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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808회 작성일 2019-12-31 13:02
홍수환(60회) 교우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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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60회) 교우의 소식입니다.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두체급 챔피언 홍수환

(서두 생략)

 KBC회장 홍수환이 아닌 70년대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복서 홍수환에 대한 복싱 스토리를 써보기로 했다. 

복서 홍수환은 출생부터가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신의주에 뿌리를 둔 홍회장 부친 홍경섭 일가는 월남해 서울에 정착한다. 6·25 사변이 터져 3일 만에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당하고 하루가 지난 1950년 6월 29일 목요일, 서울 장충동 지금의 앰베서더 호텔 근처에서 총성과 폭발음으로 아비규환 같은 북새통 속에서 홍수환은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홍수환은 24년이 지난 74년 7월 4일 대망의 세계챔피언에 오른다. 그날도 목요일 이었다. 점성술로 유명한 영국의 동요에 이런 노래가 있다. ‘화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슬픔에 가득찼고, 목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먼길을 가야했다(Thursday.s Child has fas to go).’ 

그래서일까 홍수환은 74년 타이틀전을 벌일 때 일본, 홍콩, 스리랑카, 세이셸,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종착지인 더반에 36시간에 걸쳐 도착했고, 서울로 출발할 때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미국 뉴욕, LA, 하와이, 일본을 거쳐 귀국하면서 최초의 세계일주가 조선시대 민영환 이라면 복서로는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74년 그해는 홍 회장의 아내인 옥희라는 신인가수가 ‘나는 몰라요’라는 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해였다.

홍수환은 이에 그치지 않고 77년 지구의 반대편인 파나마라는 먼 곳까지 원정을 가 카라스키야와 치른 일전을 비롯해, 82년부터 10여 년 동안 알레스카와 LA 등 타국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운명처럼 먼 길을 떠나야 했던 그의 여정은 어쩌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홍수환이 권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수송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였다.  당시 앞집에 이사 온 초대 한국 페더급 챔피언 김준호의 영향으로 복싱에 관심을 갖게됐다. 66년 중앙고에 입학한 그는 그해 6월 김기수가 챔피언이 되어 카퍼레이드를 펼치는 모습을 보고 복싱에 입문한다, 

복싱에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아 홍수환은 체육관 평가전 경기에서 큰형 홍수일이 참관한 가운데 상대방의 카운터 펀치에 코피를 쏟아내며 판정으로 패하며 고개를 숙인다. 이듬해 서울 신인대회에 출전했지만 어설픈 기량으로 또다시 참패를 당한 그는 특유의 오기가 발동하여 재차 전국 신인대회에 출전했지만 역시 보기 좋게 1회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중앙고를 졸업한해인 69년 5월, 장충체육관에서 김상일을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지만 역시 졸전 끝에 가까스로 무승부를 기록한다. 글러브를 낀후 4차례 경기에서 단한경기도 승리하지 못한 홍수환의 경기를 지켜본 모친 황농선 여사는 ‘야 수환아 그래도 사내가 글러브를 꼈으면 단 한 경기라도 이기고 그만 두라’며 조력자로 나섰다. 남편 사후 미군부대 식당에 근무하던 황 여사가 조력자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홍수환과 훈련했던 48년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한수안 선생의 아들인 한창덕은 얼마전 기자에게 홍수환은 당시에 복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식인 육회를 모친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공수받으면서 훈련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였을까. 그 해 6월3일 최창배와 벌인 4회전 경기에서 드디어 5경기 만에 극적인 판정승을 거두며 4전5기 신화(?)를 창조했다. 천재와 둔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파라독소(Paradox)를 홍수환은 제1차 4전5기를 통해 실증한 선례를 남겼다고 말할수 있겠다. 

