쓴다고 한다.
사실 라 박사는 태권도 8단, 수박도, 태수도가 각각 5단이며 합기도 4단의 무예 고수다.
한마디로 문무를 겸한 보기 드문 인물이다.
운동으로 단련된 동적인 정신세계에서 어떻게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정적인 글들이 잉태되는지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여기에 선친의 숭고한 민족주의를 이어받아 북한 탈북자들을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탈북자 가족 청소년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탈북자 가운데 전문가들 10인으로부터 `10년 후의 북한' 전문서적도 출간했다.
라박사는 골프와 문학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그 잉여물이 바로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국가시스템 및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는 소위 휴머니티 NGO활동에 전념하는 것이다.
“행복합니다. 골프가 있어 문학이 있어 여기에 우리 북한 동포를 생각하고 함께할 수 있는 작은 마음이 있기에…”
2006년엔 수필식 자서전인 에소그래피(에세이와 자서전의 합성어) 형식으로 쓴 `왼손과 오른손의 대화'로 한국문학예술상 대상을 수상했다.
매일 아침 찬란한 태양이 뜨는 한 골프와 문학 그리고 통일문화연구원은 계속 될 것이라고 한다.
많은 직함만큼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지만 매순간을 사랑하며 자신이 아닌 모든 것과 교감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부산여대 석좌교수, 순천향대 명예교수, 경남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국무총리실 통일연구원 상임고문, 통일교육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제협력 분과위원장·운영위원까지 맡고 있어 그의 삶은 봉사의 연속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 하나의 꿈의 빛깔을 내비친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와 골프여행을 통해 써온 `여랑소상(旅浪小想)' 수필집이다. 여기에 골프장을 다니며 쓴 시를 그림과 함께 전시할 수 있는 시화전까지도 구상중이다.
“골프는 내게 있어 문학과 잘 버무려져 온갖 유기체들과 교감하게 하고 발전시켜 줍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놈입니다.”
라종억 박사는 앞으로 남은 삶 역시 골프와 문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랑하고 또 어떻게 나눠줘야 하는지를 배우고 실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생떽쥐뻬리의 어린왕자 중에 “네가 오후4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꺼야” 처럼 그는 이순의 나이답지 않게 소년같은 수줍은 웃음을 보인다.
〈이종현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