홍수환은 이후 70년 6월, 일본에서 하라다에게, 71년 10월 괌에서 살로마에게 각각 치명적인 2패를 당하는 성장통을 겪지만 이를 딛고 일어나 74년 7월 4일 만지(蠻地)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먼 아프리카 최남단 인구 70만의 휴양도시 남아공의 더반에서 아놀드 테일러에게 4차례 다운을 얻어내며 승리해 대망의 WBA 밴텀급 세계정상에 오르며 김기수 이후 두번째 챔피언에 등극한 것이다. 

이 경기에서 그는 한차례 위기도 있었다. 8회에 귀에서 피가 나와 경기를 중단하려 하는 등 식겁한 순간도 있었지만 잘 통과되었다. 뚜렷하게 내세울것이 없는 일병 홍수환 이 자고 일어나보니 어느새 유명해진 대중문화의 스타덤에 올라선 것이다. 

74년 7월 18일 청와대를 예방한 홍수환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2백만원의 격려금을 받는다. 이 돈을 통큰 그의 모친은 제2의 홍수환을 만들라는 뜻에서 한국권투위원회에 백만원을 기탁했고, 나머지 돈은 영외거주할 전셋집을 마련하는데 사용했다. 

홍수환의 타이틀은 김기수가 타이틀을 상실한지 8년만에 획득한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이 챔피언 벨트는 8개월 만에 풀어야했고 그를 잔잔한 미소로 격려해주던 육영수 여사도 8월에 문세광에 의해 삶을 등졌다. 이듬해 육 여사의 맏아들인 박지만군이 중앙고에 입학했으니 박지만은 홍수환의 중앙고 8년후배로 인연을 맺는다. 묘하게 8888이란 숫자가 연결된다 그는 75년 10월 전재산을 쏟아부으며 타이틀을 뺏긴 자모라와 WBA 타이틀을 놓고 재대결을 벌였지만 12회 TKO로 물러나며 야인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77년 11월 카라스키야와 신설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 결정전에 출전 4차례 다운을 딛고 극적인 승리를 쟁취, 최초로 두체급을 석권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2회 4차례 다운을 당한 후 남은 46초 동안 홍수환은 카라스키야의 맹폭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세컨에서는 타올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로 카라스키야의 일방적인 독주였지만 그는 이를 깨물고 버티며 4전 5기의 승리를 일궈냈다. 박수를 쳐주고 싶은 대목이다. 태국의 양대 영웅 (英雄)인 수코타이와 베니세 보코솔 을 꺽은 홍수환의 숨은 저력이 살아난 것이다.

그날이 27일이었다. 27살의 홍수환은 그날 국내에서 무려 27 차례나 그 경기를 재방송해주는 감격 속에 콘페티(confetti)가 우박처럼 쏟아지는 감격속에 김포공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홍수환은 두차례의 타이틀을 오래동안 지키지는 못했다. 

그는 은퇴 후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의 트레이너로 현장에 복귀해 81년 4월 와다나베와 7월의 웰리 젠슨, 81년 11월의 자칼 마루야마와 타이틀 방어전에 전격 투입, 3차례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치러 지도자로도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82년 2월, 이시이 고키와의 4차방어전을 앞두고 풍운아답게 전격사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그 후  92년 6월, 김광선의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트레이너로 복귀해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는 롱런 챔피언은 아니었지만 그가 좌절하지 않고 보여준 승부혼의 드라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홍수환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동생 수덕양이 집에 기르던 개가 물어 화급을 다투던 상황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이때 홍수환은 가방을 집어던지고 개에게 달려들어 동생 수덕양 을 구한 일화가 있다. 작금의 한국 권투가 개에게 물린 동생 수덕양과 같은 위급한 상황이다. 이런 절박한 현실에서 다시 한 번 부활의 매직을 기대해본다. 홍 회장이 다시 한 번 한국권투 부활의 디딤돌을 만든다면 생각을 달리하는 4개의 다른 기구에서도 쌍수를 들어 환영하리라 생각한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 기자

<상세보기 및 출처>
http://www.mhj21.com/12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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